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達羅尼師今立 逸聖長子也 身長七尺 豊準有奇相 母朴氏 支所禮王之女 妃朴氏內禮夫人 祗摩王之女也
아달라 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일성왕(逸聖王)의 맏아들이다, 키가 일곱 자이고 콧마루가 우뚝하여 기이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인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內禮夫人)으로 짐왕(祇摩王)의 딸이다.
■154 元年三月 以繼元爲伊飡 委軍國政事
원년(서기 154) 3월, 계원(繼元)을 이찬으로 삼아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155 二年 春正月 親始祖廟 大赦 以興宣爲一吉飡
2년(서기 155) 봄 정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흥선(興宣)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156 三年 夏四月 隕霜. 開雞立嶺路.
3년(서기 156)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雞立嶺)의 길을 열었다.
*계립령 : 주흘산과 월악산 사이의 고개
■157 四年 春二月 始置甘勿馬山二縣. 三月 巡幸長嶺鎭 勞戍卒 各賜征袍
4년 봄 2월, 처음으로 감물(甘勿)과 마산(馬山) 두 현을 설치하였다.
3월, 장령진(長嶺鎭)을 두루 살피어 지키는 병졸들을 위로하고 각각에게 군복을 주었다.
157년(아달라 4)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에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나섰는데 남편의 신이 바위 위에 있었다. <삼국유사>
*장령진 : 소백산맥을 관방체계로 방어하는 정방사령부라는 추정은? 493년 소지마립간도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쌓고 장령진을 설치.
■158 五年 春三月 開竹嶺. 倭人來聘
5년(서기 158) 봄 3월, 죽령(竹嶺)을 열었다. 왜인이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죽령을 연것과 왜인이 예방하는 것이 인과 관계가 있는가?
■160 七年 夏四月 暴雨. 閼川水溢 漂流人家. 金城北門自毁
7년 여름 4월, 폭우가 내려 알천(閼川)의 물이 넘쳐 사람들의 집이 떠내려갔다. 금성(金城)의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161 八年 秋七月 蝗害穀 海魚多出死
8년(서기 161) 가을 7월,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쳤다. 바다에서 많은 물고기가 밖으로 나와 죽었다.
■162 九年 巡幸沙道城 勞戍卒
9년(서기 162) 사도성(沙道城)을 두루 살피어 지키는 병졸들을 위로하였다.
■164 十一年 春二月 龍見京都
11년(서기 164) 봄 2월, 용이 서울에 나타났다.
■165 十二年 冬十月 阿飡吉宣謀叛 發覺 懼誅亡入百濟 王移書求之 百濟不許 王怒出師伐之 百濟嬰城守不出 我軍粮盡乃歸
12년(서기 165) 겨울 10월, 아찬 길선(吉宣)이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백제로 도망쳤다.
임금이 글을 보내 그를 요구하였으나 백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임금이 노하여 군사를 내어 정벌하였는데, 백제는 성 안에서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는 양식이 떨어져 돌아왔다.
■ 十三年 春正月辛亥朔 日有食之
13년(서기 166) 봄 정월, 초하루 신해에 일식이 있었다.
■167 十四年 秋七月 百濟襲破國西二城 虜獲民口一千而去. 八月 命一吉飡興宣 領兵二萬伐之. 王又率騎八千 自漢水臨之. 百濟大懼 還其所掠男女 乞和
14년(서기 167) 가을 7월, 백제가 나라의 서쪽에 있는 두 성을 습격하여 깨뜨리고 백성 1천 명을 붙잡아 돌아갔다.
8월, 일길찬 흥선에게 명하여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그들을 치게 하였다. 임금도 또한 기병 8천을 거느리고 漢水로부터 그곳에 다다랐다.
백제는 크게 두려워하여 잡아갔던 남녀들을 돌려보내고 화친을 구걸하였다.
*漢水는 어디? 병2만 기병 8천을 동원하는 규모의 집단.
■168 十五年 夏四月 伊飡繼元卒 以興宣爲伊飡
15년(서기 168) 여름 4월, 이찬 계원이 죽었으므로 흥선을 이찬으로 삼았다.
■ 十七年 春二月 重修始祖廟 秋七月 京師地震 霜雹害穀 冬十月 百濟寇邊
17년(서기 170) 봄 2월, 시조묘를 다시 수리하였다.
가을 7월, 서울에 지진이 났고,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171 十八年春 穀貴 民飢
18년(서기 171) 봄,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172 十九年 春正月 以仇道爲波珍飡 仇須兮爲一吉飡 二月 有事始祖廟 京都大疫
19년(서기 172) 봄 정월, 구도(仇道)를 파진찬으로 삼고 구수혜(仇須兮)를 일길찬으로 삼았다.
2월, 시조묘에 사고가 있었다.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
■173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遣使來聘
20년(서기 173) 여름 5월,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174 二十一年 春正月 雨土 二月旱 井泉竭
21년(서기 174) 봄 정월, 흙비가 내렸다.
2월, 가뭄이 심해 우물이 말랐다.
■184 三十一年 春三月 王薨
31년(서기 184) 봄 3월, 임금이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