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여행
원 용 수
맑은 날 오후, 신천에 나가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해를 등지고 신천강이 뿜어내는 분수를 바라보면 둥그런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다. 나는 거의 매일 신천으로 나간다. 강가를 거닐면 운동이 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무지개는 누구든지 볼 수 있다. 무지개가 보이면 나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지개를 보고 가라고 권한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강변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신기해한다.
내가 무지개를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덕산초등 3학년 때 부모님을 무지개에 태운 그림을 그려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둥그런 무지개를 가로로 펼쳐 그리고, 무지개 중심에 두 사람이 들어갈 망태를 앉히고, 그 안에 부모님을 태웠다. 요즘 애버랜드에서 여러 사람을 태우는 무지개에 비하면 초라한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무지개가 길어서 넘어질 염려는 없었다. 6.25전이라 크레용도 질이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용석 형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선물 받은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을 무지개에 태워 하늘나라로 여행시켜 드린다는 순수한 동심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무지개를 타고 오실거란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2021년 5월 1일 오후, 대구 초례봉에 무지개가 봉우리에 앉을 듯이 나타났다. 내 기억으로는 30여 년 전에 무지개를 본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대구 기상대에 알아보니 무지개가 뜨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라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는 금호강변 봉무파크골프장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꾸물대다가, 갑자기 무지개가 사라지는 바람에 겨우 한 장밖에 못 찍었다. 그 사라지는 무지개 가운데에 노부부가 앉아계시는 실루엣을 본 것 같았다. ‘기다리는 부모님께서 오셨다가 가신 건가?’ 오랜만에 나타난 무지개가 사라지니 모두 아쉬워하였다.
그날 밤, 꿈에 무지개를 탄 어른들을 다시 만났다. 무지개는 내가 서 있는 금호강 위로 왔다. 무지개 중심에 한복 차림의 노부부는 아버지와 어머니셨다. 내가 옛날에 그렸던 무지개를 타고 오셨다. 부모님은 내려 올 생각은 않으시고 무지개를 꼭 잡고 계셨다. 나는 가슴이 뛰고 몸이 떨렸다. 숨을 크게 쉬어 몸을 가누고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잘 계셨니껴?”
인사를 드려도 대답은 없으셨다.
‘내 말이 안 들리시는가? 귀를 먹으셨는가?’
어른들은 손나팔로 크게 외치셨다.
“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
“요새 어디 아프나? 산소에도 안 오고.”
“오늘 보니, 꼬부랑 할배 되었구나!”
두 어른이 번갈아 외치는데 어머니 말씀이 조금 똑똑하게 들렸다.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죽은 지, 나는 60년째고, 너 아버지는 50년째다. 하나님 뜻으로 우리는 하늘나라에서도 다시 만났다.”
“우리가 낮에 세상에 올라카모 무지개를 타야 올 수 있다. 하나님께 벌써 말씀 드려놓았는데 무지개가 떠야 오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오늘에사 무지개를 타고 왔다.”
“세상 둘러보니 봄철이라 무지개만큼 아름답구나. 우리가 여행 못 댕겨봐서 제주도와 금강산에도 가고 싶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남들 다 간다는 제주도 여행도 못 보내 드려 미안합니다.”
“니 잘못 없다. 우리가 너무 빨리 죽은 게 탈이다.”
“제주도와 설악산에는 무지개가 자주 뜬다니 한 번 가봅시다.”
“우리는 니가 초등 3학년 때, 우리가 무지개에 탄 그림을 방 벽에 붙여둔 걸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천당에서도 무지개를 타고 세상 나오고, 여행 다니는 게 소원이었다.”
오늘 보니, 어른들 차림은 한복이고 아직 정정하시다. 천당에서 편안하게 계시는 것 같았다.
“부모님, 저는 궁금한 게 많습니다. 작고하신 세분 형님들 같이 있습니까? 6.25때 부역하다가 도피하신 용석 형님 저승에서 만났습니까?”
대답을 기다리는데,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을 날리며 사라졌다.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 드렸다.
현실 같은 꿈이 아쉽다.
‘부모님, 다음 무지개 뜨는 날, 또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