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만나교회
날자: 2024.02.18 주일 낮 예배
말씀:약1:19-21
제목: 기독인의 겸손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경봉독 - 모두함께
19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알고 계십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21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모든 더러운
것과 악의 모든 잔재를 벗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받으라.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 말씀의 요지: 약1:12 시련 아래서 인내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일단 승인을 받으면 주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련과 관련하여 네 가지 가능한 경험이 있습니다.
1. 그들은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징계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2. 그들은 악에게 유혹을 받고 굴복할 수 있습니다.
3. 짐승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그들도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4. 그들은 "인내"될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경험을 가진 사람, 인생의 고난을 단식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견디며, 폭풍 속에서도 햇빛 속에서처럼 신속하게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러나 그들은 울지 않았다." 이들은 축복받은 자들입니다. 인증 낙인이 찍히지 않은 금괴에 대한 화폐-가치가 없는 것처럼,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금속이라도 시험을 거쳐 승인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금속-가짜금괴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유혹에 굴복하거나 시련에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못이 망치의 타격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시련의 고통에 잔인할 정도로 무감각하거나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의도를 이해하고, 대상을 감상하며, 과정의 결과를 바라는 사람. 그 사람은 시험을 받은 후에 시험을 인하여 옳다 인정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CF Deems, DD )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천번 맞는 말입니다. 눈물로 빵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빵의 의미를 모릅니다.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극복하는 자는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 오늘의 본문
1. 기독인의 대화 -약1:19
모든 사람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옛말에 말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말 잘하고 뺨맞을 일 없다. 말은 사회생활의 수단이자 무기이며 생존의 열쇠입니다. 혼자 살면서 혼자 말하는 것을 독백이라고 합니다. 들어주는 자가 없이 혼자 내 뱉는 것이지요. 이것은 혼잣말 한다 라고 말합니다. 대화의 상대가 없을 때는 아무렇게나 말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 할렐루야
그러나 사회생활 또는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대화를 합니다. 즉 상대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을 대화라고 합니다.
각설하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본문에서는 잘 들어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남이 무슨 말을 하면 건성으로 듣습니다. 그렇게 되면 화자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나는 내 말을 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네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말을 네게 함으로써 나의 주장을 우리사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싸움에 시작입니다. 내 안에서 마귀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너희가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마귀는 마귀의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옳다고 행동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것입니다.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마귀는 마귀를 불러들여 군대마귀가 되고 군대마귀는 마왕이 시키는대로 미쳐 날뛰게 됩니다.
주님께서 40주야를 견디시고 이제 마귀의 시험을 만납니다. 주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마귀의 시험 #1: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예수님의 대답 #1 =>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 (마태복음 4:4).
마귀의 시험 #2: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예수님의 대답 #2 =>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마태복음 4:7, 누가복음 4:12).
마귀의 시험 #3: 나를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 예수님의 대답 #3 => 주 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오직 그를 섬기라 (마태복음 4:10).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사도행전에 보면 일찍 순교하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매우 유력한 지도자였습니다(행 12:17, 행 15:12-21). 그는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동안에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요 7:5).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주의 제자가 된 것 같습니다(고전 15:7).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바울을 만나기도 했고(갈 1:19) 바울에게 선교보고를 받기도 하고(행 21:18-19), 바울과 바나바와 교제의 악수를 나누기도 했습니다(갈 2:9, 12).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중추적인 지도자이자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 서신의 저자이기도 하지요.
오늘의 본문 제1장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친형제였던 유다는 서신을 쓰면서 자신을 교회의 장로라고 소개한 것과 달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만 소개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오늘의 말씀의 제목을 기독인의 겸손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를 비하하지 않으려 합니다. 말로는 저는, 제가 이따위 표현을 하면서도 1분만 이야기하다 보면 그가 교만한 사람인지 거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높히려는 사악한 마귀의 궤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일만 악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시작이자 끝짱입니다.
2. 믿음의 시련 -약1:2-4
시험의 인내, 기도를 통해 얻는 지혜, 가난과 긍휼을 행하는 복 그 중에서도 2-4절은 시험에서 인내해야 함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사실 누가 시험이 기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인간의 자연적 사고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시련만을 보고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인내의 열매를 생각하면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것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험과 믿음, 인내와 기쁨은 로마서 5:3-5과 벧전 1:6-7, 4:12-13절에서도 한 데 묶어져 있습니다.
다른 본문들은 미래의 삶에 대한 기쁨이 현재의 한난으로 말미암아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야고보서는 믿음이 온전히 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말합니다. 오늘 이 본문도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강조점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자신의 참됨을 확증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시련은 환영할 만합니다. 이것을 영적 사고 방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와 같이 시련을 만났을 때에도 시련이나 어려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시련이 가져다 줄 인내라는 열매와 그것이 온전함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온전하여 집니다. 참된 믿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인내하게 되고 그 결과 믿음의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겸손은 구원의 상징
오랜 믿음생활을 하신 분들을 보면 무던히도 겸손합니다.
겸손은 모든 믿는 믿음의 구원의 상징입니다. 아무리 태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겸손하지 않다면 그는 건방지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전혀 옳은 길이 아니지요.
오늘의 본문 20절에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義(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분노하는 것을 우리말로 하면 성내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분노조절 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뇌세포에 분노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상대의 말을 자세히 듣고 내가 낮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높히려는 교만의 악마가 나는 요리하는 것이지요. 교만을 제대로 부리지 못하면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조절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라가 이 꼴이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지요. 오늘의 본문은 야고보 사도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약1:14-15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가 시험을 받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내 안의 마귀가 장난질을 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유혹은 어떻게든지 주님과의 화평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를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되어 그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참 모습은 성령님의 열매가 그의 심령을 가득채우고 또한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마귀인지 주님인지 아직도 분간을 못하였다면 지금 이 시간부터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주안에서 승리하시는 만나인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약1:9-10절의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초로 이슬이요 화무 십일홍이라는 말씀입니다.
낮은 것은 쉬운 말로 하자면 저질을 말합니다. 등급이 낮은 자이고 부한 형제는 고급스러운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가 테레비를 보면 고화질이 좋습니까 화질이 낮은 것이 좋습니까
어제 우리는 고화질의 넓은 테레비를 장만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우리 만나인은 고화질의 테레비처럼 고급스러운 성품으로 고급스러운 믿음의 형제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