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원 설화의 변용(變用)
유인원 기원설화의 변용의 실례를 꼽아 보자면, 먼저 중국의『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이 먼저 떠오른다. ‘오공(悟空)’이라? “공을 깨닫는다“ 라는 그의 이름부터 예사스럽지 않다. 불교적으로 각색된 것이 확실한 이름이다. 하여간 그의 프로필을 마저 보자. 그는 고타마붓다의 10대 제자 중,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須菩提)존자에게서 술법을 전수받고 ‘오공’이라는 당호를 받았다고 한다. 선종용어로 해석하자면 한 소식 한 도인이란 뜻이고 출가를 안 했으니 오공거사이다.
아주 먼 옛날, 사대주의 동쪽 끝 동승신주(東勝神州) 오래국(傲來國) 화과산(花果山) 꼭대기에 천지의 영기가 모여 만들어진 신묘한 바위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바위가 갈라지면서 바위원숭이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고 한다. 이른바 돌연변이다. 그는 수렴동(水簾洞)이라는 선경에 사는 원숭이들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다름대로 풍족하게 살았지만, 가끔 배부른 원숭이의 삶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길을 떠났다. 이른바 위대한 가출이었다.
목적은 불로장생의 술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으나 스승 수보리(須菩提)존자를 만나서 수행에 전념한 끝에 타고난 짧은 기간에 둔갑술, 신외신법술(身外身法術), 근두운술(觔頭雲術) 등의 초능력을 마스터하고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여의봉까지 얻게 되었다. 이에 기고만장해진 그는 저승세계로 달려가서, 3백년이라고 기록된 자신의 수명이 적힌 염마장(閻魔帳)의 해당기록을 지워 버렸다.
이런 행패를 보다 못한 옥황상제가 오공을 체포하여 벌을 내리려 했으나,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한 태백성(太白星)의 조언을 받아들여 천계로 불러들여 필마온(弼馬溫)이란 벼슬을 내렸다. 채찍 대신 당근이었다. 그러나 오공은 뒤에 그 직책이 말을 돌보는 하찮은 벼슬이라는 것을 알고는 화가 치밀어 사표도 내지 않고 고향인 수렴동으로 내려와 버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하늘과 맞먹는 성인이란 뜻의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부르며 원숭이나라의 개국을 선포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천계장군들에게 그를 압송해 오라고 명령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손오공에게 번번이 여의봉에 얻어터지기만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번에도 태백성이 중재안을 내 놓았다. 옥황상제는 망신살이 뻗치긴 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지라 손오공을 제천대성으로 봉하여 천계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렇게 되어 일개 바위원숭이 주제의 오공은 졸지에 옥황상제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천계 신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의 어릴 때 꿈을 성취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정도에서 만족할 평법한 그릇이 아니었다. 오공은 천도원(蟠桃園)을 지키는 벼슬을 받아 근무하던 중에 슬그머니 ‘불로장생’이란 유혹의 빠져 천도를 모조리 훔쳐 먹은 뒤 신산들의 연회에 쓸 음식까지 작살을 내놓고 태상노군(太上老君)의 금단(金丹)까지 훔쳐서 수렴동으로 삼십육계 해버렸다.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옥황상제는 10만의 하늘병사들을 보내 수렴동을 포위하고 천계장군들을 총 동원하여 수렴동을 싹쓸이하고 오공을 주살하라는 토벌령을 내렸다. (중략) 이에 천계장군 뿐만 아니라 신선들이 총 동원되어 어렵게 오공을 사로잡기는 했으나 오공이 이미 금강불괴의 몸이 된지라 칼이나 창으로는 처형할 수가 없었다. 이에 태상노군은 일단 오공을 팔괘로(八卦爐)에 가두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오공의 탈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옥황상제는 마지막으로 체면불고하고 석가여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렇게 하여 손가락경주 끝에 겨우 오공을 다시 사로잡아 오행산(五行山)에 가두는 것으로『서유기』 의 제1부는 끝이 난다.
그리고 500년이 지나 당 태종 시대가 되었다. 태종은 현장(玄獎)법사를 선발하여 삼장(三藏)이라는 호를 내리며 부처의 나라 천축으로 가서 경전을 구해 오라고 칙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삼장일행은 석가여래의 도움으로 오공에게 긴고아(緊箍兒)라는 안전장치, 즉 주문에 의해 조여지는 머리띠를, 머리에 채워서 천축으로 떠나게 하였다.(중략)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는 것은, 손오공과 티베트의 원조 원숭이 ‘투’와 그리고 인도의 원숭이장군을 비교해 보면서 누가, 누구를, 언제, 어떻게 “패러디했느냐?” 를 알아보고자 기본데이타(D.B)가 필요해서였다.
이를 보면 오공도, 티베트족의 조상 원숭이 ‘투’처럼, 변종원숭이 출신이라는 것과 둘 다 오랜 시간 도를 닦는다는, 프롤로그 부분이 같이 전개된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오공이 도교의 옥황상제가 주재하는 천계는 마음껏 농락했지만 끝내는 석가여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물론 여기서 무애자재한 오공이 스스로의 의지로 불교로 귀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문을 외우면 조여드는 ‘머리 띠’를 두르고 천축으로 간다는 대목에서 드러나지만, 이 역시 불교적 각색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그렇지만 손오공과 티베트민족의 조상인 ‘투’의 경우에서 극명한 차이를 들어내는 대목이 있다. 바로 투는 스스로의 의지로 유인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여 인간처럼 되려고 끝없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유인원에 만족하지 않고 반원반인으로 유전인자를 개조해나가며, 비록 자비심을 구실로 바위여자와 결합하여 자식들을 낳았지만, 그의 후예들을 끝내는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물론 ‘투’가 그런 원대한 의지가 있었느냐는 별도의 문제이다. 마치 우리의 환웅(桓雄)할배가 후손들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곰여자(熊女)와 합방을 했느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이니까. 여러 번 되풀이 되는 이야기지만 신화나 전설은 그 전승자나 편자들이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과정이나 방법이 얼마나 논리적이냐 또는 과학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유인원의 특성 중의 하나는 ‘흉내’를 잘 낸다는 점이다. 또한 이는 우리 현생인류의 DNA에도 잠재된 특징이기도 하다. 미래공상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오공 같은 ‘반인반원(半人半猿)’ 형의 우주인이 단골로 등장함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유인원은 흉내를 잘 내고, 현생인류는 신의 흉내를 잘 낸다.”라는 등식과 등식의 가속도가 붙은 현재로선 우리로선 다가올 멸망까지도 예견하게 되었다. 신의 마지막 히든 카드가 “철저한 파괴라는 한 수“ 이니까….
다음으로 집어볼 필요가 있는 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원숭이의 신화적 변용은 티베트의 조상원숭이나 손오공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버전의 원숭이설화가 오히려 훨씬 오래전부터 힌두문화권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었다. 바로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 라마(Rama)의 동맹군 장수인 하누만(Hanuman) 혹은 하누마트(Hanumat) 설화에서 이다.
힌두문화에서 하누만은 신과 인간의 중간상태인 반신반인(半神半人) 반원반인(半猿半人)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또한 랑구르(Langurs)원숭이의 왕으로서 수억 명의 힌두교도들은 랑구루 원숭이조차도 그냥 동물이 아니라 신적존재로 여기고 있다. 이런 사실은 현재 힌두문화권 나라에는 수많은 하누만 신전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수많은 원숭이들이 주인노릇을 하며 공양물을 받아먹으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누만은 바람의 신 바유(Vayu)와 압사라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마야나>에서는 하누만은 원숭이군대를 이끈 동맹군의 영감한 장군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총 대장 라마가 중상을 입게 되자 히말라야 너머 카일라스 산으로 날아가서 약초의 산을 통째로 날아와 다친 군사들을 치료해주기도 하고 인도의 남단 마헨드라 산정에서 라바나 악마가 사는 스리랑카까지 넓은 바다를 건너뛰어 자신의 원숭이병사들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갈 다리를 만들게 하여 마침내 라바나 악마를 항복시켜 라마의 부인을 되찾아 오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쟁영웅이다.
하누만의 위상은 동남아 힌두문화가 전파된 동남아 각국에서도 보인다. 태국의 하누만 설화는 <라마끼안> 이란 이름으로 전하지만 그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태국이 불교의 나라라고 하지만, 불교 역시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태국 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반도의 나라들의 불교유적들은 힌두교적 영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태국의 왕궁벽화나 앙코르와트의 회랑에서 원숭이는 주된 모티브 중에 하나인데, 이는 봉건왕조에 대한 충절의 상징으로 왕실에게 충성을 하도록 부추긴 면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렇듯 하누만의 전설은 불교에 영향을 주었고, 중국으로 무대를 옮겨『서유기』로 패러디되었다는 가설이 있기는 하다. 물론 연대로만 보면 하누만 설화가 훨씬 앞서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곱씹어보면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티베트의 설화가 오공거사 탄생에 깊숙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는 편이다.
또한 근래에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서 <드래곤볼>이라는 대박만화의 모티브가 되었고 또한 허리우드 영화의 동양적 아이템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티베트의 조상을 패러디한 오공거사가 원조 대신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렇듯 범아사아권의 원숭이 설화는 원시신앙이나 도교 또는 불교적 배경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나,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구비문학으로, 나아가 개국신화로 발전되어 내려왔다. 처음에는 시기적으로 앞선 인도의 원숭이 토템 사상이 티베트의 기원설화에 영향을 주고, 다시 현장법사의 구법여행과 어우러져 손오공이란 아이템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결론이지만, 한 번 정리하면『서유기』라는 소설은 뵈민족의 시조설화인 유인원 진화설을 모방한, 요즘말로 ‘패러디’한 것이고 물론 제천대성 손오공은 뵈 민족의 시조 투 원숭이를 모델로 하여 불교적 각색을 거쳐서 환타지소설이 되었다고….
그러나 유인원기원설은 불교적 환타지로 둔갑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무늬만일 뿐이지 유심히 속고갱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윤회론적 진화론’이라는 의미심장한 주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부터 학교가 며칠간 축제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랜만에 지누단다 온천에나 가야겠다. 며칠 더운물에 몸을 담구고 이른바 힐링을 하면서, 만년설에 덮인 안나푸르나 남봉 넘어로 지는 찬란한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이미 오래된 친구 같은 하얀수염 원숭이무리 대장을 만나면 한 가지 물어 봐야겠다.
“여보게 친구! 잘 있었어?
근데 정말 자네 조상이 오공거사 손씨 맞는 거여?”
(사족) 이 글을 쓰면서 그 흰 수염을 기른 원숭이들의 생물학적 정체가 궁금하여 여러 차례, 여러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본 결과, 내가 만난 원숭이들은 역시 <Himalayan Langurs>의 이미지들과 일치하고 있다.
내 친구 히말라야 랑구루 원숭이
친구의 친구, 골초 온천탕 관리인
자료화면의 히말라야 랑구루 원숭이
책 읽는 원숭이= 인류의 조상?
서유기 상해판
영역된 서유기
삽화가 수록된 서유기
환타지물로 각색된 서유기
영역된 서유기 전집
힌두권의 하누만장군
첫댓글 이상으로 4편으로 유인원기원설을 마감합니다. 역시 좀 어렵지요?
훌륭한 주장, 동조...
히말라야 원숭이는 좀 특이하게
생겼네요~
지누단다의 랑구르. 하누먼 신을
만나러 가고싶은 생각 이 드네요~
재미있는 가설 더하기 작가님의
글담에 흥미 진진~~~^^
칭찬이신가요? 아니면 객담인가요? ㅎㅎ
혹시 포카라까지만 오시면 마중나가서 신선 원숭이 만나보게 해드릴게요.
트레킹중에 히말라야 랑구루 원숭이를 못 봤는데 지누단다 온천 근처에서 볼 수 있나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