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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鎭安) 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 -돌탑의 신비 1-
11시 10분경 은수사를 떠나 바로 지척에 있는 암마이봉에 자리 잡은 신비의 돌답으로 유명한 탑사(塔寺)로 향했습니다.
은수사에서 탑사로 향하는 길에 탑사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암마이봉의 꼭대기 일부 모습
마이산 타포니지형에 대한 설명이 있어 옮겨 봅니다.
「마이산 봉우리에 형성된 세계최대 규모의 봉소상(蜂巢狀 벌집모양)지형과 마이산 지질과 그 생성과정은 특이하다. 이 바위산은 사질역암(砂質礫岩)으로 모래와 자갈이 섞어 굳은 바위인데 역암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이산은 담수 역암층으로 형성과정은 마이산 이 위치한 지역이 낮아 주변에 산재한 화강 편마암 등의 자갈이 쏟아져 내려와 채워졌다. 그러다가 마이산 지역이 지각의 변동에 따라 융기하자 마이산을 덮고 있는 다른 지질층이 침식되고 현재의 역암층만 남게 되었다. 하얗게 패인 바위 구멍의 타포니 형상은 내부에서 표면으로 진행한 풍화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지형이다.」
마이산 탑사에 도착했습니다.
탑사의 풍경. 형형색색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습니다.
탑사입구
마이산 탑사.
들어가는 쪽에서 보면 오른쪽 있는 일광탑(日光塔)
이것은 왼쪽에 있는 월광탑(月光塔)
기이한 삼층석탑
약사탑(藥師塔)
탑 축조자 이갑룡(李甲龍) 처사 본영 (1860~1957)
이 석상은 탑의 주인공 이갑룡처사의 축탑의 의의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과 신도들이 세운 석조 좌상입니다. 1971년 3월 25일 조성되었습니다.
이갑룡처사의 인간전모를 옮겨 봅니다.
「이갑룡(李甲龍)처사는 1860년 3월 25일 임실 둔덕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씨 차남 으로 탄생하시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부모의 상을 당함에 묘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마친 뒤 인생의 허무 무상함을 통탄, 전국 명산을 전전하며 수양을 쌓다가, 25세 때 마이산에 들려 솔잎을 먹고 생식을 하면서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축석했다.
이 탑은 천지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으로 축석하여 용화세계 억조창생의 구제와 만인이 짓는 죄업을 대신 속죄하는 기도를 성업으로 일생을 보내시다 1957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셨다.
이처사가 남긴 유물로는 탑 외에도 신의 계시를 받아 쓰신 30여권의 신서와 모든 재난과 재앙을 막아 주는 부적 등이 있다.
특히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만불탑의 신비 오묘함은 중생 구제의 상징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보화님이 처사님을 뵈옵니다.
돌탑의 신비
홈페이지에 있는 글을 옮겨 봅니다.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년의 풍상속에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덕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에는 유난히 세찬 바람이 사시사철 불어 오고 있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옆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는데 이곳의 돌탑들은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런 접착물 없이 서로 맞닿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돌탑의 축조비법은 무엇이고 100년 풍상을 견뎌낸 돌탑의 신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자시)마다 하루 한 개씩 정성으로 올렸고, 음의 날에는 양에 돌을 올리고 양의 날에는 음에 돌을 올렸다. 또한 탑을 쌓기 위해 자리를 잡고, 다음 올라갈 즈음, 양돌을 앞에 놓고 좌선을 하면서 천기를 받아 지기를 올리고 온 몸에 기를 넣어 자시에 정확히 단번에 올려 작은 돌맹이로 고정시킨다.
도법에 의해 타원형으로 돌아 올라가며 밖으로 돌을 쌓고 안으로 자갈을 채우고 그속 가운데 비문을 넣고 올라가며 쌓은것이다. 또한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을 올리는데는 100일의 정성의 기도 후 올렸고 피라밋 상단부분에는 잔돌로 자리를 만들고 그곳에 우물정(井)자로 나무를 고정시킨 후 그 위에 올라서 음양돌을 올렸다 한다.
이갑룡 처사는 축지법을 39살부터 터득하였는데 이때부터는 몸이 가볍고 사뿐히 다니는 등 아무리 무거운 돌도 으흑음! 하고 소리를 내면 거뜬히 돌을 들어 올렸다 한다.
산속에서 혼자 앉아있거나 암,수 마이산을 오르내리고 암 마이봉과 수 마이봉에 강목천을 묶어 놓고 건너 갔다 왔다 하는 것을 본 이도 있다고 한다.
갔는데 벌써 이갑룡은 전주에서 볼일을 다 보고 진안으로 오는 것을 보고 "아니 언제 전주에 오셨습니까?" 물으니 "당신이 나가고 나서 바로 출발해서 왔네" 하니 그 사람은 아니 놀랄 수 없다고 한다.
서야 이러한 불의의 명작을 축조할 수 있겠나 생각된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이 현상은 이갑룡 처사의 정신력이라 할수 있겠다.」
생전에 소주를 좋아하셨나 웬 소주가~
이갑룡 거사를 뵙는 사람들
줄사철나무. 천연기념물 제 380호
영신각(靈神閣)
영신각을 둘러 보고 나오는 모습
탑에는 절대 손을 대지 말라는 간곡한 말씀이 있어도 대는 백성이...
도사 이갑룡선생 사적비
도사 이갑룡선생 유적비건립추진위원 방명록
하나 하나 정성과 기도로 쌓아 올린 돌탑
대웅전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에도 신비의 돌탑이 즐비합니다.
미륵존불
뒤를 돌아 본 모습
여기에도 줄사철나무가
☞ 돌탑의 신비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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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비스럽습니다. 이처사님이 축지법을 정말 쓰셨던 모양이네요.
축지법으로 유명하셨던 모양이네요. 도사이셨던 것 같습니다. 알 수 없는 신서도 많이 쓰셨다고 하는데 해독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도 도인이 나타나기 전에는 어려울 지 싶네요. _()_
돌탑이 대단하네요~~~
탑사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의 계곡이라 골바람이 무척 세다고 합니다. 태풍이 불면 나무가 뽑힐 정도로 사나운데 돌탑은 끄떡 없다고 하니 신비한 일입니다. 또 신기한 것으로는 겨울에 역고드름이 생기는 현상이지요. 방송에도 많이 나왔었지요. _()_
이갑용처사님 대단하십니다 ()
정말 대단한 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더러 돌탑을 쌓는 분들도 있지만 이갑룡 거사처럼 중생구제의 원력과 수행을 겸비하신 분은 없지요. 볼수록 감탄을 자아냅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는데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이렇게 많음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_()_
탑사에는 돌탑의 신비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고, 멋있는 줄사철나무와 절벽을 타고 자란 능소화가 아주 멋있습니다. 능소화이 필때 한번 가 보려 합니다.
이 곳은 줄사철아무 군락지로 유명하고 능소화는 이 절의 자랑거리라고 하네요.이 피면 멋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추진해 볼까요 안 본 곳도 많으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