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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과의 벽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2003년 9월부터 각종 공연을 시작한 강성국 퍼포머.
이 퍼포머에 대한 제보를 받고 갑자기 만나고 싶은 매력을 느껴 한비문학의 명인코너에 소개하기위해 만남을 주선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날은 눈이 무척 많이 내렸고 그를 만나기 전날 그만 실족으로 인한 발목 부상으로 만남이 취소되고 다시 시간을 정해 어렵게 만났다.
그를 만난 날은 날씨가 많이 푸근해져서 겨울날 같지 않았는데 각종 공연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가득히 붙여져 활기에 넘치는 대학로에서였다.
시간이 넉넉해서 기웃 거리다가 그만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 나는 만나기로 한 카페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제보를 해준 분은 나보다 조금 더 늦을 거 같다. 내가 다가가 웃음을 건네자 만나기로 한 사람인줄 알았다는 듯 반긴다. “반가워요.” 라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그는 얼른 팔을 들어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비 꼬인 손이 내 손위로 어렵게 덮쳐 온다.
이미 그에 대한 자료는 충분히 검토한 후였고 그가 했던 공연도 자료를 통해 충분히 보았으나 직접 만나야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참 잘했다 싶다.
나는 뒤늦게 만학의 길을 걸으며 장애인에 대한 많은 것을 이론과 실기를 통해 배웠지만 이번에 만나게 된 강성국은 뇌성마비에 지체 1급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두 팔도 부자연스럽고 다리도 절룩거리며 걷고 말 한마디 하기도 무척 어렵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의 대상이거나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이론적인 공부와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틀이 깨어져 있는 입장이긴 했으나 그가 그 많은 것 중에 왜...퍼포머가 되기로 했을까 알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지만 온전치 못한 자신의 몸 전체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하는 장애인은 처음이다. 시를 쓰는 장애인이나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 상쇠를 두드리는 장애인 등 예술을 하는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그 불편한 몸으로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끌어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일깨움을 주는 작업을 하는 장애인은 처음인 것이다.
(강성국씨와 인터뷰 중인 기자)
상투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로 하고 세상 을 향해 자신이 정말 보여주고 싶고 알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또한 1월중에 계획된 공연의 내용에 대해 조금의 귀띔을 해주길 바랐다.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공연이 취소가 되었어요. 문제가 생겨서 1월에 하기로 했던 것이 취소가 되었어요. 그 공연을 위해서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같이 작품 활동을 할 사람들을 알아보고 만나고 했는데 이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아요.”
“무슨 문제로 인해서 취소가 되었는데요?”
“제가 취소를 한 것이 아니라, 소극장에 문제가 생겼어요.”
“공연을 못하게 되어 무척 서운하겠어요. 이래저래 마음 적으로 많이 설레고
준비했을 건데.”
“그건 괜찮아요. 다만 이번일로 신용을 잃게 될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 되요.”
그가 걱정한 것이 무대에 서지 못함이 아니라 함께 일하려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신용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었다.
그의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Ⅰ. ‘핏줄’
물소리와 기차소리는 마치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한쪽에 웅크리고 앉은 무용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형제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여느 형제들과 같이 그들은 장난을 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한없이 행복함에 젖어드는 갓난아이처럼 평온하다. 전래동요 ‘자장가’가 어렸을 적 아련한 추억처럼 메아리치듯 반복된다. 여느 형제와 친구들처럼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은 힘들게 마음을 표현하려는 장애인들을 대할 때 측은한 마음을 먼저 내보인다. 장애인 또한 그런 우리들에게 조금은 야속하다며 서운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편견들과 우리사회의 시각을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다.
Ⅱ. ‘장애, 두 개의 시선’
지하철에 소음이 시끄럽다. 한 장애인이 지하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힘겹게 걸어가는 그가 이상한 듯 모두들 여기저기서 시선을 보낸다. 이 작품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나타냈다.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볼 때 장애인이기에 우리랑 다르다고 생각하는 고착화된 시선과 장애인 스스로 장애를 가져서 겉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인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이 두 개의 시선이다. 그가 연기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모습은 외면과 내면의 상반됨을 보여주었다. 겉모습이 다르다고 하여도 내면의 모습들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 아닐까?
Ⅲ. 또 하나의 방법
우리가 몸의 일부를 못 쓴다면 어떻게 될까? 참 발칙한 상상이다. 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평소에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지 않는가. ‘머리, 어깨, 무릎, 발’ 동요의 간단한 율동으로 시작한 후 ‘over the rainbow’의 꿈같은 음악과 함께 자유로운 즉흥적 몸짓이 이어진다. 점점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인가? 몸의 일부를 못 쓰더라도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마음만은 점점 위로 솟구쳐 오른다. 아리랑 음악에 맞춘 안무는 앞의 음악과 너무 상반된 음악이긴 했지만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했다.
Ⅳ. Me too..
신문지와 소주병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보사노바 느낌의 기타 아르페지오가 연주된다. 어두운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한대 피우는 공간이다. 이어 연주되는 아코디언의 minor 곡은 그들을 바라보는 어쩔 수 없는 우리사회의 슬픈 현실 같다. 소주를 들고 이리저리 힘겹게 다닌다. 소주를 여는 것조차 힘들다. 소주와 담배가 오직 그가 힘겨움을 이겨내는 수단일까? 최소한의 옷만 걸친 채 몸을 맘껏 움직이려는 그는 세상을 향한 강한 몸부림으로 무언가 보여주려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것 하나만 다를 뿐인데 우리가 가진 기본 욕망조차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 사회가 야속해 보인다. 그는 이 무용으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 외치는 듯 보였다.
<2006년11월19일 연합무용신문에 편집부의 백수진의 기사일부인용>
(한국전쟁을 주제로 작품 ' 검은 피' )
오후 5시 광통교 위. 팬티 바람의 강성국(25)씨가 온 몸에 흰색 분칠을 하고 나타났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강씨의 뒤틀린 손과 발은 날것의 연기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강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 동료 회원인 전영아(38)씨가 물감으로 만든 ‘검은 피’를 강씨의 벗은 몸 위로 쏟아 부었다. “으으으아!” 강씨가 비명을 질렀다.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다.
강씨는 3년 전부터 공연예술치료연구회에서 퍼포먼스를 해왔다. 이 단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퍼포먼스를 함께 하며 심신을 고치는 ‘예술치료 단체’다.
공연이 끝나자 강씨는 덜덜 떨며 밭은기침을 했다. 옷을 벗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객기에요.”라고, 강씨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농담을 했다. 이어 덧붙였다. “이유가 있어요. 한 번도 얘기 안 한 건데, 허물을 벗어버린다는 의미에요. 깨끗한 순수를 의미하죠.”
그가 청계천 거리예술가에 응모한 이유는 뭘까?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옷을 벗고 이러는 줄 아세요? 장애인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오늘 주제도 일부러 무거운 걸 택했어요. 가벼운 주제로 하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인 저를 보게 될까 봐요.”
강씨는 지난 5월 이후 전문 행위예술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장애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장애인이 불쌍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만 보여줄 때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내 퍼포먼스의 질주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에 관한 기사를 인용해서 공연을 몇 가지 소개했다. 머지않아 나 역시 그의 퍼포먼스를 직접 소극장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보게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2월에 공연무대를 준비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이번 1월의 공연이 취소 된 부분을 위안해 본다.
<아직은 밟히지 않고 잘 견디고 있다
그러나 생의 끝은 1초, 1분도 모른다.>
강성국씨가 만들어 놓은 사진과 짧은 글속에서 시인의 정서도 발견했다
내가 한비문학에 소개된 명인 이야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 한비문학지를 두 권 가지고 가서 전해 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어렸을 땐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보도블럭에서 아직 밟히지 않고 견뎌 내어 활짝 꽃을 피운 한 송이 꽃을 보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며 자신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 넣는 모습에서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한 감동의 시(詩)도 써내지 않을까 싶다.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글을 쓰며 표현하고 그는 불편하지만 자신의 몸으로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택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의 선택이 참 좋았다 싶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뮤지컬도 아니고 목소리 쩌렁쩌렁해야 하는 연극인도 아니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오직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머가 된 것은 어쩌면 비장애인보다 더 깊이 있게 끌어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했다. 그는 자신이 퍼포머가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업보가 아닐까 싶다며 웃어 보였다.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신지 14년째라고 한다. 다른 부분에서 강한 어조로 당당하게 말했던 그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선 약해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저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지는 것이 자식의 입장이고 그처럼 오랜 시간을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만도 못한 아버지의 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게로 전해져 와서 나 역시 잠시 시린 가슴을 진정시켜 보았다. 어머니께서 집안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계시고 그런 환경에서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무엇이었겠는가.
그를 내게 소개했던 문화기획마당에 프로듀서인 김진상씨는
“성국이가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돼요. 휴지를 팔러 다니긴 싫어요. 라고 말했을 때 가장 마음이 저려 와서 혼났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무대에 많이 서고 지금도 알려져 있긴 하지만 세상에 더욱 많이 알려서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와 잠깐의 동정으로 어떤 위기감을 잠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하기만 한 몸으로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그를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그가 이 험한 세상을 당당히 받아 들이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에 능하고 광고디자인에도 수상 경력이 있는 다재다능한 그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또 어느 날은 시인처럼 시심 가득한 글을 쓸 날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처럼 마음속에서 토해내고 싶은 것들이 많을 테니 글 역시 끝없이 생산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소개를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또한 한비문학을 통해서 그에 대한 공연의 생생함을 전해 드리지 못해 송구하다. 이미 있었던 자료를 토대로 그를 소개함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2월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무대에 서게 될 그의 작품을 살짝 소개할까 한다. 그가 직접 작품 구성을 하고 써보고 하는 부분이다. 그가 준비 중이라며 내게 건네준 작품의 줄거리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불편함을 주제로 해서 타인의 도움으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어느 시점에서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기다리는 상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한통의 편지가 전해졌다는...
그 편지 내용은
'못간 이유는 결코 동생 돌멩이의 신체적 장애 때문이 아니라는 것'
비록 동생 돌멩이는 사랑이 싹트게 된 상대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가 보내준 편지 한통으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세상을 향해 굴러 다니며 많은 경험을 하고 아름다운 생을 살아 낸다는 내용이었다.
취재를 하기 위해서 사전에 퍼포먼스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나섰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며 그 덕분에 또 다른 세상의 지식을 얻었다.
우리나라는 포밍( forrming)극본을 가지고 극화 하는 것, 마임(mime )
퍼포먼스(performance )극본 없이 즉흥적으로 펼치는 신체표현, 퍼핑(puffing)등을 모두 믹서해서 한가지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이다.
퍼포먼스는 공연하는 장소와 공간, 그리고 관객에 따라서 퍼포머가 조절 가능하며 그 모든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불편한 신체지만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겠는가. 그의 말처럼 업보처럼 다가 왔다면 운명처럼 받아 들여 즐길 수 있는 삶이길 바래본다.
특별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그동안 잡지나 신문기사 보도를 보면 장애인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 많은데 그 보다는 단지 장애를 가진 퍼포머라고 말해 주세요. 나 자신이 장애인 이란 점을 자꾸 부각 시키다 보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분리된 기분.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될 때 내가 퍼포머를 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겁니다." 라고 부탁을 한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 스스럼 없이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 안으니 거부감도 있었을 것인데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그 어디서 공연을 하던 지금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작품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부탁했고 가끔은 스스로가 나약해지고 작아지는 느낌도 가지게 될지 모르겠으나 많은 이들이 강성국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멋지게 보아 줄 것이니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부탁의 말도 잊지않고 했다.
카페를 나서니 한결 더 포근해진 거리는 많은 젊은이들의 물결로 더욱 활기차 있다.
같이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그와 걷는 이 거리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는 없었으나
오래된 지기처럼 편하고 행복했음을 그가 알지 모르겠다.
헤어지면서 다시 한번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나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처음 만났을 때 처럼
힘겹지만 반가웠다는 마음이 가득 담긴 몸짓으로 내 손을 잡는다. 그의 손을 잡고 짧은 순간에 나는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업보처럼 떠 안지 않음 안되었을 지금의 현실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퍼포머가 되려고 한 것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노라고 말해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약속
완벽한 신체를 가졌어도
그 몸을 학대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들
몸은 온전할지 모르나
그 영혼이 너무 병들어
아파 죽겠다고 매일 비명을 질러요
약속해요
온전치 못한 몸이지만
그 영혼은
단단한 방패로
갖은 병마들이 득실거리며
다가와도 다 물리 칠 것이라고
그래서
영혼이 병들어
아파 죽겠다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을
그 속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당신은
내가 청하는 약속을 지켜 줄 거예요
그래서 새끼손가락 내밀어요
내 손가락에
당신의 손가락 걸어 줄거란 것도 믿어요.
* 한비문학 수석기자 김 선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