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 에 발표한 글입니다. )
작년에는 농부학교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배웠습니다.
농사일을 배우면서 자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일 년이었습니다. 금년에는 그 심화과정으로 나무학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텃밭 주위에 빈 땅이 있어 묘목을 많이 심었는데 제대로 자란 나무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나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나무를 보살필 줄 모르니 나무들이 제대로 안 크고 비실대다 죽은 것입니다.
토종과일나무 학교는 무주에서 장영란 선생님이 운영하는 나무학교입니다. 3월 17일 오늘은 그 나무학교가 개학하는 날입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1달 이상 수업을 받았지만 모이는 것은 처음입니다. 첫날 수업은 개강식 뒤에, 정경식 선생님의 접목 실습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와의 만남'시간으로 나무 지도 만들기, 이름표 달기, 나무 수형, 키, 둘레 및 껍질 조사, 꽃눈 잎눈 조사, 냉해 동해 피해 조사가 있습니다.
저는 첫날부터 지각했습니다. 1시간 늦게 도착하니 학생들은 모둠별(팀별)로 7명 정도씩 모여 접목 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부지런히 접도(접목칼)를 꺼내 들었습니다. 접도를 처음 사용해 보니 면도날처럼 날카롭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15,000원에 산 국산 접도입니다.
접목 실습은 20cm 정도 되는 대목(받침이 되는 나무)에 접수(접목을 하는 윗 가지)를 다듬어 삽입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는 대목을 2cm 정도 수직으로 반을 자르고 그곳에 뾰쪽하게 대칭으로 깎은 접수를 끼우는 할접(쐐기접, 쪼개접, 짜개접)이고, 다른 하나는 대목의 한쪽 모서리를 2cm 정도 수직으로 깎아내고 그곳에 한쪽을 깎아낸 접수를 맞붙여 동여매는 깍기접입니다.
혼자서 몇 년 전에 접붙이기를 해봤는데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대목과 접수는 서로 통하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복숭아, 살구, 매실, 자두는 서로 접목이 잘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접목 친화성이 좋지 않으면 접목해봐야 실패합니다. 접목할 때 형성층을 서로 맞대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접목 테이프를 돌려서 묶는 방법도 몰랐으니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접목을 해놓고 2, 3일 뒤에 확인해 보니 대개는 접수가 뒤틀려 있거나 심지어 땅에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접목 시기도 중요합니다. 새순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가 좋다고 합니다. 역시 접목은 잘하는 사람 옆에서 배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배워도 혼자서 수백 번을 연습해 봐야 잘할 수 있다고 하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제일 쉽다고 하는 짜개접부터 배웠습니다. 실습용 대목(길이 10cm, 직경 1cm 정도)을 고정시키고 접도를 들어 윗부분의 정 중앙에 칼을 수직으로 댑니다. 그리고 접도 손잡이를 위아래로 상하 운동을 반복하면서 힘을 조금 줍니다.(아니면 도구를 사용해서 칼을 살살 쳐주면 됩니다.) 그러면 대목이 쪼개지면서 칼이 내려갑니다. 2cm 정도까지 쪼갭니다. 접도가 면도날처럼 날카로우니 이때 잘못하면 손을 다칠 수가 있다고 하니 매우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접수(길이 5cm, 직경 5mm 정도)를 깎습니다. 꽃눈을 잘 보고 위쪽 아래쪽을 분간하여 아래쪽을 위로 들고 깎습니다. 두 면만을 깎아 역삼각형 쐐기를 만듭니다. 약 2cm 길이로 깎아 그것을 대목의 잘라놓은 부분이 찔러 넣습니다. 대목에 미리 조그마한 쐐기를 삽입해 두면 작업이 쉽습니다. 접수를 삽입할 때는 형성층이 서로 맞물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목의 정중앙에 꼽는 것이 아니라 대목의 가장자리, 즉 테두리와 접수의 테두리가 만나도록(일직선이 되도록) 붙여야 합니다.
그 뒤에 접목 테이프로 아래에서부터 돌려 올라가 접목 부분까지 가서 거기서 몇 바퀴 돈 뒤에 다시 내려와 아래에 처음 시작할 때 남겨놓은 테이프와 함께 묶어줍니다. 단단하게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묶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접수는 꽃눈이 2개 이상이 들어가도록 약 5cm 길이로 자르며, 맨 위는 꽃눈에서 1cm 정도 떨어져서 잘라야 눈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접수 맨 윗부분은 접밀이나 본드 등으로 발라서 보호해줘야 합니다.
깍기접은 먼저 대목의 테두리에서 안쪽으로 3m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깊이 2cm 정도로 파내려 갑니다. 말하자면 형성층 부분을 수직으로 깎아내려 갑니다. 그리고 접수는 나무껍질 바로 아래의 연두색의 형성층이 살짝 보일 정도로 2cm 정도 깎습니다. 이때는 경사지게 깎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수직이 되도록 깎습니다. 그래야 대목과 잘 붙게 됩니다. 반대쪽은 접수를 깍기 전에 미리 끝 부분만 대각선으로 살짝(4mm) 정도 잘라줍니다. 그런 뒤에 접수를 깍고 접수와 대목을 맞대게 하여 테이프를 돌려줍니다.
이렇게 연습을 하고 18cm쯤 되는 개복숭아 대목을 받아 그 위에 5cm 정도 되는 와룡백매 접수를 붙였습니다. 와룡백매는 봄에 하얀색 매화가 피는 나무로 100년쯤 자라면 누워 있는 용처럼 보인다고 하는 매화입니다. 실습하고 나니 각자 집에 가져가도 된다고 하여 가져와 동편 언덕에 심었습니다. 100년 뒤 봄, 정확히 2124년 봄에는 동쪽에서 하얀 용들이 날아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접목 실습을 마치고 나무 관찰 시간이 되었습니다. 3개의 모둠, 즉 능금모둠, 오얏모둠, 배모둠 중에서 저는 배모둠에 속해 과수원으로 갔습니다. 이곳 과수원은 시험포라고 부릅니다. 실험 재배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 전통 배 종류로는 돌배, 문배, 참배가 있습니다. 시험포에는 정선 참배, 광양 백문배, 인제 돌배, 백두 돌배 등이 있었습니다. 참배는 그냥 먹을 수 있는 보통 배를 말하며, 돌배(똘배)는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아주 작고 단단하며 떫고 신맛이 나는 배입니다. 배나무 대목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문배는 단단하니 무르게 해서 먹는 배라고 합니다. 그 꽃은 은은하면서도 매혹적인 향기를 발산한다고 합니다.
나무 종류를 파악하면서 지도를 작성하고, 벌레 먹은 곳은 없는지 벌레가 알을 까놓은 곳은 없는지 등등 그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이름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니 나무 관리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유실수는 혼자서 맛있는 과일을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자비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도 어렵겠지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아와서 같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 반찬을 싸와서 나누어 먹었는데 신기한 반찬을 만났습니다. 소금에 절인 감입니다. 가을에 떫은 감을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이렇게 맛있는 반찬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고추와 소금을 물에 넣고 절인 돼지감자를 준비해 갔습니다. 직접 만든 두부, 김치 그리고 시금치 된장국, 족발까지 푸짐한 뷔페였습니다.
식사 후에 모둠별로 발표와 각자 소개를 하고 각종 씨앗과 모종을 받았습니다. 시험포에서 준비한 씨앗으로는 토종 메주콩, 부안 제비콩, 청콩, 서리태, 어금니 동부, 청팥, 청태, 검은팥, 부엉 다리콩, 참밀, 먹골참외, 사과참외, 토종구억 배추, 방아, 그리고 개암 씨앗이 있었고, 백합 모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콩은 나무 주위에 심으면 질소를 모아 주기 때문에 좋다고 하여 여러 종류의 콩을 가져왔습니다. 집에 가면 묘목과 나무들 주위에 심어야겠습니다. 나무를 관리하면서 콩이 자라는 것도 보고 수확을 할 수 있으니 1석 2조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리 주문했던 전통과일나무 묘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속리산 오얏 1그루와 녹색 오얏이 열리는 녹리 2그루, 그리고 부암동 능금나무 묘목 1그루를 받았습니다. 오얏은 자두를 말합니다. 속리산 오얏은 붉은색 자두고, 녹리(綠李)는 노란색으로 익는 자두입니다. 텃밭에 이미 심어 놓은 묘목들이 많은데 공간을 찾아 이 묘목들을 심어야겠습니다. 오늘 또 한 가지 큰 수확은 자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집 주위에는 씨앗에서 태어나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실생의 개복숭아, 매실, 감나무, 밤나무등이 있는데 이 나무들을 잘 관리하면 훌륭한 대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 나무들의 지도를 만들고 잘 관리해서 맛있는 과일이 주변에 주렁주렁 열리게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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