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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인문교육
“여호와(하나님의 이름)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아인슈타인, 처칠, 에디슨이 바보에서 위대한 천재로 변신한 비결.'
'둔재만 가던 3류 대학 미국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사연'
'카네기, 워런 버핏, 이병철, 정주영이 황금 손이 될 수 있었던 배경. . . .'
그 비밀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와 교육에 심취한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위인이나 천재들은 모두 인문고전을 파고 든 사람들이다. 인문고전 교육은 유대인 보다는 동서고금의 명문 집안에서 자녀 교육에 사용한 방식이다.
요즈음 한국에도인문학 강좌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불세출의 CEO,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탄생 비결에 '인문학' 있었네.”
“인문학은 기업의 미래다.”
바야흐르 인문학 열풍시대이다.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을 정도로 성황이고, 모 교육기업의 행복한 인문학당이란 프로그램은 하루 만에 신청자가 100명 몰렸다고 한다.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에 참석한 모 인사는 인문학을 익힌 CEO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인간 이해를 통한 상상력의 극대화’로 요약한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풍부해 지면 문제 해결 능력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인문학의 어원은 라틴어 '휴마니타스'(humanitas)로서 인간의 “인간다움”, 즉 인간성 실현을 의미한다.
위키백과는 인문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
현대 공교육 시스템은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양산하는 빈자계급을 위한 교육방식이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사회의 지도층이나 상류계급은 모두 인문고전 중심 교육을 해왔다.
-카를 비테 방식과 클레멘트 코스
대표적인 인문고전 교육 방식에는 카를 비테 방식과 클레멘트 코스가 있다.
•카를 비테 방식.
독일의 카를 비테 목사의 교육 방식이다. 비테 목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병으로 죽었고 둘째 아이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
비테는 저능아 아들에게 그 당시와는 ‘다른 교육’을 시키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아래, 15일이 지난 아이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고, 두 살 때부터는 고전을 읽어주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 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 받았다.
이후 카를 비테 방식이 20세기에 미국에서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비테 방식을 열광적으로 따르면서 괄목할 만한 열매를 맺었다.
• 클레멘트 코스
1995년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철학과 시, 미술사, 논리학 역사 등의 인문학을 가르쳤던 교육과정을 말한다.
얼 쇼리스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쳤던 계기는 바로 한 여 죄수에게서 비롯된다.
클레멘트는 1983년 미국의 빈곤에 대해서 책을 쓰기 위해 취재 중이었고, 그런 도중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8년 째 복역중인 비니스 워커라는 여 죄수와 마주했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비니스 워커는 한동안 경멸하듯이 그를 노려보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그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 .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얼 선생님, 그 애들은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 . .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은 더는 가난하지 않게 된다니까요?”
“무슨 뜻인지. . . . ?”
“내가 말한 그대로예요. 길거리에 방치된 그 애들에게 도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그녀가 말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은 바로 인문학을 의미했다.
인문학은 줄곧 세상 사람들의 성찰적 사고를 가능하도록 해준 근본적인 원천이었다.
성찰적 사고 기능이 바로 그녀가 말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러나 성찰적 사고를 통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니스는 지적한 것이다.
이후 얼 쇼리스는 노숙자, 빈민, 마약중독자, 죄수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중심의 클레멘트 코스를 개최하여 삶에 대해서 성찰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그 파급효과는 적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충분한 재활훈련이라는 과정을 통해 물질적 빈곤을 극복시키는 노력보다 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의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클레멘트 코스의 예비 수강생들에게 강연할 때면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을 록펠러처럼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록펠러보다 더 큰 부자도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록펠러 집안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앞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면 여러분은 ‘부’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인문고전 교육의 결함도 있다. 인문고전 독서에 열중한 존 스튜어트 밀은 이십 대에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았다.
노버트 위너는 학교 및 사회 부적응증으로 고생했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자폐증, 신경쇠약, 대인기피증을 앓았다.
그들이 받는 교육의 실패 요인은 세 가지였다.
1. 과도한 교육을 받았다.
2.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3. 무신론에 입각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성공한 카를 비테 방식은 동일한 인문고전 교육이었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교육방식이었다.
1. 실컷 놀면서 교육 받았다. 하루 2시간으로 독서 시간을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은 놀게 했다.
2. 사랑과 격려가 바탕이 된 교육을 받았다.
카를 비테는 언제나 아들에게, ‘넌 최고다, 아빠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위기에서 교육 받았다.
비테 목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사명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성경 읽기와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고 천재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은 성경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인문학 열풍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할 지 모르지만 나쁜 천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천재로 만들기 쉽다. 강력한 인성교육과 함께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 인문고전 교육의 문제점과 대안
첫째, 인문학에 심취하면 윤리도덕 관념이 희박해 지기 쉽다.
르네상스로 시작된 인문학 붐은 인간 이성의 족쇄를 풀어놓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저질스런 신(神)들의 행적을 묘사한 헬라·로마의 신화의 영향으로 인해 이후 유럽인들의 윤리도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자유분방한 인간의 상상의 날개를 펴는 문학, 미술, 음악 분야에서 특히 심했다.
성경을 주제로 한 바하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다빈치 최후의 만찬도 있지만, 음악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오페라의 주제는 불륜이 대부분이며, 신동 모짜르트는 음란했고, 악성 베토벤은 매독으로 죽었다.
인간의 영성은 매체-글, 음악, 미술 등-를 통해 모방자나 애호가에게 전이된다.
허무, 공허, 음란, 방탕끼가 있는 사람들의 작품에 심취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닮아간다.
둘째, 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이기 때문에 영 분별력이 없다.
서양 철학의 원조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헬라의 신들-귀신-을 인정했으며, 유교의 공자는 조상 제사를 인정하면서 귀신도 섬기려면 정성으로 섬기라고 할 정도로 영분별력이 없었다.
더군다나 한국 민속문화의 대부분은 사탄의 상징인 뱀, 귀신 등을 섬기는 문화이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해리포터 시리즈는 성경에서 금지한 마법을 주제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의 인본주의 세계관과 성경의 신본주의 세계관은 여러 면에서 충돌한다.
하나님은 영혼(정신)과 육체(몸)을 모두 선하게 창조하셨다. 사람이 악의 도구가 되는 것은 내재하는 죄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 철학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 노동은 귀하고 육체 노동은 천하다는 사상을 전파했다.
동양사상도 마찬가지다. 선비나 학자는 군자가 될 수 있지만 여자나 평민은 군자의 반열에서 제외시키는 계급사회, 신분사회, 서열사회를 고착화시켰다.
-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자녀들에게 인문학 보다 성경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인문학은 성경의 주석이자 예화다”라고 필자는 감히 말한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각종 인문학, 심리학 및 종교서적들을 탐독했지만 역시 결론은 마찬가지다.
이들이 제공하는 지식은 성경이 선언적이고 연역적으로 선포한 진리를 증명해 주는 주석(설명)이자 예화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 타락, 구속, 종말에 대해 기록한 구원의 책이자 우주와 인류에 대해 기록한 대서사시이다.
성경만큼 인간에게 필요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륜, 윤리도덕, 가족, 사랑, 자비, 언행과 감정, 삶의 지혜 등을 다양하게 다루면서도 진리의 핵심을 다룬 책은 없다.
또한 성경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 책은 이 세상에 없다.
필자도 대학 입학은 경제학과에 했지만 한 동안 전공은 제쳐두고 문학, 역사, 연극 및 영화에 심취하여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을 쓰면서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방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것에 심취해도 ‘바로, 이거다!’하는 깨달음은 오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 무언가 더 이상의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꼭 찍어서 이야기 해주는 것이 없었다.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라고 주장은 하지만 단편적이었고 내가 원하는 양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 성경을 알고 예수를 만나니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방탕과 호색, 철학과 수사학, 각종 종교에 심취하다가 마침내 하나님 안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었다는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필자 또한 예수 안에서 영혼의 안식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성경은 바로 이 예수를 증거하는 책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데서 나온다.
“여호와(하나님의 이름)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성경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님은 지혜와 지식의 정수(精髓)이며, 이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과 학문은 ‘초등학문’에 불과하다.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8-10).
- 21세기는 우뇌 사회
알파고 AI(인공 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가 바둑왕 이세돌 9단을 이긴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제 '챗GPT'가 논문이나 설교, 특정 태스크를 대행해주기까지 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상상도 하기 힘든 AI의 ‘학습능력’의 위력을 목격한 사람들은 나 자신도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져 ‘인공지능 포비아 Phobia가 사회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직업은 얼마나 대체되고 또 탄생할 것인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I 등장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라질 직업은 710만 개 인데, 화이트 칼라 사무직(67퍼센트), 제조업(22.6퍼센트), 건설·채광 분야(7퍼센트), 미술·디자인·엔터테인먼트·스포츠·미디어 등 분야(약 2.1퍼센트), 법률 분야(1.5퍼센트) 등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새로 고용창출이 될 200만개의 일자리 분야를 살펴보면 ‘경영·재무 운영’ 분야(약 25퍼센트), ‘관리감독 분야(약 21퍼센트), ‘컴퓨터&수학 분야(약 20퍼센트), ‘건축·엔지니어 분야(17퍼센트), ‘영업 관련 분야(15퍼센트), 교육관련 분야(3.3퍼센트) 순이었다.
줄어드는 일자리 수와 비교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일자리 수는 턱없이 부족한 탓에 전체 일자리는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게 다보스포럼의 예측이다.
AI 시대에는 우뇌 중심 직업이 뜬다. 특히 초고속 통신망과 AI, 로봇기술의 급속한 진화가 낳은 제조업의 대변혁은 전통적인 인간 노동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래형 직업이 창출되는 측면도 있지만, 다수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는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불편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믿음을 경계하면서, 미래에는 인간의 본성과 감정, 감성 등 인간 고유의 영역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AI가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지배하는 '좌뇌'의 기능을 훨씬 앞서갈 수는 있지만 감성과 감정, 직관, 응용, 통합, 창조성을 관장하는 ‘우뇌’의 영역까지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의 감성,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교감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감정변화, 다양한 정보와 사안들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창조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능력 등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으로는 결코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의 석학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교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일자리 경쟁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인공지능이 차지할 수 있는 인간의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모라벡의 역설'로 불리는 이 말은 인간에게 어려운 일이 로봇에게는 쉽고, 반대로 인간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 내면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과 정서를 어루만지며, 기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발휘되는 직업들은 시대를 관통해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이 우뇌의 창조성은 항상 좌뇌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좌뇌 중심의 이성적인 일본이나 미국인 보다 우뇌 성향의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서양 사람은 왼쪽 이마가 크고 동양인은 오른쪽 이마가 크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은 오른쪽 이마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한국인은 직엄 선호 관계에 의한 연구에서 좌뇌형 38명에 비해 우뇌형 90명, 그리고 전(양)뇌형도 46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은 우뇌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은 다가오는 21세기를 생각하면 좋은 소식이다.
우뇌는 AI가 감당하지 못하는 창의력, 직관력을 관장하는 곳이다. 우뇌 성향을 더욱 활성화 시켜주는 것이 곧 마음훈련이다.
마음훈련을 통해 뇌에서 알파파와 베타 엔도르핀이 나와서 마음이 최적화 된 평안의 상태에서 두뇌 기능을 활성화 하고, 이후 더욱 깊은 상태에 들어가면 뇌파가 세타파로 변하면서, 생각은 또렷하고 몸과 마음은 이완된 성성적적(惺惺寂寂. Clear but calm)의 상태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기발한 창의력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