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그들이 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존재의 소리이지만, 목소리는 아니다."
텃밭 선생님 혜선 님이 가져 온 글로 이번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의 부분입니다. 한 달만에 훌쩍 자라버린 생명력의 규모에 놀라기도 했지만 로빈의 글을 따라 씨앗이 빡하고 팽창하는, 어린 가지가 내는 쉭쉭 소리를, 벌레만 들을 수 있을 법한 작은 맥박 소리를 좇는 더 작고 섬세한 시간도 상상해봅니다.
밭에서는 식용 가능성 또는 외형에 따라 어떤 풀은 정성껏 가꾸어지고 어떤 풀은 바로 제거되곤 합니다. 곤충들은 익충/해충으로 나뉘어 퇴치, 방생되고요. 달고 커다란 열매를 얻기 위해 작물 자체의 본성을 거스르고 곁순을 없애기도 합니다. 그 모든 가름과 선택들에 당연함은 없음을, 인간이 잘 먹기 위해 풍작을 내는 것만이 방법이 아님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이런 깨달음이 생태 텃밭에서 배울 수 있는 기쁨이겠습니다.
로빈은 옥수수, 콩, 호박이 함께 심었을 때 각자의 특성을 통해 서로를 돕고 공생하며 자라기에 '세 자매'라고 표현했습니다. 넓은 잎사귀로 땅을 덮어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해주는 호박, 든든한 첫째처럼 먼저 자라나 지지대가 되어 줄 옥수수, 그 옆에 콩을 심었습니다. 콩이 자라면 공기 중에서 질소를 끌어와, 옥수수에게 영양분을 다시 채워주는 거름 역할을 해준다 해요.
"일부 곤충은 작물을 먹을 작정으로 밭을 찾는다. 하지만 식물이 다양하면 이런 해충의 천적에게도 서식처가 생긴다. (...) 이 밭에서 먹고 사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넉넉히 돌아간다."
밭일을 마치고는 더운 날 함께 애써준 서로에게 감사함을 건네며 시원한 수박을 나눠 먹고, 6월 말쯤 감자를 캐자고 하며 헤어졌습니다. 감자는 캘 때가 되면 잎이 시들어진다고 해요. 때마침 사그라드는 변화가 새삼 신기합니다. 미래의 지구를 생각하면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식량을 나누어주는 땅과 기꺼이 먼 길을 나서 함께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이번 텃밭 일지를 마칩니다.
"식물은 숨 쉬는 모든 존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식물은 보편 언어로 가르친다. 그 언어는 '식량'이다."
(인용 출처: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에이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