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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수박, 꽃할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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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수박으로 하모니카 부는 법
풍산들에서 달콤한 안동 풍산수박을 맛본 뒤라면,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경험을 하리라. 기왕 풍산들까지 왔다면 내친김에 더 달려보기로 하자.
916번 지방도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풍산에 들어섰다는 신호. 이제 안동 시내와는 다른 작은 소읍이자 그 자체로 오랜 역사를 가진 풍산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쪽으론 거침없이 풍산평야가 이어지고 다른 쪽으론 유서 깊은 마을들(소산마을, 가일마을)이 차례로 스쳐 지나가니, 은행나무 길 위에 서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벌써 시내 쪽 일은 까마득해진다. 잊어버린다. 시골길의 고즈넉함과 소박한 운치에 풍덩 빠져든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풍산들
어느새 노랗게 길을 뒤덮던 금계국은 지고 하얗게 망초가 꽃을 피웠다. 게다가 하늘은 바닐라 스카이. 우유를 탄 것 같은, 그러나 진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아니라 아주 옅고 가벼운 무지방 우유에 가깝다. 굳이 맛으로 표현하자면 초등학교 문방구에서나 팔 법한, 크림 소다수 맛의 하늘색 싸구려 쭈쭈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격하게 달콤하다. 근래에 보기 드문 하늘. 만약 시내에서 이런 하늘을 봤다면 가슴에 통증을 느꼈을 지도. 하늘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가던 길을 멈추지도, 하회마을 행 46번 버스에 올라타지도, 전화를 걸어 약속을 미루거나하지도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아래로 내려뜨려 묵묵히 가던 길을 마저 간다. 어쩌면 길가의 커피가게에 들러 선 채로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실지도 모르겠다. 검고 진한 커피는 시들한 오후에 작은 위안이 되겠지. 그러나 그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서 있는 곳은 풍산의 은행나무길. 길은 망초꽃으로 하얗고 태양은 눈부시게 화창하고 더구나 하늘은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바닐라스카이. 감당이 안 된다면 외면하는 대신 될 때까지 바라보면 되는 것을... 이 간단한 것을 지금에야 아는구나. 넘치도록 충분하다. 이 하늘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하늘을 따라가 볼 이유.
하늘이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미치는 것이 가능해지는, 여기는 풍산.
이 길을 따라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으로 갈 수 있다- 낙동강 자전거길로 강둑을 시원하게 달리는 것도 한 방법
길은 갈림길이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둘 사이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하늘은 어디나 똑 같은 게 아닐까. 혹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소한 차이를 구별할 정도의 세련된 감식안 따위 내게 있을 리 없잖아. 그러나 그동안 하늘을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시내의 하늘과 이 곳 풍산의 하늘이 분명 차이 나기 때문이다.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한 도심의 공기엔 마약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좀 더 호젓한 쪽이다.
병산서원 가는 호젓한 흙길
바닐라스카이는 절벽 위 비포장 흙길 사이로 이어진다.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지 못하는 좁다란 흙길 위로 여름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고, 아슬아슬한 절벽 아래로는 짙푸른 낙동강. 이 길은 누군가의 꿈속이 아닐까. 현실 속에서 이런 길 위에 서 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병산서원 가는 절벽길에서 내려다 본 풍산들- 병산서원 가는 흙길의 운치와 풍경은 기꺼이 발품을 팔고 싶을 정도
하늘에선 크림 소다수 맛이 나고 길은 하얗게 타오르고 무성한 수풀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멈추면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길은 고요하고 담담하게 천 년 전 모습 그대로 여기 있구나. 조금씩 아껴서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바로 이 길, 병산서원 가는 길이다.
문득 문득 멈추고 찰칵 찰칵, 눈꺼풀을 열고 닫으며 길을 맛보려 애쓴다.
마침내 도착하고 나자, 상심한 마음은 아끼던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어버린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다. 조금만 더 맛보고 싶은 그 안타까운 심정이라니...
그러나 곧 눈앞에 펼쳐지는 건 오래된 나무기둥과 멋스런 기와지붕 사이로 보이는 바닐라 스카이. 두고 온 길은 잠시 잊기로 하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나무 마루에 걸터앉아 본다.
여기 봐, 하늘이 너무 예뻐!
병산서원 만대루 측면
병산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꼽힌다
서애 류성룡을 배향,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은 병산서원
아, 변덕은 끝이 없고, 안동 풍산수박을 멋지게 소화하는 법은 길 위에 서는 것 만한 게 없어라. 달콤한 안동 풍산수박을 먹고 고개를 들었을 때 만약 당신 앞에 바닐라스카이가 펼쳐진다면, 망설임 없이 그 길, 916번 지방도로를 따라 직진할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흙길과 서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
총각의 Tip
안동수박의 주 생산지는 안동시 풍산읍과 도산면입니다
풍산수박 (5월- 7월 중순까지 생산)
물돌이 수박 작목반장 김대현 010-2286-6553
도산수박 (7월 중순부터 생산시작)
도산 수박 작목반장 이원오 011-806-1461
병산서원 가는 길은 하회마을 삼거리에서 시작,
흙먼지 나는 비포장길이 4km 이어집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는
반드시 발품 팔아 걸어보아야 할 길로
이 길을 강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