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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삼천 일의 연공 1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이 있다. 천하에서 가장 추운 장소! 사계(四界)의 변화가 없고 오직 극한지기(極寒之氣)만이 있는 현빙담(玄氷潭) 안. 물 위에 떠 있도록 장치되어 있는 만년냉옥상(萬年冷玉床) 위에 정좌(定坐)하고 있는 소년 하나가 있었다. 나이는 십오 세 정도, 피부가 눈보다 희었는데 얼굴 모습은 아주 추악한 것이었다. 오관(五官)이 일그러져 있다고나 할까? 눈, 코, 귀, 입이 제멋대로 붙어 있어 첫인상치고는 아주 고약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합장(合掌)한 채 한 가지 기오무쌍한 구결을 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근처 현빙담에서 일어나는 극음지기는 뼈를 얼리고도 남음이 있는 것인데, 소년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오히려 더워 하는 듯 이마에 땀을 매달기까지 했다. 그의 모습은 좌불상(坐佛像)을 연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 소년의 합장되어졌던 손이 아주 조심스레 내리어지며 눈꺼풀이 위로 쳐들려지며 한 쌍의 맑 은 눈동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봉황의 눈빛이라고나 할까? 그의 추악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신기한 눈빛이었다. '드디어 육(六) 성(成) 수준에 이르렀구나. 이제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주 오랜 동안의 고적하고 외로운 생활이 그를 범인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언제 강호로 나가 아버지와 대숙에 대한 것을 알아보 나?' 그는 바로 상관안이었다. 상관안은 자신의 나이가 얼마인지도 몰랐고, 바깥 세상이 어찌 변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신비롭다 여겨지는 태양현공을 익히는 일이 그것이었다. 그는 범인이 일백 년 세월 동안 해야 할 일을 삼천 일 안에 해내야 하는 막중한 의무를 갖 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운명이 이런 것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상관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끼르르르-!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어디선가 아주 강렬한 빛이 흘러 들어왔다. 동굴 천장에 네모난 암문(暗門) 하나가 열리며 그곳을 통해 동아줄 하나가 내려오기 시작했 다. 동아줄 끝에는 바구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상관안은 그런 광경을 아주 많이 보아 온 사람같이 조금도 놀라지 않고 동아줄에 매달린 바 구니가 아주 가까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바구니는 곧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구니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커다란 물주전자였다. 다른 하나는 식량을 대신할 수 있는 벽곡단 가루 한 그릇이고, 마지막 하나는 한 장의 봉서였다. 상관안은 세 가지 물건을 아주 빠른 솜씨로 꺼내 내려놓은 후, 제일 먼저 봉서를 손에 쥐었 다. 펼치자 잘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려운 고비는 이제 다 지나간 셈이다. 이제 꾸준한 연공이 너를 천하제일 내공의 소유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은 아주 상투적인 글귀였다. 상관안이 처음 신인으로 알았던 어떤 신비한 인물이 상관안의 연공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글이 그것이었다. 이날 것에는 조금 다른 구결이 있었다. <오늘로서는 천오백 일이다. 이후 천오백 일이 더 지나면 출관(出關)을 허락하겠다. 지루할 것이나, 먼저의 천오백 일을 참아 왔듯 잘 참아 내거라. 너를 천하제일고수로 키우기 위함이 니까.> 글은 그것으로 끝을 맺었다. '벌써 천오백 일이 지났구나. 이제 천오백 일이 더 지나면 나는 내가 어디의 누구에게 무공 을 배우고 있는지 알게 되겠군. 그리고 내가 무슨 이유로 고수로 키워지고 있는지도 알게 되겠군.' 상관안의 눈빛에 희미한 동요지색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크게 흥분했을 것이나 상관안에게는 약간의 동요가 있을 뿐이었다. 안정력(安定力)이 내공력의 신장을 수십 배 초월해 지대(至大)해진 이후이기 때문이었다. 그를 놀라게 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마귀의 제자가 되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으리라. 빙굴(氷窟) 안에서의 생활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삼엄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지옥현빙담의 시련은 상관안에게 아주 놀라운 것 을 가르쳐 주었다.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지극히 미약한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마음을 모질게 먹을 경우, 그 인간으로 인해 천하가 달라질 수 있다.' 상관안은 인간에게 무궁무진한 잠재력(潛在力)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몸을 통해 알게 되 었다. 그의 내공은 일취월장했다. 비록 무공 초식이라고는 단 일(一) 초(招)도 시전하지 못하는 상관안이었으나 그의 내공력 은 천하에 드문 것이 되어 갔다. 그가 복용한 음양혈로는 천하에서 보기 드문 영약이었다. 음양혈로와 약효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전설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두 가지 약재뿐이라 했 다. 상관안은 그 두 가지가 무엇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한 가지는 만년화리(萬年火鯉)의 내단(內丹)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룡혈옥지(地龍血玉芝)라는 것으로, 만 년에 한 치 자라난다는 세외의 보물이 었다. 그 두 가지와 음양혈로를 합해 천외삼약(天外三藥)이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음양혈로 한 방울은 삼십 년 연공한 수준의 내공력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상관안은 무려 열 방울이나 되는 음양혈로를 복용했으니, 내공 수준은 가히 오(五) 갑자(甲 子)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 내공력이라면 과거 천하제일고수로 불리어졌던 중원무성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상관안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성취였다. 그것은 영약의 도움이 전부가 되어 벌어진 현상은 결코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관안의 천부적인 자질이었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의 부단한 연공 이었다. 영약의 도움은 그 셋째 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상관안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일신 내공의 성취가 무(無)에서 삼백 년 수위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서는 참기 힘든 시련을 잘 참아 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옥현빙담 안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장소였다. 외계(外界)와 연결된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 간혹 가다가 위에서 내려오는 음식물이 담긴 바구니뿐이었다. 목욕을 할 필요도 없고, 얼굴을 씻을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 세상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할 필 요도 없는 곳이었다. 지옥현빙담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극기(克己)의 노력뿐이었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힘든 고통을 무사히 잘 참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여겨지기에 순간 순간의 고통을 악착같이 참고 이 겨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상관안의 체구는 점점 성장되어 갔다. 그의 모습은 천하에 두 명이 없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것이 되어 갔다. 몸은 대나무같이 말랐고, 피부빛은 백옥(白玉)같이 흰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인피면구로 가리어지지 않은 얼굴 밑부분에 한한 것이고, 얼굴 위는 전혀 다른 빛이었다. 놀라운 것은 개방에 비전되어 왔다는 인피면구의 오묘하고 신기한 신축 작용이었다. 그것은 아주 얇았으나 펼칠 경우 사람의 키만큼 늘릴 수 있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약물을 사용하기 전에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인피면구의 안쪽에는 원래 한 가지 접착제가 발려 있었고, 그것이 수년 간 인피면구와 상관 안의 얼굴 가죽을 하나로 붙여 놓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안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자신이 누구라는 것도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그의 뇌리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실로 오묘한 태양현공의 구결뿐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익히면서도 시전할 기회를 갖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 다. 그것은 신비인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구결대로 연공해 내공을 익히되, 구결대로 내공력을 시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와 나의 약속이고, 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나의 명을 어길 경우, 나는 너를 포기할 것이다.> 언젠가 이런 글이 적힌 쪽지가 상관안에게 전해졌었다. 신비인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신비로 점철되어 있었다. 목소리로 보아서는 나이가 많은 노파 같은데, 상관안에게 베풀고 있는 것은 가히 인간의 범 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한 인간의 자유를 이 정도까지 속박할 수 있는 것인가? 진짜 인간이 아닌 신인(神人)인 것인가? 상관안은 그녀가 신인이 아닌 무가(武家)의 고수라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분은 인간이다. 어렸을 때에는 그분이 신인인 줄 알았으나, 이제는 그분이 나와 같은 인 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상관안은 간혹 이렇게 속으로 외치곤 했다. 신비인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위를 향해 질문의 말을 퍼부었을 것이다. -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이시기에 나를 이러한 경지로 몰아넣으시는 것입니까? 상관안의 입 안을 맴도는 질문들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 내게 무엇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열 방울의 음양혈로는 아주 귀한 것인데, 왜 내게 전하 시는 것입니까? - 그 오랜 시간 비밀을 유지하시는 까닭은 무엇이십니까? 왜 나를 벙어리의 금제 안으로 몰아넣으셨습니까? 상관안은 벙어리라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경지는 도달하기 아주 힘든 경지였다. 세 치 혓바닥이 펄펄 뛰도록 살아 있는 데도 단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참아야 한다는 것 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것일까? 내게 어떠한 비밀이 있기에 이렇듯 심령을 제압하는 것 일까? 최후의 한 가지 약속은 무엇일까?' 상관안은 수천 수만 가지의 의혹을 갖고 있었으나 단 한 가지 이유가 있기에 신비인을 의심 하지 않았다. '나는 신비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분이 음양혈로로 탈태환골시켜 주지 않았다면 나는 십오 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분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이런 사실이 없었다면 상관안은 신비인에 대해서 의심하고 신비인의 약속을 저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신비인이 천하에서 가장 귀한 영약을 내려 자신을 탈태환골시켜 주고, 죽음에서 벗어 나게 해 주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 어려운 순간 순간을 잘 이겨 나가고 있는 것 이었다. 2 온기라고는 한 숨도 없는 차가운 동굴 안. 언제부터인가 천하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아주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웅웅……! 동굴 한가운데에서 벌 떼 우는 소리같이 파공성이 들려 왔다. 동굴 가운데 허공에 걸려 있는 듯한 홍운(紅雲) 하나가 있었다. 소리는 붉은 구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가운데 울려 나와 동굴을 징징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신비한 구름이었다. 얼핏 보면 불에서 피어난 김 같았고, 자세히 본다면 그 안 에 인간의 형상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구름같이 보이는 붉은 기운은 사실 구름이 아니고 인간의 진원지기(眞元之氣)가 극에 달한 나머지 무형지경(無形之境)에서 유형화(有形化)되어 체외(體外)로 빠져 나온 것이었다. 웅웅……! 붉은 구름이 신축될 때마다 들려지는 은은한 파공성은 붉은 기운에 막강한 힘이 실려 있음 을 뜻하고 있었다. 그 힘이 사물을 향해 시전될 경우,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가 만들어질 것이다. 붉은 기운은 한 명의 나청년(裸靑年)을 에워싸 나청년의 몸을 세 자 허공에 걸어 놓고 있었 다. 진원지기가 유형화된 힘은 사실 청년의 몸뚱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청년의 근본(根本)이 되는 힘이었고, 청년이 알 수 없는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든 삼백 년 수위의 내공력이었다. 붉은 구름이 점점 커지다가 한순간 원형을 이루며 청년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 다. 처음에는 도는 속도가 아주 느렸으나 시간이 갈수록 빨라져 나중에 가서는 붉은 테가 만들 어진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 일순. "휴!" 청년이 입술을 오므리자 붉은 연기가 회전을 중지하고 한 줄기 선을 이루며 입술 사이로 빨 려 들어갔다. 청년의 몸뚱이가 그와 동시에 사뿐히 떨어져 내려 짙푸른 물 위에 잠길 듯 떠 있는 만년냉 옥 침상 위로 내려졌다. '드디어 완성했구나. 천지현관(天地玄關)이 타통되는 순간의 희열을 억조창생과 나누어 가질 수 없음이 애석하군.' 붉은 연기를 코로 빨아들이며 침상으로 내려선 청년의 눈이 뜨여지며 부드러운 눈빛이 흘러 나왔다. '너무도 오랜 나날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청년이 되었구나.' 자화자찬하는 가운데 처량한 미소를 짓는 청년은 무림제일기재의 아들 상관안이었다. 그의 키는 남자 키로 적당한 키였다. 그리고 상반신이 잘 발달되어 든든해 보이는데, 아쉬운 것은 살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운기조식(運氣調息)에 열중하느라 살찔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피부빛은 은은한 광채를 띠고 있는 흰빛이라 신성스러웠고, 모발은 흑단같이 윤기나는 검은빛이었다. 피부는 탄력이 있는 가운데 희고 고와 여인의 피부를 방불케 했고, 손의 선이 섬세해 무인 (武人)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가운데 매혹적인 눈빛 두 줄 기였다. 그 눈빛을 마주 대하고 심령상의 동요를 느끼지 않을 처자가 없으리라. 그의 용모가 이제는 자신의 진짜 피부와 같이 인피면구로 인해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라고는 하지만, 눈빛의 신비로움을 훼손할 수는 없었다. 상관안은 너무도 긴 시간 동안 운기조식을 했고, 조금 전 완벽의 경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과거가 꿈만 같구나. 내가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의 고독을 견디어 냈는지 알 수 없군!' 그는 자신이 천행으로 연공에 성공했다고 여겼다. '나이가 지금 정도였을 때 연공을 시작했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똑똑하다고는 하나 나이 어렸을 때 연공을 시작했기에 이렇듯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범인이 오십 년 내내 해도 이루지 못할 일을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한 것이다.' 상관안은 자신의 혈통에 대한 강한 긍지를 느꼈다. 그의 아버지는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그의 어머니는 천하제일 의 미녀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삼 년 맡아 기르며 천하에 희귀한 고서들을 구해 읽으라 했던 대숙 천지대협 이옥룡의 공 또한 잊지 못할 것이었다. 가장 큰 은혜을 베푼 사람은 열 방울의 음양혈로를 먹인 신비인이었다. '이렇게 좋은 연공실이 아니었다면 태양현공의 기운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일 장을 칠 경우, 이 안의 모든 것이 숯으로 화하리라.' 상관안은 신비인이 자신을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고행 속에 집어넣은 것을 이제 자비로움 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으리라.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었다. '그분은 내게 두 번째 목숨을 주신 분이다. 그분은 언제고 내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 리라고 믿고 내게 모든 기대를 거신 것이다. 나는 그분이 내게 건 기대에 부응해야만 한다.' 상관안의 입가에 웃음꽃이 매달렸다. 그의 손끝이 얼굴에 닿아 있었다. '내가 처음 여기 올 때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면 매우 놀라실 것이다.' 그는 신비인에게 모든 것을 밝히며 사죄하고 있었다. '후후… 내 이름이 이능운이 아니고 상관안이라는 것을 말한다면 매우 놀라시겠지? 내게 용 해액(溶解液)이 있다면 인피면구 아래 발라져 있는 접착액을 녹여 나의 본얼굴을 그분께 보 여 드릴 수 있을 텐데…….' 상관안이 웃으며 있을 때. "흠……!" 어디선가 아주 경미한 호흡 소리가 들려 왔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경미한 숨소리였으나 상관안은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누가 왔군.' 그의 눈이 동굴 천장에 집중될 때였다. "축하한다." 아주 오랫동안 잊었었던 신비노파의 말소리가 고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매우 놀라워하는 말 투였다. "너의 근골이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고, 너의 오성(悟性)과 기억력 또한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네가 삼천 일에서 육백 일을 단축해 신공을 성취했다니… 그저 놀라운 뿐이 다." '육백 일을 단축했다면 여기 온 지 이천사백 일이 지났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칠 년 정도구 나. 내 나이가 어느 새 십칠 세군.' 상관안이 넋 나간 표정을 할 때, 노파의 신비한 음성이 이어졌다. "너의 출관(出關)을 허락하겠다. 하나, 너는 육백 일 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 상관안이 흠칫 놀라워하자. "너의 짝은 아직 미숙한 상태이다. 그 아이를 능가한 관계로 시간이 맞지 않을 것이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짝이라니?' 상관안이 야릇한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게 천일취(千日醉)를 주겠다. 그것을 먹고 푹 자거라. 그러는 사이 너의 짝이 너와 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 아이가 출관하는 날, 내가 무슨 이유로 네게 삼천 일 간의 연공을 강요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내가 누구이고, 너의 내공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게 될 것이다." 신비한 말소리와 함께 동굴 한쪽에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함께 열리며 작은 바구니 하나가 동아줄에 묶여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구니 안에는 술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크기는 작은 호로병만 하고, 뚜껑 대신 밀랍이 병 주둥이를 꼭 봉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안은 옥침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서 그것을 꺼내 쥐었다. "마개을 따고 안의 것을 마셔라. 그러면 단잠에 빠질 것이다." 신비한 말소리가 강요하듯 들려 왔다. '왜 잠을 강요하실까? 이대로 연공을 계속한다면 더 심오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데… 잠잔 다는 것은 나의 재주가 커 나가는 것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일인데…….' 잠을 잔다는 것은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육백 일 내내 자야 한다니? 바깥 세상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릴 만큼 황당무계한 소리였다. 그러나 상관안은 천일취가 어떤 약인지 잘 알고 있는 청년이었다. "으음……!" 그는 애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왼손으로 밀랍 마개를 따냈다. 팍-! 밀랍이 뜯어지며 지극히 강한 주향(酒香)이 풍겨 나왔다. 주향을 맡기만 해도 취해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천하에서 가장 강한 술이 안에 가 득 담겨 있었다. 그 한 방울은 황소 열 마리를 잠재울 수 있을 만한 취기를 갖고 있었다. 한 병을 다 마신다 면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잠들어 버릴 수도 있다. 상관안의 눈빛이 격랑을 만난 듯 흔들렸다. 그러나 눈빛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하는 수 없군. 어차피 남들과는 다른 운명이니…….' 상관안은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괴로웠으나 신비인의 명을 어길 수 없기에 병 안의 천 일취를 마시는 쪽을 택했다. "꿀꺽… 꿀꺽……!" 술이 목구멍을 타고 배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사이, 상관안은 한 가지 말을 마음 속으로 힘 껏 외치고 있었다. - 술기운이 없어지고 깨어난다면, 육백 일 동안 잠들지 않으리라. 그는 맹세를 거듭하다가 수마의 공격을 느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이었다. "으음……!" 상관안은 한순간 술병을 땅에 떨어뜨리며 푹 고꾸라져 잠에 취했다. 그의 몸이 침상 위를 구르다가 현빙담 안으로 빠져들려는 찰나, 동굴 천장 부위에서 섬전같 이 날아드는 백의인영 하나가 있었다.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 하나가 지극히 빠른 신법을 시전해 상관안 곁으로 떨어져 내 리며 양 소매를 넓게 흔들었다. 무형(無形)의 능공섭물진기(凌空攝物眞氣)가 발휘되어 상관안의 몸을 허공으로 떠올리게 했 다. "대단한 놈이다. 이놈에게 조금 더 연공의 기회를 준다면 내가 금제할 수 없는 정도가 될 것이다." 감탄해 하는 가운데 두려워하는 목소리였다. 상관안에게 말하던 때와는 달리 중년의 나이 정도의 말소리였다. "어리석은 놈. 천하에서 가장 똑똑하나, 한편으로는 천하에서 가장 어리석은 놈이다." 신비녀는 득의해 말하며 상관안의 몸뚱이를 팔과 허리 사이로 끼어 들었다.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불지가 연공을 마친 후, 이놈의 내공을 흡입(吸入)하게 한다면 천하제일고수가 탄생되는 것이다. 나는 불지의 내공력에 힘입어 음양무상신공(陰陽無常神功) 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늙은 계집이 중원무림을 제압하기 위해 갈고 닦으면서도 단 일(一) 성(成)도 얻지 못했던 음양무상신공의 힘을… 나는 단 일 푼의 힘도 들이지 않고 내 것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하늘의 도움이다. 나의 뜻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나는 고금제일인(古今 第一人)이 되어 철천지한을 풀 것이다.' 신비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동굴 안에서 모습을 감춰 갔다. 지옥현빙담은 그 이후 아주 조용한 곳이 되어 갔다. 상관안이라는 인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던 듯.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