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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찾아오시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2026년 2월 15일 / 하박국 3:17-19
합 3:17-19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싹도 내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목장의 양 떼들은 모두 다 사라졌고 외양간에는 소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18) 그렇더라도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 뛰겠습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나는 즐거워하겠습니다. 19)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두 발을 암사슴의 다리와 같게 하시고 모든 산들의 위에서 안전하게 달리도록 힘을 주십니다.)
들어가는 말
우리 인체의 근육은 3가지로 구분된다. 골격근육, 심장근육, 내장근육이다. 근육의 특징은 수축과 이완작용을 한다. 심장근육은 하루에 약 10만 번 정도를 움직인다. 그래서 온몸에 신선한 피를 공급한다. 내장근육은 위나 창자, 방광, 혈관에 있다. 우리들이 음식을 먹으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여서 소화를 시킨다. 그 다음이 골격근육이다. 이 근육은 뼈를 감싸고 있다. 뼈를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근육이다. 이 근육은 운동하고, 단백질을 섭취하면 발달한다.
반면 쓰지 않는 근육은 점점 쇠퇴한다. 얼굴에는 얼굴 근육이 있다. 항상 미소를 짓는 근육을 사용하면 얼굴이 자동으로 미소가 나온다. 그런데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인상을 쓰면 저절로 얼굴표정이 일그러진다. 링컨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얼굴근육을 잘 사용하셔서 항상 미소 짓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드시기 바란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감사근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퇴화하듯이 우리 안에 감사도 똑같다. 감사의 근육을 사용하면 감사의 근육이 점점 커진다.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의 근육을 쌓으면 더 큰 감사의 근육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근육을 사용하면 우리 몸은 점점 원망과 불평의 근육이 발달한다. 자기도 모르게 원망과 불평으로 빠져든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근육을 사용하고 있는지? 감사의 근육인지? 아니면 원망과 불평의 근육인지?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 / 그는 흑인 인권운동【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 즉, 남아공 옛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하다가 투옥되어 1964년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7년 만인 1990년 2월 11일에 출소 무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7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깜짝 놀란 기자가 질문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갇혀 있어도 건강을 잃고 나오는데, 당신은 27년 옥살이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합니까? 도대체 그 비결이 뭡니까?” 그때 만델라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감옥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 노동할 때도 감사했죠. 감사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그 후 그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는 보통 행복은 환경이나 조건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의 태도에 좌우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의 태도를 가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 비결은 바로 감사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만델라는 비록 27년을 감옥에 있었지만, 원망과 불평의 근육이 아닌 감사의 근육을 키웠다. 그 결과 그는 환경에 매이지 않고 항상 감사할 수 있었다. 그 감사가 그 삶의 기적을 일으켰다. 상황을 초월한 감사는 항상 기적을 가져온다. 기적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감사의 근육을 항상 키우는 자에게만 찾아온다.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이 있고, 이 말은 자신의 노력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와 도움을 준다는 의미이다.
본문 설명
본문은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고백이요 기쁨의 고백이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의 의미는 ‘씨름하는 자’이다. 이름 그대로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질문하였다. ‘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 않는지’를 물었다(1:1-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1:5-11). 그러자 하박국이 두 번째 질문을 하였다. ‘왜 하필이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벨론 같은 악한 나라를 통해서 징계하십니까?’(1:12-2:1).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시대가 피를 흘리고, 거짓이 난무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날이 올 것이다’(2:14)라고 하셨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바로 새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3장에서 수년 내에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렸다.】
▶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눅 6:38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런 응답을 위해서는 조건의 말씀(27-37절)이 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위하여 힘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위해 힘쓰는 것이기에 능히 할 수 있다.
눅 6:27-36 /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렇게 살기를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잘 되지를 않는다. 인간의 결심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셨다.
눅 11:9-13 /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복음성가에도 이런 곡이 있다.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❶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 나를 짓눌로 맘을 곤고케하니 /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❷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남을 위하여 당신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 예수여 나를 도와 주소서
▶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굳게 약속해 주셨다.
요 3:16-21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함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3:7-4:11 >
나를 찾아오시는 여호와로 인하여 난 즐거워하리
1. 어부였던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눅 5:1-11)
눅 5:1-11 / <어부들이 예수를 따르다(마 4:18-22; 막 1:16-20)>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 실패와 죄책감에 빠진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요 21:2-19)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스스로 '실패자'라 낙인찍었던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사례이다. 베드로는 큰소리쳤던 자신과 달리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시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 꾸짖지 않으시고 조반(식사)을 차려주셨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시며 베드로의 사랑을 재확인시켜 주셨다. 과거의 수치심에서 벗어난 베드로는 초기 교회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회복되어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사명자로 거듭났다.
3. 베데스다 연못까지 찾아오셔서 오래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요 5:1-9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4. 절망에 빠진 의인에게 찾아오셔서 축복을 해 주신 하나님
의인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였다(마 22:37-39). 저들에게 주어진 소망은 인내를 요구하였지만 믿음이 동반되었다. 저들의 믿음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이었다(히 11:1-2).
1) 나그네를 대접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창 18:1-15)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였다(히 13:1-3).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약속하신 자식을 주겠다는 응답을 받았다.
나그네는 지나가면 끝 → 받기를 바라지 말고 베풀라(눅 14:12-14). 거저 받았으니 너희가 거저주라(마 10:8). 그리고 베푼 것으로 끝나라(마 6:2-4).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마 25:34-40).
2)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창 32:22-31)
코너에 몰린 야곱은 어찌할 방법이 없어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몸부림치는 기도를 통해서 마침내 응답받게 되었다. 쨍하고 해가 뜨는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 에서와 화목하게 되었고, 형 에서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다(창 33:1-16).
3) 요셉을 찾아오신 하나님(창 41:14-45)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통해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배가 다른 형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미움을 받았다. 그리고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다(37:2-28).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요셉은 많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꿈을 통해 약속하셨던 것을 그대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를 괴롭혔던 형들을 용서해 주었다(창 45:1-15).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변개하지도 않으시거니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다(롬 4:21). 그러므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히 10:36).
4) 고난에서 헤매던 욥을 찾아오신 하나님(욥 42:1-6, 10-17)
까닭 모를 고난으로 재산, 자녀, 건강을 모두 잃고 하나님께 항변하던 욥이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하나님께 이유를 물었다. 친구들의 정죄 속에서 그의 영혼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회복 과정: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창조 세계의 신비를 보여주셨다. 이는 욥의 지식적 질문에 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심을 보여주심으로 욥의 시선을 ‘자신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옮기신 것이다. 욥은 ‘내가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하며 영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후 하나님은 그의 소유를 갑절로 회복시켜 주셨다.
5) 사렙다 과부를 찾아오신 하나님(왕상 17:8-16, 눅 4:25-26)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를 3년여 개월 동안 섬기게 함으로 아들까지 무서운 흉년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여인에게 요구한 것은 물과 떡이었다. 사실 여인에게는 자기와 아들의 마지막 양식이었다. 무리한 요구인 듯하였지만 이것은 축복의 씨로서 무서운 흉년이 다 지나가도록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기름도 마르지 않아서 세 사람이 매일 충분히 먹고살게 되었다.
6)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찾아오사 역사하신 하나님(행 16:6-40)→ 세상에 사는 끝날까지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갈 수 있었다(딤전 1:14-17).
참고로 하면 유익한 글들
❚ 중세의 한 수도사가 수도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일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라는 글이다. ‘감옥과 수도원은 환경적으로는 매우 유사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옥을 지옥으로 만들고 수도원을 천국으로 만드는가? 감옥에서는 하루가 불평으로 시작되는 반면 우리들 수도원의 하루는 감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만약 수도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이 수도원이 지옥일 수가 있다. 반대로 만약 감옥에서 감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감옥이 바로 천국이 될 수 있다.’ 지옥을 만들고 천국을 만드는 것이 환경에 있는가? 아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있다.
❚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작사 : 엘리자 에드먼즈 히윗(Eliza Edmunds Hewitt, 1851~1920) 이 찬송가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찬송가이다. 엘리자 에드먼즈 히윗 여사는 1851년 6월 28일 미국 펜실바니어의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교육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곧 교사가 되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불량소년을 선도하다가 그 소년으로부터 등뼈를 얻어맞아 척추를 다쳤다. 1887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장장 7개월 동안이나 병상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서 척추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원래 경건하고 신앙이 굳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랜 병상에 누워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투병생활과 몇 개월에 걸친 병상 생활로 신앙이 약화하여 갔다. 현실에 대한 원망이 쌓여 갔고 자신을 가해한 소년에 대한 증오과 미움에 견딜 수 없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 화사한 봄날 아침, 병실 청소하던 흑인 여자가 빗자루질하면서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창한 봄날 따분히 누워 심사가 뒤틀려 있던 히윗 여사에게 흑인 청소부의 즐거워하는 태도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했다.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다고 생글거리는 거예요?’ 버럭 역정을 낸 히윗 여사에게 흑인 청소부는 말했다. ‘좋지 않다니요? 나에게 닥친 모든 형편과 어려움이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히윗 여사는 감전된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구나! 나는 나에게 닥친 고난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만 했구나!’ 깊은 회한과 애통이 그녀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때 자시의 처지를 기쁨으로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찬송시를 만들게 되었다. ‘ … 예수께 의지하는 마음을 매어 답니다. 어떤 병이라도 이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찬송 부르며 내 인생의 길을 따라 걷네, 주를 찬양하며, 예수께서 내 짐을 들어 주시네.’ / 그날 이후 병상의 투병 생활이 그녀에게는 기쁨의 시간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의 아픔은 제거되었고 무엇보다도 가해 소년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 코리텐 붐여사 / 그녀의 저서 「주님은 나의 피난처」는 그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수기로 기록해놓은 책이다. 그녀는 추위, 고문, 굶주림, 갈증, 헐벗음 등 그야말로 인간이 육체적으로 당할 수 있는 고통은 거의 다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놀랍게도 ‘벼룩’이었다. 그녀는 수용소 안에서 숨어서 성경 공부했다. 하지만 다른 말씀은 다 이해할 수 있고, 다 행할 수 있어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이하의 말씀을 공부할 때는 도무지 그 말씀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지? 이렇게 벼룩이 나를 괴롭히는데 ….’ 어느 날 그녀는 한 환자를 데리고 의무실로 가는 도중 우연히 독일 병사들이 나누는 말을 듣고 그것도 감사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 감방 안에는 벼룩이 많으니 밖에서 슬슬 지키도록 하자.’ 그녀는 이 말을 듣고 그동안의 원망과 불평이 다 사라졌다. ‘벼룩을 보내주신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이 감방 안에서라도 자유를 주시기 위해 벼룩을 보내셨군요. 이제 성경을 숨어서 보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겐 그저 감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벼룩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던 코리텐 붐처럼 자신이 감사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자.
❚ 록 음악(Rock music)과 찬송의 차이 / 미국의 도로시 라탈락 박사는 최근 2년 동안 템플뷰엘 대학에서 록 뮤직(미국에서 기원하여 1960~200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실험했다. 박사는 하루에 세 시간씩 록 뮤직과 사탄적인 음악을 식물에 들려주었더니 한 달도 못 되어 끔찍한 결과가 나왔다. 어린 호박에 주름살이 생기고 토마토는 납작해졌으며 옥수수는 구부러졌다. 그 반면 찬송과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생기를 띠고 싱그럽게 자랐으며, 열매도 알차고 윤기가 있었다. 식물도 그런데 사람은 오죽할까? 청소년들이 록 음악을 계속 들으면 영혼과 생활이 파괴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