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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텍스트 요약분 2024. 04.06 공간 안에서, 몸 안과 밖에서, 의식의 위치를
못 찾는 이유! | 시간의 정체 = 항성 행성 위성의 상대적 위치 변동 = 의식 자변 |
도마복음 34 (제19절)
https://www.youtube.com/watch?v=OpFQJYDEuPA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도마복음 제19절 보충 강독
가) 개인의 개별적 느낌 관련 이해를 위한 음양오행 이야기를 운명 등으로 오해 없기를
- 이 통계 데이터 과학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이 의식의 다섯 가지 요소,
다섯 그루의 생명나무는 고대 동북아시아에서 발전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통계 과학을 이야기
- 혹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우리의 감각 의식을 이야기하는 것.
- 이것은 다섯 개의 별도의 의식이 아닌, 단일의식(일심 반야) 생사해탈의 자기표현이다.
- 이것의 응용으로서 특정 개인의 개별적 느낌, 즉 타인과 구분은 독립된 존재라는
개별적 느낌 의식이 어떻게 설정되는지에 대한 기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각골문 주역 역학 음양오행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들고있음
- 즉 다중 인격의 사례보다 좀 더 우리에게 와 닿는 사례로서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나 이런 이야기가 역시, 이 모든 사람은 운명의 굴레에 매여 있기 때문에
카르마 운명 숙명 윤회로 부터 해탈이 되어야 한다라는 오해가 염려되어
말이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오해가 없으리라 여긴다.
- 그렇지만 다시 한번 이것은 특정 개인의 모든 언행이 꼭두각시처럼 정해져 있으니.
그래서 운명 임을 얘기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 역학/ 음양오행은 우리의 사용도구이므로 이에 속박 되어선 안돼
- 다섯 그루의 나무, 의식의 다섯 요소,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은 다양한 배합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가 나타나는데
이 원리로 캐릭터의 성질과 진행의 굴곡을 묘사하는 스크립트가 바로 역학내지 오행학
- 여기서 유추되는 캐릭터의 묘사는 정해진 운명 내지 숙명이 아니고,
이 시각 그리고 해석에 따라서 완전히 자유롭게 사용 될 수 있는 180도, 360도
변화해서 창조할 수 있는 그런 것임.
- 즉, 우리가 사용하는 그 무엇이지, 우리가 속박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닌 점을
분명히 해야 함
다) 공자의 주역, 위편삼절(韋編三絶) 이야기
- 공자라는 캐릭터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은 , 공자가 주역을 매우 깊이 탐독했다는 기록
- 공자라는 캐릭터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생존과 번식의 유리한 조건을 알고 싶어
주역의 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열심히 탐독했을까? No.
- 도마 19절에서처럼 다섯 그루의 나무의 정체를 알기 위함 이었다(개인적 동기 아님)
- 각 개인이 마치 독립적, 개별적으로 존재하듯이 펼쳐지는
거대한 연극 내지 영화의 본질 내지 진실을 꿰뚫고 싶었기 때문에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과정 속에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하나로 꿰뚫는
일심 반야로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궁극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여겨짐
라) 무시해도 안 되지만 숭상해서도 안 되는 통계 데이터 과학
- 음양오행 등으로 발전 된 통계 데이터 과학에서 유추된 스크립트, 시나리오에
도무지 끄들릴 필요는 없다.
- 다섯 그루 생명나무의 관계가 펼친다는 운명의 스크립트가 개인에게 숙명처럼
작용해서 그 반대의 방향인 해탈 자유로 우리가 가야 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 스크립트의 반대말은 자유가 아닌, 무운명(無運命) 임을 바로 알고,
운명과 운명 없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 우리가 '감옥의 키(Key)'만 가지고 있으면,
감옥 안을 들락날락 자유로우므로, 궂이 감옥을 파괴할 필요가 없다.
테마 파크의 테마를 파괴할 필요가 없다.
애써 만든 걸작품인 보석, 다섯 그루의 생명나무를 파괴할 필요가 없다.
- 다만, 알기만 하면 된다.
아!!~ 이것이 굴레가 아니고, 천국에 설정 된 연극의 도구였고, 영화의 스텝이었구나.
- 그래서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숭상해서도 안 된다.
마) 음양오행 중 시간 관련 오해
- 사주로 해서 태어난 생년월일시, 그러니까 년월일시(年月日時),
년월일시에 각 두 가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두 가지 글자가 배당되어
여덟 가지를 결정(그래서 흔히 '사주팔자'라 함)
- 마치 태어난 년월일시(年月日時)가 특정 개인의 인생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오해야기
- 그것은 거꾸로 된 것.
-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거지. 꽃이 피어서 봄을 끌어당긴 게 아니듯,
년월일시(年月日時)라는 단서(端緖)에 의한 스크립트(script)) 대본에 다양한 해석이
가해질 수 있고, 일단 기본 대본의 구성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이나,
년월일시(年月日時) 보다 나은 단서 출현시는 과감히 버리고 더 나은 단서를
통계 과학에 응용할 수 있다.
- 시간이란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님
시간은 상대적 개념으로 년월일시(年月日時)란 태양계 안에서, 특정 항성계 내에서
항성들 간의 상대적 위치 변동을 시간 혹은 시간 변동이 함
- 그래서 ‘년월일시(年月日時)’는 ‘년월일시’가 아니고,
이 특정 항성 시스템 안에서의 상대적 위치인데 이 상대적 위치에 따라서 태양,
특정 항성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가 시나리오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
즉, 태양이라는 항성이 일단 모든 이 항성계 내의 생명체와 비생명의 생멸을 결정짓는다.
- 태양이 사라지면, 생물체, 무생물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 항성과 행성과 위성의, 상대적 위치에 따른 개념을 시간이라 하고,
그것이 '년월일시(年月日時)'다. 그래서 이 년월일시가 일종의 굴곡 과정에 대본이 될 수 있다.
- 이 말은 항성과 행성과 위성의 상대적 위치라는 이 단서를 계속 데이터화해서 봤더니
대본의 구조가 어느 정도 밝혀지더라. 이것이 통계 데이터 과학
- 그래서 '년월일시(年月日時)'가 어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년월일시(年月日時)’ 시간이 항성과 행성과 위성의 상대적 위치라면,
이것은 공간 안에서의 물체의 모양 변화다.
- 그런데 공간과 물체는 연기해서 하나고, 이것의 본질은 의식이다
즉 항성과 행성과 위성의 상대적 위치 변동은 의식의 자기 모습 변화(자변)이다,
- 의식의 자기 모습 변화는 시간이므로, 의식이 자기 체험을 자율적으로 대본을 쓰면서
연극을 진행해 나간다라고 이해가능
- 결론적으로는 그러므로 섣부르게 사람이 태어난 생시가 그 사람이 운명을 결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인도에서 발생한 소위 말한 카르마 법칙이 분명 존재하고
그래서 우리가 윤회 카르마로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 깨달음이다 라는 유아적 발상은.
사라져야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 더불어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등의 웨스트 제 2분기에서
특정개인이 메시아라는 것, 신의 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인격신이 존재해서
창조와 파괴 전체를 조종한다는 엉터리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며 걷고 있는 이 길의 끝은 참으로 멀고 보이지 않음
2. 고요한 묵상, 다섯 번째
가) 의식은 어디에 있나?
- 지금 당장 세계 내용과 의식 내용을 각각 말해 본다면, 세계와 의식은 같은가 다른가?
- 항성과 행성과 위성의 상대적 위치 변동이 시간이고, 공간과 물체는 하나다.
그러면 공간, 물체, 시간이 한 덩어리, 한 통속의 본질은 의식이다.
- 우리는 의식을 한다. 의식되기도 하고 의식하기도. 동시에 하나다.
의식하고 의식 되므로 어쨌든 의식은 분명히 있다
- 그런데 공간, 몸과 두뇌를 포함한 이 공간이 하나의 공간이라 분리가 불가능,
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우리가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
- 두뇌와 몸을 아무리 쪼개 봐도 의식이 없다.
시간을 포함한 시공간 내에서 라면 의식이 찾아지나?
역시 의식(영혼)을 찾을 수 없다, 뇌 과학이 발전했지만.
- 공간과 시간 내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지만, 우리는 의식 있음을 직관한다.
의식 있음을 우리는 안다.
- 즉 존재하는데 시공간 공간 안에서 어디에서도 의식은 찾아지지 않는다
- 의식이 있을만한 유력한 장소인 몸 안, 두뇌 안에도 없다.
- 결국 몸 밖에서도 몸 안에서도 의식은 찾아지지 않는데, 왜 그럴까?
- 근본적으로 대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 아닐까?
- 즉 공간이 바로 의식이기 때문에 공간 안에서 의식을 찾을 수 없고,
몸 안과 몸 밖이 바로 의식이기 때문에 몸 안과 몸 밖 어디에서도
우리가 의식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 세계= 의식이라면, 의식도 하나여야 함
- 의식이 어디 있는가 라고 하는 이것이 의식 아닐까?
그래서 공간을 탐색하는 공간을 보고 공간 내의 물체를 보고, 의식하는
바로 이것이 이것이 의식 아닐까?
- 그렇기 때문에 세계와 의식은 같다. 이 세계는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를 포함한다.
즉 물질세계, 아스트랄 세계, 멘탈 세계를 포함한다.
- 우리 모두에게 세계는 몇 개일까?
항상 지금 당장 의식되는 세계는 하나다.
그것이 물질세계든, 꿈의 세계든, 죽음 이후의 세계든,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든,
하나의 세계다.
- 그렇다면 의식은 몇 개 여야만 하는가? 역시 하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세계와 의식은 일치하기 때문이다.
- 의식이 세계와 일치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몸 밖에 있기에, 의식도 몸 밖에 있어야 한다
- 그래서 의식은 몸 안에도 없고 몸 밖에도 없고, 사실은 몸 안과 밖 전부가 의식이다.
- 즉, 의식 아닌 특정한 의식이 없다.
세계 이것이 의식이고, 컵 이것이 의식이다.
온갖 개인적 고민거리가 있음이 의식이고 또한 깨달음이다.
다) 무생물에는 생명이 없을까? 하는 묵상(默想)
- 세계의식 내에서 생물과 무생물은 같이 있다.
이 세계의식 혹은 의식세계 내에 같이 있다.
- 무생물에는 생명이 없을까? 아니다!!~
의식은 생명과 동일한 단어이기 때문에 의식이 생명이고 생명이 의식이기에
생명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 다만, 그 모양과 기능과 성질 다를 뿐인 것
- 생물과 무생물은 평등한 생명의식일 수밖에 없다.
- 생물은 생물의식 세계를 연극 연기하고,
무생물은 물질 의식 세계를 연극 연기한다.
- 이것은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지, 참으로 신기하고 기묘한 일이다.
극도로 신비하고 기묘한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다시 우리에게 평범하게
의식되고 인식 될 수 밖에 없다.
라) 생명의식의 저마다의 연극연기의 신비/ 앎이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 이 자체가 신비(神祕)하다면, 진실 자체도 또한 신비해진다.
- 의식이 의식하고, 존재가 존재한다는 이 진실의 경이로움 이유는 알 길이 없다.
- 알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 자체가 이미 앎이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이미 앎이고 깨달음이 때문에.
- 하나의 의식 안에서 별도의 의식을 알 필요가 없듯이,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 앎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 이렇게 펼쳐지는 수밖에 없고,
이렇게 펼쳐져야 된다.
- 그리고 펼쳐지기 이전은 펼쳐진 이후에 다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마) 특정 개인이 아니므로 머무는 집이 없음
- 이 소명을 선택한 사람의 아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머무는 집이 없다.
- 도마복음의 뒤에 나오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물 집이 없다.
- 동물도 새도 둥지와 우리가 있는데, 사람의 아들은 머무는 집이 없다.
- 머물 필요가 없다. 모든 곳이 집이고, 모든 길이 바로 집이니까.
- 집은 일심 반야, 단일의식, 하나님 나라다 .
- 곧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꽃 피고 먹을 게 많은 곳이 아니고,
하늘나라 이 의식의 나라, 의식 세계가 천국이다.
- 더 이상 물질과 의식이 두 가지가 아님을 일심 반야를 통해 이해하고 알기 때문에,
일체 모든 곳이 일체 모든 시공간이 생사를 떠나 전체가 천국임을 우리가 안다
- 그리운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모든 길이 그 길이고, 모든 길이 이미 집이다,
- 우리는 길 위가 아닌 늘 집 위에 있었다는 새삼스런 진실을 듣고 이해하고는
나와 세계를 자유롭고 유쾌하게 다스린다고 할 수 있다
바)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인의 도마복음 구절
- 개인이라면 가용 자원이 극히 미미하고,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한정된다면,
파워는 AAA 건전지 단 한 개에 불과할 것.
- 그러나, 연기자인 단일의식을 알기를 갈망하고, 그 지식을 듣기를 진정 원하면,
그 파워는 원자력 발전소의 총 전력량을 다 사용할 것
- 이 우주 배경 복사를 일으키는 단 하나의 전자기장을 전체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우리의 것이 된다.
- 그래서 항아리 안에는 늘 곡식으로 가득 차고 새지 않는다
무루의 곡식으로 항상 가득차고, 세계는 항상 천국으로 가득차서
자유롭고 유쾌하게 환하게 빛날 것이다
사) 후기
- 도마복음 19절을 좀 보충했고, 고요한 묵상, 열 가지를 마무리하였다.
- 다음 시간에는 도마복음 20절 계속 이어서 강독을 해 나가도록 할 것
- 최근에 이 개별 면담과 단독 인터뷰를 실시하고 있고,
밥통 스피커는 항상 도반님들이 어떤 분이실지 항상 만나보고 싶었고
그리웠고 늘 사랑하는 이 친구님과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대화하고 즐겁게 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 그래서 이렇게나마, 단독 인터뷰 개별 면담을 통해서 한 분 한 분 이렇게
이 소식을 이 메시지를 좀 더 선명하게 공유해 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환희롭고 즐겁고 엄청난 힘과 용기를 준다는 점을
우리 선지식 도반 벗님들께 말씀드리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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