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극필반 [物極必反]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형세는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는 반복하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出典] ‘사기(史記)’ 「당서 측천무후 편(唐書 則天武后篇)’」
중국 역사상 여자로 황제가 된 유일한 사람은 흔히 측천무후
(則天武后)로 불리는 무조(武照)였습니다. 그 유명한 당 태종의
(唐 太宗) 후궁이었는데, 태종이 죽자 감업사(感業寺)라는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죽은 황제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태종의 뒤를 이은 고종(高宗)은 신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대단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상 아버지보다
훨씬 못한 불초(不肖)로, 일설에는 뇌전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고종은 황제가 된 후 황후를 돌보지 않고 한 후궁을 총애
하였습니다. 황후는 황제와 후궁 사이를 떼어 놓을 요량으로
감업사의 무조를 불러들였습니다. 평생 비구니로 보낼 줄
알았던 무조는 궁정에 들어와 무후(武后)가 되어 황후와
황제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이로써 고종은 총애하던 후궁에게 가는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황후로서는 경쟁하던 후궁을 물리친 쾌감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후가 황후를 몰아내고 황후가 되고, 황제까지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병약한 고종을 대신해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던 무후는 고종이 죽고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섭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섭정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황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측천무후는 처음 황제의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섭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무후는 중종이 친정(親政)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소안환(蘇安桓)이라는 대신이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며
상소를 올려 간언하였습니다. 상소의 내용은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은 모두 이 씨(李氏;당나라 황실의
성)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후께서 아직은 섭정의 위치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 物極必反 器滿則傾(물극필반 기만칙경)라는 이치
를 아셔야 합니다“라고 하며 무후의 퇴진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간언 정도에 물러날 그녀가 아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황제를 폐위시키고 여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도 극에 달하면 반전하게 마련입니다.
서슬이 시퍼렇던 측천무후도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이 씨(李氏) 천하를 무씨(武氏) 천하로 만들려 하였지만,
장간지(張柬之)가 이끄는 친위군 500명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도 물극필반의 세상 이치를 비껴갈 수 없음이 여기서도
보이지 않습니까? 이밖에 ‘갈관자(鶡冠子)’에도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는 것이니 이를 환류(還流)라고 한다.“
物極必反 命曰環流(물극필반 명왈환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강필약(勢强必弱: 세력이 강성하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다)
과 연결하여, '물극필반 세필강약(物極必反 勢必强弱)'으로 사용
되기도 합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에 나오는 물장칙노(物壯則老: 만물은
장성했다가는 쇠퇴하기 마련이다)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또 우리 속담에 '달도 차면 기운다'
등과 같은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