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45 강 - 懺悔品- 8
何名淸淨法身佛고 世人이 性本淸淨하야
萬法이 從自性生이니
思量一切惡事하면 卽生惡行하고
思量一切善事하면 卽生善行이라
如是諸法이 在自性中함이 如天常淸에
日月이 常明이언만 爲浮雲盖覆하야
上明下暗이라가 忽遇風吹雲散하면
上下俱明하야 萬象이 皆現이니
世人의 性常浮游함은 如彼天雲이니라
善知識아
智如日, 慧如月이니 智慧常明이언만
於外着境하야 被妄念浮雲의 盖覆하야
自性이 不得明朗이라가 若遇善知識하야
聞眞正法하고 自除迷妄하야 內外明徹하면
於自性中에 萬法이 皆現하나니
見性之人도 亦復如是라 此名淸淨法身佛이니라
善知識아
自心이 歸依自性하면 是歸依眞佛이니
自歸依者는
除却自性中에 不善心, 嫉妬心, 諂曲心, 吾我心,
誑妄心, 輕人心, 慢他心, 邪見心, 貢高心과
及一切時中不善之行하야 常見自己過하고
不說他人好惡함이니 是自歸依하며
常須下心하야 普行恭敬하면 卽是見性通達하야
更無滯碍니 是自歸依니라 ←
***
何名千百億化身고 若不思萬法하면 性本如空이나
一念思量하면 名爲變化니 思量惡事면 化爲地獄이요
思量善事면 化爲天堂이요 毒害는 化爲龍蛇요
慈悲는 化爲菩薩이요 智慧는 化爲上界요
愚癡는 化爲下方이라 自性의 變化甚多어늘
迷人이 不能省覺하고 念念起惡하야 常行惡道하나니
廻一念善하면 智慧卽生이라 此名自性化身佛이니라
何名圓滿報身佛고 譬如一燈이 能除千年暗하야
一智가 能滅萬年愚하나니 莫思向前己過하고
不可得常思於後하야 念念圓明하야 自見本性하면
善惡이 雖殊나 本性은 無二니 無二之性이 名爲實性이라
於實性中에 不染善惡함이 此名圓滿報身佛이니라
自性에 起一念惡하면 滅萬劫善因이요 自性에
起一念善하면 得恒沙惡盡이니 直至無上菩提하야
念念自見하야 不失本念함이 名爲報身이니라
善知識아
從法身思量하면 卽是化身佛이요
念念에 自性을 自見하면 卽是報身佛이요
自悟自修自性功德이 是眞歸依니라
皮肉은 是色身이요 色身은 是舍宅이라
不言歸依也니 但悟自性三身이라야 卽識自性佛이니라
吾有一無相頌하니 若能誦持하면 言下에 令汝로
積劫迷罪를 一時消滅하리라.
頌曰
***
하나하나 짚어서 넘어 가지요.
육조스님께서는
성품 性(성)자를 잘 쓰시고, 간혹 마음 心(심)자도
잘 쓰시고, 어떤 경은 菩提(보리), 또는 어떤 경은
涅槃(열반)이런 것을 잘 쓰시고,
또 임제스님 같은
이는 그 성품이니 마음이니 보리니 열반,
이런 것을 뭉뚱그려서 사람 人(인)자를 잘 써요.
사람!
송장보고 사람이라고 하지 않지요?
또 영혼만 떠도는 것을 가지고,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할 때는 이미 성품이니 육신이니, 거기에 마음이니
하는 것이 다 포함돼서 우리가 “사람” 하거든요.
그래서 임제스님은 사람 人자를 잘 써요. “사람” 하면
그 속에 다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표현을 잘 씁니다.
何名淸淨法身佛(하명청정법신불)고→
무엇을 이름 해서 청정법신불이라고 하느냐?
世人(세인)이→ 세상 사람의,
性本淸淨(성본청정)하야→ 성품이 본래 청정해요.
우리성품자리. 본바탕. 우리마음의 본바탕은 본래
깨끗하고 좋다 이겁니다. 청정하다. 텅 비었다.
이렇게 봐도 좋아요. 청정이라고 하니까 깨끗하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우리가 하기 쉬운데 사실은
텅 비었다고 생각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萬法(만법)이
從自性生(종자성생)이라→ 비었기 때문에, 만법이
그 비어있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무엇이든지
다 이해하지요.
날씨가 추워지면 추운 것 이해하지요. 그것 하나
또 생겼잖아요.
더우면 더운 것 이해하지요. 더운 법. 추운 법.
또 어떤 물건. 사물이 있으면 사물을 그대로
이해를 잘 합니다. 이해를 함으로 해서 그것이
우리 자성 가운데 아로새겨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만법이 종자성생입니다.
만법이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그러니까
세상사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
이것이 만법입니다. 물질만이 만법이 아니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춥고 덥고 사람이
저지르고 하는 일체 것이 전부 만법 속에 해당이 됩니다.
그것이 전부 뭐라고요? 우리자성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思量一切惡事(사량일체악사)하면→
일체 악한 일들을 생각하면,
卽生惡行(즉생악행)하고→ 악한 행동이 바로 나오지요.
思量一切善事(사량일체선사)하면→
일체 선한 일을 생각하면,
卽生善行(즉생선행)이라→ 곧 선행이 나온다고요.
내 마음에 뭘 좋은 일 해야 되겠다. 굳이 좋은 일
익숙하게 잘하는 사람들은. 몸에 벤 사람들은
좋은 일이라는 의식도 없어요. 그냥 하는 행동이
그냥 좋은 일이 돼요.
안 좋은 일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안 좋은 일을 한번 해야지.’이렇게 마음속에
계산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져 가지고
그냥하면 무조건 안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도 그렇고요. 어쨌든 일체악사를 생각하면
악행을 내고, 일체선사를 생각하면 선행을 낸다.
如是諸法(여시제법)이
在自性中(재자성중)함이→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여기 제법이라는 말보면
알 수 있지요? 사람이 저지르는 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존재들. 이것이
제법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재자성중함이
자성가운데 있는 것이
如天常淸(여천상청)에
日月(일월)이
常明(상명)이언만→
하늘이 늘 맑은데, 하늘이 항상 맑음에 해와 달이
항상 밝건마는, 해와 달은 늘 밝지요.
그런데
爲浮雲盖覆(위부운개부)해서→
구름이 떡 떠가지고 덮어버린단 말입니다.
우리 머리 위를 덮어버리면, 어떻지요?
上明下暗(상명하암)이예요→
위에는 밝아요. 그냥 하암이라 밑에는 캄캄해요.
비도오고 막 그냥...
그런데 육조스님 비행기도 안 타봤을 텐데
어떻게 알았는가 모르겠어요. 요즘은 비행기 보면
上明下暗. 그냥 알아요.
막 비 오는데도 금방 뚫고 올라가면, 그 위에는
창창 맑아가지고 환 하거든요. 구름이 또 볼만 하지요.
상명하암이라.
忽遇風吹雲散(홀우풍취운산)하면→ (吹불취)
홀연히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져 버릴 것 같으면,
上下俱明(상하구명)이라→
上下가 함께 다 환히 밝아 툭 터지지요.
萬象(만상)이
皆現(개현)이예요→ 만상이 다 나타나요.
世人의 性常浮游(성상부류)함이 如彼天雲(여피천운)이니라→
세상 사람의 성품이 항상 이리저리 떠다니고
흘러 다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에 구름과 같은 것이다.
참 아주 기가 막힌 표현 이예요. 구름이 끼었다 맑아졌다.
그 코메디언 하는 데 보면,
그 사람의 오늘 기분 가지고 일기예보로
이야기 하는 게 많지요? 정말 그래요.
일기예보하고 똑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들 마음에... 물론 이런저런 이유가 있기도 하고,
까닭 없이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기도 하고,
까닭 없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요.
이것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또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문제가 있을 때 마다
꼭 마음이 상하거나 기분이 좋거나 그렇지도 아니해요.
똑 같은 일이 생겼는데 어제는 기분 나빠하다가
오늘은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세인의 성상부류 라고 했어요.
浮 = 뜰 부. 游 = 흘러다닐 류.
뜨고 흘러 다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에 구름과 같다.
육조스님
같은 분들이, 본래는 아주 좋은 가문에 태어났다가
나중에는 집안이 기울어져서 아주 곤궁하게,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살고 교육도 못 받고 겨우겨우
나무장사해서 노모를 모시고 그렇게 연명 해가던
그런 처참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경전의 말씀을
듣고는 마음이 환히 밝아져서, 그길로 출가를 해서
천하의 아주 대 선지식이 되었고, 그런 마음이
밝아져서 법을 받아서 천하에 펼칠 수 있는 그런
인연은 만났지만, 아직 때 가 안 되어서 15년이란
세월을 사냥꾼들 틈바구니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때를 기다려야 했던 그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고요. 이 육조스님 같은 이가...
그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툭 터진 마음의 세계를 지닌 분이 되어 놓으니까
이 법문이 뭐 어디 막힘이 없어요. 그냥 시원시원 해요.
극락세계가 어디 있느냐?
서쪽에 있다. 동쪽 사람은 염불해서 서쪽에 있는
극락세계로 간다하지만, 서쪽에 있는 사람은
염불해서 어디로 가느냐?
참 기가 막힌 소리지요. 염불해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
그런 소리를
육조스님 외에는 한 분이 없어요. 그런 얘기를...
그 분의 인생사하며, 또 남 다른 아주 종교적
천재성을 타고난 그런 영민함 하며, 이런 것들과
깨달음과 이것이 모두 어울어져서 이런 참 좋은
법문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조사스님의 법문도 감히 “경” 이라고
못하는데, 이 육조스님의 법문만은 “경” 이라고
이렇게 이름을, 부처님의 경전과 같이 붙여놨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말하자면
팔만대장경의 안목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善知識아
智如日慧如月(지여일혜여월)이라→ 이런 표현도 좋아요.
지와 혜를 나눠서 이야기를 하면서,
智 = 태양과 같은 것이고, 慧 = 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태양은 밤이 있지요? 또 달은 낮이 있어서
그것이 쓰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지역도 있고요.
그런데 깨달음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밤낮이 없고,
어떤 경우와 상황과 관계없이 늘 상명이지요.
智慧常明(지혜상명)→ 지혜가 항상 밝건마는,
於外着境(어외착경)하야→
그런데 밖으로 우리가 경계에 집착한다.
이 문제 일어나면 그 문제에 끄달리고,
이 사건이 생기면 거기에 끄달리고,
온각 그런 바깥 세계에 끄달리기 때문에,
객관에 흔들리고 끄달리기 때문에,
被妄念浮雲(피망념부운)의
盖覆(개부)하야→ 망념. 망녕된 생각. 온각 망상이지요.
망상의 뜬 구름에 덮인바가 되어서,
덮이는 바를 입어서, 당해서,
自性(자성)이 不得明朗(부득명랑)이라가→
우리 자성자리가 명랑하지 못해. 밝지를 못해.
밝지를 못하다가
若遇善知識(약우선지식)하야→ 만약에 선지식을 만나서,
聞眞正法(문진정법)하고→
참답고 바른 도리! 참되고 바른 도리를 듣고,
自除迷妄(자제미망)해서→ 스스로 미망을 제거해서,
우리가 뭔가 답답하고 캄캄하고, 이런 법문 들을때는
조금 짐작되다가 그만 또 그대로이고, 그대로이고요.
아무튼 저는 천번 만번 들어도 그대로입니다.
들을 때는 야~! 그런 것 같고 정말 뭐 거의 다 된 것
같이 생각이 들어요.
참 내 희안하지요.
自除迷妄하야→ 스스로 미망을 제거해서,
內外明徹(내외명철)→
이것이 성철스님이 걸핏하면 쓰시는 말씀이
‘내외명철’입니다. 참 잘 쓰시는 말씀입니다.
법문할 때마다 ‘내외명철해야 된다.’ 안팎으로
明徹해야된다. 환해야 된다.
철자는 사무칠 徹(철)자예요.
맑을 澈(철)자가 아니고요. 이 사무친다는 말은,
해가 환하게 밝을 때, 물에 들어가도 그 햇빛이
투과 해 들어가서 저 물밑에까지 햇빛이 비치지요.
그것을
사무칠 徹이라고 그래요.
물속까지 사무치는 것. 그것을, “밝음이 그 속까지
사무쳤다.” “안팎으로 사무쳤다.”그래요. 어디에
어두운데가 있으면 안돼요. 어떤 부분에. 어떤
面(면)에라도 어두운 부분이 있으면 안 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환하게 통하는 것을
內外明徹. 그렇게 합니다.
內外明徹하면
於自性中(어자성중)에→ 스스로 자신의 성품 가운데
萬法이 皆現(개현)이라→
그저 내 마음속에 그냥 온갖 도리가 환해요.
萬法皆現. 온갖 도리가 환하다 이겁니다. 무엇이든지
그저 걸리기만 하면 그냥 훤해요. 이 육조스님은 본래
이렇게 마음을 깨달아가지고 萬法이 皆現. 훤한데,
거기다 나중에는 부처님 경전까지...
나중에는
글도 배우고 경전도 읽고 그래가지고,
그게 경전이 바로 설해졌는가? 맞는가?
어쩐가 점검도 하셨겠지만, 어쨌든 경도 많이 보셔서,
금강경 주해를 쓰시는 데는 경전인용도 상당히
여러 가지가 나오고 있지요.
만법이 훤하게 다 나타나나니,
見性之人(견성지인)도→
성품을 본 사람. 소위 “견성한 사람.” “견성한 사람.”
그러지요? 견성한 사람도
亦復如是(역부여시)라→ 또한 다시 이와 같다.
此名淸淨法身佛(차명청정법신불)이니라→
이것이 청정법신불이다.
청정법신불의 설명이지요.
이것이 청정법신불이다.
청정이라고 했으니까요.
善知識아
自心(자심)이
歸依自性(귀의자성)하면→
자기의 마음이 자성에게 귀의하면, 내 마음이
내 마음에게 귀의한다. 이 말입니다.
心이나 性이나 크게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에게 귀의할 것 같으면,
是歸依眞佛(시귀의진불 )이라→
이것이야말로 참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다.
참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시는 귀의진불이다.
참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다.
제가 임제스님 법문을 자주 인용 하는데요.
그 임제스님은 육조스님의 7대손인가 6대손인가 그쯤 내려와요.
그쯤 내려온 후손인데 그 분 법문은 더 함축이 되어 있어요.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더 아주 뜻이 깊고요.
육조스님은
좀 말씀하실 수 있는데 까지는 하시는 분이고,
임제스님은 아주 간단명료해요.
그야말로
寸鐵殺人(촌철살인)으로 법문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렸지만, 무차 무니선사가
장안에서부터 오대산 문수도량이라 해서
문수보살에게가서 문수보살 친견하겠다고
그 장한 신심으로 수년 동안 일보일배를 하면서
오대산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임제스님이
있다가 오대산엔 문수가 없다.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일보일배를 하는 너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문수다. 그랬습니다.
오대산엔 문수보살이 없다.
문수보살을 보러가는 너야말로 진짜 문수다.
참 문수다. 라고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自心이 歸依自性하면 是歸依眞佛이다.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에 귀의할 것 같으면,
이것이야말로 참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말이 달라서 그렇지 뜻이 같습니다.
自歸依者(자귀의자)는→
스스로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에 귀의하는 것.
그것이 자귀의지요.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이지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
귀의자는
除却自性中(제각자성중)에
不善心嫉妬心(불선심질투심)→
제각. 제해버린다. 모든 것을 제해버린다. 무엇을?
우리 마음가운데 있는 불선심. 또 질투심.
諂曲心(첨곡심)→
첨곡심은 사람이, 마음이 곧지를 못하고 꼬부라진 마음.
뭐라고 할까요? 꼴짜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아주 그런 마음이 있어요. 첨곡심이라고...
굽은 마음. 사람이 그대로 순수하게 그저 이치대로.
순리대로 마음을 그렇게 쓰지, 조금 무슨 문제가
있으면 자기 마음에 와서 한참 구부려가지고, 딴
사람에게 전하거든요꼭.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諂曲心
吾我心(오아심)→
이것은 자아의식. 어떤 자만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오아심이라고 합니다. 자아의식이라고...
誑妄心(광망심)→ 거짓마음.
輕人心(경인심)→ 남을 가벼히 여기는 마음.
慢他心(만타심)→ 남을 무시하는 마음.
邪見心(사견심)→
삿된 소견. 아무리 바른 법을 배워도 그 생각이 바르지
못해서, 삿된 소견을 가진 그런 마음.
貢高心(공고심)→ 자기를 드러내는 마음.
오아심이 순수한 자아의식이라면,
이 공고심은 자기를 자꾸 드러내려고 하는 것.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꾸 드러내고, 어디가도
어른노릇 하려고, 괜히 어른도 아니면서
어른노릇 하려고 자꾸 어른으로 봐 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그냥 드러나는 사람들 있어요보면.
그런 마음과
一切時中不善之行(일체시중불선지행)→
모든 생활 속에서 선하지 못한 그런 행을 제각. 제해버려서
常見自己過(상견자기과)하고→
항상 스스로 자기허물만 돌아보게 되고,
不說他人好惡(부설타인호악)하는것이→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쁜 것을 말하지 아니하는 것이,
是自歸依(시자귀의)니라→
이것이야말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이니.
常須下心(상수하심)하야→ 항상 모름지기 下心해서.
불교에 “하심”이라는 말, 참 의미 좋은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말이 다 있어요. 下心.
항상 모름지기 下心해서,
普行恭敬(보행공경)하면→ 널리 공경을 행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경을 행한다.
卽是自性通達(즉시자성통달)해서→
그럴 것 같으면 이것이 자성을 통달해서
更無滯碍(갱무체애)니→
다시는 막히거나 걸릴 것이 없다.
是自歸依(시자귀의)니라→ 이것이 자귀의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참 아주 좋은 말입니다.
그래 제가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人佛思想(인불사상)의 이야기를 근래에 좀 하면서
“사람이 부처님이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자.”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보행공경하면 즉시견성통달이라.
성품을 보아서 통달해진다. 이것이
다른 말로, 우리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물론 나도 부처님이지만,
그도 부처님이니까요.
일단 상대부터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섬기는 나도 행복하고, 그 섬김을 받는 그 사람은
더욱 행복하고요. 그것이 결론이지요. 그래서
그동안 불교공부 다 해본 결론으로서, 다 했다면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해본 결론으로서,
“사람이 부처님이다.” 그 얘기입니다. 그것 밖에 달리,
현재로서는 달리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自歸依라는 말이 나와서
이 말은 조금 부연 설명을 하고 넘어갈 건데요.
부처님께서 설법 하시게 된 연유들을 보면,
편안하고 아무 일 없고 평화로운 그런 상황에서
법문하신 것 보다는, 사람이 불행을 겪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당신도 고통스럽고 힘든 세월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가슴 아픈 일도 많았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대 했을 때, 주로 진지한 법문을 많이 하셨어요.
부처님제자가 부처님보다 먼저 돌가신 훌륭한
제자들도 있었지요.
특히 사리불 · 목련 같은 이가 그랬는데,
그랬을 때 아우뻘 되는, 후배뻘 되는 그런
제자들이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목련존자나
사리불 같은 이를 부처님보다도 더 아주 가까이
모시고, 때로는 부처님같이, 때로는 형님같이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제자들이 비통해하고 있을 때,
부처님이 하시는 말씀이
自歸依(자귀의) ·
法歸依(법귀의). 유명한 말씀이지요.
불행을 겪고 온 사람에게 그저 그야말로 걸핏하면
하신 말씀이 여기에
自歸依라는 말이 있는데,
自歸依 · 法歸依.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진리의 가르침에 귀의하라.
그 외의 다른 것에 귀의하지마라.’그랬어요.
‘그 외의 다른 것에 귀의하지마라.’
그리고
法燈明(법등명) ·
自燈明(자등명).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라.
그 외의 다른 것으로 등불로 삼지마라.
우리는 등불로 삼고,
내가 의지하는 것이 너무 많지요?
이래저래 꼽아도 벌써 한 대 여섯 개 는 꼽을 수 있습니다.
온갖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하는 것.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것 많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자기만을 믿어라.
진리의 가르침만 믿어라. 그리고
그 외의 것은 믿지 마라 그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