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리 마을을 지키는 성산십경중 제2경인 두산절경(斗山絶景) 두산봉을 가다
제주올레 제1코스로 각광받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두산봉
글/이승익
제주 올레길 제1코스가 성산십경중에 제2경인 두산절경인 두산봉을
끼고있음은 우연이 아니다.그리 높지않은 두산봉 옛 이름은 "말미오름"
혹은 '멀미오름' 으로 불리다 한자 표기로 '두산봉(斗山峰)이라 불린다.
그리 높지않아 오르기가 쉽지만 오름 전면엔 잘 발달된 절벽이 펼쳐저
그 경치가 온 몸을 바르르 떨게 한다.오름 위에서 바닷쪽을 보면 시인
묵객이 아니라도 시 한구절 떠오르게 한다.
발아래 펼쳐진 오밀 조밀한 돌담을 낀 밭들은 차라리 동화속에 나오는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사시사철 색상을 드리운 밭모양,바다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우리 지역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우리 지역에 이토록 경치 좋은
곳이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제주적인게 곧 세계적인 것임을 느낄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가끔은 산행을 한다
제주에선 오름이라 일컷는 산엘간다
어머니 흘러내린 어깨선 닮은
산마루 타고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머얼리 모자이크된 돌담들 정겹다
형형색색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 한가롭다
흠뻑 마신 신선한 공기 폐부를 적시어
온 몸이 개운하다
꾸겨지고 헝크러진 생각들이랑
산에 버리고 올란다
답답하고 우울함도 저 들판에 날리어
산에서 부는 소슬 바람 가슴에 가득 안아
콧노래 흥얼대며 산에서 내려 올란다
열흘못되 산이 그리우면 어쩌지
산에서 부는 소슬 바람이 오라고 손짓 하겠지.
(졸시,산에 가는 이유 전문)
두산봉을 병풍처럼 둘러처진 마을 시흥리는 예로 부터 힘센 장사가
많이 난다.그래서 시흥리 옛 이름이 '심돌'이라 했었다.현재의 시흥始興
리 지명은 한자표기로 정의현과 목안(제주목)을 경계로 정의현 첫 마을이란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시흥리 마을은 예전엔 염전이 있었고 마을 앞 바다엔 해산물이 풍부하여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척박하지만 부지런함으로 밭을
일구어 지금의 마을을 지켜왔다.
힘센 장사도 많이 났지만 걸출한 인재도 많이 배출 했다.시흥리가 낳은 인재
를 들라면 국회의원을 지낸 고현오봉씨를 들 수 있다.대한민국 3공화국 시절
인 박정희 대통령때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내며 우리나라 정치
를 주름 잡아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6선의원으로 아직까지 제주에선 최다선의원으로
지역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성산읍 지역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지금도
현오봉의원을 기억하고 있다. 집권당 원내총무를 지내며 각계에 영향력을 과시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설립한 장학재단은 후손이 이어가고 있으며 제주도내
인재양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 강태선씨. 1924년 시흥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 1942년 도일하여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다. 평소 신념대로 동지를 규합하여
당시 한민족의 진정한 행복은 '한국독립'에 있음을 알고 일본이 전쟁에서 반듯이 패망한다고
믿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 궐기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1944년 6월 3일
검거되었다. 같은해 8월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소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 했으며
1982년 대통령표창 수상.현재 시흥리 자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한 시흥리 출신 강승우 소위가 있다.6.25동란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육탄으로
적진에 돌진 산화하여 육탄 3용사라 부르는 고강승우 소위. 1951년 1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한
강승우소위는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어 백마부대와 인연을 맺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박격포와 수류탄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수류탄을 뽑아들고 육탄으로 돌진
하여 난공불락의 적 진지를 모두 파괴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육탄돌격을 감행한 강승우
소위는 백마고지 영웅이라 불리고 있으며 정부는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3년 7월 을지무공
훈장 수여와 중위로 추서하였다.
시흥 해안도로에 '강승우路'가 개설되어 주민에게 강승우소위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성산면장을 두번이나 역임한 고강인옥씨도 시흥리가 낳은 인물이다. 많은 인물
이 배출된 마을답게 현재 활동하는 인물들이 많음을 알 수 있지만 일일이
소개 못함은 필자의 지극히 게으름 탓이다.
일찍이 서울대학교를 나와 금융계통에 재직하여 끝내는 제주은행장을 지낸
김국주씨.성산포수협장을 4연임하여 그 기록을 깨기 힘들게한 강유삼씨.
소방공무원으론 제주도에서 최고위직까지 오른 전 제주도소방방재본부장
을 지낸 강희남씨.
이렇틋 시흥리가 인물이 많음은 두산봉이 있어서다.옛 부터 수려한 산세 밑에
많은 인걸이 배출된다 하니 두산봉이 떡 버티어 서 시흥리 인재 배출을
지켜보는 것 같다.
가끔은 성산십경중에 제2경인 두산봉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길 권한다.
사실 사람들은 감춰진 비경을 모르거나 지나칠때가 있다.두산봉이야 말로
제주도내에 은밀하게 감춰진 곳이다.올레길이란 이벤트성 걷기의 장이 생기기
전엔 두산봉을 아는이는 오름 메니야가 아니고선 드물었다고 여긴다.
오름이 마을을 지키듯 마을도 오름을 지켜야된다.무릇 사람들 속성은 오름의 아픔을
모르고 지나칠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