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소절처럼 작은 그 문장이 우리가 잊고있거나 마음속 깊이 있는 기억을 건드리면, 그 순간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첫사랑과 함께 운동장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끼며 들었던 노래, 여행을 가는 새벽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새벽 공기의 노래, 첫사랑과 여행이라는 것으로 다가온 설렘이라는 감정이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노래는 단순한 음표와 가사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숨겨진 감정의 지도와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지도 위에서 나도 모르는 잊어버린 기억과 시간을 다시 찾으려 애쓰게 된다.
흔히 이 감정을 향수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향수병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전에서는 향수병을 타지 생활의 스트레스로 고향을 생각하거나 추억에 잠겨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향수병은 단지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손에 닿지 않는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갈망이다.
우리는 힘들 때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의 낯익은 풍경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럴 때 노래는 가장 완벽한 해결방법이자 통로가 되어준다. 한 곡의 노래가 시작될 때, 그 멜로디는 마치 시간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처럼, 내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들을 소환한다.
나는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아버지 차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마음이 저릿하게 흔들렸다. 그 노래는 친구들과 졸업하기 전날 갔던 노래방에서 부른 드라마 1988의 [ 혜화동 ]이라는 노래이다. 아마도 드라마를 보면서 수십 번도 더 듣고 불렀던 노래지만 이 노래가 나에게 향수병을 유발시킨 이유는,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도 달라서인 것 같다. 노래를 들으면서 당시의 웃음과 친구들과 연습했을 때의 모습이 세세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현재의 나 존재만 느끼지 않았다. 과거의 나, 그리고 같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던 내 친구들의 모습이 모두 내 앞에서 살아 숨쉬는 듯했다.
그 때는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어 가장 걱정없이 놀고 웃고 편하게 울던 내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