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의 백의종군길 걷기에 즈음하여 2017년 8월 15일부터 9월 7일까지 걸었던 한국체육진흥회 주관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대행진 참가기를 오늘(12월 12일)부터 10여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대행군 참가자 김태호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1)
1. 기념 세미나
한국체육진흥회는 2017년 8월 15일부터 9월 7일까지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에 나선다. 이에 앞서 8월 14일 오후 3시, 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시민청 워크숍룸에서 ‘이순신 백의종군의 역사적 의미’를 새긴 기념세미나를 가졌다. 발제자는 임진왜란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 백의종군 대행군에 나서는 대원(선상규 회장, 배준태 단장 등 8명)을 비롯하여 5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두 시간여 백의종군의 뜻과 그 역사적 의의를 살핀 후 김갑기 시인의 축시 낭송과 주최 측의 행사 취지 및 개요설명이 있었다. 이를 간략히 소개한다.
1) 이순신 백의종군의 역사적 의미 - 제장명 박사
백의종군은 전쟁에 참여한 장수와 관리가 패전, 임지이탈 등의 사유로 관작(官爵)을 박탈당한 채 종군하는 것으로 과거급제자들에 대한 일종의 징계행위다. 조선조에서는 많은 이들이 백의종군의 징벌을 받았는데 이순신은 특이하게 두 차례나 백의종군에 처해졌다.
첫 번째는 1582년 7월, 두만강 국경의 보산보, 녹둔도에서 복무할 때 10여명의 군졸을 잃고 백 여 명의 민초가 잡혀가는 패전의 책임을 떠안았고 두 번째는 1596년 9월 2일의 명∙일 강화교섭결렬과 1597년의 일본재침략 때 부산 앞바다에 진을 친 14만여 명의 일본군을 섬멸하지 않은 죄목으로 1597년 3월 4일에 의금부에 투옥된 후 27일 만인 4월 1일에 출옥(정탁의 상소가 주효)하여 의금부에서 도원수부가 있는 경남 합천 초계까지 두 달여 걸어간 후 그해 8월 3일 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받을 때까지의 백의종군이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노력, 훌륭한 장수로서의 이순신의 위상 확인, 백의종군 중에도 현직에 상응한 예우를 받으며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확인하는 역사의 길이 되었고 근년에 들어 경상남도, 전라남도 지역에서 그 길을 복원하는 등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2) 축시, 성웅 이순신 - 김갑기 시인
내로란 덕수 이문(李門)의 12대손으로
들끓는 개구리 소리 하찮아 바다 밖을 살필 때
색목(色目)을 넘난 유서애(柳西厓)의 천거는
선비도의 사표이자 구국의 예지(叡智)였다
손수 창안한 거북선 앞세웠던 학익진법
물에 능한 물개도 한낱 버들치일 뿐,
해전사(海戰史)에 유례없는 23합 전승은
단기(單騎)로 대당제국의 깃발 북유럽까지 휘날린
청총마 앞세운 고도호(高都護, *서역을 평정한 고선지를 지칭)에 넘나고 넘난다
세계 4대 해전사에 자랑삼는
영국과 불∙스페인연합전의 승자 넬슨 제독도
이충무공을 귀감으로 삼았느니.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투옥되자
정탁(鄭琢)의 변호로 백의종군하던 중
원균이 패망한 정유재란
하찮은 잔군(殘軍)과 몇 닢 전선(戰船)으로
해전 사에 빛나는 명량대첩 이끌 때
방정맞은 물개들의 유탄 비켜가지 않아
“싸움이 급하니 내 죽었단 말 삼가라”며
죽어서까지 소임을 다한 조선의 제갈공명(* 앞의 문장은 공명에게서 따온 것)
삼도수군절도사 성웅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
이제도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현충사 충신문 앞에 서면
왜적보다 한스럽다
어느 때나 들끓는 시대의 간신들.
* 작자인 김갑기 시인(전 동국대학교 교수)의 설명을 곁들인 낭송이 발제자의 강론을 확인, 보충해주어 좋았다.
3) 백의종군길 대행군의 의의 - 선상규 회장
이 행사를 총괄하는 한국체육진흥회 선상규 회장은 '백의종군로는 이순신 백의종군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을 담아 역사의 길로 살아 숨 쉬는 교육의 장이라 여긴다. 이를 고증하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이번 행사가 군사교육기관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에게 구국의 길, 역사의 길, 효의 길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역설하였다.
2. 생가 터 출정식과 의금부 출발식
8월 15일 광복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아침 6시 20분, 분당에서 아들의 승용차에 올라 출정식이 열리는 명보극장으로 향하였다. 경부고속도로와 남산 터널을 거치는 주행로가 휴일아침이라 거침없이 달린다.
명보극장 네거리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먼저 와 출정준비에 바쁘다. 오전 7시,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대원과 당일걷기 참가자인 한국체육진흥회원, 중구청장과 관계자, 대원 가족 등 20여명이 출정식 멤버다. 명보극장은 이순신의 생가 터, 위인이 고고의 성을 울린 자리에서 출정식을 갖는 것이 뜻깊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전 7시 10분에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의 출정인사, 최창식 중구청장의 격려사, 배준태 단장의 출발 구호와 함께 640여km 백의종군로 대행군의 첫발을 내디뎠다. 을지로와 청계천을 거쳐 종각의 의금부 표지석에 이르니 7시 반, 출정식에 미처 못 온 일일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출발식은 7시 50분, 그사이에 삼삼오오 대행군 플래카드와 의금부 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아내, 아들과 함께 찰칵.
7시 50분, 걷기참석자와 환송 가족 등 40여명이 함께 한 출발식에서 선상규 회장은 역사의 길 장도를 무사히 완주하기를 염원하였고 배준태 단장은 위대한 선인의 발자취를 좇아 살아 숨 쉬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데 진력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배 단장의 출발인사 요지, ‘오늘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을 떠납니다. 이제 우리들은 책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이 길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의 길로 열어가겠습니다. 이 길을 걷는 모든 분들이 나라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사랑하고 충과 효를 몸소 느끼고 실행하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완주하겠습니다.’
기념촬영 후 강호갑 대원의 선창으로 ‘걷자, 걷자, 함께 걷자’를 연호한 후 님이 걸은 백의종군로를 종주하는 대행군이 시작되었다. 첫날 코스는 종각-서울역-삼각지-동작대교-남태령-인덕원으로 이어지는 30여km. 조용히 내리던 빗줄기가 동작대교에 이르니 폭우로 변하여 점심때까지 장대비다. 점심장소는 서초구 방배동 이수역 근처의 '담소 소사골 순대'집, 11시 30분까지 16km 남짓 열심히 걸었다. 점심 메뉴는 우사골 우순대, 얼큰 순두부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데 새벽부터 집 나와 열심히 걸은 탓에 모두들 한 그릇을 싹 비운다.
12시 15분에 오후 걷기 시작, 다소 소강상태이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진다. 선상규 회장이 5년 전 한국 일주할 때 하루 100여mm의 폭우를 맞으며 걸었던 옛일을 되새기며 그때처럼 많은 비가 내린다고 말한다. 오전에 함께 걸은 이는 30여명, 오후 걷기에도 대부분이 동행한다. 사당, 과천을 거쳐 인덕원에 이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당일참가자는 이곳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돌아가고 대원들은 인근의 갈산동 주민센터까지 내쳐 걷는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여장을 풀자마자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리는 일이 급선무, 신발에 신문지 등을 집어 넣고 젖은 옷을 세탁하여 건조하는 일도 한 몫이다.
걷는 도중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아끼는 동호인과 대화를 나눴다. 백의종군로 순례회 임용철 회장, 자신이 만든 백의종군 순례 매뉴얼을 알려주고 선명한 백의종군로를 보내준다. 5,6년 전 이순신의 부모가 살았던 아산의 옛집에서 이순신의 어머니를 모신 게 바위를 찾은 감동을 잊지 못해 이순신 백의종군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변의 지인, 동호인들과 틈나는 대로 백의종군로를 부분 탐사하였단다. 이처럼 많은 인원이 전 구간을 종주하는 대규모행사를 갖게 되어 뿌듯하다는 소감, 내가 쓴 해파랑길 기행록 등을 읽었다며 이번 참가기록 작성에 도움이 되도록 자료를 전해주겠다는 호의가 고맙다.
3. 정조 효행 길과 겹치는 수원 백의종군길
8월 16일(수), 아침에 밖을 살피니 비가 그쳐 마음이 놓인다. 6시, 승합차에 가방을 올려놓고 숙소부근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전날저녁도 먹은 대중식당, 이른 시간인데도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단골로 이용하는 듯.
식사 후 전날 도착지였던 안양시 동안구 갈산주민센터에 이르니 7시, 오늘은 대원 8명의 단출한 일행이다. 출발에 앞서 주민센터 앞의 전봇대에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라 새긴 스티커와 리본을 붙였다. 곧바로 2일차 대행군에 나선다. 잠시 후 안양교도소 옆을 지나 의왕시에 접어든다. 걷는 도중 틈틈이 적당한 곳에 백의종군길 리본을 거는 일로 손발이 분주하다.
갈산동주민센터에 붙은 스티커와 리본
촘촘히 들어선 아파트촌을 지나 중심가로 나오니 서울-수원 8차선의 대로가 나타난다. 지지대고개까지 밋밋한 오르막길의 바람결이 시원하다. 고개에 이르니 8시 40분. 프랑스 참전 기념비와 정조대왕상을 지나 걷는 효행공원의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효행공원 정자에서 잠시 휴식 후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장안로에서 만난 시 한 수가 반갑다. 김경은 시인이 쓴 행궁길 들꽃, 전문을 살펴본다.
행궁길 들꽃
돌담길 우체통에
빈 엽서 부쳐 놓고
어두움을 걸어 나와
승차권을 받은 하루!
설렌 적 많았다.
행궁길 걷다보면
마음결 오선지에
매달린 음표처럼
너와 나 하나 되어
들꽃을 피워보자
잔바람 부는 날엔
광장에 연을 띄워
팔달산 높이 올라
가슴 열고 날아 보자
숲길 벗어나 큰 성당과 높은 아파트 촌 지나니 서호천 개천 길로 들어선다. 전날 많은 비가 내린 탓인가, 수량이 넘치고 오리와 물고기가 떼 지어 노니는 모습이 한가롭다. 한데 모여 놀다가 일행을 보며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이 대행군의 장도를 축하하는 듯. 개천 길을 벗어나니 화산교, 우측으로 어기산 공원을 지나 10시 40분 쯤 서둔로 상점가에서 음료를 들며 숨을 고른다. 쉬는 동안 배준태 단장에게 걸려온 전화, 해군 OCS장교단 엡에 백의종군길 대행군에 대한 응원 글이 쇄도한다는 전언이다.(배 단장은 해군 제독 출신)
휴식 후 잠시 걸으니 꽤 유명한 오리전문음식점이 나타난다. 아침을 일찍 먹은 터라 그 집으로 들어가니 1시간 여 기다려야 한단다. 오래 기다리기는 무리, 근처의 추어탕전문점(어천추어탕)에서 점심을 들기로.
이른 점심을 들고 12시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숲이 울창한 서울대학교 수목원 길을 거쳐 좁은 길을 따라가니 다시 서호천에 이른다. 뚝방을 따라 걸으니 이순신 장군이 나룻배로 내를 건넜다는 배양리까지 제방공사 중, 비포장도로에 빗물이 고여 신발에 흙이 많이 들어붙는다. 새로 건설한 배양대교는 아직 개통하지 않은 듯. 다리를 건너자 반가운 인사가 일행을 맞는다. 예비역 해군장교인 정영화 교수, 배 단장과의 친분으로 이번 행사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오후 1시 반, 배양2리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순신이 백의종군길 수원에서 묵은 것으로 추정(수원에서는 부사의 수하 집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되는 옛 수원읍성(네거리 도로변에 기념물 제93호로 수원고읍성이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지금은 그 일대에 융건릉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역을 거쳐 용주사로 향하였다. 2일차 목적지인 용주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5분, 25.6km를 걸었다. 집행부의 의견, 3일차 행로가 30km가 넘는데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이기도 하니 내친김에 3~4km를 더 걸으면 좋겠다. 모두들 동의.
용주사에 도착한 일행, 핼멧을 쓴 이는 자전거를 타고 찾아온 정영화 교수
계속 걷기에 나서니 용주사 대로변에 걸린 현수막에 눈길이 간다. 용주사 주지는 파계승의 후예이니 유전자 검사에 응하고 주지 직에서 사퇴하라는 내용, 사회가 혼탁한 것도 안타까운데 등불이 되어야 할 종교계에 번진 이전투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용주사를 벗어나 잠시 걸으니 안녕리가 나타난다. 도로변에 안녕리의 유래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성의 안녕을 중요시한 정조가 이곳에 서린 안녕의 풍조를 가상히 여겨 마을 이름을 안녕으로 지어주었다는 내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 위협이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때 나라의 안전을 지킨 이순신 백의종군길에서 만나는 안녕의 의미가 뜻깊다.
40여분 걸으니 한신대학교 앞, 추가걷기를 이곳에서 마무리하였다. 시간은 오후 3시 40분, 총 29.5km를 걸었다. 이곳에서 승합차에 올라 병점역 앞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여장을 푼 후 서울에서 내려온 정영화 씨와 이른 저녁(메뉴는 감자탕)을 들고 2일차 일정을 무사히 끝냈다. 일행 모두 첫날의 폭우 속 강행군이 힘들었는데 2일차 행군이 순조로운 것을 기뻐하며 감사!
* 첫 숙소의 여주인이 친절하게 대해주어 감사하다. 비에 젖은 옷가지를 정성들여 세탁하고 잘 건조하여 준다. 음료와 커피도 성심으로 서비스 해주고. 선상규 회장이 호의에 감사하여 사례하려 하니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더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