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도, 김홍도(1784년), 종이에 수묵담채, 135*78.5cm , 소장처 미상
조촐한 풍류모임 김홍도의 “단원도(檀園圖)”
단원이 벼슬을 하던 시기의 그림으로
작가의 풍류와 인정이 함께 표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는 중인이었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근간으로 하여 조선중후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스러운 성리학은 뿌리 깊은 정착으로 인해 중인이 신분상승하기에는 힘든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단원도 화선(畫仙)이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벼슬을 하고픈 인간적인 욕망은 누구나 같은 감정이었던 같다. 중인출신인 화원이 벼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는 임금님의 초상인 어진을 그리는 일이다.
단원도 세 차례에 걸쳐 어진을 그리는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는 1773년(29세) 1월에 영조 어진과 정조 왕세손 때의 초상을 도사(圖寫)하는 작업에 동참화사로 참여했다. 당시 주관화사는 고양이를 잘 그리는 변상벽이었고, 그 다음 동참화사가 김홍도, 수종화사로는 신한평(혜원 신윤복의 父), 김후신, 김관신, 진응복 등이 선발되었다. 그 포상으로 사포서별제로 임명되었다. 사포서는 궁궐의 밭과 채소의 경영을 관장하는 곳으로, 별제는 정6품의 사포 다음으로 종6품의 벼슬이다.
두 번째는 1781년(37세) 8월에 정조의 어진을 도사하고 영조의 팔십세 어진을 모사(模寫)하는 일에 참여하여, 그 공으로 1783년 12월에 안기역의 찰방으로 임명되었다.
세 번째는 1791년(47세) 9월에 정조의 어진 작업에 동참화사로 일한 덕분에 그해 12월에 괴산 연풍현의 현감으로 제수되었다.
단원이 양반으로서 본격적인 벼슬생활을 한다는 마음이 든 것은 지방에 근무한 안기찰방시절부터인 것 같다. 단원이 찰방으로 근무한 안기역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시 안기동 언덕 바로 밑에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서·화에 음악에 조회가 깊었던 단원 김홍도는 풍류가 가득했던 인물이었던 같다.
1784년 8월 경상좌도의 명산인 청량산에서 경상감사 이병모를 중심으로 흥해군수인 성대중과 인근의 지방 수령들과 함께 모인 아집(雅集)에 참여했다. 이때 김홍도는 달 밝은 밤에 바위 위에 앉아 퉁소를 불었다. 단원이 악기를 즐겨 연주했다는 사실은 당시 기록이나 단원의 그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달 밝은 밤이면 김홍도의 가슴은 흥취로 가득해진다. 나도 단원의 그 마음을 조금 알 수 있다. 유리창으로 비친 둥근달이 잠을 못 자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처절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를 늘 곁에서 지켜보았던 강세황은 김홍도의 용모가 아름답고 뜻이 맑다고 하며 성품에 대해 “음악을 좋아하여 매번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때로 한두 곡을 연주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한다. 그 기예가 바로 옛사람을 따를 뿐 아니라 풍속이 뛰어나 진나라, 송나라의 고사와 같다”라고 평했다. 오늘 소개할 <단원도>는 안기찰방으로 부임하기 약 3년 전 1781년 봄, 서울에 있는 김홍도 집에서 진솔회(眞率會)라는 아회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서 단원은 거문고를 탔다. 정원에 햇볕이 따스하고 온갖 꽃이 만발한 가운데 창해(滄海) 정란(鄭瀾), 강희언과 모임을 가졌다. <단원도>는 3년 후 1784년 세밑에 정란이 경상도 안기역을 찾았을 때, 그 모임을 회상하여 그린 작품인데 작별에 임해 정란에게 선물한 것이라 한다.
<단원도> 화면상단에 쓴 김홍도의 제발(題跋)에 내용이 상세하게 나타난다.
“창해 선생께서 북으로 백두산에 올라 변경까지 다다랐다가 동편 금강산으로부터 누추한 단원(김홍도의 집)으로 나를 찾아주셨으니, 때는 신축년(1781년) 청화절(4월1일)이었다. 뜰의 나무엔 햇볕이 따스하고 바야흐로 만물이 화창한 봄날에 나는 거문고를 타고, 담졸 강희언은 술잔을 권하고, 선생께서는 모임의 어른이 되시니 이렇게 해서 참되고 질박한 술자리를 가졌도다. 어언간에 해가 다섯 차례나 바뀌어 강희언은 지금 세상에 없는 옛사람이 되어 가을 측백떨기에는 이미 열매가 열렸다. 나는 궁색하여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산남(山南)에 머물러 역마를 맡은 관청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해가 장차 한 차례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홀연히 선생을 만나게 되니 수염, 눈썹, 머리칼 사이에는 구름 같은 흰 기운이 모였으되, 그 정력은 늙어서도 쇠하지 않으셨다.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올 봄에는 장차 제주도의 한라산을 향하리라 하니 참으로 장하신 일이다. 다섯 밤낮으로 실컷 술을 마시고 원 없이 이야기하기를 단원에서 예전에 놀던 것처럼 하였더니, 슬픈 느낌이 그 뒤를 따르는지라, 끝으로 (단원도) 한 폭을 그려 선생에게 드린다. 그림은 그 당시의 광경이고 윗면의 시 두 절구는 당일 선생께서 읊으신 것이다. 갑진년(1784년) 12월 입춘(立春) 2일 후에 단원 주인 사능 김홍도가 그렸다.”
단원 김홍도는 두루 갖춘 천재였지만 성품도 인정이 흐드러지게 많은 진정한 사람이었던 같다.
출처: 단원 김홍도/오주석, 안산시사
정미영(ran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