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던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다. 칸느 그랑프리를 받은 퀜틴 카란티노의 [펄프 픽션]에서 차용한 펄프라는 단어를, 종래의 음습하고 암울한 느와르 영화에 충돌시켜 만든 펄프 느와르에서도 드러나듯이,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저수지의 개들] 이후 영화적 내러티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타렌티노류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
타란티노의 등장 이후 상당수의 젊은 감독들은, 타란티노처럼 새로운 감수성으로 세계를 바꿔 놓고 싶어한다. 타란티노는 기존의 선형적 질서에 의존해 있던 내러티브를 비선형적으로 바꿔 놓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돈가방 쟁탈작전이라는 점에서는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 혹은 워쇼스키 형제의 [바운드]의 아이디어와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기교 면에서는 타란티노 계보의 거대한 강물에 입술을 대고 있는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나 [스내치]의 가이 리치와 더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류승완은 단순한 일차원적 모방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 감성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감독이 창조의 직업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영화자본 절대만세의 풍조에서 이처럼 독창적 영화감독이 탄생했다는 것은 경하할만한 일이 아닌가.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전체적으로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같은 비선형적 내러티브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기승전결식의 차분한 이야기 구조를 거부하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때로는 뒤로, 때로는 옆으로 활달하고 자유분방하게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다양한 곁가지들을 하나로 능숙하게 모으며 이야기를 힘있게 전개시키는 류승완의 재능은 비범하다. 그의 기교는 너무 화려해서 주제가 가려질 우려가 들 정도이다.
두 명의 여성을 전면에 포진시켰다는 점에서는 [델마와 루이스] 이후 자주 시도되고 있는 여성 버디 무비라고 할만 하지만, 그러나 이 영화에는 상대적으로 힘있는 마초들이 수없이 등장해서 저울추를 수평으로 만들고 있다. 영화 포스터나 광고에 전도연 이혜영이라는 이름만 등장한다고 해서 지나 거손과 제니퍼 틸리가 동성애적 관계로 등장하는 [바운드]처럼, 힘없는 두 여성이 거친 마초들을 헤치고 돈가방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 통렬한 비수를 꽂는 영화라고 오인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가죽잠바라고 불리우는 경선(이혜영 분)은 전직 금고털이범, 현재는 택시운전을 한다. 어린 딸이 있지만 천안 근처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녀는 칠성파 조직에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열심히 일해서 만질 수 있는 돈은 너무나 적다. 또 선글라스라고 불리는 수진(전도연 분)은 전직 라운드 걸, 현재는 투견장의 중간보스인 불독(정재영 분)의 정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가수로 데뷔해서 스타가 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돈을 모아 왼쪽 눈 밑에 있는 흉터를 수술해야 한다.
각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죽잠바와 선글라스가 거친 마초들을 제치고 돈가방을 쟁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투견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KGB(신구 분)파가 있다. 보스인 KGB 밑에 심복인 침묵맨(정두홍 분)과 불독이 있고, 한물간 퇴물깡패 조직 칠성파 조직 보스(백일섭 분)는 어리숙하지만 그래도 수시로 주먹을 날린다. 또 뒷골목에서 미래의 거대조직 보스를 꿈꾸며 자라고 있는 어린 깡패 채민수(류승범 분) 일당도 있다. 그리고 이들을 뒤쫒는 노형사 마빡(이영후 분)도 등장한다. 크게는 3개의 뒷골목 패거리들이 서로 뒤섞이고, 그 안에서 두 여자가 만나고 부딪친다.
불법 투견장의 돈을 몰래 빼돌리면서 그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중심 이야기 구조는 낯익은 것이다. 그러나 이 낯익은 이야기를 류승완은 낯설게 만든다. 그것은 전적으로 기교의 힘이다. 마치 노련한 무용수가 스텝을 밟는 것처럼 슬로우-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각 쇼트들을 정상적인 속도에서 극단적인 빠름과 느림으로 충돌시켜 새로운 화면을 만들면서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그의 화려한 편집기교는 특히 액션신에서 유려하게 드러난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이후 가장 뛰어난 테크니션의 등장이라고 할만한 류승완의 힘있는 화면장악은 관객들의 정서를 자신이 만든 페이스로 끌고 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직 타란티노의 걸죽한 대사맛이 [피도 눈물도 없이]에는 모자란다. 여전히 내러티브를 설명하는 불필요한 대사들도 많다. 대중적 관객들에게는 친절할지 모르지만 내러티브의 속도감 있는 전개에는 방해가 된다. 7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혜영은 카리스마는 있지만 탄력성이 부족하다. 거칠게 말한다고 해서, 얼굴 가득 수심을 드리운다고 해서 생의 깊은 고뇌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우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탄력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전도연은 더 섹시하고 더 나긋나긋하게 만들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수없이 불독에게 폭행을 당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관객들이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줄무늬 양복과 노타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비정한 마초 불독을 거칠게 연기한 정재영은 [피도 눈물도 없이]가 배출한 새로운 스타탄생이다. 특히 이 영화의 성공은 개성적인 조연 단역들의 적절한 배치에서 찾아야 한다. 신구, 백일섭, 송경철, 이영후, 백찬기 등등의 얼굴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색다른 연기를 이끌어낸 감독의 시선에서 우리는 누추하지만 잊을 수 없는 지난 세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저자거리에서 회자되는 비유에서 영화제목을 적절하게 차용한 [피도 눈물도 없이]에, 정말 피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드라이하게 감성의 수위를 조절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대중적인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데는 방해를 하겠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공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