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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代 독립선언문 50 헌장
권용철 외 지음
샘터/2005년 1월/248쪽/9,000원
만방의 50대여, 이제는 골짜기에서 빠져나올 때다
이 책은 우연히 손에 든 어떤 수필집에서 만난 한 줄의 글에서 발상되었다. 한 가난한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새해다. 내 나이 오십이다. 이제 더 이상 삼등열차를 타지 않으리라” 는 말이 그 말이다. 그 말이 왜 그리도 쓸쓸한지, 그 순간 눈가에 이슬이 맺힐 뻔했다. 막 50줄에 들어선 필자에게 그 말이 당최 남의 말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이런저런 결심들을 나열해 필자가 일하고 있는 풀꽃평화연구소 게시판에 올렸다. 그리고 그 목록들 앞에 ‘50헌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는 “이제 50이다, 50은 적잖은 나이다. 남은 시간이 보낸 시간보다 많지 않다. 이젠 더 이상 타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삶을 되찾자.” 운운 하는 유치하지만 선언적인 앞글을 붙였던 것 같다. 연구소 안에 있는 ‘빠왕 독서회’는 한 달에 한 권, 잘 안 팔리는 책을 골라 읽고, 책이야기보다는 사는 얘기들을 더 많이 노닥거리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독서회다. 회원들은 ‘50 헌장’에 환호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회원들은 독서회 게시판에 다양한 목록들을 쏟아냈다. 그 뒤, 연구소 사이트 속에 회원전용의 비밀판을 만들어 8개월 동안 헌장의 내용을 정하고, 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원고가 쌓이면 같이 읽고 유쾌한 어조로 댓글이나 답변글을 통해 토론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께 정말 ‘거짓말처럼’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쌓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므로 인터넷 글쓰기가 활자로 묶인 것이다.
50은 어떤 나이일까. 그들은 공교롭게도 전쟁이 끝난 50년대 언저리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기 곤란한 나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데 대해 아무런 책임 없다고 뺄 나이도 아니다. 태어나 보니, 온 세상에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학교 숙제는 멸골, 반공, 승공 포스터 그리기였다. ‘올해는 일하는 해’, ‘올해는 더 일하는 해’라는 구호가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국민핵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사람이 이 산하를 지배했고,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간 얻어 터지기만 했던 세대다. 전후의 궁핍에서 해방시켰다고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모와 이 세상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 애들 틈바구니에서 이 세대들은 음지의 비탈 의식을 가지고 움츠리고 살았다. 글판에서는 이 세대를 ‘골짜기 세대’라고도 부르는 모양이 ‘골이 깊으면 물도 깊다’는 말로 위안도 해보지만, 짬뽕도 아니고 짜장면도 아닌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기도 하다. 모셔야 할 ‘전근대’의 부모는 있지만, 한 둘밖에 안 낳은 자식들이 우리를 모시리라는 생각은 언감생심이다.
강물은 속절없이 흘러 좋은 몸의 시절은 확실히 지나갔건만 아직 마음의 뜨거움은 식을 수 없는 나이, 그럼에도 이제 남은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자각이 깊어지는 시간대에 어느덧 당도한 것이다. 개인적인 회한도 있고, 그와 더불어 뜬금없는 호기도 부릴 수 있고, 조금 이르긴 하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도 남몰래 하게 되는 나이가 바로 이 나이다. 쓰라렸든 즐거웠든 50까지 무사히 오면서 겪어낸 경험과 그나마 허락되는 체력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진짜 모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 나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골짜기에 끼어 삼등열차나 타고 남은 생을 보낼 수야 없잖겠는가. 더러 비장하고, 더러는 어처구니 없고, 더러는 쓸쓸한 이 책의 다짐들은 그런 배경을 깔고 탄생했다.
만방의 50대여…. 이제는 나만을 위한 내 인생을 가꾸고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재자도 분명 사라졌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도 어느 정도 컸다. 이제는 이런저런 거친 봉우리 사이에 끼어 숨 죽이고 살던 우울증이나 열패감일랑 벗어제끼자. 우리도 마땅히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나를 더욱 사랑하자
콩가루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나는 여자가 좋다. 여자가 없으면 이 세상 무슨 맛으로 살까? 어머니, 아내, 애인, 누나, 딸…,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여자들의 호칭인가!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자들 때문에 인생살이가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지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난 비교적 여자가 많은 집안에서 자란 탓으로 제법 여자를 이해하는 편인데 그런 나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여자들의 처신과 언동에 대해서는 정말로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아집과 자기 합리화, 그리고 유치한 아전인수란…. 그러면 남자는 좀 낫느냐? 슬프게도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남자가 앞뒤 모르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할 땐 정말 주먹으로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그 여자들과 관계되어서 일어나는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얘기다. 가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인 것이다. 결혼해 부모 슬하를 떠나 일가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되고 가슴벅찬 일이다. 남편으로, 아내로서, 가장으로서 희망의 미래를 시작하는 때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래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는 일을 ‘필혼’이라고 하여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마지막 절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식들 필혼시켰으니 이젠 죽어도 된다’라고….
그런데 그 축복받은 일이 가족간의 새로운 갈등의 시발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형제들이 하나둘씩 출가를 하면서 다른 집으로 가고 또 새 식구가 들어오면서 집안엔 전에 없던 묘한 기운이 일어나게 된다. “나밖에 모르던 형이 저럴 수가?” , “어, 저게 내 동생이란 말이야?” , “그래도 누나는 믿었는데.”
각자의 마음 속에 이런 섭섭한 감정이 하나 둘 쌓이면서 갈등이 깊어간다. 이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서로의 갈등이 충돌하게 되면 드디어 한 판의 전쟁이 치러진다. 어렸을 적 싸움은 그래도 최소한 한솥밥을 먹는 동지적 유대가 있었고 부모님도 해결의 중재자로서 절대권능을 유지하고 계셨으므로 싸움은 초동진압 되어 전면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각자 짝을 만나 일가를 이룬 후의 싸움은 막가파 식으로 번지기 십상이고 부모님의 중재 또한 오히려 싸움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있어 화해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가족 간에는 피아의 구분이 생기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이 땅의 콩가루 역사는 장엄하게 시작된다. 콩가루 집안의 갈등구조는 다단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제일 흔한 고부간 갈등, 그리고 형제 - 남매 - 자매간의 갈등, 동서간의 갈등, 그리고 마침내 발발하는 부부간의 갈등!! 갈등의 구조를 보라! 거의 대부분 여자와의 갈등이지 않은가? 형제간의 갈등도 그 원초는 여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자이기에 그런가? 견해의 차이인가?
고부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어머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자가 아니던가? 그러면 그녀도 옛날엔 며느리 아니었던가? 지금의 며느리는 또 누구인가? 역시 여자가 아니던가? 그녀 또한 미래의 시어머니요, 친정에 가면 시누이요, 시집에 오면 올케가 되지 않던가? 바로 서면 ‘갑’이요, 돌아서면 ‘을’인 이 천혜의 균등관계를, 여자면 누구나 운명적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 상관관계를 여자들은 왜 멋지게 유지하지 못하는가? 시어머니가, 내 며느리는 내 아들에게 매사에 순종하고 가사일은 당연히 모두 여자의 몫이고,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기를 바라면서 시집간 내 딸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가사일은 남편과 당당히 나눠서 하고, 가급적이면 힘센 남자가 좀 더하고, 여자가 모든 면에서 대우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갈등은 시작된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천하의 바보 쪼다’고 사위가 부엌에 들어가면 ‘이상적인 현대식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의 모순에서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올케가 내 친정엄마한테 말대꾸하는 것은 성격 못 되고 싸가지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한테 대꾸하는 것은 경우 있는 논리로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이 땅의 콩가루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모든 갈등의 종합축소판이 바로 명절 때이다. 객지로 흩어져 ‘행복하게 살던’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집안에 모이게 되면 고부간, 형제간, 동서간 갈등이 한꺼번에 표출된다. 시어머니의 며느리들에 대한 은근한 책망, 형님과 아우간에 어색한 덕담, 동서간의 꽈배기 대화가 만남에서부터 솔솔 싹트다가 결국 저녁상 술자리에서 갈등이 폭발하면 시댁에 있는 기간 내내 식구들 모두가 살얼음처럼 몸조심 말조심하다가 예정보다 하루빨리 거짓말을 둘러대고 서둘러 귀경하는 길, 남편은 아내로부터 귀가 따갑게 불평을 들어야 되고 식구들 또한 도마 위의 생선 신세가 된다. 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다음해 또 명절이 오면 남편은 당연히 당직근무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게 어디 또 명절 때뿐이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지 않는가? 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게 돈 문제 아니던가? 어쩌다 부모님이 입원이라도 하시게 되면 입원비를 둘러싼 갈등은 또 어떻던가? 각자의 입장만을 생각한 불만이 속으로 쏟아진다. ‘모시는 사람은 빼 줘야지, 모시는 데도 돈이 드는데 이런 데는 빠져야지’, ‘장남이 달리 장남인가? 그런 거 안 하면 그게 무슨 장남이야?’,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 맨날 나누자니 참, 조용히 한번 내는 거 못 봤네.’ 생신이나 회갑연 등 부모님과 관련된 행사라도 치루게 되면 처음에는 비용 때문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다가 나중에는 부조금 분배문제로 또 곤욕을 치르지 않던가? 부모님 모시는 장남은 장남대로, 돈 더 낸 형제는 더 낸 대로, 부조 많이 들어온 형제는 그 형제대로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설전을 벌이게 된다. 아, 듣고 보면 모두가 맞는 말이고 구구절절 멋진 논리로다!!
가족간의 싸움엔 승자가 없다는 데 그 비극이 있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싸우고 나면 서로 상처받고 분하고 잠 못 이루고 하는 것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쌍방이 모두 겪게 되는 감정이다. 처음엔 모진 말을 많이 해서 상대를 아프게 하면 속이 후련하고 승리한 것 같지만 그런 경우일수록 시간이 가면 마음이 불편해져 두고두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들이여, 가족들이여, 이런 콩가루 집안이 우리 집안만 그렇던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 아니, 오히려 우리집은 양반이요, 남들은 말도 못하겠더이다. 인생 오십쯤 되고 보니 그런 사실을 알고도 남겠더이다. 산다는 게 들여다보면 모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싫어”, “안해” 라는 표현에 익숙해지자
참석하기 싫은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먹고, 떠들고, 시간 남으면 찜질방으로, 미용실로, 노래방으로 취향에 맞게 갈라진다. “이젠 그만 나가야지” 하면서도 모임의 회장이 “꼭 나올 거지?” 하면 “네” 하고선 가슴이 답답하다. 젊은 날의 연애도 그랬다. 내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까봐 “그만 만나자” 는 말을 못했다. 그쪽에서 지쳐 포기할 때까지 침묵하고 피하는 것이 배려인 줄 알았다. “이건 싫습니다.” “못합니다” 그 분명함과 냉혹함을 늘 동경하면서도 나는 “괜찮아요”, “알겠어요” 라는 대답을 더 많이 하고 살아왔다.
한 정신과 의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당신은 거절할 줄 아는가”를 먼저 묻는다고 한다. 거절 못하는 사람일수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찾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은데, 할 수 없이 가야만 할 경우 자기도 모르게 버스를 잘못 타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를 거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인 의도도 일종의 정신 병리 현상임을 프로이드는 지적했다. 참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온 한국의 세대 중에는 외국에는 병명조차 없는 화병을 앓는 여성이 많다. 죽기보다 싫은 일을 참고 견디다가 가슴에 화가 들끓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력배나 깡패는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쳐 싸우며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나 인간에 맞서기보다 대충 양보하거나 피하고 못 본 척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수는 없다. 싫어도 싫은 표정 못 짓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며 인간관계다. 우리는 5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는 죽어도 하기 싫은 일 앞에서 “싫어!”, “안해!” 소리치며 확실하게 거부할 때가 되었다.
‘파이팅(fighting)’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소망이 응축된 세계만방의 구호다. 본래의 의미가 ‘싸우다’이듯 우리들 정신의 완전성은 ‘싸움’이라는 폭력의 쾌감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경기에 앞서, 도전할 어떤 일들에 앞서 우리가 ‘파이팅’을 외칠 때 가슴 가득히 신선한 자유로움을 느끼듯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억누르고 구속하는 틀이나 고정관념, 편견과 과감히 부딪치며 싸워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심적 해갈, 정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YES" 만을 원하는 가정과 사회에, 확실하고 냉정하게 ”NO"라고 선언하는 순간, 양 어깨에 돋아나는 날개의 기분 좋은 통증과 함께 50대여, 자유롭게 비상하자.
남 생각도 하고 살자
나이를 벼슬이나 무기로 삼지 않는다
접촉사고가 났다. 두 운전자는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잘잘못을 따지다가 고성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중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쪽이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 한다. “당신 몇 살이야?” 지금 왜 나이를 들먹이는가? 지금 누가 잘 했나 못 했나를 따지는 자리에서 갑자기 나이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덤비지 말라는 말인가? 나이를 무슨 무기나 방패로 쓰고자 한다면 그건 나이 먹은 자들의 유치한 전략이다. 그리고 착각이다. 나이 먹어 크든 작든 시비에 휘말린다는 것이 더 창피한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이 먹은 걸 내세운다고 해서 남들이 그리 대접해 주던가?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논리에 지면 지는 대로, 힘에서 밀리면 밀리는 대로 그렇게 살자. 그게 당연한 것이다. 그게 나이를 핑계로 개기는 것보다 훨씬 더 신사적이다.
나이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살아온 세월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나이가 주는 의미는 참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랜 경험과 세월의 추적에 따라 노련해지는 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심신이 쇠약해지고 순발력이 떨어져 옹고집이 되는 면도 있다. 그래서 나이에는 연륜의 지혜와 퇴화의 경직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슬픈 일이다. 피 끓는 청춘의 시간은 순간에 지나가고 황혼의 어스름은 길게만 느껴진다. 인생 50이면 청년과 노인의 중간쯤이지만 세상의 눈은 노인 쪽에 더 가깝다고 보지 않을까? 이제 50의 관점에서 우리는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사해야 될까? 나잇값을 제대로 하기 위한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선은 나이를 무슨 벼슬이나 무기로 삼지 말자.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공경 받아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별로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나이란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이 때가 되면 저절로 쌓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나이가 무슨 벼슬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이를 앞세우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인가? 나이는 그저 지나온 세월의 햇수에 다름 아니던가? 제대로 잘 지내왔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그게 오히려 약점이고 수치스러운 일인 것이다. 흔한 말로 나이 먹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란 말은 나이를 제대로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말 아니겠는가? 세상 일 아래 사람 노릇하기보다 윗사람 노릇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나이 먹어 스스로 불쌍해지지 말자. ‘너 몇 살이야?’가 목구멍에 올라오더라도 꾹 참자! 몇 살이면 어쩌겠다는 건가? 그것은 마치 내가 여자이기에, 고향이 어디기에, 출신교가 어디인지를 따지는 것처럼 자기의 주장과 논리보다는 환경과 여건에 기대어 무임승차하려는 알량한 짓이다. 그리고 잘못 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로부터 비아냥 꺼리가 되기 쉽다. ‘나잇살 자신 양반이~’, ‘나이값 좀 하지~’, ‘나이는 똥구멍으로 먹었나?’ 등 나이를 공격하는 말은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나이 들어 조심할 게 또 있다. 고집과 아집이다. 젊었을 때 우리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나이 든 분들의 벽창호 같은 고집에 가슴이 답답하고 때로는 눈앞이 아득해지지 않았던가? 나는 이 다음에 나이 들어 저렇게 ‘끔찍’하게 변하지 말아야지 하지 않았던가? “꼰대들이다 그렇지 뭐~” 라는 말은 듣지 말자! 고집불통 옹고집은 나이 든 사람들이 정말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나이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나이를 고집의 수단으로 휘두르면 그건 수구꼴통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자, 이제부터 나이먹은 것을 두려워하자. 나이란 연륜과 경험, 그래서 유연과 관용의 표출이어야지 오기와 고집, 미련과 불통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언제나 당당할 때 아름다워 보이는 법, 나이의 기득권을 우리 스스로 포기할 때 고상한 50, 힘찬 50, 그래서 당당한 50이 되는 것이다.
자주 엎드려 휴지를 줍는다
‘하늘에 명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나는 비로소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고개 숙일 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뻔뻔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며 오만한 얼굴로 고개 뻣뻣이 들고 살아왔다. 그러니 바닥에 떨어진 휴지가 보일 리 없고, 발에 밟혀도 그저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다. 지난 봄 어느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것도 소파에 비스듬히, 이 세상에서 가장 방만한 자세로 브라운관을 응시하다가 나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였다. 어느 80대 할아버지가 벌써 오래 전부터 동네 청소를 한다는 뉴스였는데, 그 이유를 듣고 저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때부터 교사 생활을 하여 해방 이후에도 계속 교직에 있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 일본어로 조국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끝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동네 청소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참회하는 마음’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갑자기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뜨겁고 묵직한 쇠뭉치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감동’의 어떤 작용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뜨겁고 묵직한 쇠뭉치는 내 가슴을 계속해서 두드려댔고, 여러 번 강타를 당해 뻐근함을 지나쳐 아픔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참회’였음을 간파하였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동네 청소를 해야 합니다.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쓰레기를 치울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한다 해도 어찌 그 죄를 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이크를 든 기자가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 청소를 그만하셔도 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그 할아버지가 목이 메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에서 참다운 참회의 모습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자연스럽게 내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과연 참회할 것이 없는가? 나는 저 할아버지가 말하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왔다.
나는 한창 나이의 30대 때 잡지 기자라는 명함을 내밀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여성지 기사라는 것이 주로 비하인드 스토리이기 때문에 취재원들에게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 내용이 더 많았다. 그뿐이 아니다. 적어도 1년 간 서울의 텍사스촌은 다 뒤지고 다니며 ‘밀착 르포’라는 타이틀로 옐로 페이퍼를 양산하였으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라 수기’라고 해서 독자가 쓰는 성 체험 수기를 내가 대신해서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 남의 뒷얘기를 캐서 잡지에 실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어떤 기업 회장이 금융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그 부인의 뒷얘기를 몰래 캐서 잡지에 실었다가 거의 한 시간 가량 전화로 “김일성만도 못한 놈!” 이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던 일도 있다. 아무튼 그러한 내 기사들을 읽은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나는 그저 고개 숙여 잘못을 빌 뿐이다. 그런 쓰레기 같은 기사들을 일고 정서적 불안감에 시달린 여성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 기사가 길잡이 노릇을 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선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잘못을 빌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다 보니, 갑자기 일제 시대 때 조국의 어린이들에게 일본어로 공부를 가르친 할아버지의 참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도 이 기회에 참회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 참회의 방법으로 나도 할아버지처럼 허리를 굽혀 휴지를 주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간 양산한 쓰레기 기사들을 다시 주울 방법은 없고, 그저 길에 떨어진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줍는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내가 지은 죄의 백분의 일이라도 갚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할아버지의 참회의 방법으로 동네 청소를 시작한 것은 결코 ‘쓰레기를 줍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쓰레기를 주우려면 당연히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그 허리 구부리기의 자세에서 ‘겸손’을 배우고 ‘참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절에서 수백, 수천 번 절을 하며 부처의 가르침인 ‘자비’를 배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것은 ‘참회’를 통해, ‘고통’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로 이르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했지만, 나는 바람이 아니라 폭풍이 불어 나무가 부러져도 괴로워하지 않고 오만방자한 태도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아아, 이젠 나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청소를 하며 참회하는 일제 시대 교사 출신 할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허리 구부리는 연습을 하자. 땅에 떨어진 휴지를 열심히 주우며 겸손을 배우자. 한 번이라도 얼굴 마주친 사람에겐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잘하자. 이웃 사람보다 내가 먼저 허리를 구부리자.
멋쟁이가 되자
죽을 때까지 책을 읽자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학교에서 배운 말을 틈만 나면 무시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길이 있느냐고 묻지 마라. 거의 모든 길이 책 속에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음주운전을 했다. 그런데 겁대가리 없이 차를 몰았다. 아니 과속을 했다고 해도 좋다. 과속 이야기부터 먼저 할라치면, 나는 교통경찰관에게 잡히면 얼른 차를 세워놓고 재빨리 차에서 내려, 경찰관이 내게 다가오기 전에 그에게로 먼저 간다. 그리곤 ‘스승의 날’에 찾아뵌 스승에게 인사를 드리듯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원만한 도로소통을 위해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혹은 “우리 모두를 살리는 공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하고 경외심 가득찬 인사를 해도 된다.
딱지를 떼려는 경찰관의 권력 영역을 십분 존중해주는 것이다. 경찰관이 올 때까지 차문을 열고 벌레 씹은 얼굴로 앉아서 기다리다가 경찰이 다가오면 삐딱한 시선으로 칙 눈을 올려뜨면서 “내가 과속했나? 나 100킬로밖에 안 밟았는데…. 이보쇼, 거 좀 봐 주쇼” , “내가 누군지 몰라?”, “사람이 고속도로 좀 달리다 보면 과속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인간들은 천하의 바보똥개들이다. 차에 앉아서 교통 경찰을 기다리는 그 인간들은 공간과 인간 심리, 권력 영역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의 대처 자세에 대해 무지한 인간들이다. 과속을 해놓고도 지배적 자세로 편안하게 그냥 앉아 기다리면서 선처를 요구하다니…. 참으로 바보똥개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서 있으면 신하들은 앉지 못한다. 앉아서 경찰관을 걸어오게 만든다는 것은 덜 떨어진 녀석들이나 하는 짓이다. 과속한 먹이에게 딱지를 떼기 위해 걸어오면서 교통 경찰의 권력이 강화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왜 과속을 해놓곤 교통 경찰의 반격을 받을 수작을 벌일까,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런다. 나는 비굴할 정도로 공손한 얼굴로 과속을 재빨리 인정하고 운전자의 위치에서 벌받을 약자의 위치로 내 위치를 이동시킨다. 교통 경찰도 비록 제복을 입었지만 인간인지라 내가 겸손하면 할수록 감정이 누그러진다. “배탈이 나서 얼른 휴게소에 가서 설사를 하기 위해 과속을 했는데, 앞으로는 식탐을 줄이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꼭꼭 씹어 먹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게 애교 섞인 발음으로 말하며 용서를 빌어도 좋다. 내가 공손하면 교통 경찰은 그렇잖아도 무서운 딱지를 끊는 사람인데, 더욱 그 우세한 입장이 강화된다. 말로만 공손하면 안 된다. 몸짓으로도 표현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생처럼 교통 경찰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다. 몸은 이때 꼿꼿하게 세우지 말고, 조금 구부리는 게 좋다. 대부분의 교통 경찰은 이런 과속자들에게는 대단히 관대해진다. 다섯 번 걸리면 세 번은 주의만 받고 무사통과할 수 있다. 교통 경찰은 딱지를 뗄 권력도 있지만, 봐 줄 권력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분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그대로 해보시기 바란다.
오래 전이었다. 음주운전을 하고 차를 몰다가 단속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검사 받기 전에 미리 알아서 차를 갓길에 정차시켰다. 그리곤 재빨리 차에서 내려, 음주를 시인했다. 그리곤 그들의 조사에 적극 협조했다. 세 사람의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높았다. 높은 계급의 경찰관은 내게 대단히 호의적이 되었다.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는데, 나는 용을 쓰지 않았다. “더 세게 부세요!”, 경찰이 말했다. 그래서 말했다. “경찰관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지금 내 입장이라면 세게 부실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 중에 계급이 높은 자는 나를 봐주고 싶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마침 운 좋게도 저 뒤에서 어떤 운전자가 옆자리 사람과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높은 계급의 그 자는 재빨리 졸병들 둘을 그쪽으로 보냈다. 그리곤 내가 불어제낀 수치를 면허정지를 해야 할 수치 바로 아래 소수점에서 멈춘 상태로 기록했다. 그리곤 내 직업을 물었고, 그는 내 직업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거리의 ꡐ반짝 우정ꡑ이 싹텄던 것이다. 두 졸병들이 돌아왔을 때, 그 경찰관은 이 사람은 면허정지를 당할 만큼 마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봐준다고 발표했다. 나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미칠 것 같은 기쁨에 차서 무사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지혜를 어디에서 배웠는가. 나는 책에서 배웠다. 어떤 책이냐면, 데스몬드 모리스라는 동물행동학자가 쓴『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이 그 책이다. 짝짓기, 기르기 다음에 싸움 장(章)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도 실제 교통 경찰의 태도를 여러 차례 실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책 속에는 과속을 해도 딱지를 안 떼일 수도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런 길을 아는 자는 조금 응용하기만 하면, 심지어 음주를 하고도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 속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바닷가 어느 작은 왕국에서 하느님도 시샘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다가 망한 연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도 있고, 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부스라는 녀석이 당도하기 전에 중국 ꡐ넘ꡑ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도 있고, 팔만대장경도 무지한 자에게는 빨래판으로 보인다는 교훈도 있고, 끓인 물도 식히면 산소가 다시 스며든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고, 중국에는 오래 전부터 식인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책 속에는 하여간에 다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게 아니다. 모든 길은 책 속에 있다. 심지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책은 우리에게 그런 친절한 안내도 해준다. 50이 넘었으니 이제 정말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500세는 너끈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다고 믿는 자는 책일랑 아예 담쌓고, 주식 투자법이나 부동산 안내책이나 읽다가 번 돈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내 안타까움이 너무 과했나? 과했다면, 반성하겠다.
앞으로 50년 계획을 다시 세우자
나이 50인 주제에 앞으로 50년 계획을 다시 세운다고 하면, 무슨 허파에 바람 들어간 소리를 하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실컷 비웃어도 좋다. 그런 사람은 희망이 없다. 늙어 죽을 때까지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시간을 죽이나’ 고민하면서 공짜 버스 타고 파고다 공원으로 출근(?)할 사람이다. 나는 적어도 늙어서 파고다 공원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살날이 많고 미래가 창창한 마당에 왜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삶을 택하겠는가? 시간은 ‘벌면서 살라’고 있는 것이지 ‘죽이면서 죽어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죽이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까, 죽어가고 있습니까?” 아마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겉으로는 “살아가고 있다” 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50이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적게 남아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가만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던 시절에는 인생의 황금기가 30~4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었으며, 내가 그 나이가 될 즈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세 가량 살지 않을까 싶다. 의학과 유전자 공학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그렇게 늘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계획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평균 수명이 100세가 되면 인생의 황금기도 50~60대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노후 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40대, 50대에 명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ꡐ사오정ꡑ이란 신종 언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혹자는 그런 비유를 들어 50~60대를 황금기라고 주장하는 나를 쓸개 빠진 놈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내 뱃속에는 아직도 쓸개가 건재하고 있으므로….
이제부터 내 진짜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나이 50이 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50년 간 죽어라 고생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난 50년 간 내 삶은 한 번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고, 일로부터 시간적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바쁘게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벌어놓은 것도 별반 없다. 참으로 나이 50이 되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때 문득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나만을 위한 시간 투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보지 못하였다.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해 왔다. 너무도 이기적인 삶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독자를 위해 좋은 글을 쓰고, 가수나 탤런트는 시청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연기를 한다. 선생은 학생을 위해, 목사는 신도를 위해, 농부는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살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의 노동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급을 타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구나.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하였다. 어차피 모든 일은 생각의 차이에 관계없이 같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나 나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더욱 신바람이 나고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나 노력이 똑같이 투자되고 나오는 돈도 똑같은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기심 때문에 들어오는 수익이 적다고 늘 불평을 할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들어오는 수익은 같지만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같은 수익이 보장되면서 행복감까지 보너스로 들어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보너스가 돈으로도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제까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을까, 깊이 후회하였다. 그러면서 30년 전부터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면, 내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창창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50년이란 세월이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돈이 많다면 사회복지를 위해 기부라도 할 것이지만, 나는 재벌이 아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싶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기도 쉽지 않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그렇다면 내게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다행스럽게 내게도 재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글을 쓰는 재주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변변치 않은 글들을 써서 베스트셀러 한 번 내지 못한 무명 작가지만 그래도 내가 30년 간 배운 것은 글쓰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글쓰기 재주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로 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2004년 2월부터 발행하는 웹진 ꡐ사람의 향기ꡑ다. 일요일만 빼고 이메일로 전해지는 글들이, 그것을 받아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다. 너무 물질 문명에 휘둘리다 보니 사람들의 가슴이 플라스틱 인형이나 마네킹처럼 텅 비어 있다. 나는 그들의 빈 가슴에 매일ꡐ사람의 향기ꡑ날려 보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감동으로 가득 넘치는 가슴을 갖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감동으로 가득 넘치는 가슴을 갖게 해주고, 행복이 충만한 삶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나이 50을 한물간 세대라고 깔보지 마라. 사실은 무서운 50대다.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세대다. 지금까지의 50년은 노하우를 익히기 위한 워밍업에 불과하다. 앞으로 50년이야말로 그 노하우를 제대로 된 자기 인생 가꾸기에 아낌없이 써서 황금의 나락을 거두는 기간이다. 대체 나이 40에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묻지 말라. 그 물음의 해답은 바로 지금 자신이 살아온 50년의 과거 시간 속에 묻혀 있다. 이미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시간이야말로 앞으로 자기 인생을 황금기로 만들 금광이 묻혀 있는 땅이다. 당신의 손에는 이미 ‘노하우’라는 괭이와 쟁기가 들려져 있다. 따라서 이제는 그 땅을 개간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첫댓글 긴글이만 지루하지않게 읽고 다짐했다 나를위해일를하면독이되고 남을위해일을하면 기쁨과줄거움이 된다 앞으로 위축되지말고 봉사와 사랑으로 사회에 빛이되는 50대여 일러나야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