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18일(목) 이사야 5:1-7 찬송 412장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개역 개정)
- 포도원에 대한 농부의 기대와 실망 -
이사야 5장은 소위 ‘포도원의 노래’로 불리운다.
이 노래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축복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가 하는 사실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죄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배반함으로써
급기야 심판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노래한다.
이러한 노래의 첫 단락인 오늘 말씀에는
포도원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포도원인 선민 이스라엘을 위하여
베푸신 은혜와 그들을 향해 가지셨던 기대(1-2절)
그리고 그 기대에 반하여 좋은 포도를 맺지 않고 들포도를 맺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큰 실망과
진노를 내리실 것을 경고하는(3-7절)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포도원은 종종 하나님 나라
또는 교회를 가리킨다.(마21:33-41; 막12:1-9; 눅20:9-16)
이런 점에서 여기 포도원의 노래에 담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 그리고 실망과 진노는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실망을 주고
진노를 당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그분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요일5:3)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선을 행하는 곧 좋은 포도를 맺는
참 성숙한 성도가 되기에 힘써 노력해야 한다.(요15:5; 롬12:1-2)
4절)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하나님은 당신의 포도원인 유다에게서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리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포도원에서 기대하신 것이
‘많은 포도’가 아니라 ‘좋은 포도’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은 가능한 한 많은 포도를 얻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포도가 아무리 많이 열린다고 해도
그것이 먹을 수 없는 들포도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포도가 얼마나 많이 열렸는가가 아니라 좋은 열매가 맺혔는가가 보다 중요하다.
과수원을 하는 농부들은 많은 열매를 기대하지만
무조건 많은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열매를 맺으면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과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나무의 경우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순 가운데 일정한 양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제거하여 준다.
또 다른 과일나무의 경우도 일정한 양의 열매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솎아내 준다.
즉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 유다는 질은 형편이 없고 오직 양만이 풍성한 사회였다.
유다는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공평이나 의와 같은 좋은 열매는 맺지 못하였다.
대신 그들은 물량 공세로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
사1:11을 보면 하나님은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었다.’고 말씀하신다.
실로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많은 제물을 바쳤다.
또한 그들은 각종 절기를 지키는데도 열심이었다.
웃시야와 요담 시대의 유다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였다.
그리하여 유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과 절기를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이사야 사역 초기 유다는 양적으로는 많은 열매를 맺는 포도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많은 열매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의 열매를 역겨워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포도원인 유다가
많은 열매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포도원을 버리셨다.
지난날 한국 교회를 보면 정말 많은 열매를 맺었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이 없고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지 1세기 만에
국민 네 명 중의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기에 교회마다 몰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맺은 열매의 질은 어떠한가?
과연 좋은 품질의 열매들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열매들인가?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세상의 존경과 찬사 대신에 지탄을 받고 있다.
이를 세상은 본질적으로 교회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교회가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수는 있어도 지탄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직 들포도같은 열매만 가득 맺었기 때문은 아닌가?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안중에도 형편없는 열매를 맺는 교회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겠는가?
이사야 당시의 유다를 보면서 역겨워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교회 열심히 나오고 헌금 많이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 가운데서 의의 거룩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 가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 역겨운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포도원인 교회는 교회대로 포도나무인 성도 각 개인은 개인대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도록 새롭게 변혁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