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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에 대한 것을 나는 좀더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전부터 꽃잎이 한 겹만 있는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별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서 누구를 귀찮게 구는 일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풀 속에서 나타났다가는 저녁이면 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 꽃은 어디서 바람에 불려 왔는지 모를 씨앗에서 어느 날 싹이 텄는데, 다른 싹과 같지 않은 이 싹을 어린 왕자는 무척 주의해서 살펴보았었다. 바오밥나무의 새 종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린 나무가 이내 자라기를 멈추면 꽃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굉장한 봉오리를 맺는 것을 본 어린 왕자는 거기에서 어떤 기적과 같은 것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은 그 푸른 방안에 숨어 언제까지고 아름다운 단장을 하기에 바빴다. 빛깔을 정성껏 고르고, 옷을 찬란히 입고, 꽃잎을 하나씩 다듬고 했다. 양귀비처럼 꾸깃꾸깃한 채 나오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고비에 다다랐을 무렵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렇다! 무척 멋을 부리는 꽃이었다.! 그 신비로운 단장은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바로 해가 돋을 무렵이 되자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그렇게도 섬세한 치장을 하고 나온 꽃이건만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이제야 겨우 잠이 깼습니다… 용서하세요…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어요….”
그 순간 어린 왕자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나는 해와 동시에 났어요…”
하고 꽃은 조용히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이 별로 겸손하지는 않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무척 마음을 움직이는 꽃이었다!
잠시 후에 꽃은 말을 이었다.
“ 지금이 아마 조반 시간이지요. 내 생각을 좀 해주시겠어요?”
어린 왕자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져서 찬물 한 통을 갖다 꽃에 주었다.
그리하여 이 꽃은 약간 수줍은 허영심으로 이내 어린 왕자의 마음을 괴롭히게 되었다. 가령, 어느 날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네 개의 가시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내밀고 오겠다면 오라고 해요!”
“우리별에는 호랑이가 없어요. 그리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아요!”
어린 왕자는 이렇게 대꾸를 했다.
그러자 꽃은 상냥스럽게,
“나는 풀이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다.
“용서하십시오….”
“나는 호랑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 대는 건 질색이에요. 병풍이 없으세요?”
‘바람이 부는 게 질색이라… 풀치고는 운이 좋지 못한데. 이 꽃은 까다롭기도 하군.’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녁에는 고깔을 씌워 주세요. 당신 집은 대단히 춥군요. 설비가 좋지 못해요. 내가 있던 데는….”
그러나 꽃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 꽃은 씨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이렇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려다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서 어린 왕자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려고 두세 번 기침을 했다.
“병풍은 어쩌셨어요….”
“가지러 가려던 참인데 당신이 말을 하고 있어서!”
그러자 꽃은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려고 일부러 기침을 세게 했다.
이리하여 어린 왕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뜻을 가졌으면서도 이내 그 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몹시 불행하게 되었다.
하루는 어린 왕자가 내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꽃이 하는 말을 듣지 않을 걸 그랬어. 꽃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해. 꽃은 보고, 향기를 맡고 하는 거야. 이 꽃도 내 별에서 향기를 떨치고 있었지만, 나는 향기를 즐길 수가 없었어. 그 발톱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약이 올랐었지만, 사실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야 했을 텐데….”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 꽃이 하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해야 할 걸 그랬어. 내게 향기를 풍겨 주고 환하게 해주고 했으니까. 도망을 하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어! 그 오죽잖은 꾀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알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마음과 틀리는 말을 무척 잘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을 몰랐어.”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