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과 2일에 한국수필 문학세미나가 있어서 군산에 다녀 왔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가는 동안 서해안 고속도로를 거쳐 간월도를 지나 갈 때 그곳이 새들의 낙원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지형과 환경이 많이 변화되고 있어서 새들도 정신을 못차리게끔 철새 보금자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먹이가 있고 환경 좋은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새들이 둥지를 틀만한 청정 지역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천수만 간월도며 주남 저수지 등 아직 몇 곳엔 철새들의 도래지로 남아 있어서 그곳을 찾는 이들마다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온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군산엔 초행길이었다. 버스가 군산에 닿을 즈음에 누군가가 저기 보이는 것이 금강하구둑이라며 군산에 다 왔다고 하기에 금강하구둑을 바라보는 새 우리가 투숙할 호텔에 닿아서 금강하구둑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야 했다.
4시부터 6시까지 '한국수필문학의 미래'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세 분 교수님의 강의가 신선한 충격으로 닿아서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군산시장님이 베풀어 주신 조촐한 저녁 식사도 잘 마친 후 동인들의 모임까지 끝난 9시 반 쯤에 몇 사람이 밤 외출을 하게 되었다.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군산시내와 하구둑의 불빛이 우리로 하여금 호텔을 벗어나게 유인했다. 전주가 집인 교장선생님이 오셨다가 집에 가시려다가 차 가진 덕에 우리를 태우고 군산시내를 잠시 둘러보게 되었다. 시가지가 좀 어두웠고 딱히 갈 데도 없는 터라 어쩔까 망설이다가 우린 금강하구둑이나 달려 보자고 하여 방향을 돌렸다. 전엔 군산과 장항이 빤히 마주 보이면서도 뱃길 밖에 없어 불편했다는데 우린 편리하게 군산에서 차로 금강하구둑을 통과하여 장항으로 들어섰다.
금강인지 서해안인지는 모르겠으나 물가에 연해 있는 집들은 동화 속처럼 불빛이 찬란했고 예쁜 치장들을 해놓은 곳들이 손님들을 손짓하고 있었다. 우리가 갈만한 마땅한 곳이 없을까 찾다가 겨우 '마실'이라는 이름의 집으로 들어갔다. 앉은 자리 바로 바깥 창 아랜 물이었고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멀리 군산시가지의 불빛이 아름답게 보였다.
빈대떡과 쌍화탕과 그리고 복분자주 작은 병 하나를 시켜서 다섯이서 반도 못비웠지만 그날 차를 운전하신 교장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를 들으며 얘기보다 우린 그냥 밤 마실 나왔다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12시가 넘기 전 우릴 호텔에 데려다 주고 첫사랑 얘기를 듣는 이보다 하는 기분에 젖어 있던 교장 선생님은 못 다한 첫사랑 얘긴 접어두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셨다.
이튿날 우린 채만식 선생 문학관에 가서 수필낭송회도 하였고 그분의 문학세계며 생애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예향의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나게끔 수필낭송회 처음과 끝에 있은 창이 한동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문학관에서 나와 채만식 선생 생가와 묘소를 가보기로 하였다. 다닥다닥 붙은 도로변 작은 상가 사이 어떤 집이 생가였노라고 하여 잠시 들렀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되어 있고 집 안에 있는 우물이 채만식 선생의 생가임을 증명할 유일한 자료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낮인데도 가게 안은 캄캄하여 전기불도 없어서 둥그런 테두리 우물 자리가 겨우 보이긴 하는데 현재도 우물인지는 어쩐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탁류'며 '레이디메이드인생'등의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생가가 이처럼 어두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마음 한구석 씁쓸하기도 했다. 작가의 생애에서 너무 일찍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한 것은 슬픈 무늬로 비쳤다. 나중에 자기의 뜻에 맞는 여성과 다시 결혼한 것으로 인해 두 집안간에 갈등과 앙금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묘소의 비석조차도 슬픈 흔적을 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금강하구둑을 쌓음으로 해서 채만식 선생의 '탁류' 속 금강은 더 이상 탁류로 남아있지 않았다. 담수로 가득찬 금강하구가 되어 공업용수 농업용수로 적절히 사용할 수도 있고 홍수 수위 조절도 맘대로 할 수 있으며 군산과 장항을 육로로 이어주었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금강하구둑 같은 멋진 둑 하나 세워서 감정의 수위, 욕심의 수위 맘대로 조절하고 사랑의 가교 있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마다 신나고 편안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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