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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6코스 [쇠소깍다리~제주올레 여행자센터] 트레킹 전도
12;53 쇠소깍[0.7km] 13.6km
♣쇠소깍; 2011년 6월 30일 국가유산청이 외돌개, 산방산과 함께 명승으로 지정했다. 쇠소깍은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쇠둔이라는 지명이었는데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孝敦川) 하구를 가리키며,효돈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쇠소깍’이라고 붙여졌다.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뜻이다. 쇠소는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형성된 계곡 같은 골짜기로 이름 만큼이나 재미나고 독특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쇠소깍은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소나무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또 이곳의 명물인 테우라고 하는 작고 평평한 땟목이 있는데, 줄을 잡아당겨 맑고 투명한 물 위를 유유히 가르며 갖가지 재미있는 모양의 바위 등 쇠소깍의 구석구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자랑거리다.
13;02 중 식[매식/불근돼지/흑돼지 두루치지,부대찌개/0.4km] 14.0km
14;02 하효항[소금막/0.1km] 14.1km
14;13 트멍길[종점/0.7km]14.8km
14;18 하효마을[0.4km] 15.2km
14;26 설얼앞[0.6km] 15.8km
14;31 보목포구[0.3km] 16.1km
♣보목포구; 보목포구는 제주의 유명한 계절 음식인 자리물회가 유명한 곳이다. 자리돔이 제철인 매년 5월이 되면 보목포구에서 자리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포구의 뒤쪽으로는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이 병풍처럼 든든히 서있고, 앞바다에는 문섬과 섶섬이 떠있어 해가 질 때는 바다 위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보목포구는 계단길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보목포구 내에 위치한 보목해녀의 집에서 우측으로 가다 보면 작은 틈 사이가 있는데, 이곳에 바다로 향하는 계단길이 있다. 이곳이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포토스팟이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만, 만조 시간을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14;36 엉캐물[0.4km] 16.5km
14;40 큰개머리[0.2km] 16.7km
14;51 동애기[0.3km] 17.0km
14;58 구두미포구[0.5km] 17.5km
15;38 겡이우체통이 있어서 뒤편에 엽서도해서 언제올지 모르는 나한테 엽서나 한장 보낼까 싶었는데 펜이 없어서 보내질 못했다. 앞으로는 펜은 지참하는걸로~
16;03 소라의성[중간스탬프/3.0km] 20.5km
스탬프를 찍는다. 중간지점이라고 하지만 목표한 종료시점까지는 거의 다 온것같다.
♣소라의성; 소라의성은 서귀포시 동홍동에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단순하면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소정방폭포 인근의 해안 절벽에 지어져 있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건축물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소라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1969년에 지어졌다. 소라의성 설계자는 미상이나 학계 등의 다수 의견에 따르면 김중업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에서 북카페로 운영하고 있으며 내부에서는 사진 및 그림 기획 전시를 열기도 한다. 카페 한 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제주 해변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소라의성은 4면이 각기 다른 분위기와 모습을 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건축물 1층은 개방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고 2층에는 아늑한 느낌이 들도록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수평과 수직의 교차가 조화로 강한 입면의 장식적인 요소로 처리한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소라의성은 제주 올레길 6코스에 속해있으며 주변 관광지로는 정방폭포, 왈종미술관, 자구리공원 등이 있다.
16;12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0.3km] 20.8km
♣남영호 침몰 사건[南榮號沈沒事件];1970년 12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항에서 출항한 부산~제주 간 정기여객선인 남영호가 침몰한 사건을 말한다. 남영호(南榮號)는 중량 362톤, 길이 43m, 폭 7.2m, 시속 15노트, 정원 302명이 승선 가능한 철선으로, 남영상사[대표 서몽득]가 경남조선에서 건조하였다. 1968년 3월 5일 서귀포~성산포~부산 간 노선을 첫 취항하였고, 매달 10회씩 정기적으로 왕복 운항하던 정기 여객선이었다. 여객선이 대형화·현대화되기 전까지 기상 조건이 나쁜 제주와 타 지역[육지] 간 해역에서의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이에 1952년에 교통부는 해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953년 1월 전체 여객선을 대상으로 일체 임시 선박검사를 실시하고, 같은 해 3월 15일부터는 야간 운항을 금지시키는 한편 제주항에 선박 임검소를 설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 관련 항로에서 크고 작은 해상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1966년 11월 13일 서귀포~부산 간 부정기 여객선 해연호의 침몰사고, 1975년 2월 6일 한성해운 소속 서귀포~부산 간 정기 여객선 덕남호의 침몰사고, 그리고 1970년 12월 15일에 발생한 대형 해상사고로서 서귀포~부산 간 정기여객선 남영호 침몰 사건을 들 수 있다. 남영호는 1970년 12월 14일 오후 5시경 서귀항에서 승객 210명과 연말 성수기용 감귤을 싣고 출항하여 성산항에서 승객 121명과 화물을 더 싣고 밤 8시 10분경 부산을 향해 출항했다. 선박회사 측은 3개의 화물창고가 모두 감귤 상자로 채워지자 선적이 금지된 앞 하창(荷倉) 덮개 위에 감귤 400여 상자를 더 쌓아 실었고, 중간 갑판 위에도 감귤 500여 상자를 쌓아 실어 서귀항을 출항할 때부터 이미 선체 중심이 15도쯤 기울었으며,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 물속에 잠겨 복원력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성산항에 도착하자 다시 화물을 더 실었던 것이다. 이후 남영호가 성산항을 떠난 지 5시간 25분이 지난 새벽 1시 20분경 전라북도 상일도 동남 28마일 해상[쓰시마섬 서쪽 1백㎞ 해상]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심한 바람이 남영호 우현 선체에 몰아치더니 갑판 위에 쌓아 놓은 감귤 상자가 갑판 좌현측으로 허물어졌다. 순간 중심을 잃은 선체가 좌현으로 넘어지면서 선체가 기울면서 중심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남영호는 이에 정상 속도인 15마일을 10마일로 줄여 계속 항진하려 했으나, 결국 전라남도 여수시 소리도 인근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사고가 발생하자 긴급구조신호(SOS)를 타전했으나 해상 부근 어느 무선국에서도 이 조난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당시 이 남영호는 정원이 290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 311명과 선원 20명 등 331명을 태워 정원보다 41명이나 초과하였고, 당시 남영호가 출항하기 전날까지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어 4일간 제주 지역에 묶여 있던 승객과 감귤 등 화물 400톤 이상을 무리하게 실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남영호가 1차적으로는 하중을 감당하지 못해 전복된 것으로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선장이 항해 10일 전에 바뀌어 서귀포~부산 간 항로에 경험이 부족한 을종 2등 항해사[지금의 5급 항해사] 면허를 가진 강태수가 선장 임무를 맡았던 사실 또한 이 같은 참사를 있게 한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러한 운항 과실과 더불어 낙후된 선박 시설 및 기관, 특히 무전시설 또한 남영호 침몰의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과 해운 당국의 감독 소홀로 인해 발생한 참사였다. 남영호 침몰 사고 당시 이 부근을 순시 항해하던 일본 해상안전부 제7관구 소속 ‘구사가키’ 순시선이 승객 최옥화[당시 55세,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등 4명을 구조하였고, 뒤늦게 출동한 우리나라 경비정과 해군 함정에 의해 강봉수 등 8명이 구조됨으로써 남자 6명, 여자 6명 등 총 12명만 살아남고,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서귀항에는 임시대책본부가 설치되어 유족 1천 여 명의 애끓는 통곡 소리로 평화롭던 서귀포 지역은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남영호가 떠났던 자리에는 위령탑을 세워 그 날의 원혼을 달래었고, 위령탑은 1982년 서귀포항 임항도로 개설로 인해 서귀포시 돈내코 법성사 인근으로 옮겨졌다. 이처럼 남영호 침몰 사건은 어선 조난사고로 오인한 치안 당국의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319명이 숨지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건국 이래 최악의 해난사고를 기록되었고, 이 사고로 임검 경찰관 4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되고 서귀포경찰서장이 입건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해난사고로 기록될 만큼 끔찍했던 남영호 침몰 사건 이후 정부 당국에서도 해상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여객선이 대형화되고 레이더 등 안전 장비가 갖추어지면서 해상사고가 크게 줄어드는 계기를 만들었고, 해상 구조 또한 신속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16;16 서복공원[西福公園/0.2km] 21.0km
서복공원내 정방폭포가 있으나 올레길은 입장료나 그외의 유료화 된 지역은 올레길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정방폭포는 유료로 관람이 가능한곳으로 올레길은 정방폭포에서 벗어나 서복공원으로 진행되었다. 가고는 싶은 정방폭포이나 시간과 여건상 다음을 기약할수 밖에 없었다.
16;18 서복 불로초공원[0.2km] 21.2km
16;20 서복공원을 나와서 얼마남지 않은 6코스의 종점을 향해서 진행한다.도로를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가는 올레길이다.
16;23 소암기념관[0.4km] 21.6km
16;41 이중섭거리[0.8km] 22.5km
잘 정돈되고 깨끗한 이중섭거리에 들어섭니다. 각종 전시관도 있고,이중섭 거주지도 있고,각종 민예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많이 있습니다.
♣이중섭[李仲燮, 1916년4월10일~1956년 9월6일];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서양화가로 호는 대향(大鄕), 본관은 장수이다.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이다. 부유한 농가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8세 때 평양 이문리에 있던 외가에 머무르며 종로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해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예일대학교 미술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에 의한 미의식을 가르쳤고 이는 이중섭의 화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중섭은 18세에 학교건물을 새로 짓자는 이유로 오산학교 본관 화학실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에 반발해 한글자모로 구성을 시도했다. 이무렵 그는 들에 있는 소를 관찰하며 스케치에 열중했고 오산학교를 졸업할 때는 앨범의 서명란에 한반도를 그리고 현해탄에서 불덩이가 날아드는 그림을 그려 소동을 빚기도 했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문화학원에 재입학해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자유로운 경향을 공부했다. 이때 이정규·김환기·유영국·김병기·문학수 등과 사귀었다. 1938년부터 일본 추상 그룹인 미술창작가협회에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협회상인 태양상(원명 조선예술상)을 받았다. 그해 김환기·유영국·문학수 등과 서울에서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창립전을 가졌다. 프랑스 유학을 원했으나 형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1943년 귀국하여 2년 후 문화학원 후배인 야마모토[山本方子]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해 살면서 8·15해방을 맞았다.
1946년 북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하여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 凝香〉 표지그림을 그린 후 구상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뒤 불우아동들의 무료강습소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서귀포·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했다.
1952년 국제연합(UN)군 부대 부두노동을 하며 양담배갑을 모아 은지화를 제작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이듬해 부인을 만나러 일본에 1차례 건너갔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다.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면서 종군화가로서 몇 차례 단체전에 출품했고 1953년에는 통영에서 유강렬과 함께 지내며 다방에서 40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듬해 진주를 거쳐 상경했고 박생광의 초대로 진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했다. 서울 누상동에 거주하면서 국방부·대한미술협회(대한미협) 공동주최의 대한미협전에 출품했다. 1955년에는 미도파 화랑과 대구의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7월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대구의 성가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들의 배려로 여러 병원으로 옮겨다니며 치료해 얼마간 호전되었으나 무단으로 퇴원한 후 불규칙한 생활로 병세가 악화되어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1957년 조각가 차근호 제작으로 묘비가 세워졌다.
이중섭은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로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 외곬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은 일본 유학시 보수적인 관학풍의 경향보다는 오히려 서구 아방가르드 회화에 깊이 빠지게 했다. 감정이 실린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 날카로운 선묘로 이루어진 독특한 조형세계는 그가 야수파 화풍에 얼마나 심취했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과 재능은 단순히 서양어법을 모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를 키워준 향토의 숨결과 희망을 담게 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향토적인 주제의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그뒤로는 피난시절 가족과의 생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등 생활일기와 같은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의 예술세계는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에 개인적 삶의 고뇌를 지극히 진솔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냄으로써 한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나타냈다. 동시에 서양미술의 어법을 완벽하게 소화·흡수하여 개성적인 조형을 성취함으로써 한국미술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특히 원산에서 그린 현존하는 소묘를 비롯하여 가족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표현한 후기의 은지화는 자유자재한 선묘와 심도있는 정서적 표현력을 보인 탁월한 작품이다.
작품으로는 〈흰 소〉·〈투계〉·〈닭과 가족〉·〈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등이 있다.
16;50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0.3km] 22.8km
17;03 제주올레 여행자센터[0.6km] 23.4km
이곳은 여행객들이 오가다 쉬어갈수 있게 편이시설을 제공해줍니다. 또한 여행객들에게 숙박도 해결할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약은 필수인곳입니다. 누구라도 쉽게 들어갔다가 쉬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할수 있는 카페도 있으니 그야말로 우리들에게는 단비같은 그런 장소이기도 합니다.
올레여행자센터 내부에 들어오니 또한번 가슴뛰게 글귀가 확 들어옵니다. 빨리 완성하고픈 욕망이 더 생깁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종료하고 7구간은 다음으로 기약합니다. 이제 봄이오는 3월에 다시 여기로 찾아올껍니다. 7구간을 걷기위해서~~~
2025년02월19일
*제주올레길 5코스,6코스;남원포구[남원용암해수풀장]~쇠소깍올레[5코스종료]~제주올레여행자쉼터[6코스종료]
*구간거리;23.4km[①5코스;13.6km,②6코스;9.8km]
*구간시간;08시간13분[휴식시간01시간52분포함/①5코스;03시간47분,②6코스;4시간26분]
*날씨;흐리고 바람이 많이 붐
*기온;4.5℃~7℃
*사용GPS;TRANGGLE,Ramblr
*참여인원;9명
*특이사항;①이동수단;스타리아[조식/김밥과 기사포함 230,000원], ②5코스,6코스 당일에 진행, ③중식[매식/불근돼지(쇠소깍주변)/두루치기&부대찌개]
*올레길 트레킹코스;남원포구~남원큰엉~동백나무 군락지~위미항~쇠소깍다리~쇠소깍~소라의성~서복공원~이중섭거리~제주올레여행자센터
08;50 남원포구[남원용암해수풀장]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태해란로 137-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91-2번지]
09;00 남원 어촌체험마을 방문자센터[남원1리 복지회관] 0.590km
09;08 남원 큰엉 출구[해안경승지/0.65km] 1.24km
09;12 이정표 1[ ↑ 한반도 포토존200m,호두암150m/ ↓ 출구350m/0.34km] 1.58km
09;14 이정표 2[ ← 한반도 포토존150m, → 출구400m/0.07km] 1.65km
09;15 호두암[虎頭巖]/유듀암[乳頭巖/0.07km] 1.72km
09;16 이정표 3[ ↑ 한반도 포토존100m, ← 우렁굴150m, ↓ 출구450m/0.06km] 1.78km
09;17 한반도 포토존[이정표 4/ ↑ 입구350m, → 화장실, ↓ 우렁굴200m/0.05km] 1.83km
09;20 이정표 5[ ↑ 입구280m, → 전망대, ↓ 우렁굴300m/0.06km] 1.89km
09;23 이정표 6[ ↑ 입구250m, ↓ 전망대100m/0.16km] 2.05km
09;24 이정표 7[ ↑ 입구100m, → 금호리조트, ↓ 한반도 포토존250m/0.06km] 2.11km
09;26 남원 큰엉 입구[0.13km] 2.24km
09;48 산그물[1.11km] 3.35km
09;50 위미3리 태웃개[0.08km] 3.43km
10;12 동백나무 군락지[1.67km] 5.10km
10;19 중간스탬프[동백나무 군락지/0.22km] 5.32km
10;25 세천포구[0.45km] 5.77km
10;44 ᄌᆞ배머들코지[[1.36km] 7.13km
11;09 위미항 보도교[0.64km] 7.77km
11;31 넙빌레[1.52km] 9.29km
11;48 신례2리 복지회관[0.81km] 10.1km
12;06 망장포[0.9km] 11.0km
12;16 예촌망[0.6km] 11.6km
12;37 쇠소깍다리[5구간 종료지점/종료스탬프/1.3km] 12.9km
12;53 쇠소깍[0.7km] 13.6km
13;02 중 식[매식/불근돼지/흑돼지 두루치지,부대찌개/0.4km] 14.0km
13;55 중식후 출발
14;02 하효항[소금막/0.1km] 14.1km
14;13 트멍길[종점/0.7km]14.8km
14;18 하효마을[0.4km] 15.2km
14;26 설얼앞[0.6km] 15.8km
14;31 보목포구[0.3km] 16.1km
14;36 엉캐물[0.4km] 16.5km
14;40 큰개머리[0.2km] 16.7km
14;51 동애기[0.3km] 17.0km
14;58 구두미포구[0.5km] 17.5km
16;03 소라의성[중간스탬프/3.0km] 20.5km
16;12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0.3km] 20.8km
16;16 서복공원[西福公園/0.2km] 21.0km
16;18 서복 불로초공원[0.2km] 21.2km
16;23 소암기념관[0.4km] 21.6km
16;41 이중섭거리[0.8km] 22.5km
16;50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0.3km] 22.8km
17;03 제주올레 여행자센터[0.6km] 23.4km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정로 22]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316-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