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이 향년 90세의 일기로 8월 12일 오후 2시30
서울대학 병원에서 일생를 마치셨습니다.
다시한번 할아버님의 명복을 비오며
할아버님과의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충청도 평범한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국내도 여행이라곤 특별히 다녀보신적이없는 분이셨고
외국은 물론 , 비행기도 타보신적이 없는분이 셨습니다.
그래도 11남매를 두신 다복함으로 마음은 늘상 , 기쁨과, 걱정 그리고 무한한 그리움의
시간들이었을 겁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90년의 세월동안 아마 자식들에 대한 기대와 바램이 가장 그리고 오랜동안
당신 인생의 대부분을 장식 했을 겁니다.
저는 아버님을 2살때 여의고 할아버님 집에서 같이 살았었기에 할아버지에대한 유년의 기억이
남다른 지도 모르겠지요.
제 기억으로는 할아버지는 그많은 자식을 키우셔야 했음에도 일을 하지않으셨습니다.
매일같이 메꼬모자와 정장을 하시곤 공화당사무실을 들락거리셨고 , 마을이장은
하고싶을만큼 오래동안 하시면서 동네에선 당신만의 유지생활을 누리시던 그런분이셨습니다.
제가 할아버님의 일하는모습을 본 유일한기억은
그 귀하다는 자전거에 삽을 옆에 끼우고 해질무렵 들판에나가
벼들의 상태를 확인해보는것이 전부였지요,
그런 다음날이면 동네 어귀에사는 성호네 아버지가 새벽같이 할아버지와
대면을 하고 계셨습니다.
성호네 아버지는 제가 2살때 시골에 왔을때부터 계시던 일꾼(머슴) 이셨는데
그의 고향이 어딘지 , 어떻게 왔는지 모든것이 베일에 쌓이신 분이셨지만
할아버지만은 그에게는 절대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는 어느날 밤늦게 성호 엄마를 데려오셔서 , 결혼을 시켜주셨고
다쓰러져가는 동네 초입의 초가집을 내주고 냄비와 솥도 사주셨습니다.
성호 아버지는 결혼을 한후에도 커다란 대문을 제일먼저 열어제켜 온가족을 깨우셨고
그후로도 오랜동안 그런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할아버님의 연세 70을 뒤로 하고는 모든 농사를 성호 아버지가 지으셨고
할아버지는 일정량의 소출만을 받는 삵도지를 놓게 되셨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할아버지의 오래된 기와집은 조립식 집으로 변하였고
성호네의 다쓰러져가던 초가집은 용호리 마을 전체에서 가장 좋은 양옥집으로 변하게되었습니다.
저보다 3살이 어린 성호가 초등학교만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게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뛰었고
시골에 유일한 트렉터와 , 모내기하는 이양기 , 콘바인을 차례로 들여와
모든 농사를 성호네가 주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어느덧 성호네집이라는 이름이 동네에서 가장 많이 불려졌고 , 부안임씨 사직공파 16대손
임진사의 위치는 설날 가장일찍 세배를 오던 성호네식구가 세배오는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만큼 위세가 뒤로 쳐지고 말았던 겁니다.
서울대 영안실에 조화가 20여개쯤 들어오고, 문상객의 발길이 지렁이늘어지듯 점점이
찾아오는데 둘째고모가 그러시데요 : 우리 아버지는 행복한 사람이셨다고, 평생 일도 안하시고
11남매 다키우고 , 지금은 저렇게 꽃속에 묻혀 편하게 저 세상으로 가신다고.."
사실 돌아가시기전까지 저희 집안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분이 할아버지셨습니다.
충남 연기군 동면 바로 이곳이 행정복합도시가 들어서는곳이라 작년에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얼만큼 나눠주시고 , 당신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현금을 통장에 넣어놓으시고는
88세에 집안에서 가장영향력있는 인물1위로 다시금 정상 등극을 하셨던 겁니다.
14일 오전 6시30분에 장지를 향한 영구차에서 오늘 날씨가 얼마나 더울까?
망자에 대한 예의 보단 더운 찜통더위를 계산하는 얄팍한 손자의 버르장머리를 꾸짖듯
잠이 옵니다.
초라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조립식 집앞에서 노제를 마치고
상여꾼들이 장지를 향해갑니다.
만장은 보이지않고 상여꾼들의 나이도 언제 당신차례가 될지모를 주름살많은 검은 얼굴사이로
땀방울 굵게 맺힙니다.
열심히 장지를 올라간 할아버님의 묘소에 포크레인 한대가 열심히 묘역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특이한건 포크레인기사의 일상적 작업복이아닌 예의를 갖추고 열심인 모습이
그 더위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1시부터 작업을 해서 봉분까지 다 갖추고 제사까지 마치니 2시가 되었습니다
작은아버님에게 아까 포크레인 기사 혹시 아는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성호 아저씨 둘째 아들이라고 합니다
결국 할아버님은 성호 아저씨 둘째아들이 운전하는
포크레인의 조심스런 동작으로 흙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것입니다.
저는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성호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일생이 이렇게 정리되는구나 !!
폭염이 내 얼굴을 익힐것처럼 한낮의 열기는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