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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 생명이 죽었습니다.
학자1: 대부분의 생명, 지구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 9퍼센트는 멸종했습니다.
해설: (캥거루가 땅 위에 죽어있다) 이 캥거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학자2: 공룡이나 다른 동물들의 대멸종이 없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됐을까요?
해설: 죽음은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학자3: 멸종은 가끔씩 종 전체를 제거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창조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해설: 40억 년 동안 진행된 생명의 역사, 그 사이 다섯번의 대멸종이 있었습니다. 약해서 사라지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지고 때론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재앙 앞에서 사라져야 했던 생명들~하지만 누군가의 멸종은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예상치 못한 운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구 최초의 동물들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호주 플린더스 레인저스 국립공원 Flinders Ranges National Park), 호주 남부의 협곡 플린더스 레인저스, 여유있어 보이는 야생동물들을 제외하곤 인적을 느낄 수 없는 곳입니다. 위험천만한 절벽에 매달려 뭔가를 찾고 있는 짐 겔링 박사, 사우스오스트랄리아 박물관 소속의 고생물학자인 겔링 박사는 이곳에서 30년 동안 화석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뭔가 발견한 모양입니다.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이 화석이 바로 에디아카라 생물군입니다.
짐 겔링/호주 사우스오스트랄리아 박물관 박사: 에디아카라 화석이 나오기 전에는 아주 미세한 화석 밖에 없었습니다. 30억 년 동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그러다, 갑자기 이처럼 낯선 생물들이 화석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해설: 나뭇잎처럼 보이는 이 생명체는 해저에 박혀 흔들리며 바닷물에 떠다니는 양분을 섭취했을 것입니다. 카르니오디스쿠스(Charniodiscus) 화석,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는 동물도 있지만 스프리기나 (Spriggina) 화석, 도무지 몸을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생명체도 있습니다. 키클로메두사 (Cyclomedusa) 화석, 에디아카라 생물군 중 가장 대표적인 종은 디킨소니아입니다. 디킨소니아 (Dickinsonia) 화석, 손바닥을 찍어 놓은 것 같은 납작한 몸에 주름이 있고 입이나 근육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좁쌀만한 크기에서 동전, 접시, 크게는 방석만한 크기로 자랐던 디킨소니아, 오늘날 이와 비슷한 동물은 없습니다. 이들이 살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6억 년 전의 바다 속입니다. 에디아카라 생물군은 전 지구에 고르게 퍼져있었습니다. 먹이라면 바닷물에 떠다니는 프랑크톤으로 충분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분화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의 생물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었습니다.
짐 겔링: 에디아카라 생물군에는 이렇게 괴상한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동물들을 전혀 볼 수 없죠. 따라서 이 생명체들이 캠브리아기 까지 살아남지 못했던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디아카라기에만 있었던 겁니다.
해설: 6억 년 전 맨 처음으로 바다를 찾을 때 다음 시기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진 에디아카라기 생물군, 그들이 사라진 이유를 볼 수 있는 현장으로 가봅니다. 에디아카라 화석이 발견된 플린더스 레인저스 숲 근처, 기울어진 지층이 마치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듯 합니다.
짐 겔링: 이 사암층은 생명의 진화를 기록한 지질학 역사책의 한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오른쪽이 에디아카라기의 사암층입니다. 부드러운 몸을 가졌던 에디아카라 생물군이 발견된 곳이죠.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경계선입니다. 가장 중요한 경계선, 바로 캠브리아기 지층이 시작되는 지점이지요. 여기서부터 캠브리아기 생명 대폭발이 시작됩니다.
해설: 캠브리아기 지층입니다. 그저 암석이 쪼개진 것 처럼 보이지만 한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시작되는 대변혁을 보여주는 화석입니다. 에디아카라기의 화석입니다. 해저 바닥을 기어다닌 동물의 흔적이지요. 캠브리아기의 화석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캠브리아기 흔적화석과 에디아카라기 흔적화석). 이 차이가 한 시대의 종말을 설명해줍니다.
짐 겔링: 부드러운 몸을 가진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생겨나자 빨리 헤엄을 치거나 단단한 껍질로 몸을 감쌀 수 있는 동물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동물들은 바닥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거기에 숨어야 했습니다.
해설: 바위 사이에 쪼개진 틈처럼 보이는 선은 바로 적을 피하기 위해 팠던 흔적이었던 것입니다. 두 시대의 경계면이 남아 있는 플랜더스 레인저스, 짐 겔링 박사가 앉아 있는 이 바위에는 또 다른 캠브리아기 화석이 남아 있습니다. 에디아카라기 지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딱딱한 골격의 흔적,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명은 이렇게 변화해 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바다 속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동물들로 가득찼고 이제 그런 동물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동물들은 플랑크톤 외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바로 옆의 동물들이었죠. 그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가 시작되었고 딱딱한 껍질과 몸의 근육도 이때부터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가 에디아카라 동물군에겐 어떤 의미였을까요. 디킨소니아 두 마리가 화석으로 남았습니다. 둘 사이에 이 틈은 무슨 의미일까요?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서로를 잡아먹지 않았다. 그저 바다 속에 떠다니는 양분만으로 충분했죠. 하지만 환경은 바뀌었고 새로운 환경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있었습니다.
짐 겔링: 디킨소니아 처럼 부드러운 몸을 가진 동물이 바닥에 놓여있었다면, 그건 포식자에겐 차려놓은 저녁식사나 다름 없었죠.
해설: 에디아카라 생물군은 결국 멸종했습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몸집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력한 포식자의 등장이란 변화까지 따라 잡을 수는 없었던 숙명들, 그들이 실패한 실험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대륙에 인적 없는 벌판에 기록된 6억 년 전의 역사, 그것은 지구 최초의 동물들의 시작과 끝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처음부터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그렇다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생물은 멸종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고생대 캠브리아기에 처음 나타나 장장 3억 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삼협충은 그 자체로 진화의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번의 대멸종을 겪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번성했던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맞서 그때 그때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분화하며 오랜 시간 지구의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리처드 포티/영국런던 자연사박물관 박사: 삽엽충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능력은 멸종 직전까지도 계속 유지되었죠. 오르도비스기 말에 멸종한 삼엽충 중에는 이미 캠브리아기에 등장했던 종도 있습니다. 삽엽충은 대단히 생존을 잘 하는 종이었죠.
해설: 화석으로 익숙한 삼엽충(Trilobite), 일반적인 종의 평균 수명이 5백만 년 미만임을 감안한다면 3억 년 동안 존재했던 이 동물은 놀랄만큼 장수했습니다. 몸이 세로로 3등분 된다고 붙은 삼엽충, 등부분은 딱딱한 껍질이 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었고 마디가 있는 부속지로 비교적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고생대 초기에 이미 눈이 발달되어 있었고 몸통의 크기는 손톱만한 종에서부터 방석만한 크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삼엽충은 당시 바다 속에 약자였을 겁니다. 뜯어먹힌 흔적이 남긴 화석도 발견되었죠.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켰을까요?
리처드 포티: 오르도비스기 말의 멸종에서 살아남은 삼엽충 중 다수는 몸을 말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참 아름답게 적응을 한 모습이죠. 머리와 꼬리가 자물쇠처럼 닫혀 버립니다. 이런 모양을 하고 있으면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죠.
해설: 몸을 펴고 있으면 껍질이 없는 뱃쪽이 적의 공격에 다치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말아버리면 포식자가 공격할 틈이 없었겠죠. 포식 전쟁이 끊임없이 펼쳐졌던 고생대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삼엽충의 첫번째 진화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위에서 본 삼엽충의 머리입니다. 한 쌍의 곁눈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엽충의 눈은 육각형의 유리를 모아 놓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먹고 먹히는 포식전쟁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혹은 먹잇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한 잇점이었을 겁니다.
리처드 포티: 초기 삼엽충 중에도 이미 정교한 눈을 가지고 있는 종이 있었습니다만 후기로 오면서 정말로 정교한 눈들이 나타납니다.
해설: 현미경으로 본 삼엽충의 눈은 마치 정교하고 아름다운 공예품 같습니다. 초점까지 맞출 수 있었다는 정교한 시력 역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였습니다. 삼엽충의 진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시무시한 뿔과 방패 같은 껍질로 몸을 보호했던 삼엽충들, 불편해 보일 정도로 기괴한 이런 형태도 모두 적대적인 환경에 대한 적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녀석들이 끝까지 살아남았을까요. 일본 시즈오카 대학의 삼엽충 연구가 스즈키 교수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환경에 맞게 적극적으로 형태를 바꾸었던 동료들의 멸종을 지켜보며 끝까지 살아남았던 종은 예상 밖의 존재였습니다.
스즈키 유타로/일본 시즈오카대학교 교수: 끝까지 살아남은 삼엽충 무리는 형태로 보나 뿔이나 돌기가시 같은 장비로 보나 평범합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크기가 작다는 것이죠. 다른 종들은 너무 변화해 버렸습니다. 주변 환경이나 적의 종류가 달라졌을 때 그런 특정한 변화에 너무 특화된 나머지 또 다른 상황에 적절하게 변화하지 못해서 점점 사라져 갔고 멸종했다고 생각합니다.
해설: 그리피티데스 (Grifithides)삼엽충 화석, 지극히 평범한 모양이 크기도 4cm 정도로 작은 이 종이 멸종직전까지 살아남은 삼엽충입니다. 특정한 조건에 적응하는 대신 평범하고 작은 몸으로 세대교체의 속도를 높임으로서 다른 특화된 종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인가. 삼엽충이 살았던 3억 년의 시간 동안 지구는 쉽새없이 변화했고 삼엽충은 그 변화에 꽤 잘 변화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대비는 불가능했습니다.
마이클 벤튼/영국 브리스톨대학교 교수: 그저 운이 나빴던 겁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거죠. 페름기 말에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사라졌는데, 거의 모든 생명체라고 할 수 있죠. 살아남은 10퍼센트는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중국 메이샨(媒山) 국가지질유적보호구),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의 지구를 만나러 갑니다. 중국 저장성 메이산에 있는 페름기 지층, 두껍게 쌓인 검은색 띠가 시간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층에 숫자와 기호들이 적혀 있습니다. 시기별 지층을 구별해 놓은 것이지요. 거기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멸종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장하이수이/중국 지질대학 우한캠퍼스 교수; 대멸종 사건으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대형 생물들은모두 멸종했습니다. 그 후 트라이아스기 초기의 미생물 화석이 화남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대형 생명체들 멸종 후의 빈 생태공간을 미생물이 채웠음을 증명합니다. 대멸종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죠.
해설: 평범해 보이는 돌산에 기록된 무시무시한 과거, 2억5천만 년 전 지구에 과연 어떤 일이 일었던 걸까요. 페름기 말에 지구, 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에 용암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랄 산맥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남쪽으로는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지역까지 끝을 모르고 흘러내리는 용암이 20미터 두께로 쌓였습니다.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버금가는 넓은 지역이 용암으로 뒤덮힌 생명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의 화산폭발이었습니다. 한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대규모의 재앙 앞에 생명은 손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은 지나도 재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용암과 함께 뿜어져 나왔던 연기가 대기를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의 온도는 6도나 올라갔고 이산화 황이나 염소가 빗물에 섞이면서 산성비가 내려 토양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대기의 균형이 무너지자 바다 속에 있던 냉동상태의 메탄가스 마저 녹으면서 지구는 그야말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수중 생물의 97% 육상척추동물의 70%가 멸종한 생명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황폐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자연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들어낼 때 급작스러움에 맞서 생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폐허 위에 다시 생명은 피워나곤 하지요. 그런데 페름기 말의 재앙은 달랐습니다. 페름기 말의 멸종이 다른 재앙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 시카고 대학교). 미국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자블로스키 교수는 멸종에 관한 권위자입니다. 재앙이 닥쳤을 때 멸종과 생존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데이비드 자블로스키/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것, 진화의 씨앗을 여러 바구니에 담는 것과 특정한 좁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멸종 전에 아무리 잘 적응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널리 퍼져있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돼죠.
해설: 지구의 지각화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기별로 다른 대륙의 분포를 보여줍니다. 때론 모든 대륙들이 하나의 큰 덩어리로 모이기도 하는데요. 페름기 말이 그랬습니다. 당시 동물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셈이죠. 그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어떤 진화적 계통이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가, 여러 대륙에 나누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 그 계통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멸종 전에) 중요했던 다른 요소들은 사라져버리죠. 그런 식으로 단기간의 대량멸종은 진화의 일반적 과정에 간섭합니다.
해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땅에서 생명을 어떻게 부활했을까요. 제일 먼저 어디선가 식물의 씨앗이 파도에 실려왔습니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풀밭은 만들고 숲을 형성해 생명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갑니다. 생태계는 다른 종에게 살길을 열어줍니다. 도마뱀 같은 작은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살아남았죠. 씨들이 날아와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트려 숲은 더욱 번성합니다. 멸종과 부활 그 끊이지 않는 생명의 여정에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동북부의 지방도시 구비오, 여유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고풍스런 중세 건축물이 마치 과거와 현재의 평화로운 공존을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에 6500만 년 전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한 때 바다였다가 지중해가 생성되던 무렵에 솟아오른 아펜니노 산맥,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보타쵸네 계곡의 도로가에 백악기말의 지층이 드러나 있습니다. 지질학자들의 연구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기울어진 층에 대단히 흥미로운 죽음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페르난도 클레멘티/골라 델 보타쵸네 연구소장 박사: 여기 보시면 두 지층의 경계면을 보실 수 있는데요. 중생대에 속하는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 사이의 경계입니다. 두 지층 사이에는 생명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해설: 일명 K/T 경계면, 백악기와 신생대 3기의 머릿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K-T경계면), 평범해 보이는 이 지층이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낯선 금속성분 때문입니다. 이 경계면에서 이리듐이 다른 지층에 비해 10배 이상이나 검출되었던 것이죠.
페르난도: 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죠. 어떻게 이 많은 양의 이리듐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금속이 생겨났는지 말입니다. 외부에서 온 걸까요? 그렇습니다.
해설: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은 종종 지구에는 드문 금속성분들을 함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리듐은 대표적인 운석 성분으로 지표면에 이리듐은 모두 과거 운석 충돌의 잔해들이 쌓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이탈리아 소도시의 한적한 계곡에 남아있는 다량의 이리듐은 6500만 년 전 우주가 지구의 생명에 영향을 미쳤던 흔적입니다. 그 충돌의 현장으로 가봅니다.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페름기 말 대멸종 후 새롭게 진행된 생존경쟁의 승자였던 거대 화충류, 육지는 물론 바다와 하늘까지 진출한 이들은 2억년 가까이 지구의 최고 포식자로 불리우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몸집은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유리했겠지만 그건 지구 안에서만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종종 예상치 못한 외부의 충격이 갑자기 찾아올 때 그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생명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운석구),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 한 가운데 지름 1.6 킬로미터 깊이 170 미터의 거대한 구덩이가 있습니다. 약 5만 년 전 운석이 떨어진 자리입니다. 수직으로 일어선 지층이 충돌 당시의 충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름 50 미터의 운석이 초속 10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충돌했을 걸로 과학자들은 짐작합니다. 이보다 지름이 200배 큰 운석이 만들어낸 충격이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650만 년 전 그런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습니다. 운석이 떨어진 곳은 오늘날의 멕시코죠. 아직 남아메리카나 북아메리카가 이어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바다였습니다. 그 충격은 에베레스트 산이 총알처럼 지구에 와서 박힌 것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에 공룡들은 속수무책으로 쓸어져 갔습니다. 그러니까 대비할 수 없는 재앙이었으니까요. 충돌의 충격이 가신 다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렸고 산성비가 내렸으며 이산화황구름이 햇빛을 반사해 버려 지구가 추웠습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 때문에 식물들이 먼저 사라졌고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이 뒤를 이었습니다. 먹이가 줄어든 상황에서 커다란 몸집이 오히려 약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재앙 이후에 지구의 생명은 멸종이 가져다 준 가장 유명한 반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안간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리처드 포티: 사람들은 멸종을 재앙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단기적인 관점에서, 멸종 전에 존재했던 생명체에게는 재앙이죠. 가끔은 종 전체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멸종은 창조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멸종 후에는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새로운 생명체가 자리 잡고 적응할 수 있는 터전이 열리니까요. (6천5백만 년 전), 다시 6천5백만 년 전 지금 10킬로미터 짜리 운석이 떨어진 지구입니다. 혼비백산한 공룡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아직 몸집이 작았던 포유류, 에오마이아(Eomaia),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들은 재앙이 닥치기 전부터 공룡을 피해 주로 밤에만 활동했던 녀석들입니다. 백악기의 약자들이었죠.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재앙의 기운이 사라질 무렵 새로운 생명의 역사도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룡과 달리 덩치가 작고 항원 동물이었던 포유류 멸종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약점이 갑작스레 재앙이 닥쳤을 때 장점이 되어버린 역설이었죠. 그리고 그들은 포식자가 사라져버린 지구에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포유류에겐 멸종이 선물 같은 기회였던 것입니다. 공룡 멸종 후 포유류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기후가 점점 계절성을 띠어가던 환경에서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특징이 그들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포유류의 몸집과 형태도 다양해졌고 각각의 환경에 맞추어 특화된 성질을 가진 포유류가 하나 둘씩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됩니다. 새끼와 함께 지내는 기간이 유난히 길어 양육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포유류의 발전, 그 흐름 막바지에 드디어 인간이 등장합니다.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두뇌를 가진 인간, 인간의 등장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호주 남부의 나라쿠트 동굴지대, 플린더스 대학의 대빈 쿠리 교수가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내려갑니다, 빅토리아 동굴의 바닥, 과거 물웅덩이였을 걸로 짐작되는 자리에 동물들의 잔해가 잔뜩 묻혀있습니다. 이 동굴에만 4만5천 마리 가량의 동물들 뼈가 보존되어 있는데요. 뼈의 크기로 볼 때 몸집이 꽤 컸을 걸로 짐작됩니다. 키가 2미터가 넘는 캥거루나 몸길이 6미터의 도마뱀, 이들은 어쩌다가 지하 50 미터의 동굴 바닥에 모여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요
개빈 프리도/호주 플린더스 대학교 교수: 동물들이 (땅 위에 난) 구멍으로 떨어지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추락 당시의 부상으로 이후의 갈증, 굶주림으로 죽었고, 시체는 흙과 함께 물에 쓸려 바닥으로 흘러와 이렇게 모인 겁니다. 그 위에 다른 동물들의 시체가 계속 쌓였던 거죠.
해설: 호주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대륙입니다. 아프리카, 남극, 남아메리카, 인도와 함께 남반부의 한 대륙을 형성하고 있던 호주는 약 3500만 년 전 나머지 대륙에서 떨어져 고립되고 그 후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호주 대륙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의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천만 년 동안의 단절이 만들어낸 결과죠. 빅토리아 동굴에 사체로만 남은 동물들도 그랬습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태반류가 정착하지 못한 호주에선 특히 주머니를 단 포유류, 즉 유대류가 다양하게 번성했습니다. 오늘날의 캥거루와 달리 얼굴이 훨씬 짧았던 캥거루 짧은 얼굴 캥거루 (Procoptoton), 호주 대륙 최고의 포식자였던 유대류 사자 (Thylacoleo) 킬라콜레오 카르니펙스, 엄청난 크기의 턱뼈만으로도 몸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거대 원뱃 디프로토돈 (Diprotodon) 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10만 년 전의 지구는 점점 더 건조하고 추운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고 덕분에 양분이 많지 않은 식물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초식동물들은 양분을 얻기 위해 많은 양의 풀을 먹어야 했고 몸집이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초식동물들을 잡아 먹을려면 육식동물의 몸도 따라서 커져야 했습니다. 호주 대륙의 생태계를 지배했던 유대류 사자는 몸 무게가 150 킬로그램이 넘는 최대 크기의 포유류 육식동물이었습니다. 덤불에 매복하고 있다가 큰 앞니로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 잡아먹었죠. 앞 다리를 위로 뻗어 나뭇잎을 따먹으며 번성했죠. 몸 무게가 3톤에 달했던 초식동물 키프트토돈은 주로 물웅덩이 근처에서 모여지냈습니다. 거대 동물들의 커다란 몸집은 점점 더 황폐해 지고 있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몸집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전 과는 다른 식으로 활동하는 이웃 종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화석으로만 남은 거대동물들, 그들을 멸종으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개빈 프리도: 우선 인간들의 사냥 때문에 거대동물이 멸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5, 6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들어왔는데 그 직후에 거대동물이 멸종했죠. 또 하나의 이유로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식생이 바뀌고 거대동물들의 먹이가 되던 풀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죠. 초식동물이 사라지자 육식동물도 이어 사라졌습니다.
해설: 호주 대륙을 지배했던 유대류 사자, 날카로운 창을 가진 새로운 포식자 앞에선 먹잇감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에게 거대 동물들은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사냥감이었죠. 사냥에 불을 사용하며 거대 동물들의 서식지와 은신처는 사라졌습니다. 기후도 급격하게 변해갔죠. 2만 년에 걸친 동물들과 인간의 공존, 그러나 거대 동물들은 인간의 창과 불 앞에서 멸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완전히 직립 보행을 했던 인간은 자유로운 손으로 불과 도구를 사용해 약점을 극복해 냈습니다. 월등하게 발달한 뇌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지만 도구들을 이용함으로서 훨씬 강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특별히 폭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 다른 종이 멸종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마이클 볼터/영국 이스트런던 대학교 교수: 앞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종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용 가능한 터전이나 기회는 모두 이용하는 것입니다. 진화는 가장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체계입니다.
해설: 도구가 바뀌었을 뿐 지금도 인간은 늘 자연과 마주하는 그렇게 자연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디까지가 어쩔 수 없는 파괴이고 어디부터가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인지 구분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먼 훗날 또 한번의 대멸종이 왔을 때에야 분명히 밝혀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다섯번의 대멸종을 거치면서도 생명은 끊어지지 않았고 아마 다시 찾아올 재앙에도 생명은 어떻게든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호주), 다시 최초의 동물들이 태어났던 에디아카라 산지입니다. 짐 겔링 박사가 뭔가를 챙기고 있습니다. (흔적화석), 흔적화석입니다.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지나간 흔적, 이 동물이 무엇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먹이를 찾아가는 길이었을까요? 아니면 짝을 찾으러 혹은 포식자에게 쫓겨 달아나는 중이었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생명체는 멸종해 버렸으니까요.
짐 겔링: 이 동물들 중 90퍼센트는 멸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10퍼센트만으로도 유전적 특질을 미래로 전달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생명체들이 오늘날 모든 동물들의 조상일지도 모릅니다.
해설: 6억 년 전 최초로 몸집을 키우며 본격적인 활동을 했던 생명은 그렇게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라진 덕분에 후대의 생명은 새로운 기회를 얻어 번성할 수 있었고 생명의 역사는 그러한 사라짐과 새로운 기회의 반복이었습니다. 멸종은 모든 것의 끝이었고 또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끝. (EBS 다큐프라임 1393회 자연사 대기획 생명, 40억 년의 비밀 5부 모든 것의 끝 혹은 시작, 멸종에서 정리).
① 한 생명이 죽었다. 대부분의 생명, 지구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 9퍼센트는 멸종했다. (캥거루가 땅 위에 죽어있다) 이 캥거루는 이제 세상에 없다. 공룡이나 다른 동물들의 대멸종이 없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됐을까. 죽음은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멸종은 가끔씩 종 전체를 제거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창조적인 힘이기도 하다. 40억 년 동안 진행된 생명의 역사, 그 사이 다섯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약해서 사라지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지고 때론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재앙 앞에서 사라져야 했던 생명들~하지만 누군가의 멸종은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이기도 했다. 그 예상치 못한 운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구 최초의 동물들을 찾아가는 길이다. 호주 플린더스 레인저스 국립공원 Flinders Ranges National Park, 호주 남부의 협곡 플린더스 레인저스, 여유있어 보이는 야생동물들을 제외하곤 인적을 느낄 수 없다. 위험천만한 절벽에 매달려 뭔가를 찾고 있는 짐 겔링 박사, 사우스오스트랄리아 박물관 소속의 고생물학자인 겔링 박사는 이곳에서 30년 동안 화석연구를 하고 있다. 드디어 뭔가 발견한 모양이다.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이 화석이 바로 에디아카라 생물군이다.
② 에디아카라 화석이 나오기 전에는 아주 미세한 화석 밖에 없었다. 30억 년 동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이처럼 낯선 생물들이 화석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뭇잎처럼 보이는 이 생명체는 해저에 박혀 흔들리며 바닷물에 떠다니는 양분을 섭취했을 것이다. 카르니오디스쿠스(Charniodiscus) 화석,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는 동물도 있지만 스프리기나 (Spriggina) 화석, 도무지 몸을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생명체도 있다. 키클로메두사 (Cyclomedusa) 화석, 에디아카라 생물군 중 가장 대표적인 종은 디킨소니아다. 디킨소니아 (Dickinsonia) 화석, 손바닥을 찍어 놓은 것 같은 납작한 몸에 주름이 있고 입이나 근육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다. 좁쌀만한 크기에서 동전, 접시, 크게는 방석만한 크기로 자랐던 디킨소니아, 오늘날 이와 비슷한 동물은 없다. 이들이 살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6억 년 전의 바다 속이다. 에디아카라 생물군은 전 지구에 고르게 퍼져있었다. 먹이라면 바닷물에 떠다니는 프랑크톤으로 충분했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분화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의 생물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었다.
③ 에디아카라 생물군에는 이렇게 괴상한 생명체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동물들을 전혀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생명체들은 캠브리아기 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라고 짐작한다. 에디아카라기에만 있었다. 6억 년 전 맨 처음으로 바다를 찾을 때 다음 시기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진 에디아카라기 생물군, 그들이 사라진 이유를 볼 수 있는 현장으로 가본다. 에디아카라 화석이 발견된 플린더스 레인저스 숲 근처, 기울어진 지층이 마치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암층은 생명의 진화를 기록한 지질학 역사책의 한쪽이다. 제 오른쪽이 에디아카라기의 사암층이다. 부드러운 몸을 가졌던 에디아카라 생물군이 발견된 곳이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경계선이다. 가장 중요한 경계선, 바로 캠브리아기 지층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캠브리아기 생명 대폭발이 시작되었다. 캠브리아기 지층이다. 그저 암석이 쪼개진 것처럼 보이지만 한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시작되는 대변혁을 보여주는 화석이다. 에디아카라기의 화석이다. 해저 바닥을 기어다닌 동물의 흔적이다. 캠브리아기의 화석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캠브리아기 흔적화석과 에디아카라기 흔적화석). 이 차이가 한 시대의 종말을 설명해준다.
④ 부드러운 몸을 가진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생겨나자 빨리 헤엄을 치거나 단단한 껍질로 몸을 감쌀 수 있는 동물들만 살아남았다. 이도 저도 아닌 동물들은 바닥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거기에 숨어야 했다. 바위 사이에 쪼개진 틈처럼 보이는 선은 바로 적을 피하기 위해 팠던 흔적이었다. 두 시대의 경계면이 남아 있는 플랜더스 레인저스, 짐 겔링 박사가 앉아 있는 이 바위에는 또 다른 캠브리아기 화석이 남아 있다. 에디아카라기 지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딱딱한 골격의 흔적,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명은 이렇게 변화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바다 속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동물들로 가득찼고 이제 그런 동물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다. 동물들은 플랑크톤 외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바로 옆의 동물들이었다. 그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가 시작되었고 딱딱한 껍질과 몸의 근육도 이때부터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가 에디아카라 동물군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디킨소니아 두 마리가 화석으로 남았다. 둘 사이에 이 틈은 무슨 의미일까.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서로를 잡아먹지 않았다. 그저 바다 속에 떠다니는 양분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환경은 바뀌었고 새로운 환경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있었다.
⑤ 디킨소니아 처럼 부드러운 몸을 가진 동물이 바닥에 놓여있었다면, 그건 포식자에겐 차려놓은 저녁밥상이었다. 에디아카라 생물군은 결국 멸종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몸집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력한 포식자의 등장이란 변화까지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실패한 실험으로 불리는 이유다. 대륙에 인적 없는 벌판에 기록된 6억 년 전의 역사, 그것은 지구 최초의 동물들의 시작과 끝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생명은 처음부터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그렇다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생물은 멸종을 피할 수 있었을까. 고생대 캠브리아기에 처음 나타나 장장 3억 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삼협충은 그 자체로 진화의 증인이다. 두번의 대멸종을 겪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번성했던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맞서 그때 그때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분화하며 오랜 시간 지구의 역사를 지켜왔다.
⑥ 삽엽충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은 멸종 직전까지도 계속 유지되었다. 오르도비스기 말에 멸종한 삼엽충 중에는 이미 캠브리아기에 등장했던 종도 있다. 삽엽충은 대단히 생존을 잘 하는 종이었다. 화석으로 익숙한 삼엽충(Trilobite), 일반적인 종의 평균 수명이 5백만 년 미만임을 감안한다면 3억 년 동안 존재했던 이 동물은 놀랄만큼 장수했다. 몸이 세로로 3등분 된다고 붙은 삼엽충, 등부분은 딱딱한 껍질이 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었고 마디가 있는 부속지로 비교적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고생대 초기에 이미 눈이 발달되어 있었고 몸통의 크기는 손톱만한 종에서부터 방석만한 크기까지 다양했다. 삼엽충은 당시 바다 속에 약자였을 것이다. 뜯어먹힌 흔적이 남긴 화석도 발견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켰을까. 오르도비스기 말의 멸종에서 살아남은 삼엽충 중 다수는 몸을 말 수 있는 종이었다. 참 아름답게 적응을 한 모습이다 머리와 꼬리가 자물쇠처럼 닫혀 버린. 이런 모양을 하고 있으면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⑦ 몸을 펴고 있으면 껍질이 없는 뱃쪽이 적의 공격에 다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말아버리면 포식자가 공격할 틈이 없었겠다 포식 전쟁이 끊임없이 펼쳐졌던 고생대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삼엽충의 첫번째 진화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본 삼엽충의 머리다. 한 쌍의 곁눈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삼엽충의 눈은 육각형의 유리를 모아 놓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먹고 먹히는 포식전쟁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혹은 먹잇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한 잇점이었다 초기 삼엽충 중에도 이미 정교한 눈을 가지고 있는 종이 있었습니다만 후기로 오면서 정말로 정교한 눈들이 나타난다. 현미경으로 본 삼엽충의 눈은 마치 정교하고 아름다운 공예품 같다. 초점까지 맞출 수 있었다는 정교한 시력 역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였다. 삼엽충의 진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뿔과 방패 같은 껍질로 몸을 보호했던 삼엽충들, 불편해 보일 정도로 기괴한 이런 형태도 모두 적대적인 환경에 대한 적응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녀석들이 끝까지 살아남았을까. 일본 시즈오카 대학의 삼엽충 연구가 스즈키 교수의 대답은 의외다. 환경에 맞게 적극적으로 형태를 바꾸었던 동료들의 멸종을 지켜보며 끝까지 살아남았던 종은 예상 밖의 존재였다.
⑧ 끝까지 살아남은 삼엽충 무리는 형태로 보나 뿔이나 돌기가시 같은 장비로 보나 평범하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크기가 작다. 다른 종들은 너무 변화해 버렸다. 주변 환경이나 적의 종류가 달라졌을 때 그런 특정한 변화에 너무 특화된 나머지 또 다른 상황에 적절하게 변화하지 못해서 점점 사라져 갔고 멸종했다. 그리피티데스 (Grifithides)삼엽충 화석, 지극히 평범한 모양이 크기도 4센티미터 정도로 작은 이 종이 멸종직전까지 살아남은 삼엽충이다. 특정한 조건에 적응하는 대신 평범하고 작은 몸으로 세대교체의 속도를 높임으로서 다른 특화된 종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인가. 삼엽충이 살았던 3억 년의 시간 동안 지구는 쉽새없이 변화했고 삼엽충은 그 변화에 꽤 잘 변화하며 생존해 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대비는 불가능했다. 그저 운이 나빴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 페름기 말에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사라졌는데, 거의 모든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살아남은 10퍼센트는 운이 좋았다. (중국 메이샨(媒山) 국가지질유적보호구),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의 지구를 만나러 간다. 중국 저장성 메이산에 있는 페름기 지층, 두껍게 쌓인 검은색 띠가 시간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층에 숫자와 기호들이 적혀 있다. 시기별 지층을 구별해 놓은 것이다. 거기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멸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멸종 사건으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대형 생물들은 모두 멸종했다. 그 후 트라이아스기 초기의 미생물 화석이 화남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대형 생명체들 멸종 후의 빈 생태공간을 미생물이 채웠음을 증명한다. 대멸종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⑨ 평범해 보이는 돌산에 기록된 무시무시한 과거, 2억5천만 년 전 지구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페름기 말에 지구, 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에 용암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랄 산맥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남쪽으로는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지역까지 끝을 모르고 흘러내리는 용암이 20미터 두께로 쌓였다.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버금가는 넓은 지역이 용암으로 뒤덮힌 생명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의 화산폭발이었다. 한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대규모의 재앙 앞에 생명은 손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지나도 재앙은 멈추지 않았다. 용암과 함께 뿜어져 나왔던 연기가 대기를 가득 채웠다.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의 온도는 6도나 올라갔고 이산화 황이나 염소가 빗물에 섞이면서 산성비가 내려 토양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대기의 균형이 무너지자 바다 속에 있던 냉동상태의 메탄가스 마저 녹으면서 지구는 그야말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수중 생물의 97% 육상척추동물의 70%가 멸종한 생명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황폐하였던 시기였다. 자연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들어낼 때 급작스러움에 맞서 생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폐허 위에 다시 생명은 피워나곤 하였다. 그런데 페름기 말의 재앙은 달랐다. 페름기 말의 멸종이 다른 재앙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시카고 대학교). 미국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자블로스키 교수는 멸종에 관한 권위자다. 재앙이 닥쳤을 때 멸종과 생존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어봤다.
⑩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것, 진화의 씨앗을 여러 바구니에 담는 것과 특정한 좁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대멸종 전에 아무리 잘 적응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널리 퍼져있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지구의 지각화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기별로 다른 대륙의 분포를 보여준다. 때론 모든 대륙들이 하나의 큰 덩어리로 모이기도 하는데, 페름기 말이 그랬다. 당시 동물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치명적이었다. 어떤 진화적 계통이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가, 여러 대륙에 나누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 그 계통의 생존을 결정한다. (멸종 전에) 중요했던 다른 요소들은 사라져버린다. 그런 식으로 단기간의 대량멸종은 진화의 일반적 과정에 간섭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땅에서 생명을 어떻게 부활했을까. 제일 먼저 어디선가 식물의 씨앗이 파도에 실려왔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풀밭을 만들고 숲을 형성해 생명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간다. 생태계는 다른 종에게 살길을 열어준다. 도마뱀 같은 작은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살아남았다. 씨들이 날아와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트려 숲은 더욱 번성한다. 멸종과 부활 그 끊이지 않는 생명의 여정에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⑪ 이탈리아 동북부의 지방도시 구비오, 여유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고풍스런 중세 건축물이 마치 과거와 현재의 평화로운 공존을 자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에 6500만 년 전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 때 바다였다가 지중해가 생성되던 무렵에 솟아오른 아펜니노 산맥,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보타쵸네 계곡의 도로가에 백악기말의 지층이 드러나 있다. 지질학자들의 연구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기울어진 층에 대단히 흥미로운 죽음의 비밀이 숨어 있다. 여기 보면 두 지층의 경계면을 볼 수 있는데 중생대에 속하는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 사이의 경계다. 두 지층 사이에는 생명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명 K/T 경계면, 백악기와 신생대 3기의 머릿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K-T경계면), 평범해 보이는 이 지층이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낯선 금속성분 때문이다. 이 경계면에서 이리듐이 다른 지층에 비해 10배 이상이나 검출되었다. 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많은 양의 이리듐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금속이 생겨났는지 말이다. 외부에서 온걸까. 그렇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은 종종 지구에는 드문 금속성분들을 함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리듐은 대표적인 운석 성분으로 지표면에 이리듐은 모두 과거 운석 충돌의 잔해들이 쌓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의 한적한 계곡에 남아있는 다량의 이리듐은 6500만 년 전 우주가 지구의 생명에 영향을 미쳤던 흔적이다.
그 충돌의 현장으로 가본다.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페름기 말 대멸종 후 새롭게 진행된 생존경쟁의 승자였던 거대 화충류, 육지는 물론 바다와 하늘까지 진출한 이들은 2억년 가까이 지구의 최고 포식자로 불리우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커다란 몸집은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유리했겠지만 그건 지구 안에서만 유리한 조건이었다. 종종 예상치 못한 외부의 충격이 갑자기 찾아올 때 그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생명은 없을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 운석구),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 한 가운데 지름 1.6 킬로미터 깊이 170 미터의 거대한 구덩이가 있다. 약 5만 년 전 운석이 떨어진 자리다. 수직으로 일어선 지층이 충돌 당시의 충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지름 50 미터의 운석이 초속 10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충돌했을 걸로 과학자들은 짐작한다. 이보다 지름이 200배 큰 운석이 만들어낸 충격이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650만 년 전 그런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다. 운석이 떨어진 곳은 오늘날의 멕시코다. 아직 남아메리카나 북아메리카가 이어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바다였다. 그 충격은 에베레스트 산이 총알처럼 지구에 와서 박힌 것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에 공룡들은 속수무책으로 쓸어져 갔다. 그러니까 대비할 수 없는 재앙이었으니까. 충돌의 충격이 가신 다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렸고 산성비가 내렸으며 이산화황 구름이 햇빛을 반사해 버려 지구가 추웠다.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 때문에 식물들이 먼저 사라졌고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이 뒤를 이었다. 먹이가 줄어든 상황에서 커다란 몸집이 오히려 약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재앙 이후에 지구의 생명은 멸종이 가져다 준 가장 유명한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안간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다.
⑫ 사람들은 멸종을 재앙으로 생각한다. 물론 단기적인 관점에서, 멸종 전에 존재했던 생명체에게는 재앙이다. 가끔은 종 전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멸종은 창조적인 힘이기도 하다. 멸종 후에는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새로운 생명체가 자리 잡고 적응할 수 있는 터전이 열린다. (6천5백만 년 전), 다시 6천5백만 년 전 지금 10킬로미터 짜리 운석이 떨어진 지구이다. 혼비백산한 공룡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아직 몸집이 작았던 포유류, 에오마이아(Eomaia),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들은 재앙이 닥치기 전부터 공룡을 피해 주로 밤에만 활동했던 녀석들이다. 백악기의 약자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재앙의 기운이 사라질 무렵 새로운 생명의 역사도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룡과 달리 덩치가 작고 항원 동물이었던 포유류 멸종을 견딜 수 있었다. 과거의 약점이 갑작스레 재앙이 닥쳤을 때 장점이 되어버린 역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포식자가 사라져버린 지구에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포유류에겐 멸종이 선물 같은 기회였던 것이다. 공룡 멸종 후 포유류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기후가 점점 계절성을 띠어가던 환경에서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특징이 그들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포유류의 몸집과 형태도 다양해졌고 각각의 환경에 맞추어 특화된 성질을 가진 포유류가 하나 둘씩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새끼와 함께 지내는 기간이 유난히 길어 양육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포유류의 발전, 그 흐름 막바지에 드디어 인간이 등장한다.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두뇌를 가진 인간, 인간의 등장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⑬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호주 남부의 나라쿠트 동굴지대, 플린더스 대학의 대빈 쿠리 교수가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내려간다, 빅토리아 동굴의 바닥, 과거 물웅덩이였을 걸로 짐작되는 자리에 동물들의 잔해가 잔뜩 묻혀있다. 이 동굴에만 4만5천 마리 가량의 동물들 뼈가 보존되어 있다. 뼈의 크기로 볼 때 몸집이 꽤 컸을 걸로 짐작된다. 키가 2미터가 넘는 캥거루나 몸길이 6미터의 도마뱀, 이들은 어쩌다가 지하 50 미터의 동굴 바닥에 모여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동물들이 땅 위에 난 구멍으로 떨어지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추락 당시의 부상으로 이후의 갈증, 굶주림으로 죽었고, 시체는 흙과 함께 물에 쓸려 바닥으로 흘러와 이렇게 모인 거다. 그 위에 다른 동물들의 시체가 계속 쌓였다. 호주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대륙이다. 아프리카, 남극, 남아메리카, 인도와 함께 남반부의 한 대륙을 형성하고 있던 호주는 약 3500만 년 전 나머지 대륙에서 떨어져 고립되고 그 후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하였다. 호주 대륙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의 동물들이 많이 있다. 수천만 년 동안의 단절이 만들어낸 결과다. 빅토리아 동굴에 사체로만 남은 동물들도 그랬다. 어찌된 이유인지 태반류가 정착하지 못한 호주에선 특히 주머니를 단 포유류, 즉 유대류가 다양하게 번성했다. 오늘날의 캥거루와 달리 얼굴이 훨씬 짧았던 캥거루, 짧은 얼굴 캥거루 (Procoptoton), 호주 대륙 최고의 포식자였던 유대류 사자 (Thylacoleo) 킬라콜레오 카르니펙스, 엄청난 크기의 턱뼈만으로도 몸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거대 원뱃 디프로토돈 (Diprotodon) 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을까.
10만 년 전의 지구는 점점 더 건조하고 추운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고 덕분에 양분이 많지 않은 식물이 주류를 이루었다. 초식동물들은 양분을 얻기 위해 많은 양의 풀을 먹어야 했고 몸집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초식동물들을 잡아 먹을려면 육식동물의 몸도 따라서 커져야 했다. 호주 대륙의 생태계를 지배했던 유대류 사자는 몸 무게가 150 킬로그램이 넘는 최대 크기의 포유류 육식동물이었다. 덤불에 매복하고 있다가 큰 앞니로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 잡아먹었다. 앞 다리를 위로 뻗어 나뭇잎을 따먹으며 번성했다. 몸 무게가 3톤에 달했던 초식동물 키프트토돈은 주로 물웅덩이 근처에서 모여지냈다. 거대 동물들의 커다란 몸집은 점점 더 황폐해 지고 있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였다. 하지만 몸집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전 과는 다른 식으로 활동하는 이웃 종이 있었다. 이제는 화석으로만 남은 거대동물들, 그들을 멸종으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⑭ 우선 인간들의 사냥 때문에 거대동물이 멸종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5, 6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들어왔는데 그 직후에 거대동물이 멸종했다. 또 하나의 이유로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식생이 바뀌고 거대동물들의 먹이가 되던 풀들이 사라져 버렸다. 초식동물이 사라지자 육식동물도 이어 사라졌다. 호주 대륙을 지배했던 유대류 사자, 날카로운 창을 가진 새로운 포식자 앞에선 먹잇감에 불과했다. 인간에게 거대 동물들은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사냥감이었다. 사냥에 불을 사용하며 거대 동물들의 서식지와 은신처는 사라졌다. 기후도 급격하게 변해갔다. 2만 년에 걸친 동물들과 인간의 공존, 그러나 거대 동물들은 인간의 창과 불 앞에서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완전히 직립 보행을 했던 인간은 자유로운 손으로 불과 도구를 사용해 약점을 극복해 냈다. 월등하게 발달한 뇌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지만 도구들을 이용함으로서 훨씬 강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인간이 특별히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 다른 종이 멸종하기도 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앞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종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용 가능한 터전이나 기회는 모두 이용하는 것이다. 진화는 가장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체계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 지금도 인간은 늘 자연과 마주하는 그렇게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 어디까지가 어쩔 수 없는 파괴이고 어디부터가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인지 구분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⑮ 먼 훗날 또 한번의 대멸종이 왔을 때에야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다섯번의 대멸종을 거치면서도 생명은 끊어지지 않았고 아마 다시 찾아올 재앙에도 생명은 어떻게든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호주), 다시 최초의 동물들이 태어났던 에디아카라 산지다. 짐 겔링 박사가 뭔가를 챙기고 있다. (흔적화석), 흔적화석이다.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지나간 흔적, 이 동물이 무엇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지는 모른다. 먹이를 찾아가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짝을 찾으러 혹은 포식자에게 쫓겨 달아나는 중이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생명체는 멸종해 버렸으니까. 이 동물들 중 90퍼센트는 멸종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10퍼센트만으로도 유전적 특질을 미래로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생명체들이 오늘날 모든 동물들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6억 년 전 최초로 몸집을 키우며 본격적인 활동을 했던 생명은 그렇게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라진 덕분에 후대의 생명은 새로운 기회를 얻어 번성할 수 있었고 생명의 역사는 그러한 사라짐과 새로운 기회의 반복이었다. 멸종은 모든 것의 끝이었고 또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