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안전 지킨다는데 왜 논란 지속될까
[전승용의 팩트체크]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아이들을 소중히 아끼고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스쿨존 관리·감독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함을 밝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경찰청
‘민식이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아실 테니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스쿨존 단속을 강화하고, 운전자가 부주의한 과실(안전에 유의하지 않아)로 어린이에게 피해를 줬을 경우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보행자에 우선적인 법에 찬성합니다. 아무래도 차에 탄 운전자보다는 아무런 보호장치 없는 보행자가 약자이기 때문이죠.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민식이법 통과 이후 많은 불만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운전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이라고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입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당장 “스쿨존에 진입하면 차에서 내린 후 밀고 지나가야겠다”거나 “스쿨존을 피해서 가는 내비게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운전자도 피해자란 지적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사고가 나면 운전자도 평생 트라우마에 힘들어할 텐데, 이렇게 처벌을 강화하면 끝인가”라거나 “강화된 처벌로 가정이 파탄 나면 운전자의 아이는 누가 책임지나, 또다른 피해 아이를 만드는 법”이란 의견도 있네요.
사진=경찰청
이렇게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민식이가 사고가 난 사건에 대한 정황 때문이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민식이가 사고가 날 때의 차량 속도는 스쿨존 제한 속도인 시속 30km보다 느린 약 24km였습니다. 규정 속도인 시속 30km보다 천천히 달렸음에도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는 겁니다.
물론, 이 운전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정차해야 하는 조항을 지키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모든 운전자는 안전주의 의무가 있습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 주행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한 후 다시 출발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이 운전자가 일시 정지를 했더라도 사고를 100% 막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를 발견하고 멈추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운전자들이 한두 번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해 운전자에 공감을 하고 개정안의 현실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고의 모든 탓을 운전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고요.
두 번째는 운전자에 대한 과도한 처벌 가능성입니다. 운전자가 모든 법규를 다 지켰다 하더라도 보행자와 사고가 나면 어느 정도 과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운전자 vs 보행자’ 사고 시 과실 비율이 ‘0 vs 100’으로 나오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이럴 땐 운전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지 않아 어린아이에게 죄를 범한 경우에는 가중처벌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운전자에게 조금이라도 과실이 발견되면 가혹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실 비율은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미 스쿨존 안전운전의무 위반은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의 유무와 관계 없이 형사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충분한 처벌 조항이 있는데, 이를 더 강화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생길 수밖에요.
어린이는 무조건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잘못이 없는 운전자를 억울하게 처벌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잘못이 있다 해도 그 잘못보다 더 크게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고의가 아니라 과실인 사고에 대해서도 이렇게 처벌을 강화한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닌데, 처벌의 수위를 높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제도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물론 처벌이 강해진 만큼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더 주의를 기울일 수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대부분 고의가 아니라 과실입니다. 처벌보다는 과실을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130~150만명의 신규 운전면허를 발급합니다.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쉬운(?) 이른바 ‘물면허’로 유명합니다. 뭐, 표면적으로는 장내 기능이 축소로 인한 ‘기술적인’ 아쉬움이 커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규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문화의 미성숙이 더 큰 문제입니다.
130~150만명 중 몇 명이나 될지 감이 안 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물면허의 혜택을 받아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렇게 쉽게 면허를 따게 만든 뒤 무방비로 도로에 풀어놨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처벌을 강화한다고합니다.
면허 취득 과정부터 엄격하게 강화해야 합니다. 아무나 대충 며칠 공부하고 딸 수 있는, 공식 몇 개만 외우면 딸 수 있는 그런 면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려도 좋습니다.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도로를 달리는데 필요한 규칙을 충분히 습득한 후에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어린이에게는 안전운전에 대한 교육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이를 배울 수 있는 정규 과목을 만들어 가르쳐야 합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하더라도,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안전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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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의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들도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정도로 만연한 갓길 주정차를 철저히 단속해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부분은 처벌을 강화해도 좋습니다. 아마 지금처럼 반대하는 분은 없을 겁니다.
가끔 등하교 시간에 학교 주변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차량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습니다. 차로를 완전히 막아버려 다른 차들이 위반하게 만들거든요. 어쩌면 학부모들이 더 위험한 스쿨존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 걷더라도 안전한 위치에서 아이들을 등하교시킬 수 있도록 인식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내비게이션이 스쿨존 안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관련 업계와의 협업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스쿨존 표시를 해놨지만, 별생각 없이 달리던 운전자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입 및 탈출 알림을 더욱 확실히 하거나, 속도 제한 경고를 더 강하게 하거나, 어린이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해주는 것도 좋겠네요.
우리가 이렇게 위험천만한 자동차를 타면서도 편안하게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만들어 놓은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약속을 어긴 사람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그 처벌이 합당한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더 잘 지키게 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겠죠.
해외 어느 나라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멈추니 주변 차량이 꼼짝 안 하고 멈춰서 있는 영상을 봤습니다.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들이 다 타고 내릴 때까지 별다른 불만 없이 기다려주더라고요. 그게 강제된 법이든, 자발적인 문화든 간에 마냥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요.
이래저래 이번 ‘민식이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만들어진 것, 이 개정안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환경에서 안심하고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 마.지.막. 바람입니다. 다들 행복하게 안전운전하세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출처: 오토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