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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공주와의 약혼 1 사이룡은 입을 딱 벌렸다. 그가 이토록 바보같은 표정이 되는 것을 본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왜 그렇게 놀라셔요? 당신은 내가 그토록 싫으신 건가요?" 가령공주가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떨었다. "그, 그래서가 아니오. 대체 무엇이 어찌된 연유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궁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오?" "모를 게 뭐예요? 아바마마께서 저희 둘의 혼약을 발표하신 것 뿐이고 이 금지는 그 내용을 알리는 것 뿐인데." "하지만 금지에 당장 궁내로 들어오라는 분부도 계셨지 않소?" "그야 여러 가지를 상의하려고 그러시는 거겠지요." 사이룡은 할말을 잃었다. 이미 타봉신개는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실내에는 자신 외에는 가령공주 하나 뿐이었다. 다들 밖에서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어서 일어나셔야 하는데 이런 누추한 곳에 있어서야 어찌 회복하시겠어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궁 안으로 들어가셔서 어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소리 말구려. 여기 계시던 의원님이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 모르는구려. 행색은 거지지만 개방의 높은 분이라오." "개방이든 높든 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거지한테 맡길 수는 없으니까 그리 아세요." 가령공주는 그렇게 한 마디 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어사대는 털북숭이를 비롯하여 모두가 한결같이 엎어져 있었다. 타봉신개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주는 그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왕문희에게 다가가 말했다. "주사판관님을 궁 안으로 모셔야겠으니 편히 모실 수 있도록 준비 좀 해주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왕문희는 바쁘게 자리를 떠나고 털북숭이는 공주의 눈치를 살폈으나 공주는 도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어사대는 계속 엎어져 있어야만 했다. 공주는 다시 사이룡에게 돌아와 발치에 걸터앉아 사이룡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소문에는 당신이 무시무시한 자객과 마주쳐서 싸웠다고 하던데 당신을 이렇게 만든 그 상대가 누구예요?" 사이룡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소." 그는 이미 비선과의 맛을 보았지만 섣불리 자객 마고를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먼저 아버님께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뇌옥에 마고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일 마고가 탈출한 것이 사실이라면 아버님의 뇌옥은 이미 붕괴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안에서 죄수가 탈출하여도 아무도 모른 채 있다면 그것은 이미 뇌옥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공주는 더 이상 묻지는 않았지만 사이룡이 한마디로 잘라 말한 것에 심사가 편치는 않았다.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상대와 싸우고도 상대를 모를 정도의 사이룡이 아니다. 알지만 말해주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앵토라진 목소리를 냈다. "흥. 평소에는 무공이 높다고 공갈만 쳐대놓고 막상은 이렇게 얻어터지고만 다니니 남자들이란 그저 여자들한테만 잘난 체를 하는 것 같군요." 가령공주의 말에 사이룡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 여자는 아이와 같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여자가 있다. 다 같은 여자라고들 떠들지만 여자는 남자와 달라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이 여자는 가장 어린애 같은 데가 있다. 그것은 궁 안에서만 자라온 탓도 있을 것이다. 깊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어차피 일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매사에 신중하지가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한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밖에서 왕문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주마마, 모실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2 태행산 자락에 그림자가 깊다. 달빛이 계곡에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 속에서 번쩍번쩍 창검이 빛을 발한다. 움직임이 날래서 산짐승과도 같다. 계곡에서 움직이는 인원은 대략 이십여 명, 모두가 흑의에 흑색 두건을 써서 두 눈만 살기를 발하며 번뜩였다. 산계곡을 깊이 들어가는 인원들은 일체 말이 없었다. 서로가 눈짓 한 번 주고받지 않고 그저 앞만을 향해 이미 정해진 듯 움직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거대한 절벽 밑에 모여 섰다. 흑의인 중에서 유독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부터 눈 앞에 나타나는 옥리들은 죄다 죽여라. 제압하려 들지도 말고 사정도 봐주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죄수들의 사슬을 함부로 풀어주어서도 안된다. 뇌옥을 일시에 점령하는 것이다. 만일 사독패와 마주치면 그때는 혼자 상대하려 들지 말고 동료가 있는 곳까지 도주해라. 그가 나타나면 내가 상대하겠다." 흑의인들은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신중하게 듣고 있는 태도였다. 저마다 각기 다른 절기를 들고 있었는데 륜과 검과 극이 섞인 꼴이었다. "가자." 일제히 절벽을 타고 오르는 그들의 몸놀림에서 그들이 보통 고수들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나타났다. 벽호공을 사용하는 사람은 불과 서너 명 뿐이고 대개가 허공답보로 그 높고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절벽으로 불어닥쳤다. 절벽의 상층부에 올랐을 때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옥리들이 아래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내려다보는 것이리라. 흑의인들 중 가장 높이 올라간 자의 손에서 수리검이 날았다. 후두둑-! 두 명의 옥리가 비명도 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벽호공으로 오르던 흑의인들이 부딪치지 않으려고 몸을 돌렸다. 흑의인 하나가 위에 올라서서 뇌옥 입구에 착 달라붙었다. 마고가 탈출했던 바로 그 출입구였다. 보급품을 나르던 곳이다. 그래서 문은 굳게 닫혔지만 옥리는 둘 뿐이었던 것이다. 흑의인이 들고 있던 쌍륜을 슬쩍 흔들었다. 철컹-! 문의 손잡이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안에서부터 잠근 자물쇠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흑의인은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가 어둡고 침침했다. 천연의 동굴 같았다. 흑의인이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 뒤로 다른 흑의인들이 따라들었다.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었다. 복도는 길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칠흑같은 어둠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만일 안력이 약한 자들이라면 이런 어둠 속에서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흑의인들은 마치 불빛이라도 있는 것처럼 성큼성큼 잘도 걸어갔다. 그러던 한순간, 멈칫 선두의 흑의인이 걸음을 멈췄다. 앞에 갑자기 불빛이 나타났다. 불빛은 일렁이며 흑의인들이 나아가던 방향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사람이 손에 불을 들고 걸어오는 형국이다. 선두의 흑의인이 멈추어 서서 안력을 돋구었다. 옥리 둘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아마도 교대를 하러 오는 것 같았다. 흑의인이 어둠 속에서 다시 수리검을 날렸다. 파공성이 울렸는데, 바로 그 순간에 흑의인들은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선두의 흑의인이 물러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예의 그 깡마른 흑의인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수리검이 허공에서 그 날아가던 기운을 잃고 바닥 어딘가에 박혀버린 것이다. 두 명의 옥리는 이미 무엇인가를 깨닫고 뒤로 돌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찌된 영문인가. 선두의 흑의인이 옥리들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지만 좁은 동굴인지라 빠르게 경공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어둠 속으로 두 옥리가 사라져 버렸다. 안력을 높이고 보았음에도 두 옥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기관 장치다. 이 허술해 보이는 동굴에 기관 장치가 있구나." 용담호혈이었다. 쉽지는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기이한 기관장치가 있을 줄은 몰랐다. 깡마른 체구의 흑의인이 앞장을 섰다. 안력을 돋구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동굴은 이제 앞이 턱하니 막혀버렸다. 주변을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문이 있다 닫힌 흔적이라도 있어야 정상일 터인데 전혀 보이는 것이 없었다. 뒤에서 다른 흑의인이 입을 열었다. "우상, 벽을 허물면 어떻겠습니까?" 깡마른 흑의인이 벽에 귀를 댔다. 청궁에 기를 모으고 벽 저쪽의 소리를 감지하려고 애썼다. 벽을 허문다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다. 어차피 갇힌 채 돌아간 옥리들이 지원병력을 이끌고 돌아 올 때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운이 나쁘면 기관이 요상하게 작동하여 안에서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일이 어그러지는구나.' 그의 이름은 우상이 아니었다. 우상이라 불리는 것은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의 직책일 뿐이다. 그의 이름은 장천숙이었다. 녹림의 사대방파 중 하나인 천리문(天理門)의 장문인으로 흑천대수(黑千大手)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그는 돈에 팔려서 이 일에 나섰지만 목숨을 버릴 각오는 하고 왔다. 돈을 준다는 말보다도 단체에서 시키는 일이니 안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일에는 거액이 걸린 만큼 목숨이 위태로운 법이지만 이번 일처럼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다. 사독패가 있는 뇌옥을 공격하는 일이다.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성공하면 세력이 두 배는 될 정도의 재물과 단체에서의 공적이 생긴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우르르르……! 굉음이 동굴 안을 울려 퍼졌다. 그러나 소리만 그랬을 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천숙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동굴 벽면에 밀어붙였던 장심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장력이 동굴 벽에서 어디론가 흡수되어 버렸다. 벽면은 석벽이 아니라 토벽이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단단해 보였지만 막상 장력을 발출하니까 스물 스물 장력을 흡수하면서 손자국이 깊게 패였다. '담호혈이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 속을 의문이 맴돌았다. 어째서 그들은 이런 곳이라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사람도 빼냈다는 그들이 이런 정보를 모를 리가 없는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뒤로 칠, 팔 보를 이동하며 안력을 돋구었다. 앞에서 서서히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인물은 어둠 속에서 마치 산책을 하듯 천천히 걸어왔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그의 눈빛이 형형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이제 길은 뚫린 것이다. 입구가 열리고 상대가 나타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 대신에 사방이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는 면한 것이다. 쉭-!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뒤에 서있던 동행들도 같이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서로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는 동료지만 이미 서로의 마음과 뜻을 읽을 수 있었다. 함께 거사를 치르려면 목숨에 연연하면 안된다. 상대의 목숨을 아껴주고 필요하면 함께 목숨을 버려야 한다. 각자가 다 자기 문파의 영욕을 걸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 자신이 가장 연장자였지만 녹림의 각 방파에서 신임이 두터운 자들로 모였다. "일이 나쁘게 되었네. 다가오는 이가 사독패 같으니 조심들 하시게. 혹 내가 죽더라도 날 이용해서 넘어가게." 동료들에게 일러두고 앞으로 나섰다. 과연 사독패이었다. 긴 수염과 형형한 두 눈,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 검미가 짙고 굵다. 저 유명한 황제와 동문수학했다는 사독패이다. 한 때 무림을 이끌어가는 무림맹주이기도 한 그였다. 비록 이런 뇌옥이나 지키고 있었지만 그 명성이 강호를 주름잡는다. 장천숙은 대뜸 천라흑열(千羅黑列)의 보법으로 열 여덟 방위를 밟으면서 자신의 절예인 횡룡일검(橫龍壹劍)을 시전해 나갔다. 먼저 공격하여 난전을 일으키고 뒤의 동료들을 전진케 한다. 동굴 안은 좁지만 자신의 몸으로 막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독패가 들어선 곳은 어느새 도로 막힌 채였고 사독패는 그의 혼신의 힘이 들어간 일검을 너무도 간단하게 슬쩍 신형을 틀어 피해버렸다. 동시에 앞으로 나가려던 동료들은 사독패의 등 뒤로 돌아가서 되돌아선 꼴이 되었다. 사독패는 침입자들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앞뒤로 포위된 형국이었으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인으로 오래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히 상대의 무공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 정도의 무공에 이런 곳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들어 온 것을 보면 상대들은 무언가 함정에 걸려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뇌옥을 노리는 자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지금쯤은 반대편에서 공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느 쪽을 공략하는 중일까? 이곳 빼고는 다른 곳이 온통 두터운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체 어느 쪽으로 공격할 수 있는가. 사독패는 그런 잡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앞에 있는 상대들에게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왔으나 그들을 보는 순간 이미 그들의 입을 통해 듣기는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들은 소모적인 인물들이었다. 녹림의 마두들일게 분명했다. 무공도 그다지 높지 않아서 이곳의 옥리들 중에서도 대적할 만한 옥리들이 있을 정도였다. 한눈에 그러한 것을 간파한 사독패는 그러한 소모품들이 상부의 작전을 알 리가 없다고 판단해 그냥 돌아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들은 자신을 포위한 것이 어떤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일제히 검과, 극과, 륜을 휘두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독패는 검을 차고 있지 않았다. 그는 평소 애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항상 서생들처럼 온후하게 차리고 점잖게 시찰하는 버릇이 있다. 그는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는 상대들을 향해 조용히 두 손을 합장하여 명문혈 위에 대었다가 앞으로 밀어냈다. 퍼퍼퍽-! 연이어 세 명의 흑의인들이 그의 장력에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열을 흐트러뜨리며 물러섰다. 사독패는 성큼 들어왔던 쪽으로 나서며 다시 소매 끝을 떨쳤다. 파파파파-! 가벼운 경기가 일었을 뿐인데도 흑의인들이 다시 휘청이며 사방으로 물러섰다. 이미 그들의 입가에서 실낱같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살생을 싫어하는 그인지라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타격을 입고 다시는 자신에게 달려들지 못하게 하려고 점혈수법을 썼기 때문이다. 뒤에서 하나 남은 흑의인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흑사검(黑蛇劍). 제법 무공을 아는 인물이다. 아마도 녹림의 어느 방파 중에서는 꽤 대단한 인물일 것이었다. 흑사검법은 십여 년 전부터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흑천검사(黑泉劍士)의 절예 중 하나였다. 어두운 동혈 안에서 싸울 때 시전하면 효과가 큰 검법이었다. 사독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흑천사의 제자로구나." 흑의인은 움찔했다. 그러나 곧 신색을 고치고 더욱 세차게 검 끝으로 사독패의 상단전을 파고들었다. 다른 흑의인들은 벽에 기대서거나 웅크린 상태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사독패는 흑의인의 검 끝을 피하면서 뒤로 물러서다가 문득 살의를 느꼈다. 그의 청궁에 석벽이 울리는 쩡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저 소리, 얼마 전에도 울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자객 마고가 갇힌 석실 쪽이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마고는 여전히 짜여진 일과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 다시 그 소리를 들었으니 그의 심기가 울컥하는 것이 당연하다. 쉭-! 그의 손이 허공에서 검기를 가르며 파고들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이마에서 피가 솟았다. 그리고 그의 주인 잃은 검은 허공에서 팔랑개비처럼 원을 그리고 있었다. 사독패는 흑의인들을 그대로 두고 동굴을 나왔다. 그만이 아는 기관이 작동된 탓에 누구도 어떻게 열리고 어떻게 닫히는지를 몰랐다. 그것은 그가 이 뇌옥을 철통같이 만들기 위해서 설치한 면도 있지만 옥리들이 죄없이 침입자들에게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할까 염려되어 만든 것이기도 하다. 자연히 다른 옥리들은 침입자가 발견되었을 때 나서서 싸울 필요도 없이 도망치면 되었고, 달아나고 난 후부터는 사독패 혼자 나서서 침입자들을 잡았다. 그래서 기관장치에 대해서도 사독패 혼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뇌옥이 생긴 이래 수없이 많은 자들이 자기들의 동료을 탈출시키려고 침입하기도 했고 안에서부터 무공이 고강한 고수들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사독패는 이제까지처럼 이번에도 실패하리라 예견했다. 그러나 몰려든 숫자로 보나 이렇게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것을 보아서 이번에는 좀더 복잡한 싸움이겠구나 싶었다. 그는 서두름이 없이 자기 숙소로 들어가서 자신이 아끼는 철검 하나를 집어들고 마고가 갇혀있는 석실로 향했다. 그의 철검은 두텁고 날이 제대로 서지 않아 보였으나 바로 강호에 백무철검자라는 명성을 떨치게 해준 애검이었다. 주변에는 이미 옥리들이 다 숨어들고 통로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사독패가 모두 숙소로 들여보내고 기관을 작동시켜서 숙소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마고의 석실을 내려다보았다. 마고는 쇠사슬에 묶인 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일과가 정확한 그녀다. '이곳은 아니구나. 이 부근인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멈칫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는 다시 돌아가 마고를 들여다보았다. 마고는 평소 잠들 때 꼿꼿이 누워서 두 손바닥을 천정을 향하게 하여 허리 아래에 붙이고 잠이 든다. 그것은 내가무공을 닦는 무인들의 자세이고 습관이 들려면 반갑자 이상의 내공을 소유해 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마고는 자세는 같았으나 두 손바닥이 옆으로 그냥 처져있는 것이다. 아뿔싸, 사독패는 잘못된 것이 있음을 느꼈다. 마고는 가짜였다. 낮에 몇 번 감시했으나 일과가 항상 같았고 시전하는 무공이나 그 모습도 똑같았다. 그래서 그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잠이 들어서 본 것이 처음이니 이제서야 깨달은 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잠이 들어서야 자신의 습관이 나오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가짜가 무심결에 마고의 흉내내기를 소홀히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에 안면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멍청하구나. 이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잠자는 여인네를 들여다보는 짓이 파렴치하게 느껴져서 그만 두었거늘. 실수로다.' 그는 한탄과 함께 석실의 전면이 열리도록 기관장치에 탄지를 날렸다. 그그긍! 육중한 굉음과 함께 석실의 전면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뽀얀 돌가루와 함께 마고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사독패는 안으로 들어서며 가짜 마고를 바라보았다. 마고와 한치도 다름이 없이 똑같은 여인이었다. 인피면구나 주안술이 아닌 진정으로 같은 얼굴이며 몸매였다. 여인은 몸을 일으키고야 일이 탄로났음을 느꼈다. 그러나 침착함을 잃지 않고 사독패를 태연히 마주보았다. 어차피 알았다면 변명이 소용없을 상대였다. "너는 누구냐?" 여인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소녀가 잠결에 실수를 했나보군요." "너는 누가 보낸 것이냐? 마고가 탈출한 것은 언제냐? 내 짐작대로라면 석벽을 쪼는 듯한 소리가 들린 단오 직전인데." "바로 아셨으면서 이제까지 깨닫지 못하셨다니 안타깝군요. 이제는 늦으셨어요." 여인의 교소 섞인 말에 사독패의 검미가 불끈 치솟았다. '발칙한 것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놀리는구나. 믿는 것이 무엇인가.' 순간, 우르르르…… 안쪽의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돌가루가 앞을 가리고 그 사이로 검은 인영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한결같이 동굴 속에서처럼 흑의로 몸을 감싼 채였다. 사독패의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확 당겨져 올랐다. 살아오면서 이처럼 노여움을 느끼는 것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다. 사독패가 무림인으로서 또 황제와 사형제간으로서 이렇게 만사를 접어두고 뇌옥을 운영하고 무림의 죄인들을 잡아 가두며 지낸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무림과 조정간의 불화가 생겨서 많은 무림인들이 희생되고 은거해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평소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혹은 거꾸로 조정의 대신들이나 동창의 환관들이 무림인들을 끌어들여서 악행을 일삼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무림인들 중에 죄를 짓는 자가 있으면 자신이 나섰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공적들을 잡아들이고 이곳 뇌옥에 가두어 격리시켰다. 십 년 전 마고를 잡아 가둘 때도 난관이 많았다. 그녀의 무공이 워낙 고강했고 비호하는 세력이 많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추격하여 결국은 그녀를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감쪽같이 달아나 버렸고 자신은 그것을 꿈에도 모른 채 농락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의 뇌옥에 이렇듯 많은 인원이 침입해 온 것이 아닌가. 자신의 뇌옥에 커다란 결함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노여움이 더한 것은 자신의 앞에 꾸역꾸역 나타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고수들이고 무림인들임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흑의인들은 하나같이 왼손에 짧고 넙적한 도를 들고 있었다. 도의 날이 검은 빛으로 번쩍이는 것이 오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도의 손잡이 끝에는 길게 쇠사슬이 달려있었다. 좌도흑랑대(左刀黑狼隊). 사독패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검은 빛의 도. 그 손잡이 끝에 쇠사슬이 달린 것을 흑천도라고 한다. 그리고 흑천도를 들고 다니는 무리를 좌도흑랑대라고 한다. 사독패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 앞에 지금 나타난 무리들이 자신이 알고있는 그 자들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들이 여기 나타날 수가 있는가. 오십여 년 전 사독패 자신은 마주쳐 본 적조차 없는 마도의 방파 하나가 있었다. 그가 태어나던 해에 방파 자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그런 방파가 있었고 무림에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켰었다는 것만을 알았을 뿐이다. 방파의 이름은 흑천. 살인청부만을 전적으로 맡아서 해오던 무리들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정도 구파일방이 모여서 그들과 삼 일 밤낮을 싸워 그들을 물리쳐서 완전히 와해시켰고 남김없이 살육해 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흑천의 살수부대라는 좌도흑랑대가 지금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진정 흑천의 무리들인가.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촤르르르……! 흑의인들의 도가 쇠사슬에 달려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는 쇠사슬에 매달린 채 허공에서 꼿꼿하게 직선을 그렸다. 허공에 선을 긋듯 서서 사독패를 향해 실 풀리듯 늘어나고 있었다. 사독패는 옆으로 비켜서며 철검을 허리 뒤로 돌려세웠다. 소검일건(昭劍一乾)의 기수식이다. 일검필살이었다. 그만큼 그는 생전 처음 위기에 봉착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의 수는 열 셋. 마고 흉내를 내던 여자도 대뜸 흑의인들 중 하나가 건네주는 흑천도를 잡았다. 열 셋 중에 여자는 넷, 여자라고 해도 발출하는 경기가 내가고수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촤르릉…… 촤르릉……! 쇠사슬이 허공에서 길게 파공음을 울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기가 사방을 압박하고 좁은 석실 안이 온통 살기와 도광으로 가득 찼다. 사독패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석실의 입구로 물러났다. 석실을 나가서 좁은 통로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파파파파……! 일시에 열 네 개의 흑천도가 사독패의 전신을 사방에서 베어 버리려는 듯 몰려들었다. 사독패의 철검이 허리에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흑천도들에 대항해서 무시무시한 검기를 내뿜으며 호선을 그렸다. 까까까깡……! 십여 차례 불똥이 튀었다. 흑천도는 제 자리로 돌아갔고 사독패는 뒤로 물러나 통로로 나섰다. 그러나 석실 입구에서 멀어지지는 않고 비스듬히 서서 입구를 봉쇄했다. 상대들이 하나씩 나올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좌도흑랑대가 대단하다 해도 사독패와 일 대 일로 겨루어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씩 상대한다면 시간이 걸릴 뿐 결국에는 모두 죽게 될 것이었다. 좌도흑랑대의 하나가 앞으로 달려나오면서 흑천도를 날렸다. 쩌르릉-! 굉음과 함께 흑천도가 사독패의 목을 베려는 듯 코앞에서 좌우로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러나 좁은 입구를 통해서 쓸어가는 흑천도는 그 속도가 빠르고 위력이 강하다 해도 막아내기에는 쉬운 면이 있었다. 사독패의 철검이 흑천도의 면을 때리고 흑천도가 그 위세로 비껴가는 순간 철검은 방향을 틀어 다시 흑천도의 쇠사슬을 때렸다. 땅-! 쇠 울리는 소리와 함께 흑천도가 그 힘을 잃고 줄 끊어진 연처럼 되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쇠사슬은 흑의인에게로 되돌아가면서 그의 가슴을 쳤다. 큭-! 한소리 비명이 울리고 흑천도를 날렸던 흑의인이 검붉은 선혈을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독패는 다시 철검을 등 뒤로 거두면서 상대들을 노려보았다. 한꺼번에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로서는 다행 중 다행이었다. 흑의인들이 서로 눈짓을 보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는 흑의인들이 사독패를 공격하지 않고 일제히 흑천도를 한 방향으로 날려보냈다. 그것은 바로 입구 오른쪽의 석벽을 향한 것이었다. 사독패는 흑의인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재빨리 왼손을 뻗어 장력을 발출했다. 어디를 향한 것이 아니라 흑의인들의 흑천도에 달린 쇠사슬들을 향한 것이었다. 파파파팡-! 흑천도의 쇠사슬들은 석벽을 향해 뻗어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향에서 불현듯 밀려오는 장풍에는 쉽게 밀려났다. 덕분에 도와 도가 엉키면서 힘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석벽을 때린 것들도 있었지만 그 정도에 무너질 석벽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자객 마고가 쉽게 장력으로 석벽을 무너뜨리고 달아났을 것이다. 석벽에 깊게 패인 자국만을 남긴 채 도는 허공에서 나아가던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맴돌았다. 그 찰나 사독패의 철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기어검술의 극치라 불리우는 천령철검무(天嶺鐵劍舞). 사독패에게 무림맹주의 자격을 부여한 절예였다. "크아악-! 컥-!" 비명이 터졌다. 흑의인들의 목과 팔, 다리와 가슴,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철검에 의해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었다. 흑의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역습을 당하고 이리저리 쓰러져 나갔다. 미처 수습할 여유도 정신도 없었다. 태반이 철검에 맞고 쓰러져 갔다. 남아서 흑천도를 회수하고 선 흑의인은 불과 세 명. 그 중에 여자는 바로 마고 흉내를 내던 여자였다. 사독패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신색 그대로 남은 흑의인들을 노려보았다. 흑의인들의 눈에 낭패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라도 흑천도를 버리거라. 그러면 목숨은 잃지 않을 것이다." 점잖게 타일렀으나 내심은 분기를 누르지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자신의 뇌옥이 농락당한 것만은 참기 어려운 사태였기 때문이다. 여인이 피식 웃었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늙은이 같으니." "발칙한 것." 사독패는 말은 그렇게 했으되 선뜻 손을 써서 여인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여인의 말뜻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곧 그는 여인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선 통로의 좌측에서 느껴지는 강한 경기. 그것은 이제까지 자신이 느꼈던 어떤 상대보다도 더 강한 고수가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독패는 좌측을 흘끗 돌아보았다. 멀리 희미하게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환상처럼 그림자처럼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사독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떴다. 저 여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들어왔으며 누구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은 흰 나삼에 몸을 감싸고 있었다. 속이 환희 비쳤지만 나삼의 빛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희디희게 빛났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마치 강시처럼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입술은 붉었지만 얇고 가늘어서 귀기스러워 보였고, 흐트러져 내려 온 머리칼 사이로 두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여인은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희디흰 맨발이 동굴 바닥을 애무하듯 천천히 움직여 왔다. 사독패의 안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이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러우면서도 사방으로 번져나오는 귀기는 숨이 막히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경기를 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걷고 있을 뿐이었다. 사독패는 멈칫 그녀의 소매 끝을 보았다. 축 늘어진 소매 끝에 그녀의 흰 손이 힘없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빈손이었다. 인간의 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희고 고운 유리로 된 듯한 손. 그리고 손 끝에서 파랗게 빛나는 긴 손톱. 순간 사독패는 움찔 놀라면서 입구로부터 통로 한켠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빙요화(氷妖火)!" 사독패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비명처럼 내뱉으면서 철검을 곧바로 어깨 위로 곧추세우고 전신의 기를 검 끝에 모았다. 그러나 이미 여인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고 전신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그의 검 끝을 떨리게 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빙요화를 눈으로 보게 되다니. 사독패 자신도 전설로만 들어오던 반인반귀의 경지에 다달았다는 빙요화. 세인들은 이미 죽었으리라 믿었고 죽지 않았으면 어딘가 요괴들만이 모인 곳으로 가서 요괴들과 어울려 살으리라고 믿었다. 그녀는 나이가 이갑자라고도 했고 삼갑자라고도 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고도 했고 아예 인간이 아니라 요괴라고도 했다. 그녀를 만났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그녀를 자세히 본 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표현은 소문만 무성할 뿐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다만 그녀에 대해서 모두에게 일치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얼음처럼 희다는 것과 그녀의 손톱이 새파랗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그녀를 만나서 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신이 동상으로 썩어진 채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사독패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상대는 전설로만 들어오던 반인반귀다. 빙요화라면 현세의 누구도 본 적이 없다. 과장되게 구전되었을 수도 있고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을 세인들이 모를 수도 있다. 싸움은 필승의 각오에서 승부가 나기 십상이다.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으면 바보처럼 당한다. 자신이 알고있는 무공을 최대한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빙요화를 향해 돌아서며 철검을 쥔 손에 진기를 끌어 모았다. 어떻게 들어선 것인지는 모르나 일단 들어섰으니 자신의 뇌옥은 이제 종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이 자리에서 모두를 척살하고 뇌옥을 없애리라. 자신의 공들여 세운 이 곳이 이제는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혹 이곳에서 죽더라도 하는 수 없다. "묻겠소, 당신이 빙요화 맞소?" 빙요화는 무표정하게 사독패를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손 끝에서 파란 빙화가 피어났다. 환상이리라. 설마하니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일까. 저것은 무공이 아니다. 푸른 빙화는 마치 서리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손 끝에서 하늘하늘 놀더니 사독패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들었다. 사독패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우와아아!" 벽력처럼 터지는 사자후 속에서 사독패의 철검이 허공을 갈랐다. 유성횡천검(流星橫天劍). 느리고 변화가 없으되 그 힘이 하늘을 가르고도 남는다. 어떤 강한 호신강기도 막을 수 없고 어떤 강한 절기로도 마주할 수 없는 강한 검식이다. 검기든 호신강기든 쪼개고 들어가며 마주치는 모든 것을 가른다. 그리고 목표에 다달으면 여지없이 파해해 버리는 당금 무림 최고의 검법이다. 시전할 수 있는 자는 강호를 통틀어 불과 두어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유성횡천검이 빙화를 마주한 순간 빙화는 허공에서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검신을 지나고 나서야 다시 제 모양을 갖추었다. 모양을 갖춘 후에는 사독패의 머리 위로 솟구쳤다. 눈 깜빡할 사이였으나 사독패는 어느새 철판교의 신법으로 몸을 누이며 다시 철검을 거두어 자신의 머리 위로 빙그르르 호선을 그렸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빙화는 여전히 흩어졌다 다시 모였다. 꽃 모양에는 변함이 없고 한기가 사독패의 전신을 향해 몰아쳤다. 사독패는 자신의 전신이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뒤로 주르르 밀려나갔다. 진기가 급격히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한기 때문이리라. 사독패는 뒤로 한참을 밀려난 후에야 겨우 신형을 바로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빙화는 여전히 자신의 두 치 앞에 떠있었고 그 뒤로 태연히 빙요화가 걸어오고 있었다. 두 눈이 사독패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 투명한 눈매가 허공을 맴도는 것인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도록 요사스러웠다. 사독패는 이를 악물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렇게 힘없이 전전긍긍하다니. 자신의 이름 석자가 이제는 강호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기괴한 무공은 본 적이 없다. 목격자가 없어서 이제까지 이런 무공을 접했다는 자도 없다. 모두 죽었으니까. 얼어죽은 시체는 바로 이런 연유로 나온 것이리라. 그리고 얼어죽은 다음에 그 한기가 물러나면서 동상에 걸려 죽은 것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는 철검을 뒤로 거두면서 다른 한 손으로 힘껏 장력을 발출했다. 남은 진력을 모두 실어 내뻗은 일장이었다. 주변의 석벽이 우르르르 흔들리고 장력에 빙요화의 옷깃이 펄럭였다. 장력에 허공의 빙화가 뒤로 스르르 밀려났다. 그러나 그 뿐, 모양이 일그러지지도 꽃잎이 흩어지지도 않았다. 빙화는 여전히 그의 눈 앞 네 치 정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사독패는 절망을 느꼈다. '이대로 얼어서 죽는 것 뿐인가.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할 정도라면 빙화가 아닌 상대의 몸을 공격하리라.' 그의 철검이 앞으로 뻗치면서 빙요화를 향해 날아갔다. 검기가 요동을 치고 검광이 통로 안을 휘돌았다. 빙요화의 한 손이 스르르 올려졌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한 동작으로 허공의 검은 방향을 잃고 핑그르르 허공에서 맴돌았다. 사독패는 경악했다. 그가 방금 시전한 것은 천령철검무. 조금 전 좌도흑랑대를 무너뜨린 그의 절기였다. 그런데 빙요화의 단 한 번 손짓에 힘없이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이 어찌된 일인가. 싸움도 변변히 못하고 이렇게 얼어죽는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인가. 누가 이런 상황을 믿겠는가. 사독패는 다시 검을 거두어 들이려고 했으나 이미 전신이 굳어졌음을 느꼈다. 팔이 말을 듣지 않았고 섭물신공도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철검만 놓아버린 꼴이다. 쿵-! 그의 신형이 나무토막처럼 뒤로 넘어갔다. 더는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서히 자신의 내장마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만이 아직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들 생각이 났다. 이룡아-! 3 사이룡은 어의의 치료를 받으며 사흘을 보냈다. 그리고 건강해져서 즉시 황제에게 불려갔다. 황제는 애첩도 거느리지 않고 금위들도 거느리지 않은 채 서궁의 화원 안을 홀로 거닐고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늙기도 많이 늙은 모습이었다. 사이룡은 그 앞에 가서 부복했다. "판관 사이룡이 전하를 뵙습니다." 황제가 사이룡을 돌아보았다. 사이룡의 준수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일어나거라, 같이 좀 걷자꾸나." 사이룡은 황제의 말에 따라 몸을 일으키고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황제의 등이 왠지 나약해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사를 멀리하고 신하들의 당파싸움에 지치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나약하지는 않았다. 그는 황제인 것이다. 황제는 생각이 많았다. 험한 일에 내몰고 싶지 않은 아이다. 어릴 적에는 곧잘 자신의 무릎 위에서 놀았다. 가령과도 곧잘 놀았다. 어릴 적에도 예쁘더니 크고 나서도 하는 짓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믿을 놈이 없으니 이 녀석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공주와 혼약을 발표하고 불러들인 목적이 그러하니 이제 망설여도 소용이 없다. 당파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것 또한 내보낼 이유가 된다. 오도인은 그런 면에서는 항상 치밀하고 무서운 데가 있다. 자신은 만사를 잊고 싶지만 오도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충신인 것은 세상이 다 알고 황제도 알지만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 또한 모르는 이가 없다. "내 너에게 한 가지 명을 내리겠다." 사이룡은 고개를 숙였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진심이냐?" 황제가 사이룡을 돌아보았다. 그 눈초리는 마치, 네가 언제 내 말을 들었느냐, 하는 듯했다. 내관에 두려고 해도 절대 궁내에서 일하지 않는 놈이다. 제 아비를 닮아서 권력에 초연하고 황제인 자신을 겁내지도 않는다. 공주를 일개 평범한 여자 취급을 하고 자신도 아는 아저씨 정도로 안다. 어릴 적부터 조카자식처럼 대해온 탓도 있으리라. "……?" 사이룡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큰일이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혼약도 발표하고 이렇게 불러들인 것이구나. "네게 비사대를 주겠다." 황제의 한 마디에 사이룡의 검미가 꿈틀했다. 비사대라니. 비사대는 금위군 중에서도 어사대에 속하는 비밀 집단이다. 평소 금위군에 속한 인물들도 있고 어사대에 속한 인물들도 있는 관계로 궁내의 사람들도 누가 비사대원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소문에는 비사대에 환관들도 있다고들 했다. "갑자기 소인에게 비사대를 주시다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일이 꼭 있어야만 비사대를 주겠느냐? 내 사위가 될 것이고 장차 이 조정을 이끌고 가야만 하는 몸이니 비사대쯤은 운영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맡기는 것이다." 사이룡은 황당해서 더 할말이 없었다. 가령공주가 하는 짓도 그렇고 황제가 하는 짓은 더하다. 아버님이 평소에 왜 황제 곁에 있기를 그렇게 싫어했는지 이해가 갈 만도 했다. 도대체가 자기들 멋대로다. 물론 황제인데 무슨 짓인들 마음대로 못할까만은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상대의 입장도 들여다보고 보살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 아닌가. "더 이상 이야기할 것 없다, 비사대를 맡거라." 황제가 말하니 황명이다. 어길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벼슬을 주는데 싫다고 하는 것이야 역적질은 아니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내직을 언제나 마다하고 달아나 버렸던 사이룡이었다. "전하, 하지만 비사대라는 것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소인은 모르옵고 게다가 소인은 지금 판관으로서 중요한 사건을 추적 중이기에……." "그 사건을 비사대를 이끌고 해결하라." 쿵!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랬구나. 이번 사건이 조정과 관계가 있다 싶더니 드디어 조정의 일로 자신에게 다가드는구나.' 사이룡은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서있었다. "그럼 가서 몸을 더 보살피고 비사대를 이끌 채비를 하거라. 모든 일은 오도인이 알아서 갖추어 줄 것이다." 사이룡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냥 물러 나왔다. 권력을 갖는 것이 누구는 싫을까? 그러나 권력을 지니면 권력으로 인하여 마음과 정신을 다치게 마련인 것. 후원의 꽃밭들에 기화이초들이 하늘거리는 것을 둘러보며 터덜터덜 길을 걷는데 멀리 오도인이 뒷짐을 진 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나를 기다리는구나. 저 영감님이 이 모든 일을 만들었을테지.' 생각하면 스승이지만 참으로 얄미운 인물이다. 가서 뒤에 서니 흘끗 한 번 돌아볼 뿐 아무 말이 없다. "비사대를 맡으라고 하시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황명이냐?" 되묻는 것이 뻔하다. 황명인데 네놈이 뭘 묻느냐는 듯하다. 오도인은 오도인 대로 어쩔 것이냐 하는 얼굴로 사이룡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일을 떠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을 많이 다쳤다더니 움직일만은 하신가?" 사이룡은 오도인 옆에 서서 먼산을 함께 바라보았다. 동문서답을 하는구나. "자네가 이렇듯 다친 것을 보면 상대가 대단했던 모양일세." "아는 인물 아닙니까?" 사이룡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미 자기가 움직이는 것쯤은 모를 리가 없는 오도인이다. 부친과 같이 동문수학한 몸이지만 부친은 오도인을 항상 친구나 사형제로 여기지 않고 거리를 떼어놓은 채 지내왔다. 오도인에게 어떤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치밀하고 계산해서 움직이는 그가 싫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많이 하는 인물은 친구를 많이 둘 수 있어도 실수가 없는 완벽주의자는 친구를 얻기가 힘이 드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오도인도 항상 주변에 사람이 없었고 외로운 모습으로 살아왔다. 다만, 조정에서 간신들에게 모함을 받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완벽함 때문이었다. "자네가 쫓던 사건에 대해서는 알겠으나 자네와 싸운 상대에 대해서는 모르겠더구만. 자네 상대가 누구였는가?" 사이룡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상대였고 무공도 새로워서 도무지 기억나는 배분이 없었습니다." "그랬는가?" 오도인의 시선이 더 먼 하늘을 우러렀다. 그렇게 모를 리가 있는가. 거짓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설프지 않은가. 거짓을 고하기에는 너무 정직한 사람이 아닌가. "그보다 비사대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비사대가 별 것인가?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존재들이면 족하지. 비사대는 이제부터 자네가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죽지 말라면 절대 죽지 않는 무리가 되어서 자네의 뒤를 따를 것일세." "그 무리로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몰라서 묻는가? 그들을 이끌고 자네가 쫓던 바로 그 야유화라는 여인을 계속 쫓으시게." 사이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쫓아서 어찌해야 합니까?" "죽이게." 오도인은 쉽게 말했으나 듣는 사이룡의 검미가 꿈틀 치솟았다. 아녀자를 죽이라니! 금부로 이송도 없이 재판도 없이 죽이라는 말인가?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 너무 쉽다. "제가 쫓던 사건의 상세한 내막을 들려주시면 그리 하겠습니다." "정말인가?" 오도인이 사이룡을 돌아보았다. 지그시 바라보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는 듯하다. "황명인데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죽이라면 죽여야 합지요." 말 속에 뼈가 있었다. 다만 이유는 알아야겠다. 그래서 이유나 알자는 것이고 돌아가는 내막을 알아야 일을 할 것 아닌가. "흉살성의 출현을 알지 않는가? 바로 그 주인공이 그 여인의 태내에 있네. 그러니 태어나기 전에 죽이시게." 사이룡은 할말을 잃었다. 역시 흉인이구나. 아직 태어나지 않고도 하늘에 빛을 발했다니. "단지 이유가 그것 뿐입니까?" "단지 그것 뿐이라니.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장차 나라에 커다란 원수가 될 인물일세. 자네도 보았지 않은가. 그토록 해괴한 징조가 어디 있던가. 모든 흉살은 태어나면서부터 뜨는 법인데 이번에는 태내에서부터 빛을 발했네." "잘못 알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인다는 게 너무 잔혹하여……." "잔혹한 줄은 아네만 거사에는 잔혹함도 필요한 법이네. 아무리 잔혹하다 해도 이 나라를 송두리째 무너뜨려서 온 백성들을 신음하게 하는 일보다 더 잔혹한 게 있을까?" 사이룡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징조 때문만은 아니구나.' 그것을 깨달았다. 이건 무언가 당쟁의 냄새가 난다. "당쟁입니까? 누군가가 역모를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역모라고 보는게 아니라 이미 역모가 일어나고 있네." 오도인의 말에 사이룡은 깜짝 놀랐다. 역모가 일어나고 있다니. 그럼 그 아이를 살리려는 쪽은 역적의 무리라는 말이 된다. 주로 무림인들이 서로 죽이려고 달려들고 지키려고 달려들었으니 결국은 무림이 역모에 가담했구나. "누가 주모자입니까?" 오도인은 잠시 대꾸를 않고 머뭇거렸다. 그 태도로 미루어 보아 필시 사이룡 자신도 잘 아는 인물이다. "누가 주모자입니까?" 사이룡이 재차 묻자 오도인은 마지못해 먼 하늘로 다시 시선을 옮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믿어지기 어렵겠으나 주모자는…… 곤륜왕일세." 한 마디에 사이룡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오도인이 말한 그대로 믿어지지 않는다. 곤륜왕이 역적이라니, 곤륜왕이. 사이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이룡이 곤륜왕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아직 무예의 기초도 모르고 그저 목검을 들고 기본 자세만 익히기도 바쁘던 어느 날 목검으로 사정없이 나무를 후려쳐서 낙엽을 우수수 떨구던 그때, 목검이 나무를 치고 미끄러져 나가면서 앞에 오던 사람의 정강이를 때리게 되었으니 오던 사람이 바로 곤륜왕이었다. 구척 장신에 검은 경장 차림을 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사이룡은 그의 부리부리한 눈과 다부진 얼굴에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몰랐다. 필시 호통이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곤륜왕은 사이룡을 바라보며 허리도 굽히지 않고 섭물신공을 이용해 목검을 잡아들더니 사이룡을 향해 다가와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무릇 검을 잡았을 때는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네가 잡은 것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흉기인 이상 네게 그럴 뜻이 없다 하더라도 네 실수로 인하여 남이 다칠 수도 있느니라." 사이룡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고 곤륜왕은 그런 사이룡의 뺨을 토닥거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걷다가 다시 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든 것이 진검일 때는 더한 것이다. 하마터면 내 다리가 잘려나갈 뻔하지 않았느냐?" 사이룡은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사라지던 그가 못내 궁금하였으나 누구도 그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아 궁금증만 더해갔다. 그리고 한 삼 년이나 지났을까? 어느 겨울날 사이룡은 눈보라 속에서 급기야 내가상승의 무공을 닦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쌩쌩 부는 겨울 바람에 상체를 내놓고 전신의 기를 단전에 모아 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정도가 심하여 이기지 못하고 코에서 붉은 선혈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 앞에 곤륜왕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곤륜왕은 때마침 동창의 환관 두어 명과 함께였다. 그런데 동창의 환관 두 명은 곤륜왕과 동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 손에 덜미를 잡혀 끌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환관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사시나무 떨 듯이 달달 떨고만 있었으니 평소 기세가 등등하던 그들의 모습에 지나던 궁내의 인물들이 모두가 구경났다고 몰려들었다. 곤륜왕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환관을 패대기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불알도 없는 잡것들이 감히 멀쩡한 아녀자들을 희롱하고 핍박하다니. 네놈들을 내가 패 죽이는 것을 하늘이 알아도 상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 환관들은 더욱 사시나무 떨 듯했다. 영락없이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환관들은 빌고 또 빌었다. 궁내에서 소문난 환관들인지라 그들이 비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두 환관은 평소에 궁녀들을 못살게 구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성적인 불능을 비하해서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본래가 잔인해서인지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가차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개 패듯 하였다. 어느 때는 엄동설한에 궁녀들을 벌거벗겨 놓고 얼음이 꽁꽁 언 연못을 깨고 들어가게 하였으며, 살림살이를 낭비한다 하여 하루 두 끼니만 먹게 한 기간도 있었다 한다. 그 환관들이 동창의 집사 노릇을 하고있는 것을 기화로 이렇듯 악행을 일삼고, 궁내의 금위군들도 그들에게 아부를 일삼아 뇌물로 비단필이나 금은을 바쳤다. 그러면 곧 진급을 하거나 좀더 편한 내근으로 옮겨지거나 하여 그들의 권력이 대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 누구나 그들에게 변변히 항의도 못해보고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사이룡은 그들과 몇 번 마찰을 일으켰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그저 하던 행동을 못하게 제지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사이룡이 제지하면 개처럼 비겁한 작자들인지라 얼른 하던 짓을 멈추고 교활한 눈을 번뜩이며 사이룡의 눈치를 보곤 하였다. 아무리 위세를 떨어도 사이룡의 부친 사독패에게 밉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사이룡은 그 시절에도 이미 가령공주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가령공주가 오도인에게 사이룡과 나란히 학문을 닦으러 다녔고 철모르고 사이룡에게 오라버니라 부르며 다닐 때였으니 고개를 꺾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렇게 곤륜왕처럼 심하게는 하지 않았다. 아니 사이룡은 부친의 엄한 명에 의해 그렇게 하지 못했고 다른 이들은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게 대다수였다. 내직이 더 높은 자들도 환관들에게 원한을 살까 두려워 그저 한두 마디 말리고 말 뿐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임자를 만난 것이었다. "아무리 불알이 없기로서니 그래도 젖퉁이 없기는 사내가 맞지 않느냐? 그런 놈들이 연약한 아녀자들을 괴롭혔으니 세상에 너희를 더 살려두었다가는 다른 자들이 본받을까 무서워 내 친히 개피를 손에 묻히리라." 환관들은 곤륜왕이 지나는 길목에서 궁녀들로 하여금 눈밭에 무릎을 꿇고 엎어져 있게 하고는 한참을 모욕적으로 훈시를 하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곤륜왕이야 본래 궁내에 들어오는 법이 없어서 몇 년에 한 번이나 나타날 뿐이었고, 게다가 새해 들어 얼마 되지 않아 궁내에 손님이 적었다. 그러니 마음놓고 아녀자들을 괴롭힐 참이었는데 때맞춰 곤륜왕이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곤륜왕은 대뜸 눈을 부릅떴으며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고 당시 지나던 다른 궁인들이 전한다. 그만큼 분노했다는 이야기다. 곤륜왕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것은 엄동설한에 상반신은 알몸이 되고 아랫도리는 속곳 하나로 겨우 가린 궁녀들이 덜덜 떨면서 엎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궁녀들의 상체에는 이미 등짝이고 어디고 가릴 것 없이 회초리 자국이 가로세로 엉망으로 새겨서 있었다. 두 환관은 그 잔인하고 변태적인 행동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행하고 있었으며,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는 못하고 내심 혀만 차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곤륜왕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무리 간이 철갑으로 되어있는 사람일지라도 곤륜왕이 눈을 부릅뜨면 심신이 오그라들고 만다. 하물며 눈에서 불똥이 튀는 데에야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죄다 사색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관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궁인궁녀들이 일제히 숨도 못 쉬는 형편이 되었다. 곤륜왕은 대뜸 눈 앞의 환관들의 멱살을 잡으며 호령했다. "이 개백정 같으니! 어찌 아녀자가 이런 해괴한 행패를 당하는데 모가지가 두려워서 그대로 보고만 있느냐? 개돼지도 너희들보다는 나으리라. 사내로 태어나서 그렇게 목숨이 아깝거든 조정에서 얼씬대지 말고 산야로 나가 들짐승이나 잡아 처먹으며 살아라." 그는 호통과 함께 두 환관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질질 끌고 마당 밖으로 나갔다. 사이룡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곤륜왕은 다짜고짜 두 환관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더니 옆의 나뭇가지를 뚝 부려 뜨러 잡았다. "한 손에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으나 개피를 손에 묻히기 싫어 나무로 치니 감사해라, 고통없이 죽여주마." 두 환관은 덜덜 떨면서 두 손을 모으고 눈물로 살기를 호소했다. 두 환관의 그러한 모습은 내내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구경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얼마나 통쾌한지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환관은 아무소리 못하고 그 자리에 팩 고꾸라져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곤륜왕은 나뭇가지를 홱 집어던지더니 험악한 인상으로 성큼성큼 사라져 갔다. "에잇! 더러운 일을 보았구나. 뒈질 놈의 세상." 그는 훌쩍 가버리고 두 환관의 시체는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데 뒤이어 동료들의 목숨을 구해볼까하여 달려왔던 환관들은 동료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역시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대놓고 사람들이 듣는 곳에서 함부로 황제의 이복동생을 이러니저러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환관들은 공연히 주변에서 보고있는 궁인들에게 험악한 눈초리를 보내며 동료들의 시신을 들쳐업게 하였다. 사이룡은 시체를 업고 가는 궁인들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이내 곤륜왕이 사라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궁의 안쪽 깊숙한 곳을 흐르는 호리병 모양의 연못이 있었는데 기억으로는 그 끝 언저리에 눈이 쌓인 석상 하나가 있었다. 여의주를 문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의 석상이었는데 의자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안락한 모습이었다. 곤륜왕은 석상에 앉은 것이 아니라 석상 아래에 비스듬히 발을 뻗고 앉아 있었다. 그는 등을 석상에 기댄 채 술병을 들고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난 듯 술 한 모금을 꿀꺽 하더니 다시 먼산을 본다. 사이룡이 주춤거리며 그의 옆으로 가자 그가 흘끗 돌아보았다. 사이룡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 싶어서 그냥 돌아 나오려고 하였다. "아이야." 곤륜왕은 사이룡을 바라보며 나직이 그렇게 불렀다. 방금 전까지의 호랑이 같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힘없고 그늘진 얼굴이었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그 얼굴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이룡은 그를 바라보며 다가갔다. "앉거라." 그의 옆에 앉자 그가 술병을 불쑥 내밀었다. 사이룡이 고개를 흔들자 씩 웃으며 자신이 마셨다. 그저 한 번 내밀어 본 것 같았다. 무엇이 통한 것인지 둘은 말없이 그렇게 오래 앉아있었다. 서로에게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가 위안이 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오래 앉아있었다. 어느덧 서산으로 해가 기울자 곤륜왕이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났다. "미안하구나." 난데없이 그렇게 한 마디 하고는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미처 묻지도 못했고 그 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자신의 행동을 몹시 부끄러워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짓은 아녀자들을 매질하고 학대하는 짓보다는 나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나름대로 추측하여 보았다. 그러나 곤륜왕이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님을 나중에야 알았다. 곤륜왕은 자신에게 부끄러워했고 어린아이에게 미안해했으되 살인을 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한 말의 뜻을 안 것은 사이룡이 다 자라서 이제 관직에 오를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성 밖으로 시낭송대회를 나선 사이룡과 그의 친구들 앞에 곤륜왕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때 사이룡과 친구들은 은포에 매화섭을 들고 갖가지 멋을 부린 위에 보검을 허리에 차고 연지마들의 고삐를 쥔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기루의 기녀들이나 길을 가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사이룡과 친구들은 신이 나지 않을 턱이 없었다. 다들 취기가 오르고 호연지기가 생긴 터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녀들의 손짓을 따라 기루로 들어섰다. 기루는 당시 홍등가에서도 으뜸으로 치던 '가희루'였다. 주청들이 각기 화려하고 고급스러웠으며 기녀들은 다들 운금상에 금보요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울소리가 들리고 머리를 틀을 때마다 오색영롱하였다. 기녀들과 시를 읊고 비파를 뜯으며 즐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날벼락으로 이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청의 문을 걷어차고 들어선 곤륜왕의 모습은 산도깨비가 따로 없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산발이고 옷은 시궁창에라도 빠졌었는지 얼룩에 악취까지 풍겼다. 게다가 눈이 흐리멍텅하게 풀어져서 완전히 폐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출현에 모두가 긴장하였다. 그는 평소에 기루를 다니지 않아서 기녀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지만 지체높은 일행이 바짝 긴장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숨을 죽였다. 모두가 긴장하여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데 곤륜왕은 다른 친구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대뜸 사이룡에게 눈길을 주더니 나오라는 듯 손짓하였다. 사이룡은 이미 약관의 나이였고 평소 두려워하는 것이 없이 침착한지라 서슴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다가선 순간 쾅! 하는 충격을 가슴에 받고 그만 피를 울컥 토하면서 뒤로 날아가 탁자를 부수며 나뒹굴고 말았다. 피분수가 허공을 가리고 주변의 모두가 그 피를 뒤집어썼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곤륜왕은 쓰러져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룡에게 이렇게 말했다. "환관 놈들이 그렇게 아녀자들을 괴롭혔던 것은 바로 네놈처럼 기루에서 여자를 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그것을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네놈은 날 실망시키는구나." 사이룡은 그 순간에 이미 기혈이 뒤집혀서 어찌된 영문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연히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를 치료하기에 바빴다. 스스로 기혈을 가라앉히고 경맥을 타통하며 운기조식하는데 곤륜왕이 주변을 쓱 둘러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은 모두가 머쓱해졌다. 자기들 중 가장 무공이 강한 사이룡이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어이없이 당했는데 자신들은 어떻겠는가. 아마도 단번에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먼저 싸우자고 달려들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삼족이 몰살당할 것이다. 황족의 으뜸인 황제의 동생이 아닌가. "어찌 이토록들 자랐느냐? 그대로 머물면 좋을 것을." 곤륜왕은 홱 돌아서 가버리고 사이룡은 몸을 일으켰으나 아직도 가슴에 울혈이 잡힌지라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분한 생각은 들지 않고 퍼뜩 그 옛날의 한 마디가 생각났다. 미안하다. 당시의 그 말은 바로 곤륜왕이 자신에게 환관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던 것은 그러한 사연을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사이룡에게 달려들고 저마다 걱정스러운 얼굴들이 되었다. 기녀들이 뛰쳐나가고 의원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사이룡은 그러한 가운데 스스로 몸을 일으켜 기루를 떠나면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수선들 피우지 말아라. 나는 잠시 다녀 올 곳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떠난 것을 시작으로 사이룡은 그때까지의 모든 연을 끊고 강호를 떠돌았다. 삼 년을 떠돌았고 황제에게 잡혀 와서 판관 자리를 내수받고 다시 떠났다. 다시 떠나서 이 년. 가령공주는 상사병으로 네 차례를 앓아 누웠고 사이룡은 다시 붙들려 왔다. 많은 경험을 쌓았고 무공도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늘까지 단 한 순간도 그때의 부끄러움을 잊은 적은 없었다. 그 후에도 기방을 들리고 여자들과 운우를 나누었지만 항상 곤륜왕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있을 때 가지지 못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생각하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부끄러운 법이다. 곤륜왕은 그것을 부끄러워했고 그래서 어린아이인 사이룡에게 그 모습을 보인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기루에서 한껏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고 있는 사이룡을 보고는 실망한 것이다. 그것은 사이룡이라는 한 아이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그 천진했던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분노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랬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미안한 상대들이 존재하기를 바랬다. 누군가는 자신처럼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불행히도 이 세상에 없었다. 그는 그것이 섭섭했으리라. 사이룡이 고개를 떨구었다. 황명은 황명이다. 이제는 그와 다시 마주쳐야 하는구나. 그 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늘 이제는 마주쳐야 하는구나.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