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감리서 터 주변 백범 김구 기념관 건립 절실
등록 26.07.13 07:49l
수정 26.07.14. 06: 30
작성 이병호(xinchon)
이 글은 오마이뉴스 생나무글입니다. 기념관 하나 없는 백범 김구 '삶의 전환점' , 인천 - 오마이뉴스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 정상에 김구와 곽낙원 여사 동상인천 신포동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 정상에는 김구와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있다. 바로 아래 내리마루 문화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인천 감리서터이다. 동상 뒤에는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가 있다. ⓒ 이병호관련사진보기
올해 2026년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으로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세계적 인물로 설정한 '백범 김구의 해'이다. 문화체육부와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백범김구기념관 등 몇몇 단체에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으나, 정작 김구 선생의 '삶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인천에는 김구의 발자취를 기록·보관하고 홍보·교육할 수 있는 기념관이 없다. 겨우 인천 제물포구 신포동에 2022년 3월 조성된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와 1997년 인천시민추진위원회가 7억원의 성금을 모아 인천대공원 백범 광장에 건립한 김구와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 등이 있을 뿐이다.
지난 7월 5일 일요일 오후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를 찾은 필자는, 이곳에서 백범 청년 김구의 모습을 알기 위해 이곳을 탐방하고 있는 한국인은 보지 못했다. 다만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청년 두 명을 보았을 뿐이다. 김구 역사거리를 설명 소개하는 안내원도 없었고, 탐방을 지원하는 부스 또는 센터 등 시설물 및 건물 하나 없었다. 신포동은 차이나타운 및 조계지 그리고 신포시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나, 정작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인천 그리고 신포동을 존재하게 한 백범 김구에 대한 관심과 '존경심'은 찾기 어려웠다.
▲인천 신포동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 입구와 전경인천 신포동 오거리에서 대한성공회 인천 내동교회까지 이르는 200m 구간은 8개의 스토리가 있는 백범 김구의 역사와 발자취에 대한 조형물 및 사진, 문화쉼터 등이 있다. 이곳에는 곽낙원 여사의 옥바라지 길, 인천축항 노역길, 탈옥길 등이 있다. 이 거리 가장 꼭데기에 백범 김구와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있다. ⓒ 이병호관련사진보기
인천 신포동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 – 신포동 오거리에서 내리마루 문화쉼터 구간
백범 김구와 인천은 매우 인연이 깊고 그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백범 김구는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보수(국모 시해에 대한 원수를 갚다)의 목적으로 일인 스치다 조스케를 살해하고 해주에서 자진 체포 뒤 이곳 인천 감리서로 배를 타고 압송되어 왔다. 인천 감리서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감리서 주변 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옥하여 국내 활동 중, 1919년 3.1 만세운동 뒤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독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인천에서 초, 중, 고를 다니고 현재 60년째 살고 있는 필자도 김구가 인천 감옥에서 수감 중 땅을 파고 탈옥을 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감옥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랐었다.
인천 감리서는 백범 김구(1876~1949)가 탄생한 해이자 강화도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의 1876년에서 7년 후인 1883년 8월 인천에 세워졌다. 인천 감리서는 인천항과 관련된 업무와 경무 및 재판, 투옥 등 국가와 인천 도호부의 일을 맡았던 행정 관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천 감리서 터는 인천 제물포구(구 중구) 내동 83번지 일대이다.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중턱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바로 아래에 있으며 신포동 오거리까지 200m 구간이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주차는 김구와 어머니 곽낙원 여사 동상이 있는 내리마루 문화쉼터의 지상 주차장 및 바로 아래 내동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대중교통 이용 시는 동인천역이나 인천역에서 도보로 이동하면 된다.
▲인천 감리서터에 세워진 내리마루 문화쉼터의 백범 전시회백범 김구가 두 차례나 투옥되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탈옥했던 인천 감리서터에는 내리마루 문화쉼터가 있다. 이곳 1층 교실 한칸 정도 공간에서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회와 백범 김구기념관 주최, 주관으로로 찾아가는 백범기념관 '문화의 힘으로 평화를 꿈꾼 지도자, 백범 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이병호관련사진보기
백범 김구 인천 감리서에 두 차례 투옥, 사형 선고받고 복역 중 주민들 도움으로 탈옥
백범 김구와 백범 김구의 인천에서 삶을 연구한 많은 사람은 인천을 백범 김구의 '삶의 전환점' 또는 장소로 본다. 이렇게 보는 대표적인 이유는 인천 감리서에서 두 차례의 감옥 생활과 탈옥 그리고 해방 후 귀국하여 첫 방문지로 인천을 방문한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인천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 1911년은 신민회 활동과 안악 사건으로 15년 구형 판결로 경성 감옥 수감생활을 하였으나 인천감리서로 이감되어 인천항 축항 강제 노역의 경험을 하였다. 인천 감리서에 두 차례의 투옥 생활을 하며 김구는 '위정척사'의 좁은 국가관에서 벗어나 교육과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는 등 세계관과 인생관의 커다란 성찰의 시간 및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항 도시 인천의 소식을 접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태서신서와 같은 세계역사와 세계지리 등의 책도 읽었다. 아래 백범 김구가 광복 후 38선 이남 순회 중 인천 관련 감회를 보면 왜 인천을 백범 김구의 '삶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럭저력 (대한)민국 28년(1946년)을 맞이하자 38선 이남이나마 지방 순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1차로 인천을 순시하니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적 장소' 이다. 이미 쓴 이야기들을 대강 다시 음미하게 된다. 스물두 살 때 인천 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스물세 살 때 탈옥 도주하였고 마흔한 살 때는 17년 징역을 받고 인천 감옥으로 이감하게 되었다. 17년 전에 탈옥하였던 그 감옥을 다시 철망에 얽히어 들어가니, 말 없는 감옥도 나를 아는 듯 내가 있던 자리를 의구하게 나를 맞아주네. 17년 전 김창수는 김구로 이름을 바꾸었고 또한 기나긴 세월이 흐른 까닭에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유동현. '백범일지'(2002. 학술원) 발췌 정리. 인천광역시 공식 블로그. 2017.11.30.
▲인천 감리서 전경과 구성1888년 샤를 바라(Charles Varat, 프랑스 지리학자. 탐험가)가 촬영한 사진으로 인천 감리서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현재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중턱에 위치하며 왼쪽으로 홍예문이 있고 감리서 뒤로는 용동마루턱이 있다. 인천 감리서는 출입문 뒤로는 경무청과 순검청 그리고 감옥이 있었다. 출처: 인천광역시 중구 독립운동 역사문화 콘텐츠 연구 용역. 2019.9. ⓒ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사(인천개항장연구소.관련사진보기
백범 김구,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적 장소'
백범 김구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에 대해서 인천투데이 김윤정 기자는 "인천 중구(현 제물포구)는 2020~2021년 이 구간을 조성해 김구의 일대기 등 8가지 이야기로 꾸몄지만, 자체 건물이 없이 인근 쉼터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표지판을 따라 걷는 자율 관람 방식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기행] 정병욱 헌신이 살린 윤동주 시인, 인천 박경리·고유섭·김구 깨워야. 인천투데이 2026.07.07.
▲'인천 독립운동의 이해와 그 발자취를 찾아서 ' 강연회 모습인천 제물포구 신흥동 단비도서관에서 2026 길 위의 인문학. 지혜학교 2926년 7월7일~9월 15일까지 강연회가 열린다. 첫날 강연회는 '김구의 길과 인천'이라는 주제로 이희환 박사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30여 명이 참가했다. ⓒ 최정학관련사진보기
인천 송도 옥련동에는 대규모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 있고, 제물포구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그러나 1997년 시민추진위원회의 성금 모금으로 백범 김구와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을 제작했으나 설치할 마땅한 곳이 없어 당시 인천은 인천 동남쪽 인천대공원에 세웠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인천연구원과 인천 제물포구청(구 중구청) 등에서 김구 콘텐츠에 주목한 지 수년이 흘렀고 많은 예산을 들여서 관련 용역 및 학술회의가 진행되었음에도, 김구 길 외에 발굴된 콘텐츠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백범 청년 김구 인천 기념관' 설립은 인천시(문화유산과)와 인천시 제물포구(문화관광과)가 협업하여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 2026년 7월 14일은 인천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신도 평화대교가 개통되는 날이기도 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인천시와 인천시 제물포구는 속히 '백범 김구 청년 인천 기념관' 건립을 위한 추진 위원회 결성 등의 과업을 속히 해야 한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백범 김구 인천 기념관의 건립 필요성과 장소 및 방법에 대해서는 첨부한 "인천광역시 중구 독립운동 역사문화 콘텐츠 연구 용역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 2019" 를 참조하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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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xinc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