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복(伏)날’ 이야기
벌써 하지가 지났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여름의 극에 달했으나 아직 땅은 충분히 달구어지지 않았다. 이제부터 차츰 땅이 달구어져 삼복(三伏) 즈음에는 더위가 기승을 부릴 터이다. 그런데 사실 삼복은 우리가 아는 24절기에 속하지 않는 ‘속절(俗節)’이다.
총 세 번의 복날은 하지와 입추를 기준으로 짧게는 30일 길게는 40일 사이의 날로 정해진다. 천문·역법 등을 다룬 음양서(陰陽書) ‘초학기(初學記)’에 따르면 “하지 후 세 번째로 드는 경일(庚日)을 초복이라 하고 네 번째는 중복, 또 입추 후 첫 번째는 말복이라(夏至後第三庚為初伏, 第四庚為中伏, 立秋後初庚為末伏, 謂之三伏)” 했는데, 여기서 ‘경일(庚日)’이란 그날 일진(日辰)의 천간에 ‘경(庚)’이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올해 을사년 초복은 7월 20일(음 6. 26.) ‘경인(庚寅)’이다. 그러니 중복은 열흘 후 7월 30일(음윤 6. 6.) ‘경자(庚子)’가 된다. 천간(天干)이 모두 10개라 다음 경일이 돌아오는 데 꼭 열흘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말복은 다시 열흘 후인 8월 9일(음윤 6. 16.) ‘경술(庚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 말복은 중복 후 스무날 만에 올 수 있다. 중복 후 열흘 안에 입추가 들면 중복과 말복의 간격이 열흘이 되고, 열흘 후에 입추가 들면 스무 날로 벌어지게 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왜 하필 복날은 ‘경’의 날일까? 천간 ‘경’은 오행의 ‘금’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체의 운행을 음양오행설로 풀어 보면 하지는 오행의 화(火)에 해당되고 추분은 금(金)에 해당된다. 하지 후부터 극에 달했던 태양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한다. 화의 기운은 점차 수그러들고 금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지만 남아 있는 화기(火氣)가 아직 너무 강하다. 그러니 금기(金氣)는 화기 아래로 기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으로 복날을 ‘금기복장지일(金氣伏藏之日)’, 즉 금기가 ‘기어들어 숨는(伏藏) 날’이라고 했다.
기승을 부리던 화기는 곧 약해지겠지만 금기에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는 화기에 상한 몸을 보해야 한다. 그래서 금기가 화기 아래로 기어드는(伏=人+犬 : 사람 앞에 엎드린 개) ‘복(伏)날’, 즉 금의 날인 경일(庚日)에 개고기(犬)를 먹으면서 더위에 허해진 몸을 보했던 것이다. 예로부터 누런, 금색 나는 개(黃狗)를 선호했던 이유는 다 오행의 원리를 염두에 둔 습속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화도 변한다. 지금 대다수의 한국인은 더 이상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미 ‘개 식용 종식 특별법’도 제정되어 2027년 2월 7일 이후부터 개 식용을 위한 사육·도살·유통·판매 등이 법으로 금지될 예정이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를 중요 뉴스로 다뤘다. 일부 매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이 후진국 문화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됐다는 취지로 그 법 통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개 식용 문화가 후진적 문화인가? 인류문명 발전을 혁명적으로 이끌어 낸 중요한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은 모두 개 식용문화를 가진 동양에서, 서양보다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년 이상 앞서 발명되었다. 그중 나침반 발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금속활자 인쇄술만큼은 명백히 한민족이 창조한 선진기술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개를 식용하지 않으면서, 그때는 어떻게 천년 이상 후진 상태에 있었던가? 문명의 발전 정도는 특정 식문화와 무관하다. 한 사회의 문화는 그 나름의 고유한 맥락과 가치 체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타 문화에 대한 아전인수식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오히려 후진적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