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家]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습관을 길러준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저력은 바로 스스로 깨치고 익히게 하는 수업 방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 항상 이건희 회장을 동반하고 다녔는데 그때 이회장은 늘 아들에게 “직접 해보라”며 많은 일을 주문했다. 후계자를 교육시킬 때는 무엇보다 상황 변화에 대처하는 ‘어떻게 (HOW)’를 심어줬다는 것.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사고력을 키워가는 케이스 스터디가 오늘날 삼성이라는 재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초석이 된 것이다.
원칙 1 적고 또 적는 메모 습관을 길러라
고 이병철 회장은 지독한 메모광으로 출근과 동시에 자신의 메모를 토대로 그 날의 일과를 진행했다. 만약 ‘A씨 20분’이라고 적었으면 어김없이 당사자와 20분간만 면담을 했다. 정확하게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 일처리를 하고 퇴근 무렵까지 메모 내용 중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다시 수첩에 옮겨 적었다. ‘기억을 보완하는 메모’가 아니라 ‘자기 반성용’메모를 통해서 신념을 지켜간 것. 이런 철두철미한 기록 정신은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90년대 중반까지 이건희 회장은 ‘소니 녹음기’를 품안에 넣고 그룹 내 기록 문화를 전파시켰다. 끈기 있게 모은 데이터는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소중한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해나갔다.
원칙 2 취미를 깊게 연구해서 특기로 만들어라
이건희 회장은 자녀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1취(趣)1예(藝)’는 있어야 삶이 윤택해진다고 강조한다. 취미생활 역시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만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 가령 “개를 기르다 보면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로 개와 정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정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자녀들이 애완견 기르기를 통해서 말 못하는 동물들의 심리도 읽고 남을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환경에서 자라면 성장 후에 사회생활을 할 때 남을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원칙 3 다각적인 관점으로 입체적인 사고력을 키워라
영화 마니아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1000편이 넘는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주로 주인공에 치중해서 영화를 감상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처음에는 줄거리 위주로, 다음에는 배역 위주로, 또 다음은 무대 조명 위주로, 볼 때마다 관점을 달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작품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되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돼 입체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이렇듯 입체적인 사고력이 길러진 사람은 주어진 상황이나 문제 앞에서 나무만 보지 않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숲을 보는 통합적인 심미안을 갖게 된다.
원칙 4 말 잘하는 아이보다 잘 듣는 아이로 키워라
이건희 회장은 부회장이 됐을 때 선친으로부터 붓글씨로 쓴 ‘경청(傾聽)’ 라는 글귀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은 아들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내 경영진에게 수차례 ‘경청’을 강조했다. 이 회장 역시 그룹 경영 전반은 물론 기술까지 전문가의 자문을 얻고 문제를 해결했다. ‘경청’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인정의 표현인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배려를 뜻하는 것. 사장단 회의 때도 듣고, 모르는 게 나오면 묻고, 또 들으면서 참석한 임원들이 더 이상 답을 못해 손을 드는 순간 이 회장은 자신이 준비해 간 메시지로 이들을 휘어잡는다.
원칙 5 T자형 인재로 키운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를 크게 ‘I자형’ 인재와 ‘T자형’ 인재 2가지 유형으로 설명했다. I자형 인재가 한 가지 전문 분야에만 정통해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T자형 인재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다른 분야까지도 폭넓게 알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를 가리킨다. 즉 미래에는 전문성은 물론 종합적인 안목의 경영 능력을 가진 T자형 인재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병철 회장은 선비의 서화, 골동품 등을 감상하는 예술 취향을 길러왔고 이건희 회장 역시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미술관 리움을 설립하기도 했다. 취미와 예술 감각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경영으로 연결 지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것이다.
[현대 家 ] ‘현장 경험으로 개척정신을 키운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자녀 교육 역시 본인들의 의사에 맡기는 자유방임적인 스타일을 고수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일약 대기업의 총수로 성공하면서 그는 ‘현장 경험을 통한 학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부모가 가난하건 부유하건 물질이 자녀 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 자녀 앞에서도 말을 앞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자녀들에게도 자립심과 신념을 강조하고 평생 강력한 행동으로써 창조와 개척정신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원칙 1 밥상머리 교육으로 성실을 가르쳐라
고 정주영 회장은 따로 시간을 내거나 특별한 방법으로 자식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단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침 식사는 가족과 함께’라는 철칙을 지켰다. 항상 현장으로 뛰어다녔던 정주영 회장은 자녀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밥상머리 교육은 철저하게 지켰다. 그는 생전에 청운동 자택에서 새벽 5시면 자식들을 집합시켜 아침을 먹고 함께 현대 사옥으로 출근을 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아침을 드는 아버지를 따르려면 자녀들 역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면 시간 활용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것이 정주영 회장의 생각이었다. 성실과 근면한 생활 습관으로 자신의 철학을 자녀들에게 각인시켰다.
원칙 2 현장을 배움의 장으로 삼아라
정몽구 회장만큼 ‘현장’을 중시하는 총수는 많지 않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지시로 현대자동차의 AS 전담회사인 현대자동차 서비스를 맡았던 그는 포드사로부터 자재가 적기에 조달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 타결을 위해 임직원과 함께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 순회 서비스를 다녔던 정 회장은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면서 고객 불만을 접했던 경험이 오늘날의 ‘현장 경험’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현장을 잘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라는 현장, 현물, 현실의 ‘3현주의’ 신념을 토대로 아들 의선 씨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공장을 찾게 하는 현장 교육을 시키고 있다.
원칙 3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제시하라
정주영 회장은 자녀를 가르치면서 특별한 원칙을 내세우기보다는 큰 줄기만 잡아놓은 채 알아서 크도록 하는 자유방임형 아버지에 가까웠다. 이런 정 회장이 고집스럽게 강조한 것은 바로 ‘영어 교육’. 요즘은 영어 교육이 필수로 자리 잡았지만 반 세기 전의 영어 교육 원칙은 놀라운 것이었다. 자식들을 대부분 미국유학을 시킨 것은 학문보다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현대건설 설립 후 미군부대 발주하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미국 바이어와 접촉하면서 정 회장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정 회장은 사업 현장을 통해 미래의 필요한 자격 요건을 파악하고 자식들에게 전수하는 자녀 교육법을 지켰다.
원칙 4 아버지를 벤치마킹하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경영 교본은 ‘선친의 어록’이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로서뿐만 아니라 경영 스승으로서 정주영 회장을 따랐다. 특히 사업과 관련해 정주영 회장은 누누이 “기업인은 새로운 일을 할 때 원료 조달에 신경 써야”힌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담고 수년간 고로제철소 사업을 추진했다. 결국 2005년 한보철강 인수와 2006년 고로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이처럼 아들은 아버지의 행보를 벤치마킹하면서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키워갔다. 그룹 분할의 위기를 맞았던 ‘왕자의 난’ 때도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독립하면서 아버지를 넘어서 자신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원칙 5 ‘하고 만다’는 돌관 정신을 길러라
선친인 정주영 회장은 물론 정몽구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돌관 정신’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해보기나 했어?”라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 것을 의미한다. 정몽구 회장은 아들 의선 씨를 경영자로 키우기 위한 필수 코스로 구매총괄본부로 발령을 냈다. 좋은 자재와 부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부서로 정회장은 아들에게 자재 구매의 제도화를 강력하게 주문했고 아들은 해냈다. 입버릇처럼 “좀 더 잘할 수 없나?”, “좀 더 잘 만들 수 없나”라는 말로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라고 지속적으로 담금질을 통해 돌관 정신을 키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