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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9/이수형
서두르지 않고 간 것 같은데 용강리 첫 도착자가 되어 처음으로 정면 주차를 했다.
겨우 한 주 빠졌건만, 반가운 낯설음에 새삼 둘러본다. 수도공사 후 세워진 주차 공간의 이정표,
창고 안,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 하면서도 곳곳에서 보살핌의 흔적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할 만큼 돌보고 있는 기운. 화장실은 누가 청소했을까?
책 꽂이 한 쪽에 챙겨논 지난 발제프린트물을 보며 아, 이렇게 남은 것들은 비치하고 있었구나. 공간에 무심했던 나를 돌아본다. 막 들어오신 정복샘과 지난 문건을 하나씩 챙기면서 이 공간 활용에 대해서 다같이 공유해야지 싶었다.
오늘의 점심 메뉴, 비빔국수와 연관된 재료들을 하나, 둘 챙겨 오신 학인들이 속속 등장, 짐을 부려놓고, 청소를 하고, 한 주만의 재회인사들을 하느라 한참 바글바글 서로가 연결하는 시간을 보냈다.
영심샘이 들고오신 커피머신으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내리고, 재원샘이 수박을 모양 좋게 썰어 책상에 세팅하며 슬슬 공부 모드로 전환하고 있었는데, 으앙, 서정이의 울음 소리. 아이고, 뛰다가 넘어졌단다. 무릎에서 피가나는 것을 봤지만, '아프면서 크는 거다'란 마인드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있지도 않은 소독약이며 밴드타령만 하고 있었는디.(응급처치 물품 마련합시당!)
늘 어른들 공부하는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기다리는 서정이, 그런 친구가 그렇게 울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을! 무덤덤하게 대하는 것이 미덕인양, 그냥 공부 모드에 발동을 걸고 있었으니, 서정이가 울음을 그친 것은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분위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나중에서야 아쉬움이 올라오니 참 시중은 어렵고 어렵다.
이렇게 돌아보며 아쉬움을 곱씹으니 이런 과정들을 거져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ㅠㅜ.
오늘 공부는 동의보감 부터 시작했다. 소연샘의 도움으로 복사물을 받아 16, 중기 낭송에 합류했는데, 얼마만에 돌아온 동의보감인지 참 새로웠다. 중풍과 중기 모두 분노에서 비롯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양생은 감정다스리기부터라는 익숙한 명제가 되살아났다. 명의라기보다 유불선에 능통한 글을 쓸줄 아는 학자였기 때문에 허준이 선조의 하명을 받아 이 의서를 집필했다는 것에서부터 전에 한 번 쯤 언급했을 만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수승화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어폰 사용으로 인해 신장의 물 기운이 없어지고 그래서 뼈도 약해진다는, 정도 말라 불임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들, 한동안 생명의 기운인 정을 아끼기 위해 성생활을 삼가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다. 각방을 썼던 옛사람들은 이 이치를 알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란 익숙한 말들과 함께, 섹스를 권장한 서양 의학의 시선에 대한 비판적인 말들도 똑같이 언급됐다는~~ ㅎㅎ 지금의 생활 방식이 허준의 동의보감 집필 시대와 너무 달라 처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란 의견에 동의보감을 읽으면서 양생의 중요성을 새롭게 느끼고 , 내 몸의 주인으로서 몸의 변화를 알아채고 그 원인을 우리의 생뢀습관에서 찾아보게 되는 마인드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본 시간이었다.
정복샘이 우리가 나름 적용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약재로 제시되는 단약법(?)이 나중에 나온다고 했으니, 마인드의 변화를 꾀하며 계속 읽어볼 일이다.
17. 상기 부분에서 들이쉰 숨이 적어 숨이 가쁜 상기랑 반대로 오히려 들이마신 숨은 많고 내시는 숨이 적어 생긴다는 공황장애에 대해 들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근아샘은 공황장애는 산소가 넘쳐 오히려 이산화탄소 주머니를 입에 대주는 처치를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좋은 산소도 들여놓기만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음양의 이치는 역시 여기서도. 오염원이라 여긴 이산화탄소, 이것이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요소가 된다하니 참으로 오묘하다. 독도 치료법으로 쓰이기도 하니, 우리는 좋다는 것만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좋고 나쁘다의 기준이 참 허망하다.
한참 오가는 이야기들을 자르기가 힘들어 중용 공부시간이 늦어졌지만, 다행히 오늘 발제한 2,3장을 끝낼 수 있었다.
발제자인 나는 전날 살펴보다 알게 된 정보로 아는 척을 하며 들어갔다.
2장 부터 11장까지 쓴 자사는 공자의 손자로서 유교에서 5대 성인(공자, 증자, 안회, 자사, 맹자)으로 일컬어진다는 것,
자사가 5살 때 공자가 죽어 그 제자인 증자의 가르침을 받고 컸다는 것, 자사의 제자가 바로 맹자라는 것 등. 유교는 공자가 다 해먹었다. 공자는 예전 문성환샘 강연때 들었던 설이 있지 않는가? 하급 무사인 늙은 아버지, 아주 어린 처자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는. 이렇게 흙수저 출신의 공자가 중국 유교의 대부라는 것, 그가 둘째 아들이어서 그 뜻이 담긴 '중니'라 칭한다고 한다. 중니, 자 모두 공자를 뜻함이다.
공자부터 오늘 날 말하는 군자와 소인이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군자는 통치자, 소인은 피지배급으로서 이때는 통치로써 소인을 교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시대부터 지배계급인 군자 중에서도 군자와 소인이 있어 대학에서 배운 친민이라는 철학이 성립된 것이다. 군자는 통치가 아니라 군자의 풍모로서 저절로 가름침이 되는 그 친민말이다. 이렇게 하지 말라, 이러면 벌 받는다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서 그 본으로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르침이다. 친민, 새롭게 다가온다.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중용과 어긋나게 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군자는 중용을 몸으로 한다고 한다. 의도를 가지고가 아니라 그냥 몸에 탁 붙어서 저절로 된다는 거. 그래서 '몸 체'자를 쓴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인 우응순 선생님은 체질화, 세포속에 스며들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니 시중이란 말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시중' 항상 중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중'의 뜻을 보면서 예전에 창주샘이 말씀하신 나이 70에 대한 논어에서 일컬은 말, '종심' 이 떠올랐다. 대학에서도 언급됐던 從心所慾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 지천명인 오십을 지나 귀가 순해지는 60의 이순을 넘어 가면 70에 종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니까 이것은 사주명리에서 배운 육친의 순환을 잘 겪어 나와 가족, 사회에서 우주까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성찰을 해나가다 보면 70에 종심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60인 영심샘은 이순의 뜻에 고개를 내저으셨다. 아직 그렇지 않다고, ㅎ 오십대인 나는 지천명인가? --:: 배워서 안다는 학이지지, 그 과정이 따랐을 때 70의 종심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사주명리도 공부하고 이 중용도 공부하며 학이지지 하는 거라고! 이렇게 종심으로 가고 있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막 못밖았다. 왜들 그리 웃으셨을까? 난 모른다! ㅎ
군자이시중은 군자가 되어서 시중한다는 것이다. 그니까 먼저 수신한 군자가 되어야 시중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정복샘이 고개를 저었던 생각이 난다. 영심샘도 우리가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이 성인데, 이미 우리안에 있는데 군자가 되어야만 한다니...이런 의구심을 내비치신 것 같다. 수신은 내가 타고난 성을 밝히는 과정이다. 예전 커먼즈 필드에서 공부할 때 근아샘이 언급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잃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잊고 산다고. 우리는 타고난 성을 잊기 좋은 시스템 속에 있지 않는가? 대칭성 인류학에서 배운 그 비대칭성의 세계, 이 세상에 맞춰 살다보니 자꾸 잊는다는. 책 속에 나온 원시 부족들이 했다는 통과의례가 바로 이 성을 복원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냐고. 우리도 자꾸 통과의례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말들이 오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드는 부정적 감정, 이것이야 말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뭐지? 하고 돌아볼 수 있는 단초, 찜찜함, 찝찝함 이런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는 자꾸 소비로 자기 감정을 왜곡하고 주변과의 연결을 끊어내게 하기 때문에 찜찜함을 느낄 새가 없다고, 못하게 된다고 예전에 선일샘이 하셨던 말씀을 다시 업급했다. 그러니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학이지지의 과정으로 자꾸 자기를 돌아보며 알아차려야 겠다는 말들들들.
소인은 이런 성찰이 없어 반중용을 한다는 것이다. 소인의 중용이라 함은 바로 기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꺼릴길 것 없는 삶, 무지의 삶이여! 내가 다른 존재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때 조심스러움,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계, 구, 신독, 근독은 그러니까 내가 우주까지 연결된 존재라는 나의 영향력을 알때 갖게 되는 태도인 것이다.
자존감이 없을 때 소인이 된다는 것, 자포자기,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 이들은 너무 잊은 거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상활에 딱 들어맞아 아주 흡족해질 때가 있지 않는가? 정복샘 말씀처럼 잉여없이, 고요하면서 평화로울 때, 언젠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우리도 중용할 때가 있는 것이다. 시중하는 군자는 아니지만, 이 순간만큼은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선일샘은 말씀하셨다. 이런 경험이 쌓였을 때 자존감도 높아질 것 같다. 우리는 하늘이 부여한 성을 가진 존재다.
새롭게 접수한 말, 상우(尙友), 책을 통하여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일이란 뜻으로 맹자가 한 말이라 한다.
2500년 전 자사가 남긴 글을 읽으며 그와 사귀고 있는 것, 대단대단! 여기서 근아샘은 자사의 글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학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텍스트 삼아 자세히 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더불어 자기 자신도 그런 택스트로 삼아 잘 들여다본다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관계는 나를 비추는 거울, 나를 보려면 관계 속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잘 들여다 볼 일이다.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 왔어 선물! 하고 잘 풀어봐야겠다.
3장에서 공자는 중용이 지극하고 중요한 것인데, 이걸 제대로 알고 행하는 사람이 오래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다.
영심샘의 질문으로 중용의 개념에 대해 짚고 갔었는데, 선일샘은 우응순샘 말을 빌어 일상생활에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남회근 선생의 책에서 나온 가운데 중에 쓸 용자 해서 쓰임에 들어맞다는 뜻이란 말씀을 드렸다. 정복샘은 양 끝을 뺀 가운데 그 속에 맞는 행동인가 보다고 하셨다.
쓰임을 알아야 쓰임에 맞을 수 있으니, 격물 치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사물의 이치라니! 참으로 갈 길이 멀다.
학이지지의 자세로 70평생을 살면 사물의 이치에 좀 통달이 될 것인가? 사물의 이치가 곧 자연의 이치인 것 같다. 자연의 이치에 합당했던 순간들, 그 순간만큼은 군자중용한 것이다.
정복샘은 언제 군자중용했었는지, 그 순간들을 한번 돌이켜 보며 나눠보자 하셨지만, 이후 바로 비빔국수의 잔치 속으로 들어가느라~~--:: 두고두고 나눌 주제가 탄생했다. 눈여겨 보자!
오랜만에 공부하며 기억에 남는 것을 한 문장 내지 한 단어로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문장을 다들 넘겨 그만 주역암송을 깜빡했다. 길게 나눠주신 말씀을 짧게 정리한다면,
정복샘은 1장의 천명지위성을 새롭게 주목하셨다고 하셨다. (밤에 토하는 것은 안 좋고, 이른 아침에(목기운)에 토하는 것은 좋다! 와 연관된 동의보감 글을 쓰시면서 느끼셨다고)
써니샘은 상우라는 말이 다가오셨다고,
영심샘은 1장의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군자신기독야를, 나는 예전에 강렬해서 기억하고 있는 양지 양능이란 말, 재원샘은 유군자 위능체지의 그 '몸 체' 자의 무거움에 대해, 근아샘도 역시 재원샘과 같은 부분을 언급하며 의식하지 않고, 몸과 일체가 되어 저절로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선일샘은 음, 1장에서 언급하셨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나의 기운이 순한즉, 천지의 기운도 또한 '순'하게 된다는 부분이었나? (내 마음대로! ㅎ)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죠?
소연샘은 막바지 애들을 살피시느라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
다음은 비빔국수 파티파티! 정복샘이 칼을 잡고, 양배추며, 피망을 촘촘히 쓰는 것을 빙 둘러 구경하며 수다떨었던 그 순간, 영심샘이 맨 손으로 우리가 가져온 재료를 하나, 둘 씩 투철하며 국수를 비비는 것을 볼 때의 그 순간, 모두의 손길이 들어간 더없이 근사한 때깔의 국수을 함께 맛보며 감탄했던 그 순간, 여기 함께 하지 못한 학인들 이름을 떠올리며 한 마디씩 했던 그 순간! 그 순간은 혹시 중용이지 않았을까? 중용이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지도? ㅎㅎ
첫댓글 와~~역시 수형쌤!!! 이번주 세미나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오네요.ㅎㅎㅎ
'군자는 중용을 몸으로 한다고 한다. 의도를 가지고가 아니라 그냥 몸에 탁 붙어서 저절로 된다는'것에서
공부 또한 군자가 되기위한 의도가 아닌가 싶은..몸에 탁~붙어 있으면 타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이 기억의 디테일! 봉테일이 아니라 이테일이시구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