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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성모발현 성지(3대발현지. 프랑스,루르드. )
▲ 루르드성지 성모상
가. 성모님의 발현
첫 번째 발현 - 1858년 2월 11일(목요일)
피레네산맥과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서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 루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아직 2월이라 날이 몹시 추웠지만 베르나데트는 땔나무와 뻣조각을 모아 오겠다 고 부모님에게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루르드의 버려진 감옥을 개조한 단칸방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살았는데 그 비좁은 공간을 벗어나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이 필요하였다. 여동생과 여자 친구 한 명과 함께 서쪽으로 1km떨어진 가브드포강으로 향했는데,몸이 약한 베르나데트는 뛰어가는 두 소녀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로 처졌다.
베르나데트가 강을 건너기 위해 허리를 굽혀 신발과 양말을 벗으려는 순간,갑자기 폭풍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허리를 펴고 앞을 보았는데 강 건너편에 있는 마사비 엘 동굴에서 황금빛의 구름이 일더니 곧이어 열일곱 살 전후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인은 하얀 겉옷에 머리 위에서 두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베일을 걸치고 있었고,허리에는 하늘색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오른팔에는 황금빛 줄에 흰 구슬이 엮여 있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여인이 베르나데트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오라고 몸짓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발짝도 움직 일 수 없어서 무릎을 꿇고 묵주를 꺼냈다. 그녀는 묵주기도를 마치고 성호를 그으려 했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이 십자가가 달린 묵주를 쥐고 성호를 그었고,그제서야 베르나데트도 성호를 그을 수 있었다. 여인은 다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고 황금빛 구름도 여인과 함께 사라졌다. 이 발현은 약 15 분간 진행되었는데 같이 있던 두 소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베르나데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다른 여동생에게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여인을 본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여동생은 참지 못하고 부모에게 말하였다. 동행하였던 여자 친구는 그녀가 유령을 보았으며,미친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에 게 험담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베르나데트의 집으로 몰려들자 그녀의 부모가 화를 냈다. 그녀에게 체벌까지 하고 다시는 마사비엘 동굴에 가
지 말라며 엄하게 꾸짖었다. 다음 날 저녁에 그녀는 페이라말 신부에게 고해하면서 여인에 대하여 말하였다.
두 번째 발현 월 14일 (일요일)
베르나데트는 아버지의 허락를 받고 친구들과 함께 성당에 들러성수를 가지고 마사비 엘 동굴로 다시 갔다. 그녀가 묵주기도 2 단을마칠 무렵 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베르나데트가 성수를 뿌리며 “만일 하느님이 보냈으면 그대로 계시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가십시오”라고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성수를 뿌리고 마귀를 쫓는 기도를 바쳤으나 여인은 계속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베르나데트가 탈혼 상태에 빠지자 놀란 친구들이 근처 방앗간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방앗간으로 옮겨진 뒤 그녀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이때부터 루르드에서 성모
님이 발현하셨다는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발현 ~2월 18일 (목요일)
많은 사람들이 베르나데트와 동행하였다. 그녀는 동굴에 도착하자무릎을 꿇고 탈혼 상태에 빠졌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동네어른이 시킨 대로 여인에게 종이와 펜을 내밀며 이름을 적어 주기를요청하였다. 여인은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답하며 “너는 앞으로 2주 동안 매 일 이 곳으로 와 줄 수 있겠니? ”라고 물었다. 그러 겠노라고 약속하자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해 주겠다”라고 여 인은 말하였다. 베르나데트는 처음으로 여 인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고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했다고 회고하였다.
네 번째 발현 - 2월 19일 (금요일)
여인이 요청한 2주간이 시작되었다. 베르나데트는 여인이 요청한 촛불을 들고 동굴로 갔다. 이날부터 3월 4일까지 무려 12번의 발현이 목격되었고 항상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베르나데트를 따라 동굴로 갔다. 이제 루르드의 온 마을사람들이 발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주변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자코메라는 경찰이 그녀를 불러, 주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며 다시 마사비엘 동굴로 간다면 투옥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다섯 번째 발현 - 2월 20일(토요일)
여인은 베르나데트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쳤다. 발현이 끝날 무렵 여인은큰슬픔에 빠졌다.
여섯 번째 발현 - 2월 21일(일요일)
아침 일찍 베르나데트는 동굴로 가서 여인을 만났으며 백여 명의군중이 함께하였다. 여인은 슬픈 표정으로 “죄인을 위해 기도하라”고말하였다. 여섯 번째 발현 후 경찰 자코메는 베르나데트를 다시 불러 위협을 하였으나 그녀는 루르드의 방언인 아케로만을 반복하여 말하였다. 그녀를 플어 달라고 요구하며 야유하는 성난 군중들 때문에 심문은 중단되고 베르나데트는 풀려났다. 다음 날 그녀는 군중과 함께 마사비엘 동굴로 갔지만 발현은 없었다.
일곱 번째 발현 - 2월 23일(화요일)
여인은 특별한 비밀 기도를 베르나데트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인의 뜻에 따라 선종할 때까지 비밀 기도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지만 매일 그 기도를 바쳤다.
여덟 번째 발현 - 2월 24일(수요일)
이날은 250명 정도가 모였는데 여인은 “참회 ! 참회 ! 참회하며 죄인들을위해하느님께 기도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아홉 번째 발현 - 2월 25일(목요일)
춥고 비까지 오는 이날3백여 명이 베르나데트를 따라갔다. 동굴에서 여인이 나타나 바로 아래에 있는 바닥을 가리키며 “샘에 가서 샘물을 마시고 씻고 그곳에서 자란 플을 먹어라”라고 하였다. 베르나데트는 처음에 잘못 알아듣고 강가로 갔으나 여인의 지시로 다시 동굴 아래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이내 흙탕물이 솟구쳤다. 그녀는 흙탕물을 세 차례 내버린 후 네 번째에 두 손을 모아 물을 마셨고 얼굴을 씻었으며 그곳의 풀도 뜯어 먹었다. 베르나
데트가흙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나자사람들이 드디어 그녀가 미쳤다며 조롱하였다. 그녀에게 한사람이 “당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죄인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전날 여인이 발현하여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 메시지에 따른 행동임을 보여 준 것이다.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녀를 체포하라는 소리도 들렸다. 베르나데트는 경찰의 보호 아래 간신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사람들은 그녀가 파냈던 흙탕 구덩이에서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와 가브드포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이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온갖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몰려와서 이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었는데 그들의 몸이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적에 대한 소식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루르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순례자들이 급증하였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 물을얻으려고 하는 바람에 폭동까지 일어났고,경찰의 힘만으로 진압이되지 않아 군인까지 동원되었다. 이에 지방 검찰이 베트나데트를 심 문하였다.
열 번째 발현 - 2월 27일(토요일)
8백여 명이 참석한 이날,베르나데트는 샘물을 마시고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여 인은 침묵하였다.
열한 번째 발현 - 2월 28일(일요일)
1,0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베르나데트의 탈혼 상태를 목격하였다.
그녀는 땅에 입맞춤한 뒤 참회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기어가면서 기도하였다.
열두 번째 발현 -3월 1일(월요일)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카트린 라타피라는 부인이 사고로 인해 오그라진 오른손을 샘물에 담근 이후 회복되는 최초의 치유기적을보여 주었다.
열세 번째 발현 - 3월 2일(화요일)
이날은 여러 지역 사람들이 2천 명 이상 모여 베르나데트를 지켜보았다. 여인은 동굴 암반을 가리키며 “사제들에게 가서 이곳에 작은성당 하나를 세우라고 말하여라. 그리고 이리로 행렬이 향하도록 하여라”라고 말한 뒤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베르나데트는 뒤따라오는 2천 명의 군중과 함께 페이라말 신부에게 가서 성모님의 요청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신부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사비 엘 동굴로 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신부는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니,혹시라도 다시 만난다면 이름을 물어보고,겨울철이지만 장미꽃이 피어나게 해 달라고 요청해 보거라. 그러면 나도 믿고 그 말에 따르겠다”라고 말하였다.
열네 번째 발현 - 3월 3일(수요일)
베르나데트가 이름을 물어도 여인은 미소로 답할 뿐이 었다.
열다섯 번째 발현 - 3월 4일(목요일)
여인이 요청한 2주가 드디어 끝나는 날 약 8,000명의 군중이 모였으나 여인은 침묵하였다. 수많은 군중에 놀란 경찰은 동굴을 울타리로 막고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 정하였다.
열여섯 번째 발현 - 3월 25일(목요일)
베르나데트는 어떤 강한 충동을 느껴 새벽 5시에 일어나 동굴로갔고20일 만에 다시 여인을 만날수 있었다. 동굴 주위에는 접근을 막기 위한 울타리가 쳐져 있어 가브드포 강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하고 있을 때 여인이 나타났다. 베르나데트가 여인에게 세 번이나 이름을 물었으나 여인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네 번째로 같은 질문을 하자 비로소 여인은 루르드 방언으로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며 당신의 이름을 밝혔다. 베르나데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잊지 않으려고 계속 소리 내어 반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고 이를 본 군중들도 그녀를 따라서 함께 뛰었다. 베르나데트가 페이라말 신부의 집으로 달려가서 여인의 이름을 전달하자 신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제서야 베르나데트가 그동안 한이야기에 거짓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열일곱 번째 발현 - 4월 7일(수요일)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베르나데트는 탈혼 상태에 빠졌으며 그녀가 들고 있던 촛불이 다 타서 손에 불이 붙었는데도 그녀의 손은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열여덟 번째 발현 - 7월 16일(금요일)
베르나데트는 신비로운 부름을 받아 저녁 8 시에 동굴로 찾아갔고, 가브드포 강가에서 마지막으로 성모님을 보았다. 성모님은 말없이 미소만 보이셨다. 훗날 베르나데트는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은 한번도 본 적 이 없었다고 회고하였다.
나. 루르드 성모발현 장소
루르드는 피레네산맥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당시 약 4,000명이 살고 있는 가난하고 작은 마을이었는데, 1845년부터 시작된 기근과 사회적 혼란의 여파가남아 있어 여전히 살기가 어려웠다. 해발고도가 400〜960마에 달하는산골마을인 이곳은,이미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산기슭 마을 생테티엔르로, 라 살레트와 함께 프랑스에서는 가장 가난한지역 중 하나였다.
베르나데트는 “아마 저보다 더 가진 게 없고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면 성모님은 제가 아닌 그 사람 앞에 나타나셨을 거 예요”라고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말구유에서 탄생하신것과 같이 성모님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환경에 있던 베르나데트를 선택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못 사는 마을 중 하나인 산골마을 루르드를 선택하여 발현하신 것이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마사비엘 동굴은 높이 약 27m의 거대한 바윗덩어리의 하단에 있는 동굴로서, 높이는 3.8m,폭은 9,8m,깊이는 9.5m 정도로 아주 크거나 깊지는 않다. 동굴 입구 바로 위에 있는 움푹 파인 자리에는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가 보았다는 푸른색 허리띠와 흰색 베일을두르고두발위에 두개의 노란장미가놓여 있던 성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1.8m 높이의 채색된 성모상이 여러 주교와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864년 4월 4일에 축성되었다.
동굴 입구에는 성수가 나오는 원래의 샘이 보존되어 있으나,현재는유리 덮개로 보호하고 있어 눈으로만볼 수 있다. 그 대신 동굴 입구의 벽은 늘물기에 젖어 있어서 순례자들이 두 손으로 직접 만지며 신비로운 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동굴 앞에는 미사를 드릴 수있는 제단등이 설치되어 있어 야외 미사가 자주 열리며, 루르드를 방문하는 많은 신자들이 이 미사에 참석한다.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면 발현하신 성모님의 영적인 기운을 직접 느끼면서 성체를 모시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루르드 성지를 찾아오는데, 이 가운데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 들만 8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다. 시현자(목격자)
베르나데트는 1844년 1 월 7 일 루르드의 가난한 방앗간 주인 프랑수아의 육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작은 방앗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몸이 허약하여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은 편이 었던 그녀는 10세때 콜레라를 앓았고,평생 천식을 비롯해 여러 질병으로 고생하였다.
단순하고 감상적이며 유쾌한성격을지녔던 반면에 수줍음을 많이 타고 행동이 다소 느렸다고 한다.
베르나데트의 가족은 1854년 방앗간의 임대료를 내지 못해 거리로 쫓겨났고, 하는 수 없이 버려진 감옥을 개조한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지내야 했다. 희망이 없는 막막한삶 속에서 가족 모두가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고,4년 후 베르나데트는 성모님의 시현자가 되었다. 그러나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서 그녀와 가족들 생활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 이외에는 아무도 성모님의 모습을 보거나 말을 듣지 못하였기에 오히려 베르나데트는 발현에 대해 의혹을 품은 이들의 분별없는 열광과 과도한 관심,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다.
그녀는 문맹이었고 신앙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없는태도와용기, 사욕이 전혀 없는태도로 모든논쟁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거의 4년 동안이나 조사를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흔들림이 없었고,점점 더 사람들의 호기심에 시달려 가면서도 인내를 갖고 잘 견디어 냈다.
1860년 7월 16세가 된 베르나데트는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 중부에 있는 느베르 애덕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양육원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였으며 읽고 쓰는법을 배운 후 1861 년 최초로 성모님 발현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1864년 8월 이 수녀회에 입회하기를 원하였지만,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66년 7월 느베르 애덕 수녀회 성 질다르 수도원에 마침내 입회하여 마리베르나르라는 이름으로 서원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루르드를 다시 가 보지 못한 채 기도와 은둔 속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1879년 4월 16일 35세의 젊은나이로 선종하였고, 그 시신은 성 질다르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1909년 베르나데트 수녀의 유해가 부패하지 않은 채로 발견되 었으며, 1913년 8월 13일부터는유리관에 안치하여 일반신자에게 공개되고 있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1925년 6월 14일 시복되었고, 1933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성되었다. 2011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미라클」과 최근에 제작된 뮤지컬「루르드의 베르나데트」는 발현하신 성모님을 직접 목격했던 베르나데트의 심적 변화와 영적 성숙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라. 기적의 샘물(기적수)
루르드 샘물은 기적의 샘물로 불리며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신심을 고취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발현 이후 난치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치유를 희망하며 물을 마시거나 몸을씻고(침수장) 있다. 이런 이유로 루르드는 해마다 5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방문하는 세계 3대 성모님 발현 성지가 되었다. 루르드 성지는 루르드 샘물을 마시거나 목욕하러 찾아오는 순례자 모두에게 샘물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매년 순례자들이 마시거나 떠 가는 샘물의 양이 1만톤이 나 된다고 한다.
치유의 기적은, 1882년 설립된 루르드 의료국에서 루르드의 치유사례를 조사한 후 그 결과를 루르드 국제 의학 위원회에 보고하면 위원회에서 기적 여부를 결정하고 주교가 이를 인정하는 과정으로 공식인정이 진행된다. 루르드 의료국은 전 세계 모든 의사들에게 열려 있으며,의사들은 기적으로 병이 나은 사람들을 조사하거나 의료국내 문서를 살펴볼 수 있다. 치유의 기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신체의 질병이어야 하고 그 상태가 매우 심각하여 치료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질병
으로, 회복 단계가 아니어야 하며 효과적인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치유는 즉각, 완전하게, 영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걸린 병이 의학적인 치료로 나을 수 없는 질병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 성모님 발현 이후 최초 55년간 4,445건의 치유가 보고되었고 지금까지 총7천여 건의 치유 사례가 보고되 었으나,현재 루르드 의료국과 루르드 국제의학위원회를 통하여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적은70건에 불과하다.
마. 성지 소개
성지는 5곳의 성당(대성당 3곳과 지하 성당,동굴 성당)과 넓은 광장, 그리고 부대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성당의 경우 1866년 5월 19일 마사비엘 동굴 바로 위쪽에 작은 지하 성당이 건립되어 성모님 발현을공인한 로랑스 주교가 첫 미사를 드렸고 베르나데트도 이 미사에 참석하였다. 1876년 지하 성당 위에 고딕양식의 대성당이 축성되었다.
이곳에는 성모님이 당신의 신분을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고 직접 밝히신 것을 기념하여 ‘무염시태 대성당’이란 명칭이 부여되었다.
대성당 정면에서 보면 1 층과 2층에 각각 출입구가 있는데 1층이 지하성당 출입구이며 2층이 무염시태 대성당 출입구이다. 정면 중앙에는70m 높이의 첨탑이 솟아 있는데, 이 첨탑과 대성당 내부를 보면 명동대성당과 매우 비슷하다. 1889년 무염시태 대성당 앞쪽으로 비잔틴양식의 묵주기도(로사리오) 성모 대성당도 건립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는 루르드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성 비오 10세 교황 대성당이 성지 지하에 건립되었다. 길이는 약 200m,폭은 8Im에 이르는성 전으로, 동시에 2만 5천 명 이 미사를 드릴 수 있다.
성지 중앙에는 커다란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등 주요 대축일 때마다 묵주기도 성모 대성당 앞에 제단이 차려지고 야외 미사가 열리는데 이 넓은 광장이 순례자로 가득 찬다. 광장 가운데는 왕관을 쓴 성모상이 서 있다. 마사비 엘 동굴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루르드 샘물을 받을수 있는 여러 개의 꼭지가 있으니, 미리 성수통이나 다른 통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곳에서 안쪽으로 가면 초 봉헌대가 크게 마련되어 있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
바. 원죄 없는 잉태
성모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부터 원죄의 모든 흔적을 받지 않았다는 원죄 없는 잉태의 교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 내려왔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거룩하다고 생각했으나 원죄의 흔적이 없다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죄 없는 잉태 신심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동방교회와는 달리 서방교회에는 서서히 퍼지면서 수세기에 걸쳐 논의돼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가 잉태의 순간부터 죄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교의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바로 루르드 발현 4년 전이었다.
이에 따라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교회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를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벨라뎃다는 4월 7일과 7월 16일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촛불이 그녀의 손가락 위에서 오랫동안 타들어갔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 기적이 있었다.
발현의 진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타르브 교구장 로랑스 주교는 벨라뎃다의 증언, 기도와 회개 운동, 그리고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해 1862년 1월 18일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천주의 모친이 마사비엘 동굴에서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8번에 걸쳐 발현했다』는 이 인정서를 통해 주교는 교구 내 신자들에게 루르드 성모에 대한 공경을 허락했고 메시지의 요청에 따라 성당을 동굴 위에 세울 것을 발표했다.
사. 한국교회의 수호성인
루르드의 성모는 한국 교회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한국교회의 수호 성인은 성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이기도 하려니와 한국 신자들의 각별한 성모 신심을 바탕으로 교회 곳곳에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이 깃들어 있다.
예컨대 한국교회에서는 성모와 관련된 내용을 수호자로 모신 본당이 200군데가 넘고 그중에서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수호자로 정한 본당이 20곳이 넘는다.
오늘날 루르드에는 매년 약 400만명에 달하는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수많은 순례객들 중에는 환자들도 많고 이들 중에 병이 치유되는 사례들이 종종 보고됐다. 특히 1866년부터 발간되는 「루르드 연보」에 따르면 1905년까지 모두 2천여건에 달하는 기적적인 치유 사실들이 증명됐다.
루르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호텔이 많은 지역이 됐다. 400여개에 가까운 숙소들이 들어서 있고 야영 장소만도 20여개에 달한다. 여름철이면 이곳을 찾은 순례객들이 보내는 엽서가 무려 700만장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루르드에는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와 늙고 허약한 노인들, 정신박약아나 지체부자유아 등 전세계에서 온 환자들로 붐빈다. 또 이곳에서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루르드는 이처럼 질병의 치유를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개와 보속을 통한 내적 치유라는 참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례지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8월 1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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