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목하는 한편의 시>
돌연변이를 꿈꾸는 낮은 음자리표
_조삼현 시인의 첫시집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금용 시인
조삼현시인이 등단 7년 만에 첫시집을 냈다. 왜 늦었을까 궁금했는데, 시집 표지와 제목을 받아보면서 첫 장에 적은 시인의 말 “ 청미래 덩굴 아래/자벌레 한 마리/α와 Ω를 /폈다 접었다/온 몸 반성문을 퇴고하며/ 기어가고 있다” 를 읽고는 반성문이라는 말에서 그의 시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자벌레처럼, 혹은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온 몸 반성문을 퇴고하며” 단단한 자기 집을, 시집을 지었을 테니 말이다.
붉은 벽돌담을 연상시키는 표지에 하얗게 새겨진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 치켜 뜬 매운 눈매의 교도관이라기보다는 웃을 때면 눈꼬리가 내려오는 시골 순한 교도관 아저씨인 조삼현시인은 수감자들을 감독하는 직책을 가졌지만, 그들을 돌보고 관찰하는 가운데 오히려 제한된 공간에 갇혀서도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미안함, 너무도 인간적인 삶의 원초적 고뇌, 그 아픔 등을 대신 토로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그래서 다 삶의 현장에서 눈 뜨게 된 인간성회복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특히 <죄와 벌>시리즈 6 편과 <노역> 시리즈는 죄수들의 눈과 귀와 가슴이 되어 그들의 세상을 향한 원망과 가난과 아픔을 쏟아내며 그 역시 깊숙이 잠재된 자신의 죄와 벌을 그들의 거울을 통해 투영하고 반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그의 첫시집 속에서 자연적으로 <죄와 벌> 시리즈와 <노역>에 중점을 두고 읽게 되는 바, 그 중 그가 지켜본 많은 죄수 중, 죄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을 것 같은 연악한 목발 짚은 소년에 대한 시 한 편을 나름 감상하고자 한다.
장맛비 내리다
잠깐 들려가는 여우볕은 수인囚人들의 것이다
병동 운동장에 낯빛 창백한 목발소년
잘린 다리로 풀밭 끌고 가는 방아깨비 같다
몸에서 쇠비름 냄새가 난다
먹구름 걸려있는 담장 밑 풀밭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지금 네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타는 갈증 무엇이기에 손톱에
초록 물이 다 들도록 풀벌레의 노래라도 듣는가
가난한 너의 아비 어미가 한평생
온몸 닳도록
생의 밑바닥을 쓸고 닦아도 찾지 못한 꿈의 노래를 찾아서
사슬처럼 이어진 허기의 대물림을 끊긴
끊을 참인지, 찾아
낮은 음자리표의 서러운 세상
돌연변이를 꿈꾸는 것인지,
풀 향기 바람 있어 눈길 다가서자
감추는 듯 펴보이는 손에 네 잎 클로버 한 장
<죄와 벌 3> 전문
우리는 <죄>와 <벌>앞에서 솔직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를 다 죄인이라 부르며 회개하라고 종용하는 종교도 있다. 실재 나를 투영시키는 거울을 볼 수 있다면 누구든 어둠 저편에서 지긋이 잠재된 내 존재를 꿰뚫어보는 죄와 벌의 양면성 앞에서 가볍게 헤엄쳐 나올 이는 없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빅토르위고의 <장발장> 등은 어둔 그늘 속에 묻혀 허덕이는 연악한 자의 “죄”와 빛 밝은 자리에 앉은 자들의“벌”을 대칭으로 놓고 인간 존엄성의 희비를 보여준다. 아니 현실로부터 바닥으로 내몰린 결핍된 존재의 그들을 단지 죄의 이름으로만 심판할 수 있는지, 사회 질서관리 차원에서 만들어진 도덕과 법이 어느새 사람 위에 서서 사람의 인성을 누르고 권위를 세우는 데만 급급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시의 주인공인 “ 병동 운동장에 낯빛 창백한 목발소년”은 “잠깐 들려가는 여우볕은 수인囚人들의” 것이라는 표현과 잘 어울리는 왜소하고 병색이 완연한 소년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 이 장면을 떠올려보면 한 편의 영화처럼 아이의 모습과 여우빛 볕만 휑하게 적막을 덮고 있는 감옥 마당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정말 “방아깨비 같다”. 진짜 “몸에서 쇠비름 냄새가” 날 것 같다. 어떻게 그 몸으로 교도소에 있는지, 온갖 상상이 일게 된다. 시 내용 그대로 그 소년의 죄는 부모의 열악한 환경이 가져다 준 가난이 아니었을까,“가난한 너의 아비 어미가 한평생/ 온몸 닳도록/ 생의 밑바닥을 쓸고 닦아도 찾지 못한 꿈의 노래를 찾아서/ 사슬처럼 이어진 허기의 대물림을 끊”거나 그 꿈을 찾아서 거리로 나왔다가 죄의 이름으로 이 감옥에까지 흘러들어온 건 아닐까. 유추하게 된다. 병동 마당의 풀밭에서 오랫동안 웅크리고 네잎 클로버를 찾고 있는 아이! 마지막 행에서 그 소년이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감추는 듯 펴보이는 손에 네 잎 클로버 한 장”은 그가 의지하고픈 행복이란 부적일 것이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처럼 “낮은 음자리표의 서러운 세상/ 돌연변이를 꿈꾸”게 하는 건 아닌지믿고 싶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읽다보면 나 역시 네 잎 클로버 한 장의 행복이 부디 그 아이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는 맘이 절로 인다.
이번 시집의 주제이기도 하고 제재로 이미 밝혀진 <수인에게서 온 편지>의 주인공인 수감자들의 삶을 그는 이렇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때론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말씀처럼“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내다보아, 말씀 그 너머 말씀을 꿰어보아 “ 얘야, 넌 죄수의 이웃이니라”못질을 하던, 마음의 눈으로는 찢긴 것과 상처난 것들도 귀히 쓰임새가 보인다던 노파의 심미안(시 <노역>의 부분)“으로 ”돋보기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죄수들이지만 갇힌 공간 안에서도 여전히 인간관계와 사랑과 그리움이 존재한다는 걸 따뜻한 시 한 편으로 완성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번 시집은 그래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어머니의 말씀처럼 그들의 이웃이 되어 “감옥과 출옥이 뫼비우스 띠라는 생각”으로 찬 시멘트 바닥에 혹은 마루에 누운 수감자들과 한마음으로 등 돌린“낮은 음자리표의 서러운 세상”에서 “돌연변이를 꿈꾸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시 <죄와 벌3>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나는 이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 <맥문동> 한 편처럼 “그늘은 태양의 벌레 먹은 자국이다/ 빛의 무덤이다” 라고 자신있게 그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그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 배후가 환해야 세상이 따뜻하다”는 구절! 얼마나 따뜻한 깨달음인가? 온종일 그늘 진 곳에 모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죄값으로 치러내는 아픔이나 눈물이“오순도순/ 성냥알처럼 피”고 보면 그 배후로 해서 그늘 속에서도 꽃은 마침내 피어나니 그 축축하나 따뜻한 기류! 축복받은 곳이 아니겠는가. 그늘진 환경이 낯설긴 하나 그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니, 이 역시 삶의 현장이고 삶의 애환이 서린 곳임을, 이번 시집을 통해 재확인해보는 것이다.
그의 시는 서정시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한편 소외된 자들을 향해 눈과 귀를 열고 그들의 존엄한 인성과 삶의 진정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야누스의 얼굴, 그 양면성을 단순하게 죄와 벌로 단정하는 현 사회의 오류 역시 잘 꼬집어냄으로써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그 가치기준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지 앞으로도 꾸준히 시를 통해 성공적으로 잘 풀어내리라 기대해본다.
김금용 : 동국대 국문과 졸업.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 졸업.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광화문 쟈콥』『넘치는 그늘』『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나의 시에게』, 김남조 중역시선집『今天與明天(오늘 그리고 내일)』 등. 펜번역문학상. 동국문학상.
2015, <시와 문화>가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