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 때의 높은 스님 의상대사가
천등산 깊은 골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무렵의 일이다.
☆☆☆
하루는 의상스님이
천등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앉아 염불을 외고 있는데,
어디선가한 여인이 나타났다.
이 세상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 여인은
몸 뒤에서 후광이 내비쳤다.
의상스님의 젊은 가슴은 갑자기 두근거렸다.
"누구십니까?"
"저는 천제의 명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여인입니다.
부족하지만 스님의 반려가 되어 섬기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의상스님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렸다.
의상스님은 믿음의 형인 원효대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불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여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
그래서 의상스님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나는 아직 수행하는 몸입니다. 그대와 인연을 맺기 어려우니 물러가시오!"
"아무리 수행중이라도 스님과 저는 남자와 여자 사이입니다.
젊은 우리들이 사랑을 맺은들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저의 이 애달픈 가슴을 스님의 우람한 팔로 힘차게 껴안아 주세요."
그러면서 여자는 막무가내로 파고들었다.
의상스님은 황급히 여자를 밀어냈다.
"안됩니다. 수행을 방해하지 마세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으나
의상스님은 어지러웠다.
여자의 짙은 살 냄새와 농익은 아름다움이
강하게 부딪쳐 왔기 때문이다.
☆☆☆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스님 옆에서 바위 위에 불을 켜고
음식 시중이라도 들게 해 주세요."
의상스님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밤의 장막이 산기슭을 덮었다.
하늘과 땅이 칠흑의 어둠으로 휩싸일 때가 돌아 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여자의 후광이 등불처럼 바위 위를 비쳤다.
의상스님은 그 하늘의 등불로 불경을 읽고
여자가 갖다주는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
그곳으로 어느 날 원효대사가 찾아왔다.
"형님, 저는 매일 밤하늘 선녀의 도움으로 저 바위 위에 등불을 켜고,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의상스님은 그렇게 자랑했다.
☆☆☆
그런데 이날 밤에는
여자가 등불도 안 켜고 음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의상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원효대사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등불은 안 켜지고 천상의 음식도 나오지 않을 걸세.
난 이만 가보겠네. 잘 있게, 동생!"
"형님, 오늘밤은 좀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이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다고."
☆☆☆
원효대사는 의상스님을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돌아갔다.
그러자 곧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의상스님이 원망하듯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오는 길에 머리 여덟 개 달린 신이 길을 가로막고 못 가게 하잖아요.
그래서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의상스님은 여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으흠, 그랬었구나!"
☆☆☆
여자는 요괴였다.
불도가 깊은 원효대사 앞에는 감히 나타날 수 없었으나,
대사가 가버리자
의상을 유혹하려고 예쁘게 꾸미고 나타난 것이다.
'나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원효 형님에 비하면 발 밑에도 못 간다.
요괴 하나 꿰뚫어보지 못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머리 여덟 달린 신이란 요괴 자신이고,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원효 형님이었다.
☆☆☆
의상스님은 그 후부터 깊이 뉘우치고
삿된 욕심과 오만을 엄하게 누르는 수행을 했다.
경상북도 예천에 있는천등산(天燈山)이란 산 이름은
이때 의상스님이 하늘의 등불 아래에서 수행했기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