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회고록 - 석대쓰레기매립장을 파라다이스로 꿈꾸었건만 ⑧
해운대수목원 조성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2010년 1월 10일 오전 10시쯤 총무과장으로부터 “후배들 길도 터줄 겸 1년간 장기연수를 가야겠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아니 4년 전에 중국에 1년간 연수를 다녀왔는데,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장기교육 발령을 낼 수 있는가? 그러면 사표를 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어찌 보면 귀한 나랏돈으로 다양한 커리큘럼을 곁들인 공무원 장기연수를 간다는 것은 큰 혜택이고 좋은 경험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후배들보다 승진이 늦어 다가오는 7월 정기인사에서는 꼭 승진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해외연수라니, 나를 시장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조직부적응자로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이 무리한 교육명령을 내린 이유는 3개월 전 해운대수목원 공청회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한 데 대한 괘씸죄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해 6월 시장선거를 앞두고 황령산 스키돔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을 주장하던 나를 멀리 보내려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스키돔 문제가 선거 이슈가 되면 현직 시장으로서 불리할 것이고, 그렇다면 담당 과장인 내가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유야 어쨌든 나에게 또다시 가해진 가혹한 처분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인사 담당 국장이 시장의 의중을 담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넌지시 승진을 암시하는 언질도 주는 터라 이왕에 결정된 1년의 장기연수를 즐겁고 보람있게 보내기로 했다.
연수를 마치고 2011년 1월 다시 녹지공원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2012년 1월 정기인사에서 또다시 승진에서 누락되어 결국 사표를 던졌지만 주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동물원 더파크의 500억 채무보증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다 그해 8월에 마침내 명예퇴직을 하고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겨 3년 동안 일하다 퇴직했다.
쓰레기 매립지의 복토량이 부족해 메탄가스와 토심부족으로 나무가 고사
그동안 석대쓰레기매립지는 2010년에 6억의 예산으로 세부 용역이 시행되었고, 그린벨트 관리계획 승인, 산림청의 수목원 지정, 공사업체 선정 등 각종 절차를 거쳐 2012년 2월 10일 부산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축포를 쏘는 거창한 기공식이 열렸다. 563억의 예산으로 2016년에 국내 최대의 도시형 수목원을 완공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8년 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왔던 습지생태원, 대나무품종원, 미로원, 허브원, 야생화원 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축구, 테니스 동호인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혹시 거대한 항의 물결이 일어나 수목원 계획이 무산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새롭게 그린 그림에 따라 C지구의 운동장에 나무를 심고 A, B지구의 높이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흙을 반입해야 했다. 게다가 8년간 조성한 식물들을 옮겨심기 위해서도 많은 예산이 소요되어야 했다. 이제는 수목원 조성을 위해 흙을 반입해야 하는데 흙을 입맛대로 구하기도 어려워 오염된 흙이 들어오기도 하고 돈을 들여 흙을 구입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5일 국제신문에 ‘토심이 너무 얕아 식수가 불가하고 양질의 토사 확보에 고심, 50cm에서 2m 복토하는 데 17t차 24,000대 분, 60만㎥가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2013년 4월에는 오염된 흙이 복토되었다고 질타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가스의 영향으로 많은 대형목들이 고사하고 관리 부실로 많은 나무들이 죽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2014년 7월에는 ‘1단계는 총 3차에 걸쳐 381억이 투입되었는데, 2014년 4월 시작된 3차 공사비 120억 중 57억 미확보로 공사 차질이 예상된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더니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주춤했다. 산림청에서도 부산시의 의지를 의심하며 국비 지원을 중단했다.
2016년 완공 예정을 2018년으로 연장하고 다시 2020년으로 연장하며 460억의 토지보상비를 포함하여 거의 800억 예산이 투입됐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시의회와 언론에서 예산 낭비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2022년 완공 예정으로 다시 2년을 연장하고 그 사이 담당 공무원들은 차례차례 퇴직하거나 계속된 질타에 의욕과 자신감을 잃고 예산 타령을 하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쓰레기매립지는 가스와 침출수의 영향을 고려하여 나무와 풀을 심는 것 외에는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건축물 건립은 매립 완료 후 20년에서 30년으로 법이 개정되어 그동안 건축도 할 수 없다. 서울의 난지도는 골프장과 억새공원으로, 대구의 대곡쓰레기매립장은 대구수목원으로 조성하고, 을숙도쓰레기매립지는 자연상태로 두고 있다. 석대와 같은 그린벨트인 대구의 대곡수목원은 성공적으로 수목원을 조성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해운대수목원은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계속)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