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비는 우리 조선의 모범이다. 그러면 어떤 모범을 보여야 하나?
법률공부 2024.10. 16
[12회] 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2회] 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 주자학은 실용학문
12-1. 과거제도와 선비 배출
송나라 시대에 농사기술 발전으로 경제가 발전하여 경제적 여유 생김. 잉여 자산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과거를 치르게됨. 귀족 출신 아니라도 중앙 관료 진출 가능. 관료는 문반에서 선출. 경제발전으로 인재가 공급이 됨.
송나라 문물을 도입한 조선시대에도 상황은 비슷.
조선 관료는 최대 500명, 평균 300명 수준.
과거 급제자는 응시자의 1% 내외 밖에 안된다. 더우기 기존 문벌귀족들의 자식에게는 음서제도가 있어 자리가 더욱 적다. 그리니 자기 실력으로 과거를 통해 붙을 사람 숫자는 매우 적었다. 30~40명 정도.
그런데 과거 응시자는 똑같이 모두 유교 경전과 고전을 공부였으므로 그 숫자는 엄청나다. 등과 여부에 상관없이 이 사람들을 선비라고 부른다.
12-2. 도학이 된 주자성리학
그러면 과거도 안될텐데 왜 공부를 하느냐? 자기만의 정체성을 합리화 시작. 선비들의 대답은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해서. 도덕성을 키우기 위해서. 선비가 하는 공부는 도덕. 윤리적 수양. 그게 도학. 주자성리학은 도학이 된다.
자신들의 존재를 합리화하는게 도학. 문(文)을 넘어 도( 道 ).
12-3. 주자학은 실사구시 학문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니 관료가 되지 못한다. 자기고향으로 돌아가 재지지주(在地地主)와 향사( 鄕士)들이 생기고 자신들끼리 서원을 만든다. 그 마을의 세시풍속을 고친다.
주희는 등과는했으나 말단 관리. 시골에 거쳐하며 권농문을 쓴다. 강남농법에 대해서 완벽한 기술자. 거름주는 방법, 모내기법, 곡식 재배법 등 주희는 강남농법의 모든 것을 꿰뚤고 있었다.
주자학이야말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이다!. 당시의 최첨단 문명인 강남농법을 완벽하게 알고, 현감으로 있으면서 일일이 권면하면서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어 풍족하게 살 수있게해 주었다. 주자학이 실학이다.
주자집주:
주자는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일일이 각주를 단 주자의 주석서 '주자집주'가 만들었다. 조선이 쇄국정체 들어가면서 이 해석에 한자라도 틀리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