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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일기 13
(목사 정병수 2020.2.3. 월 맑음)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ㅣ.만남은 우연이 아님
신종바이러스가 조심스러웠지만 약속시간에 맞춰 2호선 가재울역에서 내리기 위하여 출발했다. 며칠 전 부천지방회 정 모 목사가 오늘 만나자고 전화했었기 때문이다. 첫마디는 김성호 원로목사님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일전에 옛정으로 정 목사에게 은퇴일기를 몇 편 보냈는데, 거기 내 일기에서 내가 김 원로목사님과 만나 식사도 하고 짧지 않은 시간 대화 나눴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나 보다.
한국성결교회문화선교회(구, 성결교회역사와문학연구회) 회원으로 모임에서 뵙고 지냈지만, 김 목사님은 이 단체 초대회장을 역임한 91세의 원로 어른이시고 나는 30여 년이 지난 최근에 겨우 회장을 지낸 새내기 은퇴목사로서 개인적으로는 교제가 없었는데, 내가 은퇴하고 인천에 온 것을 환영하고 축하해야겠다고 극구 불러주시어 서구청역 근처에서 뵌 것이라고, 그 만남을 통해 목사님께서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 알게 되었고, 특히 은퇴목사 쉼터를 꾸리고 싶다고 하시며 함께하자고 하시기에 미력이나마 참여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대략 설명했다.
그 쉼터는 이렇게 준비될 거라는, 목사님께 들은 얘기까지 전해줬다. 목사님의 신학교 제자분이 목사님께 뭔가를 도와드리고 싶다고 해서 목사님은 은퇴목사가 마음 편히 모일 수 있는 쉼터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하셨더니, 그 제자 목사님이 전에 사업할 때 사용하던 건물에 목사님 거처를 마련해 드리면서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목사님의 소원인 은퇴목사 쉼터까지 준비해 드리겠다는, 대략 이런 얘기다.
김 목사님은 은퇴자금 3억 원을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몽골선교와 탈북자 돕는 일에 다 쓰고는 이따금 통장에 넣어주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지내오셨는데, 그 제자 목사님이 목사님의 거처뿐 아니라 쉼터까지 마련해 드린다니 세상에 이런 제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옛 스승의 은혜를 마음에 담고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이 어쩐 일이냐고, 그 제자분도 아직 넉넉지 않은 개척교회 목회를 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고까지 전해줬다.
"목사님, 그게 접니다." "네? 정 목사님이라고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궁금해하던 그 분을 이렇게 쉽게 만나다니, 우연 치고는 참으로 신기하다.
그래서 오늘 쉼터를 만든다는 그 건물을 답사도 하고 또 원로목사님도 뵙고 하기로 한 것이다. 건물이 백여 평은 더 될 만하다. 안팎을 새로 짓다시피 손을 봐야할 것 같다. 대로변이고 길 건너편은 공원으로 위치도 괜찮은 것 같다.
내가 뭐라고 그런 데를 다 가보고 쉼터 마련에 대하여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나 싶다 . 앞으로 쉼터는 좋은 분들이 만나는 모임이 될 것 같다. 전혀 예상도 못한 일에 이렇게 참여하게 되고 이만큼 중대한 일이 이렇게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다니, 참, 만남이라는 게 우연은 아닌 듯싶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님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며 그 의미를 강조한다. 당신이 서울목회를 접고 검암 땅에 온 것, 여기서 교우들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교우들이 이 교회에 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이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강조한다.
새가족부 담당 민 권사님이 토요일마다 문자로 안내해주는 게 고마워 나도 답문으로 나의 '은퇴일기8-목사님의 심방' 한 편 보냈는데, 거기에 내가 새가족교육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보고 느낀바 있어 이런 답문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훌륭하십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하며 격려가 필요한 이시대에 영향력을 발휘하시는 귀한 목사님의 사랑에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습니다. 많이요." 그렇다. 은퇴 후 이 동네에 와 살고, 집 앞에 바로 우리 성결교회가 있는 것, 그래서 이 교회에 출석하고 박 목사님과 교우들을 만난 것도 진정 우연이 아닐 테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좋은 일들이 있을런지, 나는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 건지. 표가 날듯 말듯 존재하는 자체로 본과 덕이 되어야할 텐데...
2.참으로 우연이 아니었던 경험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만 한, 지난날이 드라마 같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 5분도 안 되게 내 곁을 스쳐간,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 43년 동안의 내 인생, 내 목회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만남이 되었던 것이다.
서울신대 졸업을 앞두고 1976년 12월에 방학을 했다. 동료들은 대부분 목회지를 찾아갔으나,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4학년 2학기에 복학을 하여 76학년도 후기졸업자 (77월 8월)가 되었기에 느긋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마음이 동요된다. 학교 뒷산에 올라 한 열흘 기도하기로 하였다. "하나님, 제게 처음 소개되는 교회가 있으면 가겠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점심시간, 여기 저기 겨우 서너너덧 명은 될까, 기숙사 식당은 텅비었다. 그때 3학년 한 모 군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교회 안 맡아 갔느냐며, 생각 있으면 서호교회 이용신 목사님을 찾아가보라고 한다. 서빙고동 서호교회 담임 이용신 목사님께서, 졸업생 한 명에게 소개할 교회가 있다고 그 교회에서 봉사하는 한 군에게 부탁한 것이다. 당시 이상하게 온몸과 얼굴까지 두드러기가 생겨 곤란했지만, 그래도 용케 좀 가라앉는 틈을 냈다. 이 목사님께서 주소를 적은 쪽지를 주셨다. 충남 서산군 서산읍 수석리 160번지 수석교회, 행정구역은 읍이지만, 농촌마을이란다.
집에 내려왔는데, 이상하게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어느 날,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낯선 땅 서산을 찾아갔다. 서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해짧은 겨울날이라 벌써 어두웠다. 갈아 탄 버스에서 내리니 치리목사님 댁 마을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어두운 시골이었다. 그 날 밤 목사님 댁에서 쉬는데 작고 낮은 천장의 방 분위기와 자녀들의 느린 충청도 사투리가 얼마나 낯선지 꼭 먼 동화나라에나 온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목사님을 따라 논틀밭틀을 걸어 수석교회에 도착해서 목사님은 사회를 보고 나는 주일설교를 했다. 목사님 시무교회의 지교회로 자당님인 여전도사님께서 개척 후 한 3년 동안 사역하셨는데, 전도사님은 회갑이 다가오고, 또 바로 맞은편에 장로교회가 있으니 경쟁도 되고 해서 이제 젊은 남자 전도사를 초청하는 것이었다. 성탄절 전에 이사를 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한번 와 본거지 아직 목회를 나간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터였다. 그래서 쉬운 말로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 문제로 고민하거나 기도를 했는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직 목회사역에 나갈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게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 마음이 편치 않은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 바람에 에이, 목회나 하러 나가야지 하고는 1월 며칟날 가겠다고 엽서 한장을 띄웠다. 형님 결혼 때 함으로 사용했던 트렁크에 옷가지와 몇 권의 책을 담아 출발했다. 1977년 1월 4일, 수요일, 수석교회에 도착했는데, 또 캄캄한 밤이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교회로 가는데 도대체 길인지 밭인지, 희미한 교회당 불빛만 보고 걸었다. 나중에 보니 동네가 길만 빼꼼히 나고 온통 밭인데다 겨울이라 곡식도 없어 더 그랬다. 교회당은 하얀 석회가루에 물을 타 바른 야트막한 부록크 건물이었다.
이렇게 나의 첫 목회는 신학수업도 한 학기를 남겨둔 채, 초라한 행장의 총각 전도사의 허둥대는 발길로 시작되었다. 목회자의 첫걸음치고는 비장한 각오나 뜨거운 마음도 아니고, 평범하다 못해 참 시시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서울신대 뒷산에서 '처음 소개가 들어오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한 대로 오게 되었으니, 여기로 온 것은 기도의 응답이며, 기도한 대로 순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의 첫 목회지 수석교회 부임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의 인도임에 틀림없다. 과연 그렇다. 부임 며칠 후 어린 새싹 묘목 밭을 돌보는 꿈을 꾸었는데, 정말 첫 목회의 열매로 중학생과 청소년들이 모여들었고, 장년부도 부쩍부쩍 늘었으며, 특히 유치원을 시작해서 70명 어린이들의 취학준비와 기독교신앙교육,그리고 그 부모들을 신자 챙기듯 방문하며 돌봤으니, 꿈에 본 대로 적지 않은 어린 영혼들을 묘목처럼 길렀던 것이다.
캄캄한 밤 교회에 도착했으나 수요일예배도 다 끝난 후라 교회당은 텅 비고, 강단 뒤에 달아 들인 한칸방에 노인 여전도사님께서 혼자 계셨다. 깜짝 놀라신다. 저들이 부탁한 대로 성탄절 전에도 안 왔고, 지금까지 아무 연락도 없어서 안 오는 사람이라고 다 잊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보낸 엽서도 못 받았다는 것이다. 얼마 후 대청소를 하다가 전도사님 방 장농 틈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엽서를 발견하고 싱겁게 웃었다.
신학수업을 마치고 43년간의 나의 목회는 이렇게 시작된 첫 목회지 수석교회로부터 이어져왔다. 신학생 시절에 교회 없는 동네에 교회를 개척히여 목회하겠다고 기도하며, 교회이름을 안디옥교회라고 정한 적이 있었는데, 부임 2년이 되니 이제야 그 기억이 나서 개척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집중하며 개척지를 물색도 했다. 드디어 부임 삼 년 반, 사임하고 태안교회를 신개척하여 12년, 대천제일교회 3년 10개월, 부천 한샘교회 12년, 상개중앙교회 12년, 그리고 정년퇴임...... . 이렇게 수석교회에 부임한 것은 짧지 않은 나의 전 목회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대단한 출발이 되었다.
나의 첫 목회지가 수석교회가 아닌, 다른 어떤 교회였다면 그 후 나의 목회사역은 어디서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물론 다른 교회에서 다른 일을 경험하고, 다른 교우들을 만났을 테고, 그 일이나 그 분들도 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목회 길에서의 일들과 만난 분들을 통하여 이제까지의 내 목회인생이 만들어진 것이고 지금의 내가 있다. 내게는 지나온 내 인생길과 지금의 내가 귀하고, 나는 이를 사랑한다. 다른 사역의 길은 상상할 가치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볼 때 그 날 기숙사 식당에서 우연히 한 모 군과 잠깐 만난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나 싶다. 그 시간의 그 후배는 기숙사에는 왜 왔는지, 왔어도 식사시간을 비킬 수도 있었으며, 또는 내가 단 1분이라도 먼저 마치고 일어났다면 못 만났을 테다. 그날 식당에는 학생도 몇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빈말이라도 던질 선배는 나 하나였으니 수석교회 얘기는 내게 전해지게끔 준비라도 된 것인지, 하여튼 그날의 만남은 우연인 것 같으나 우연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결과가 크다.
실제로 그날 만남은 그 후 43년 내 목회사역과 함께 내 인생로의 방향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수석교회에 옴으로써 서산 출신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게 되고,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보게 되었다. 또한 수석교회에서 태안교회, 대천제일교회, 그리고 부천 한샘교회로 목회지가 이어졌기에 지금의 인천 출신 사위와 부천 출신 며느리를 보고,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손주들까지 보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수석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였다면 내 생애의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이가 아닌, 이들만이 태초부터 부부와 부모와 자녀로 만나기로 예비된 자들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나의 신앙적 확신이며, 내 인성의 고백이요, 감정의 진솔한 표현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측면에서도 만약은 없다. 하나님의 뜻, 그의 작정, 선택은 온전히 유일하다.
그렇다면 수석교회 부임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한 모 군과의 잠깐의 우연한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엄청난 결과를 어찌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내 신앙의 파탄이요, 나의 하나님과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실로 두려운 일이며, 사악한 범죄와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또 내가 시무했던 목회지에서 만난 사랑하는 교우들, 내 분신 같은 형제들, 아니 기억에서만 아물거리거나 나를 걱정스럽게 속상하게, 힘들고 실망하게 한 분들이라도, 그리고 지금도 내 가슴에서 꼼지락거리고 내 눈앞에서 바글바글 뛰어노는 주일학교 어린이들, 특히나 이따금 그립고 궁금한, 눈앞에 아른거리는 수석교회 성결유치원 70여 명 아기들과 상개중앙교회 해피파티 40여 명 어린이들, 부쩍부쩍 커가던 몽실몽실한 수석교회 중등부와 태안교회 고등부 학생들, 지금 즈음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많이 성장하여 번듯한 사회인들이 됐을 텐데, 어디서든 신앙의 열매를 맺어갔으면 좋겠다. 또 아득하기만한 신학생시절 휴학 중에 오금리교회(현재 부흥교회)에서 개척목회할 때 동네 아이들, 중고등학생들, 청년들은 거의 다 교회 나오다시피 했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을 스치며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 즘 신앙적 열매를 얼마나 맺었을까, 이제라도 어디서나 열매 맺고 있다면 참 좋겠다. 또 이따금 몇몇은 연락을 하며 지내기도 하고, 목사나 목사부인이 되기도 했다...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는 어느 한날 새벽에도 빠트리지 않는다.
이들이 다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 안에서 만난 나의 사랑인데, 이게 우연일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게 믿거나 느낀다면 그건 내가 아니요, 거짓이요, 사기며 악이다. 분명하다. 그들은 지나온 나의 목회지에서 나를 만나기로 예비된 자들이다. 그렇다, 나는 그날 기숙사 식당에서 한 모 군을 만나도록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비되었던 것이다. 맞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후에 알게 되었다. 왜 서호교회 이용신 목사님이 수석교회 전도사 소개를 하였는지를. 수석교회 정상순 전도사님이 초년시절에 충북 청원군의 양촌교회(현,청주미평교회) 에서 초대교역자로 개척목회에 힘쓸 때 국민학교 교사로서 이웃 동네 장로교회 집사와 주일학교 반사인 이용신이 양촌교회에 들러 도왔고, 청주 서문교회 출신 전문규 학생도 와서 같이했다. 이들은 정 전도사의 신앙과 기도에 감동되어 서울신학교에 입학했고, 이들은 후에 각각 서호교회와 제천중앙교회에서 성공적 목회를 하였다. 정 전도사는 양촌교회 목회의 열매인 이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정 전도사는 이용신 목사가 시무하는 노송교회와 충주교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전문규 목사의 제천중앙교회에서도 함께할 만큼 이분들은 환상적 콤비네이션을 이룬 동역자들이었다. 노년에 정 전도사는 아들 조규천 목사의 서산 오남교회에서 돕다가 수석교회를 지교회로 세워 다시 단독목회를 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내가 수석교회 부일할 때다. 당시 이용신 목사는 서울 서호교회에서 시무 중이었다. 이 무렵 수석교회에 전도사가 필요하여 이용신 목사에게 소개를 부탁하였고, 이 목사님은 서호교회에서 봉사하는 신학생 한 모 군에게 알아보라고 해서 내게 수석교회가 소개된 것이다.
이렇게 이분들의, 참으로 평범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진하고도 끈질긴 인연의 인생길에 내가 우연히 끼어들게 되었고, 이것이 목회자로서의 내 전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용신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한 모 군의 소개가 처음은 아니다. 서울신학대학에서 이용신 목사님께 기독교교육방법론'과 '주일학교운영법'이란 과목으로 교회교육의 실제를 배웠고, 전도사 때는 서호교회에서 목회세미나가 있어서 교육관에서 며칠 동안 숙식을 하기도 있다. 그때 목사님의 주선으로 미국교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자전거 한 대 씩 주었으며, 나는 자전거가 있어, 책장으로 바꾼 기억도 있다. 그런가 하면 더 오래 전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시준비를 위해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서울 서빙고동에 와 있었다. 실패하고 낙향했지만, 서빙고에 머문 동안 서호교회를 몇 번 나가기도 했다. 회중석이 마루바닥이었다. 이용신 목사님과의 최초의 인연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세월이 지나 나는 성결교회역사와문학연구회(현재, 한국성결교회문화선교회) 인물전 집필로서 정상순 전도사님의 인물전을 집필하게 되었다. 전도사님의 목회여정의 자료를 구하느라고 미국에 계신 이용신 목사님과 통화를 하였는데, 이때 내가 오래 전 신학대학 졸업반 때 한 모 군의 소개로 목사님을 뵙고 수석교회에 간 그 사람이라고, 그때 만난 정 전도사님의 인물전을 지금 쓰고 있다고,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목사님께 강의도 들었고, 서호교회가 주선한 세미나에 참석도 하고, 더 오래 전에 중학교 입시를 위해 서빙고에 와있을 때 서호교회에도 가봤다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께서도 옛 추억에 젖어 감동하시며 전도사님과의 만남, 그분께 받은 감동, 그분의 영향력으로 국민학교 교사를 내던지고 신학교를 간 얘기들을 소상하게 전해주신다.
지금 생각해도 우연치고는 참으로 신기하다. 서호교회를 몇 번 나갔던 어린 소년이 훗날 전도사가 되어, 그 교회 목사님과 그토록 끈질긴 인연을 가진 정 전도사님께 그 목사님에 의해 소개가 되고, 그 교회에 부임하여 그 여전도사님과 사역을 하고, 다시 세월이 흘러 흘러 그 전도사님의 인물전을 쓰게 되고, 이를 위해 그 목사님께 자료를 구하고, 이제 그분께 이런 관계를 털어놓으며 감격하고...
도대체 이용신 목사님과의 만남, 그날 기숙사에서 한 모 군과의 만남, 수석교회와 정상순 전도사님과의 만남은 태초부터 예정이라도 된 건가? 이용신 목사님께 나를 소개한 후배도, 이 목사님도 나를 제대로 알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제대로 추천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소개가 된 것이다. 그 후배도 그 날 식당에서의 만남 후의 일을 모를 것이다. 기억도 없을 것이다. 나도 참 철이 없어 이목사님께조차도 감사편지 한장 올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후에 치리목사님께서 "이용신 목사님을 정병수 전도사를 잘 아는 것도 아니래" 라며 싱겁게 한마디 하시던 게 기억난다. 그러고보면 나를 전도사로 받은 것은 단지 이용신 목사님이 보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나의 첫 목회 시작이라니, 참으로 시시하다. 싱겁다. 에이, 모를 일이다. 우연은 정말로 우연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그 싱거운 우연의 결과, 우연이 아닌 그 우연의 열매는 참으로 위대하고 존귀하고 성스러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그 누구를 잠간 만나는 것도, 스쳐 지나는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닐까? 어떤 누구와 잠간 만나는 것도 귀중히 여기며 겸손하고 예의 있게 대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어떤 중대한 일이 담긴 그릇일지, 그 누가 미리 알랴. 하물며 부모형제와 자녀, 이웃, 친지, 그리고 주 안에 만난 교우들이랴. 지난날의 만남이 그럴진대 지금 여기서의 만남도, 앞으로도...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인도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우리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즈음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코로나19와 그리고 신천지와, 이 관계도 어차피 만난 것일진대, 이 만남도 우연이 아닐 테다. 어떤 좋은 일이 있을 것인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