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낫을 가는 시간이다.
-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가도 일만 시작하면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다.- 취침 전, 주말, 휴가 때까지 일거리를 가지고 간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일이고, 대화도 주로 업무에 관한 것이다.- 실시간 기준으로 주 40시간 이상 일한다.- 취미활동도 돈 되는 일로 만들려고 한다.- 업무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려 한다.- 일로 인해 약속 시간을 많이 어겨 가족이나 친구가 포기했을 정도다.- 내가 직접 안 하면 문제가 생길까 봐 몇 번이고 추가로 확인한다.- 과업을 완료하느라 마지막에 서두른다.-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면 장시간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실직, 실패할까 봐 불안하다.- 일이 잘 풀릴 때조차도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된다.- 노는 것도 이기기 위해 열정적으로 한다.- 업무 중 누군가 다른 일을 부탁하면 짜증이 난다.- 장시간 근무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 운전할 때, 잠자리에 들 때, 남의 얘기를 들을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일에 대해 생각한다.- 밥 먹으면서 뭔가를 읽거나 일 처리를 한다.- 돈만 많이 벌면 인생의 문제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항목은 미국 일중독자 협회(Workaholics Anonymous)에서사용하는 일중독(workaholics) 체크리스트다. 20개 항목 가운데 해당하는항목이 3개 이상이면 일중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혹시 여러분도 일중독자가 아닌지 한번 체크해 보기 바란다.
지난 2013년 10월, 만화 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thedoghousediary)'가 키워드 하나로 지구촌 각 나라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 화제가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잔디 깎기 기계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세계 최고다.일본은 로봇, 러시아는 라즈베리와 핵탄두, 인도는 영화, 북한은 검열이라는 키워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한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일중독'이었다.
어느 나라라도 일중독에 빠진 사람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중독 판단 기준 자체가 여느 나라보다 높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의 2,228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이렇듯 일중독의 포로가 된 우리나라 직장인의 약 30%가 소화기 장애 및 스트레스, 약 10%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으며,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창조적 여백이 필요하다
일본 변두리 가쓰야마(勝山)의 작은 빵집 '다루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희한한 가게로 통한다. 오래된 집에 붙어사는 천연 균으로 빵을 만드는 데다 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다루마리는 목, 금, 토, 일 나흘만 영업하고 수요일은 재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를 간다. 이에 대해 빵집 주인인 와타나베 이타루(渡邊格)는 이렇게 말한다."빵에 대해 더 파고들고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빵만 보이고 세상이 안 보이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음식이나 술, 공예품, 음악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자극을 받아 아이디어를 얻고, 지금보다 나은 재료가 없을지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하지요. 빵 이외의 것들과 만나는 시간은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폭과 깊이를 더하며, 견문을 넓혀 사회의 움직임을 느끼는 눈을 기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의 뇌는 휴식 없이도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휴식 없이 일만 할 때는 깊이 있는 작업은 어렵다. 아인슈타인이"창조력은 낭비되는 시간의 찌꺼기다"라고 말했듯이 휴식은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재창조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이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로렌 프랭크(Loren Frank) 교수의 쥐를 통한 실험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는 쥐에게 낯선 미로를 탐색하도록 하며 뇌파를 기록했다. 새로운 경험을 할 경우, 쥐 뇌의 해마 부위에 새로운 뇌파가 나타나는데 이는 장기기억, 즉 학습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운 뇌파는 오직 미로를 탐색한 후에 휴식을 갖는 쥐에게만 나타났다. 탐색 후 휴식을 취하지 않은 쥐에게는 학습 뇌파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기억을 하지 못하니 나중에 써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학습에 있어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찍이 이러한 휴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창조적 여백을 제공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실험을 한 경영자가 있다.
2012년 6월, 업무용 웹 기반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써티세븐시그널스(37signals)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제이슨 프라이드(Jason Fried)는 '앞으로 1개월 동안 고객 서비스와 서브 유지 관리를 제외한 일체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원가 절감이나대량 해고가 목적이 아니라 ‘여백(white space)’이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한 것이다.
모든 직원이 월급은 예전대로 받았으나 일정도 과제도 없었다. 한마디로 '의도적인 여백'을 만든 것이다. 그 취지에 대해 프라이드는 이렇게 말한다.
"직원들이 연속해서 오래 쉬고 나면 실적이 개선되리라고 생각했어요. 1개월을 쉬면 개인 용무도 보겠지만, 회사 일도 생각할 겁니다."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직원들이 생각 없이인터넷을 뒤지거나, 친구들과 장시간 점심을 먹거나, 놓친 TV 프로그램을 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 며칠 동안 직원들은 일상 업무가 사라진 생활에 안주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곧 달라졌다. 프라이드는 비즈니스 잡지 <잉크(Inc.)>의 칼럼에 그 결과를 이렇게 밝혔다.
"직원들은 모든 부문에서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우리 제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방법, 고객에게 우리 시스템 상태를지속적으로 알리는 더 나은 방법, 신입 직원을 다른 부서에 소개하는 더 좋은 방법 등을 찾아냈습니다. 그 창의성과 세련미와 실행력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한 이 회사는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창조적인 여백을 제공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이 회사와 같은 정책을 펼치기는 어렵다. 직원 수가 적은 소기업이나 영세한 자영업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결코 기업의 입장에서 손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직원들의 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식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낫을 가는 시간이다
가을의 한 농촌 마을. 두 농부가 논에서 열심히 벼를 베고 있었다. 한 사람은 허리를 펴는 법이 없이 계속 벼를 벴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중간 중간 논두렁에 앉아 쉬었다.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이 수확한 벼의 양을 비교해 보니, 틈틈이 논두렁에 앉아 쉬었던 농부의 수확량이 훨씬 더 많았다. 쉬지 않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한 농부가 따지듯 물었다.
"난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틈틈이 쉰 농부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난 쉬면서 낫을 갈았거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은 한 치의 느슨함도 없이 완벽한 운영을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물론 이는 좋은 일이다. 그 누구도 재고와 운영자본, 비용을 줄이자는 목표에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모든 느슨함과 여유를 쥐어짜면 창조의 여지도 그만큼 사라진다는 게 문제다. 창조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는 책상 위에 발을 얹고 허공을 응시할 수 있을 만큼 방해받지 않는 연속적인 시간이어야 한다.촌각을 다투는 조급함이나 출퇴근 시간처럼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흥미로운 그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휴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사실 직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여유 없이 팍팍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에서 휴가를 내는 건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대개 사전에 사유를 적은 휴가신청서를 내야 한다. 또 어떤 회사는 증빙 서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밝히기 곤란한 사유도 있을 테고, 또 아무 사유없이 그냥 하루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겠는가. 이럴 경우 결국 거짓 사유를 적을 텐데 굳이 사유를 밝혀야 할까? 그냥 쿨하게 휴가를 허락하면 안 될까?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이런 일은 결국 회사가 직원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직원들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과도한 지시와규칙으로 통제하기보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회사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직원들은 업무 몰입도가 떨어지게 되고 회사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 달라스에 본사를 둔 마케팅 업체 미플러스유(MEplusYOU)는 신뢰 경영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이 회사는 몇 년 전 직원들이 휴가를 낼 때 사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방침을 바꿨다. 이에 대해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더그 레비(Doug Levy)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직원들이 휴가를 낼 때 그 사유와 함께 증빙 서류를 제출하도록 방침을 정해놓고 있습니다.최근 저희는 직원들이 필요할 때 사유를 밝히지 않고 언제든지 휴가를 낼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회사가 직원을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을 신뢰하고 존중합니다. 앞으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더 쓰라고 권장할 생각입니다."
휴식은 그냥 노는 시간이 아니라 낫을 가는 시간이다. 적절한 주기로 낫을 갈아야 더 많은 벼를 손쉽게 수확할 수있듯이, 더 좋은 성과를 얻으려면 재충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마침 지금은 여름휴가 시즌이다. 다소 여건이 어렵더라도 올 여름만큼은 모두들 그동안 무뎌진 낫을 가는 시간을 꼭 갖게 되기를 바란다.
--월간 <공구 사랑> 2016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