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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굴의 다니엘과 ‘하나님의 천사’(6:1~28)
1. 다리오와 다니엘(6:1~3)
다리오(Darius)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후 패권을 장악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강력한 나라였던 바벨론이 멸망하고 당시 세계 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된 것이다. 새로 권력을 장악한 다리오 왕은 전국의 행정구역을 일백이십 개의 주(州)로 나누어 각 주마다 한 명씩 지방 장관을 두었다.
여기에서 매우 궁금한 문제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자신의 직속 부하이자 최고의 공직자들인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탁했다는 사실이다. 왕은 나중에 세 명의 총리 가운데 다니엘을 가장 선임자로 임명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니엘이 다리오 왕과 메대-페르시아 왕국을 위해 특별한 공적을 세운 일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오가 다니엘을 자기 다음가는 최고위직에 임명하게 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자기를 직접 돕지 않았지만,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벨사살 왕의 패망을 예언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다니엘이 직접 다리오 왕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니엘의 예언을 통해 벨사살 왕은 물론 바벨론 제국의 모든 공직자들의 사기가 급격히 꺾였던 것은 틀림없다.
또 하나의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이 큰 저항 없이 바벨론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바벨론 출신의 고위 관료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다니엘은 바벨론 민족 출신이 아니라 당시 피지배계층에 속한 이민족 출신으로 다리오 왕의 정국(政局)을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보였을 수 있다. 즉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 관료 출신이자 당시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지만,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내심 반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이유들이 작용하고 있었다면 다리오의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의 옛 격언 가운데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는 말이 있다. 충신은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말은 한 사람의 신하가 대대로 계승되는 다른 왕들에게 충성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동일한 왕조라면 선대의 왕에게 충성을 하고 다음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변에 의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반란이나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앞선 정권에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다음 정권에서도 여전히 충성을 다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니엘이 세속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그 나라를 패망시키고 정권을 장악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에서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가 명확하게 기억해야 할 바는, 다니엘이 비록 세속 국가에서 최고위직 관료를 지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며 다윗 왕국과 연관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2. 메대-페르시아 관료들의 시기와 음모 계획(6:4, 5)
다니엘은 선지자로서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과 다윗 왕국의 의미였다. 그의 육신이 어느 시대, 어느 왕국에 속해 있든지 간에 그는 항상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따라서 다니엘은 일반적인 세속 정치와 그것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는 방편으로 이해될 따름이었다. 그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의 근본적인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주변에서 세속적인 권력을 추구하며 행사하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관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방 족속 출신이자 앞선 바벨론 제국의 신하였던 다니엘에게 새로 개편된 다리오의 정권에서 왕 다음의 최고위직이 돌아가는 것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메대-페르시아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자 다른 두 명의 총리들과 여러 지방 장관들은 다니엘로부터 정치적인 비리를 찾아내 그것을 트집 잡아 왕에게 고소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실한 인물이었던 다니엘의 비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로서 양심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들 자신은 남이 알지 못하는 사이 온갖 비리를 저질렀겠지만,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니엘의 신실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다리오 왕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왕은 다니엘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왕이 다니엘에게 그런 신뢰를 보일수록 다른 신하들의 질투와 시기심은 더욱 커졌고 그의 비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갔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니엘의 비리를 찾아내지 못하자 급기야는 최종의 카드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것은 다니엘의 종교적인 신앙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니엘이 믿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요구하는 율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의 정책을 마련했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법령을 만들어 그 법에 순종하도록 요구한다면 신앙에 투철한 다니엘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왕이냐, 하나님이냐를 눈앞에 둔 다니엘이 결국 왕의 명령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니엘을 정식으로 고발하여 왕으로부터 엄벌을 받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던 다니엘을 모함하여 흔들어대는 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는 그가 비록 최고의 높은 지위에 있었다 할지라도 결코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렸던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3. 메대-페르시아 관료들의 음모와 덫(6:6~9)
다니엘을 권력의 중심부에서 제거하고자 하는 무리들은 의기투합하여 즉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게 된다. 다니엘을 제외한 두 명의 총리들과 행정 관료들과 지방 장관들, 그리고 법관들과 관원들이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그들은 왕으로 하여금 새로운 금령을 정해 전국에 반포하도록 하고 모든 백성들이 그 내용을 반드시 지키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 금령을 어긴다면 극형에 처한다는 단서를 달기로 했다. 그것은 왕의 지위를 절대화하여 새로 출범한 왕국의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이 실려있는 내용이었다.
저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자 그들은 다리오 왕에게 나아가 건의했다. 앞으로 삼십 일 동안에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왕에게만 간구하고 다른 신들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게 하자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거기에는 왕을 신격화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만일 누구든지 왕의 그 금령을 무시하여 어기는 자가 있다면 사자 굴에 던져 극형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리오 왕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매우 그럴듯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거대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필요한 조치였다. 간사한 신하들은 왕권 강화를 명분으로 삼아 그와 같은 조언을 하며 전국에 왕명을 선포하도록 간청한 것이다.
다리오 왕은 신하들의 간청에 따라 그에 관련된 금령을 만들었다. 그리고 왕의 도장을 찍어 나라의 전 지역에 조서를 내려 반포했다. 또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에 선포된 그 명령은 절대로 고치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아 어느 누구도 그 내용을 고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를 보고 감히 왕명을 거역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4. 다니엘의 저항(6:10)
메대-페르시아의 모든 백성들은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를 보고 아무런 저항 없이 왕명을 따랐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그 금령에 순복했다. 백성들 가운데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금령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실천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상황에서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보며 왕국의 평화를 기원하며 적극적으로 동조한 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인물이었던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어떤 위험과 불이익이 닥친다 할지라도 왕의 그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당시 다니엘은 다리오 왕 다음가는 최고위 공직에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그 명령에 순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자기를 모함하려는 자들의 올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그전처럼 자신의 집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에 연관된 매우 중요한 언약적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할 때 그곳에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고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지구상의 다른 어느 도시에도 존재하지 않는 매우 중요한 지역적 특성을 소유한 도시이다. 즉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없어진 상태에서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언약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의 제물로 바친 모리아산의 바로 그 장소 자체에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날마다 기억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는 그가 비록 이방 왕국의 최고위직에 있는 공직자였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지위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중요했다. 다니엘의 그 모습은 당시 그 지역에 끌려와 이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본향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갈망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저들의 조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고된 노예 생활을 하던 중에도 앞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5. 신하들의 고발과 다니엘의 사자 굴 처형(6:11~17)
다리오 왕의 신하들이 꾸민 음모는 그대로 맞아 들어갔다. 선임 총리였던 다니엘 앞에 덫을 놓은 자들은 그의 범법행위를 기다리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교묘한 음모를 꾸며둔 채 왕 숭배정책에 버금가는 정책을 추진한 대적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긴박한 정치 상황 가운데서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갔으며 그와 같은 사실은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바였다. 이스라엘 민족인 다니엘이 결코 자신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리오 왕의 명령에 순복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대적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이 왕명을 거역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확인한 대적들은 즉시 왕에게 그를 고발하고자 했다. 그들은 왕에게 다니엘을 고발하기에 앞서 은근히 왕을 압박하는 일을 선행했다. 그들은 왕에게 그가 친히 도장을 찍고 전국에 조서를 내린 법령을 상기시키면서 왕이라 할지라도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다니엘을 고발하고자 하는 자들은 정해진 삼십 일 동안에 왕 이외에 어느 신들이나 사람을 향해서라도 기도하는 자가 있다면 사자 굴에 던져 넣어 극형에 처하기로 하고 왕의 도장을 찍어 조서를 내린 사실을 왕 앞에서 재확인했다. 감히 왕의 금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사자 굴에 던져져 극형을 받는 엄벌에 처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다리오 왕은 앞뒤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신하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자신이 직접 도장을 찍고 반포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의 조서는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규례로 정한 것이니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이는 다리오 왕마저도 자기의 신하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든 셈이 된 것이다. 이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어찌할 수 없는 법령에 따라 극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신하들은 그에 대한 분명한 왕의 입장을 확인한 후 비로소 다니엘을 왕에게 고발했다. 메대-페르시아 왕국을 다스리는 최고위층인 총리 자리에 있는 다니엘이 감히 왕이 내린 금령을 어기고 자기 민족의 신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매일 세 번씩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다리오 왕은 그동안의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기에게 그런 금령을 내리도록 끈질기게 요구한 신하들의 음모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다리오 왕은 그것이 자신의 충성스런 신하였던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꾸며진 음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가 내린 조서에 기록된 내용과 자기가 찍은 도장에 대해 달리 대응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오 왕은 자신이 신임하던 다니엘을 구출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왕은 그 사실로 인해 매우 근심하며 가능한 모든 방안들을 찾고자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다니엘을 고발한 신하들은 왕을 찾아와 메대-페르시아의 규례를 따라 왕이 내린 법령대로 집행하도록 요구했다. 당시는 이미 왕이 도저히 그 국면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였다.
다리오 왕은 자신의 의도와 상반되었지만 하는 수 없이 법령에 따라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넣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신뢰하는 신하에게 억울한 극형을 내리는 왕의 마음은 결코 편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자기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한 다니엘의 종교 행위에 대해 아무런 분노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다리오 왕은 도리어 그 금령을 제정하여 도장을 찍고 조서를 내리도록 한 신하들에게 괘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기가 아끼는 신하였던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감히 왕인 자기마저도 함정에 빠지게 만든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은 자신의 그런 내심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기 전에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왕은 사자 굴에 던져질 다니엘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주리라고 말했다. 이는 실제로 다니엘이 섬기는 그 신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기보다는 극형에 처해지는 다니엘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왕이 한 그 말은 사실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왕 스스로 자기가 도장을 찍고 내린 조서의 내용을 거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그런 태도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신하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니엘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결국 사형 집행관들은 불편한 상태에서 내려진 왕명에 따라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굴 입구를 막고 왕의 도장과 관련 부서에 속한 신하들의 도장을 찍어 봉했다. 이제 다니엘은 그 사자 굴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다니엘을 그 사자 굴에서 구출할 목적으로 굴 입구의 문을 열지 못했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역시 극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6. 다니엘에 대한 다리오 왕의 태도와 하나님의 역사(6:18~23)
신뢰하며 아끼던 신하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극형에 처한 다리오 왕은 심한 괴로움에 빠졌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가서 밤새도록 금식했다. 자기 앞에서 오락과 악기를 중단시켰으며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왕은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서 급하게 사자 굴로 달려갔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 굴 입구 가까이 가서 슬프게 소리 질렀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너를 구원하셨느냐”(6:20)라고 소리 질러 외쳤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것은 다리오 왕이 과연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외쳤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신앙을 가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벽 일찍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 굴 앞으로 가서 그렇게 외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 있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신하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음모를 꾸몄던 것은 다리오 왕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겉으로는 왕권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다리오 왕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자들의 음모였던 셈이다. 따라서 다니엘을 처형한 왕의 아쉬움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 아쉬움이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새벽 일찍 사자 굴로 달려가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다리오는 다니엘에 관한 정보를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니엘은 과거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치하에서 최고위직에 있었던 신실한 인물이었다. 그는 왕의 꿈을 해몽함으로써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으며 이방인으로서 탁월한 정치력을 보였다. 다리오 왕은 자신의 정권에서도 다니엘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또한 다리오 왕은 바벨론 제국 시대에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용광로에 던져지는 극형에 처해졌을 때 ‘신들의 아들과 같은 이’가 나타나 저들을 구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벨사살 왕이 왕궁 벽에서 보았던 ‘손가락’이 쓴 글을 다니엘이 해석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벨사살 왕이 죽고 바벨론이 패망한 사실을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자기 곁에 두기를 원했으며 그가 믿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보통 신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리오는 그런 다니엘의 하나님이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혹시 그 상황에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이 처형당한 사자 굴의 현장을 찾아갔던 것은 바로 그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리오 왕이 사자 굴 앞에서 사자에게 찢겨 죽었을 다니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을 때 정말 다니엘이 그의 말을 듣고 화답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자신을 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기의 무죄함을 입증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저 혹시 싶어 사자 굴 앞으로 찾아와 그렇게 외쳤을 따름인데 다리오 왕의 막연한 기대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사자 굴에서 들려온 다니엘의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매우 기뻐했다. 그가 놀라지 않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그런 내용들이 배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고 봉했던 사자 굴 입구를 열고 그를 밖으로 끌어내도록 명령했다. 다니엘은 무서운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그의 몸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7. 다리오 왕의 진노와 다니엘의 높아진 위상(6:24~28)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오게 된 것을 본 다리오 왕의 신하들에 대한 분노는 그때서야 표출되었다. 왕은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끌어오게 했다. 분노한 다리오는 음모를 꾸민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다니엘을 던져 넣었던 그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명령했다. 그들은 사자 굴의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자의 밥이 되어 그 뼈까지 부서졌다.
다리오 왕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백성들과 다양한 방언을 하는 족속들에게 특별한 조서를 내렸다. 그것은 다니엘이 믿는 신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두려워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에 대해 최상의 용어들을 동원했다. 그 신은 살아있어 영원히 변치 않으며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고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라고 했다(26절). 그리고 그는 사람을 구원하여 건져내기도 하며 하늘과 땅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했음을 밝혔다(27절)
분명한 사실은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 민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했다는 말과 다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메시야에 대한 참된 신앙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다리오에게는 그런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리오의 판단과 행동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경륜적 의미를 지닌다. 그로 인해 다니엘은 ‘메대의 다리오 왕’ 시대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시대에 형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본토로 귀환하게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다니엘의 사자 굴 처형에서 얻는 교훈
왕의 금령을 따르지 않아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구출 받은 다니엘의 이야기는 특별히 로마의 황제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동과 신앙적 용기를 제공했음에 틀림없다. 우리 현대인들도 다니엘의 용기 있는 모습을 읽으며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첫째로 다니엘의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경건의 실천을 포기하라는 유혹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다니엘은 매우 높은 정치적 위치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한 위대한 신앙인이다. 현실적으로 무서운 세력으로 다가오는 정치적 권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할 수 있다. 다니엘의 영웅적 신앙의 모습은 우리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니엘로부터 믿음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충성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면서 믿음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고난에 처했을 때 다니엘이 선택한 위기 돌파의 방법은 기도였다. 그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다니엘은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의 경건 생활의 기초는 규칙적인 기도 생활이다. 기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믿음의 원동력이다. 기도는 현실 세계에서 엄습해 오는 모든 유혹과 도전들을 물리치게 하는 힘이다.
둘째, 모함을 받았을 때 다니엘이 선택한 문제 해결 방법이다. 그는 시기와 질투로 인한 모함을 받은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의 대처 방법은 인내하며 묵묵히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놓았다. 6장은 그의 인내의 기다림이 결국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사자 굴에 던져져 죽임을 당한 자는 다니엘이 아니라 그를 모함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앞장서서 그들을 처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을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다.
셋째, 총리로서의 다니엘의 업무 수행에 관한 모습이다. 그는 총리로서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적대자들로부터 지적받을 수 있는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떤 고소할 틈도 없었다. 이러한 다니엘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정직한 모습을 통해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다. 권력이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법도를 이 땅 위에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