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제38회 영농, 생활수기 일반부문 응모작품>
제목 : 나는 마중물!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닥친 지금 농촌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예부터 농사가 최고(農者之天下大本)라 했는데 농사지을 젊은이들이 없어서 70대 후반은 물론 심지어 80~90된 어르신들이 구부러진 허리로 힘든 농사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뒤 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이 땅을 지키며 농사를 지을까?
2013년 8월에 평생을 바친 교직을 정년퇴임하고, 2014년 6월에 30년 살던 김천에서 그리운 내 고향 청도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시에 살던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모습이었다. 어릴 적 자라던 그때의 마을이 아니었다.
낮이면 빈 골목에는 고요와 적막이 흐르고, 아이들 소리는 전혀 없고, 젊은이들이라고 해봐야 50대 두 명이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모두 농사짓기에는 힘이 부치는 어르신들이다.
70대가 20여 명으로 제일 많고 그나마 젊은 60대가 10여 명이 있어 다행이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3개의 분교장을 직접 폐교 작업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태극기를 내리고 교문을 잠그면서 학부모들과 직원들이 함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학교를 폐교하듯 폐동 할 날이 다가오는듯해 아찔해진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처럼 객지에서 교원을 하다 먼저 귀촌해 농사를 짓고 있는 분도 세 분이나 되었다. 만날 때마다 마을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고향 농촌을 살려보자! 우리가 마중물이 되자!”
1. 창조적인 마을 가꾸기
2014년에 6차 산업 활성화 마을 지정을 신청하고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탈락되어 군청에서 <창조적인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신청해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2015년 9월에 마을 지도자 3명이 교육을 받는데 희망자를 우선하기로 해서 나를 비롯한 3명이 3일간 교육을 받았다. 경북도내에서 여러 마을이 참석하였다.
교육을 받고 마을로 돌아와 사무장을 맡아 전 주민 교육을 주선하고 선진 마을 견학도 하면서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준비를 해서 2016년 3월 17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사무장인 내가 참석해 최종 심사를 받았다. 같이간 면장님과 군청 계장님이 기분이 좋으신지 나를 모범군민상 수상자로 추천해 수상을 하는 영광도 있었다.(2016. 4. 1.)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리는데 8월 27일에는 최종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이만희 국회의원님을 통해 들었다.
그 후 사업 업체와 협의를 하고 마을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기존의 효자각 주위를 단장해 인성교육 체험장으로 만들고, 백일홍 공원 일대를 새롭게 잘 꾸미고 회관앞 너른 주차장 일대에도 버스 승강장을 설치하고 솟대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마을 담장에는 테마별 주제(효자, 꽃, 민속놀이 등)를 정해 벽화를 그렸다.
허물어진 담장들이 고쳐지고 마을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니 어르신들도 동참이 늘었다. 집에서 가만히 누워 TV만 보시던 분들이 경로당에 나와서 같이 놀면서 마을이 변해가는 모습에 기쁨을 표시하고 도울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동안 총 5억 원의 사업비로 창조적인 마을 가꾸기 사업이 완료되어 인근 마을에서 모두 부러워하고, 윗동네 대전1리도 사업을 신청하니 선정되어 2018년부터 2년간 사업을 마무리 하였다. 앞으로는 따로 하지 말고 두 마을이 합쳐서 사업을 해보자고 하였다. 뭉쳐야 산다!!
농협경북지역본부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봉사활동에 해당되어 영농폐기물 수거와 벽화 그리기 활동을 하고 농민신문에서 취재해 우리 마을과 사무장인 내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2019.11.29.금. 21면)
2. 마을 경로당 총무로 봉사
2016년에 마을 경로당 총회에서 회장을 맡은 분이 나를 총무로 지명한다. 그래서 수시로 경로당에 나가서 나오신 어르신들께 쓰레기 재활용 및 분리수거, 건강관리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홍보를 하고, 또 같이 놀아드리고 게임을 하고 치매예방 체조를 해드리니 모두들 좋아하시며 경로당이 내 집처럼 편안하다고 하시며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총무가 된 후로 대한노인회 청도군지회에 수시로 연락해 여러 가지 운영 프로그램을 요청하였다. 물론 나도 경로당 활성화 강사교육을 자원해 두 차례나 다녀왔다.
민속놀이, 요가, 노래교실, 어르신 교통안전교육, 인성교육, 마술교육 등 여러 교육이 매년 한, 두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하여 경로당 거실이 꽉 차고 오신 강사님들은 더욱 신이 나서 교육을 해주신다.
그전까지 고스톱을 치거나 잠이나 자면서 보내던 경로당에서 한글을 배우고 건강 체조를 하고 민속놀이 등 평생교육 기관으로 활기찬 웃음소리가 나는 경로당으로 바뀌고 있다.
2018년부터 한글교실을 운영해 글자를 배워드리니 은행에 가서 자랑스럽게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경북 문해교육 시화전에서 2년간 모두 일곱 분이 상을 받는 등 실적으로 참여 어르신들은 신이나고 군청에서도 많은 관심으로 도와주고 있다. 모두들 선생님 덕분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르신들 덕분이라고 한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은 말이 먹어야 하듯이!! 1969년에 초임교사로 고향 학교에 발령을 받아 이 어르신들의 자녀를 가르쳤는데 50년 만에 부모님이 학생이 되어 열심히 배우고 계시니 그때의 제자들이 만날 때마다 고마워한다.
2018년부터 희망하는 20명으로 노인자원봉사클럽을 조직해 매월 두 차례씩 일손 돕기, 마을 청소, 효자각과 백일홍공원 제초 작업, 용곡지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 치우기 등 마을가꾸기에 앞장서는데 지금은 회원 외에도 몇 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매번 약 30명씩 모여 봉사를 하고 있다. 군 노인회에서도 매번 15만 원의 간식비를 지원해 준다.
군청에서도 에어컨이나 냉장고, 주방 시설을 현대식으로 교체해 주는 등 도움을 주고, 또 모범 경로당으로 지정해 주는 등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9년 노인의 날에는 어르신들이 틈틈이 모은 용돈을 청도군 노인복지기금에 경로당 이름으로 100만원을 기부하였다. 나도 100만원을 아들 이름으로 기부를 하였다.
주선할 사람이 없어서 1년에 한 번도 가기 힘들던 여행을 내가 총무를 맡은 후로는 매년 실시했다. 새로 지은 경북도청에도 가고, 월성 원자력발전소 홍보관, 청도 새마을기록관, POSCO 역사관 등 어르신들이 평소에 가시기에 생소한 곳으로 모시니 모두들 좋아하신다. 관광지는 물론 산업 현장에 가기도 하고 축제장에도 모셨다. 할머니들이 대부분 절에 다니는 분이라 윤달에는 3사순례를 하는 등 지금까지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를 비롯한 큰절 일곱 사찰을 다녀왔다.
가다보니 어느 해에는 2~3차례 가기도 하니 더 늙기 전에 자꾸 가자고 조르기도 하시는데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는 중지되고 말았다.
평생을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잘 살았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 이 정도의 봉사는 조건 없이 하고 싶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고생하신 어르신들의 노후를 행복하게 해 드리는데 돕고 싶다.
3. 슬슬 마을이 알려진다.
이런 활동을 블로그에 올리고 페이스북에도 알리니 마을이 슬슬 알려졌나 보다. 어느 교회에서는 단체로 와서 마을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가고 국회의원님도 두 번이나 다녀가셨다. 올 7월에도 청도군 마을지도자교육에서 견학오기로 예정이 되어있다.
그리고 또 귀촌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빈집을 사러 둘러보러온 귀촌 희망인들이 대구에서 가깝고 깨끗한 마을 환경에 좋은 느낌을 받아 흥정이 쉽게 이루어진다.
빈집을 사서 새로 짓거나 고쳐서 사는 집이 여덟 집이나 된다. 대부분 퇴직한 중년층인데 제일 반가운 것은 5살짜리 애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살러온 것이다.
면사무소에서 2017년부터 청도군SNS홍보단으로 추천해 주어 현재까지 5년간 홍보단으로 활동을 하면서 마을 소식과 청도군의 여러 소식을 알리고 있으며, 노인회에서 추천해 시니어매일 기자로도 2019년부터 홭동하는데 이곳에도 우리 마을이나 청도군의 소식을 알리고 또 <이장님 일기>란 칼럼을 연재해 귀촌, 귀농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올 3월에는 KBS 1TV <6시 내고향 청년회장이 간다>에서 방영이 되고 많은 선물과 함께 우리 마을이 전국으로 알려진 일도 있었다.
4. 지금은 이장이 되어
2020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아 지난 2년간 코로나19 마을방역과 직불금 신청 등은 물론 어르신들에게 무거운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반찬거리 장보기 등 개인 심부름으로 바쁜 나날이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과 같은 연배들이시라 부모님 모시듯이 도와드리니 모두들 고마워하신다.
지난 연말에 마을회관에 컴퓨터를 마련하고 젊은 아지매들에게 컴퓨터를 지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트나 달력에 적던 영농일지를 엑셀로 정리할 수준을 목표로 주1회씩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내가 작성해 사용하는 영농일지를 보여주니 학습의욕이 더욱 생겨 모두들 열심히 배우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예부터 내려오던 세 벌 논매기를 하고 농악대를 앞세우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즐기던 그 행사를 축제로 재현해보고 싶고, 마을의 유명한 먹거리인 핀수빵도 재현해 보고 싶다. 부부가 함께 많은 농사를 짓는 50대 내 제자는 도시에 간 친구 부럽지 않은 소득을 말하며 농사짓고 사는 것이 도시생활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랑한다!
기계화된 영농이라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많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고가의 농기구도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어 농사짓는 일은 재미나는 일이 되고 있다.
어릴 때 골목이 비좁도록 다니던 시골 친구들이 모두 돌아오고 인근 대구, 울산, 부산에서 우리 마을로 귀촌해 사람들이 와글거리던 옛 시골 마을로 만드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내 작은 힘이지만 화선지에 물이 서서히 번지듯 예전의 활기찬 농촌 모습을 되찾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 좌우명인 서산대사의 시를 암송하며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今日我行蹟 須作後人程”(오늘 내가 한 일은 뒷날 반드시 누구의 이정표가 되리라!)
농민신문 제38회 영농생활수기 우수작(상금 200만원)입니다.(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