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불유(生而不有). 만들었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주인이 없지만 모두가 주인이다. 멋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하다는 ‘샘소리터’를 소개하는 말이다.
정읍 나들목에서 나와 내장산 방향으로 8㎞ 정도 가다보면, 저수지 근방 월영마을에 그리 크지 않지만 소나무향이 은은한 집 한 채가 있다. 그 곳의 주인장이자 터지기인 김문선 씨(59)를 만났다. 그는 정읍 월영(현 쌍암) 출신으로 현재는 호남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여년 전 본인이 나고 자란 터에 주거 공간을 지었다. 10여년 전에는 남은 터에 풍류객을 맞이하는 ‘샘소리터’를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찾아오는 손님에게 싫은 내색 없이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 안주인의 인심이 더해졌다. 매주 토요일 ‘샘기픈소리’ 줄풍류 모임이,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차 모임을 겸한 만남의 잔치가 열린다. 이 곳의 가장 큰 잔치인 어울마당 모임은 오월과 시월에 있다.
△고향의 소리, 풍물
유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멋드러진 집을 짓고, 고등학교 교장에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지만 김문선 씨가 겪은 삶의 여정은 화려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방송통신고교로 진학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그는 신문 배달부터 목공소, 생산공장까지 섭렵하지 못한 장르의 업종이 없을 정도다. 어렵게 졸업을 하고 일과 대학 생활을 병행할 때 우리 음악과의 조우가 지금의 샘소리터를 만드는 바탕이 됐다.
“교정을 거닐다 북·장구소리가 들렸어요. 고향의 정취를 느꼈다고나 할까.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서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모두 모여 풍물을 쳤고, 그렇게 익히게 된 가락들은 몸에 남았죠.”
그가 소리에 이끌려 간 곳은 봉산탈춤과 송파산대놀이 동아리방이었다. 당시 동아리에 타령 장단을 제대로 짚는 사람이 없어 그가 어렸을 적 풍월로 타령 반주 장단을 펼쳐 보이자 바로 입단이 됐다. 나중에는 동아리 회장까지 지내며 탈춤에 빠졌다.
△정읍줄풍류 명맥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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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정읍 샘소리터에서 열린 윤소인 명인과 함께하는 풍류여행 공연. |
김 교장은 대학 졸업 뒤 고부여중에서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잡으면서 고향에 내려왔다. 탈춤은 없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찾던 차에 정읍 줄풍류의 명인 송파 김환철 씨를 만났다. 김 교장은 지난 1984년 전북 무형문화제 제7호 대금정악 보유자로 지정된 김 명인이 타계할 때까지 향제줄풍류의 대금을 배웠다. 이를 기반으로 김문선 교장이 이끄는 ‘샘기픈소리’는 지난 1988년부터 정읍풍류를 알리는 활동을 해 오다 1991년 정식 결성해 샘소리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줄풍류는 현악기 가운데 거문고가 중심이 된 풍류(風流)다. 줄풀류는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전승하는 경제(京制)줄풍류와 각 지역의 것을 향제줄풍류 또는 민간줄풍류로 구분지어 부른다. 민간풍류 중 구례줄풍류와 이리줄풍류는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정읍줄풍류는 김환철 명인 개인이 무형문화재로 인정이 됐지만 아직 단체는 지정받지 못한 상태다.
김문선 교장은 “민간줄풍류는 정읍줄풍류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며 “전계문, 전용선, 김용근, 김윤덕, 신달룡, 김환철, 이기열 등의 풍류 대가와 이들을 후원했던 김기남 선생의 아양정, 나용주 선생의 이심정 등의 풍류방이 있었고, 정읍국악원(정읍정악회) 등 풍류방의 본래의 기능이 잘 살려진 곳도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도 정부의 지원이 아닌 동호인의 모임으로 정읍줄풍류가 유지되고, 풍류방인 샘소리터가 명맥을 잇고 있다”며 “1954년 조직됐다 1969년 해산된 ‘초산율계’에서 1971년에 가객들이 조직한 ‘정읍정악회’, 1978년에 율객들이 만든 ‘초산음률회’가 오늘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고 덧붙이며 향제줄풍류의 본원지가 정읍임을 강조했다.
△인생의 일부인 풍류
김 교장은 한 줄의 악보를 고증하고 정비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인과 교수를 찾아다니며 생을 보냈다. 교직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과 함께 풍류를 익히고, 연주하고, 악보화했던 일이야 말로 그가 살고 싶었던 인생이었다. 어렸을 적 정취를 느껴 우리 음악을 시작했고, 거기에 파묻혀 보낸 시간만큼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다. 스승의 뒤를 이어 문화재 보유자가 되기 보다는 그저 줄풍류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즐 싶다는 소망이다.
그는 “정읍 향제줄풍류의 악보를 제대로 정비해 완성하고, 이를 알리며 장르를 초월해 진정 멋을 아는 풍류객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엷은 미소 속 그동안 천착했던 작업의 수고와 풍류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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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준 전주전통문화관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