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_자립하는 소농학교 11기 입학식

[이용희]

오랜만에 토요일을 일찍 맞이하였다. 아침 8시까지 안양 수리산 자락 아래 소농학교 교육장까지 도착해야했기에 서둘러야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얼키고 설킨 채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출발했다. 어쩌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저편으로 미뤄두었다. 오늘은 오늘로서 잘 살아야했다. 함께 한 해 농사를 지어야할 동료들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다. 선배들이 찾아와 격려를 해주고 뒷풀이 모임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나에게 새로움은 늘 기대감보다는 불편함이 더 큰 것 같다.

살아오면서 많은 입학식을 겪어왔지만, 소농학교 입학식은 단연코 새롭다. 가장 좋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한 스케쥴 가운데 입학식은 작은 부분이었고, 입학식도 하기 전에 몸을 쓰는 실습들이 준비되어있기 때문이다.

긴장한 얼굴빛으로 교육장에 들어섰다. 그나마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오히려 나는 덜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입학식들이 쓱쓱 지나간다. 그 긴장감들이 떠오른다. 하우스 교육장에는 적정기술을 사용한 난방기에서 나무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로 위 따뜻한 수수차가 나의 긴장을 녹여주는 듯하다.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전국귀농운동본부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간다. 생산성, 효율성, 단일성으로 농부를 잃어버리고 농사의 가치, 생명을 잃고 달려온 대한민국 농업의 현실 속에서도 그 가치를 꾸준히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결과를 떠나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과정은 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 첫 수업은 모종수업이다. 모종을 키워내기 위한 흙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교만함이 없다. 자연을 닮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자연과 식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인간과 자연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살아야하는데 그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모종에 사용할 흙을 만들어보기위에 교육장 옆 산에 올라갔다. 떨어진 낙엽을 거둬내고 그 아래 흙(부엽토)을 채취했다. 11기 동기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삽질도 해보지만 서툴다. 삽질만큼 우리의 관계도 아직은 서툴다.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했기에 어색함은 당연한 것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다. 하우스교육장으로 자리를 옮겨 모종판에 씨앗을 심기위한 작업을 준비한다. 싹을 하나 틔우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다. 부엽토를 채에 거르고, 필라이트, 재를 잘 섞어주었다. 모종판에는 대파, 고추, 사과참외 등을 심어주었다. 물에는 1/5 정도의 소변(10일정도 묵힌)을 섞어서 흠퍽주었다. 낯설다.

점심은 각자 반찬 1개를 준비해왔다. 펼쳐놓으니 뷔페상이 차려졌다. 밥과 국은 활동가분들이 준비해주셨다. 쌀은 10기 선배님들이 쌀농사로 생산해내주신 것이란다. 아침 일찍부터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다. 점심식사 후에는 시농제를 드린다고 했다.

시농제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소속 풍물패 '따랑'과 함께 한 해 농사를 지을 논과 밭을 밟으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따랑의 연주를 따라 팔과 발에 리듬을 실어본다. 굳어진 나의 팔과 발 만큼이나 마음도 꼿꼿하다. 낯설다. 각 밭과 논마다 그 흙을 담당하시는 사람들을 만난다. 교장선생님의 옆지기이신 텃밭언니의 밭에 들렀을 때는 따뜻한 오뎅과 막걸리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막걸리가 술이기에 먹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 긴장감이 돌았지만, 무리하게 권하지도 않는다. 함께 흥겹게 격려하고 응원한다. 소농학교 밭을 마지막으로 시농제를 드렸다. 소농학교 선배님들, 대야미 마을에 함께 농사짓는 이웃들, 동료들이 함께 모여 한 해 농사가 잘 되길 기원한다. 생산량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정직한 농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 같다. 소농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가치를 함께 지켜가겠다고 뜻을 모으는 자리가 아닐까?

시농제가 끝나고 입학식을 진행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다. 11기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소농학교 선배님들이 찾아와주셨다. 홍성, 화천, 곡성 등 전국 곳곳에 소농의 가치를 품고 오롯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되면서도 솔직히 자신은 없다. 각자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이 어색하다. 어색한 느낌은 사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닐까? 사실과 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엉뚱한 말을 건너기도 하고 분위기를 갑분싸로 만들기도 하는 사실들 속에 진실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
시루떡, 막걸리, 구운달걀, 귤, 머릿고기로 상이 차려졌다. 화려하지 않다. 참 소박하다. 머릿고기와 시루떡이 참 맛났다. 어색한 나는 오히려 더 먹었던 것 같다.

선배님들은 총회를 하러 떠나고, 우리는 다시 감자씨를 준비하기 위해 하우스교육장으로 모였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농사는 한 눈 팔 겨를이 없는 것이다. 생명을 키워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밭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감자씨 에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감자를 반으로 가른 방법과 드러난 표면을 재로 소독하고 보온하는 것까지 배워나간다. 씨을 받기 위해 겨울을 땅 속에서 보낸 무우를 심어본다. 씨를 받을 무우는 꼭 겨울을 보낸 무우여야 한다고 한다. 겨울은 추운겨울인데 꼭 추운 겨울을 지나야 생명을 낼 수 있다는 말 같다. 사람도 생명인데, 추운 겨울을 지나고 싶지 않은데, 그 겨울을 지나야만 사람도 여물어가나 보다. 나는 추운겨울을 가치를 알고 있지만 몸으로는 겪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자씨와 무우 씨 준비까지 마무리를 짓고 교육장으로 돌아오니 6시가 다 되어간다.

첫날이 참 길었다. 마무리 소감을 발표한다. 각자 참 긴장되지만 기대되는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소농학교 11기는 10명이다. 10명의 일 년 농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어떻게 이 시간과 장을 채워나갈지 기대와 함께 엄습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배들이 총회를 마무리하고 저녁식사에 초청을 해주셨다. 화려한 장소도 음식도 아닌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실 그 자리도 어색했다. 몸과 마음이 긴장한 하루를 오롯이 보내다보니 피곤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노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사실 나는 두렵다. 퇴사를 하고 소농학교에 입학했다. 소농학교를 수료한다고 내 삶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오산이라는 도시에서 나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두렵다. 반농반X를 위한 X를 찾는 것도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지금은 농보다는 X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없이 토요일을 보내고, 다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월요일을 맞이했다. 월요일이 힘들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는 내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머릿 속이 더 복잡해진다. 투덜거리는 말이 달려나오려고 한다. 소농의 가치를 잘 알겠지만 내 몸에 와닿지가 않는다. 좋은 이야기고 지켜가야하는 것이 맞는데 내가 잘 해나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꾸억꾸억 따라가다가 다시 깨닫게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넓고 깊게 생각하고 싶다. 좀 더 주체적으로 내 삶을 이끌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는 데 겉 멋만 들은 건 아닐까? 자꾸 의심을 하게 된다.








토요일이라는 하루를 꽉차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