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짐 엘리엇 선교사 이야기 (Jim Eliot, 1927-1956)
짐 엘리엇이 휘튼대학 2학년때 기록한 일기장(19세).
"주님 성공하게 하소서...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이 하나님을 아는 가치를 드러내는 전시품이 되게 하소서."
짐 엘리엇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짐 엘리엇 선교사
순교한 다섯 명의 선교사들
짐 엘리엇(Jim Eliot, 1927-1956)은 미국의 침례교회 선교사이다.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및 세계 성서번역 선교회(GBT)선교사이며, 에콰도르 원주민을 선교하려다가 순교하였다.
짐 엘리엇은 1927년 10월 8일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아버지 프레드(Fred)와 스위스 출신의 어머니 클라라(Clara)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독교 신앙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짐 엘리엇은 1945년 가을 일리노이 주서부 시카고에 위치한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 christian) 학교인 휘튼 대학교(Wheaton College)에 진학하여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선교를 위해서 생애를 바치기로 작정했다.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SIL 교육기간을 거쳐 1952년 봄 에콰도르에 도착한 짐 엘리엇은 와오다니(Waodani)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현지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함께 선교활동을 할 친구들을 모았다.
몇 달 전부터 비행기를 이용하여 선교방송과 함께 선물꾸러미를 투하하 접촉을 준비한 짐 엘리엇과 일행 4명(네이트 세인트,피트 플레밍,로저 유드리언,에드 맥컬리)은 1956년 1월 8일 와오다니(Waodani) 부족민들과 직접 접촉하려고 했으나, 백인에 대해 적대적인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아 전원 사망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짐 엘리엇을 포함한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수백년 동안 외부인들을 다 죽여왔던 잔인한 아우카족(와다니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경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정글로 들어갔다. 다섯명 모두 순교했다(29세).
이상한 것은 그들의 주머니에 권총이 그대로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향하여 발포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엘리엇은 아우카족에게 제대로 복음도 전하지 못했고 성경책 한권도 전해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훗날 그 열매는 매우 컸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Elisabeth)는 남편이 순교한 지 2년이 지난 1958년 가을에 그녀 역시 목숨을 걸고 남편이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린 딸 밸러리(Valerie)와 함께 아우카 부족을 찾아갔다.
엘리자베스가 만나 본 아우카 부족은 남자 어른이 8명에 불과한 56명의 작은 부족이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순교자들의 부인들이 다시 아우카 부족에게 선교하러 들어갔다. 이 종족은 여자들은 죽이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으로 아우카 부족이 복음화 되었다.
선교사들을 살해한 3명이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담임 목사와 지도자들이 되었다.
36년이 지난, 1992년 6월 11일, 신약 성경 봉헌 예배가 드려졌다.
주님, 당신께 기도합니다.
이 게으른 막대기와 같은 나의 삶을 비추어 주소서.
제가 당신을 위해서 불타게 하소서!
나의 주님! 나의 삶을 태워주소서, 왜냐하면 이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긴 삶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 주님 예수님처럼 충만한 삶을 구합니다.
- 짐 엘리엇, 1948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나도 특별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외치는 동안에,
저는 너무나 평범한 상태여서(평범한 삶이어서).
- 짐 엘리엇
죽을 때가 다가올 때, 네가 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도 죽게 됨을 확실히 해라.
- 짐 엘리엇
[출처] 순교자 짐 엘리엇 선교사 이야기|작성자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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