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구지역 9개 전투 소개
양구지역은 6.25 당시 우리나라 어느곳보다 전투가 많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1951년 9개 지역에서 발생한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 16,618명이 전사했거나 실종되었고 아군에 의해 사살된 적군은 25,422명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했다.
▽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 1951. 12. 25 ~ 12. 28(4일간)
- 아군 7사단과 중공군 68군
- 아군 전사 22명, 실종 21명, 적 사살 172명, 포로 5명
▽ 피의능선 전투 : 1951. 8. 16 ~ 9. 5 (19일간)
- 아군 미 10군단 2사단 38연대 및 지원부대
- 적군 : 북한군 12, 27사단, 6사단 13연대
- 피해상황 : 아군 2,772명 전사, 적군 1,250명 사살. 포로 63명
▽ 펀치볼 전투 : 1951. 8. 31 ~ 9. 20 (21일간)
- 아군 미 해병 1사단, 국군 1해병연대
- 적군 북한군 1사단
- 피해상황 아군 1,579명 전사상, 적군 3,739명 사살, 767명 포로
▽ 백석산 전투 : 1951. 8. 18 ~ 10. 28 (72일간)
- 아군 7사단 3연대, 5연대, 8연대. 16포병대대, 미 96야포대
- 피해상황 : 아군 1,423명 전사상, 적군 1,460명 사살, 포로 101명
▽ 도솔산 전투 : 1951. 6. 4 ~ 6. 20(17일간)
- 아군 해병 1연대, 미해병 1사단 1연대, 5연대, 7연대, 11포병 3대대
- 피해상황 : 아군 618명 전사상 및 실종, 적군 3,307명 사살 및 포로
▽ 단장의 능선 전투 : 1951. 9. 13 ~ 10. 13 (31일간)
- 아군 미10군단 2사단 23연대, 38연대, 9연대, 72전차대대, 2전투공병대대, 프랑스대대, 네덜란드 대대
- 적군 북한군 6사단, 2, 3사단, 중궁군 204사단
- 피해상황 : 아군 3,745명 전사상 및 실종, 적군 10,468명 사살 및 포로
▽ 가칠봉 전투 : 1951. 9. 4 ~ 10. 14 (40일간)
- 아군 5사단과 적군 2, 27사단, 13사단 7연대
- 피해상황 : 아군 5,380명 전사상 및 실종, 적군 1,352명 사살 및 포로
▽ 대우산 전투 : 1951. 7. 8 ~ 7. 31 (24일간)
- 아군 미2사단 23, 38연대, 네덜란드대대, 해병 1연대
- 적군 북한군 27사단, 32연대
- 피해상황 : 아군 946명 전사상 및 실종, 적군 3,745명 사살 및 포로
▽ 949고지 전투 : 1951. 11. 17 ~ 11. 18 (2일간)
- 아군 6사단, 8사단 21연대,
- 적군 중공군 68군단 ( 202사단, 204사단, 35사단)
- 피해상황 : 아군 102명 전사, 적군 1008명 사살 및 포로
▽ M48A2C전차
무게 44.5톤, 최대속도 56km, 1971년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시 한국군에 넘겨준 전차로 한국군의 주력 무기로 활약, 4km 밖의 표적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으며 분당 8발을 사격가능
▽ M115 8인치 자주포
1927년 미국에서 최초 개발, 1939년 2차 대전시 활약한 무기
▽ 나이키
미국에서 1952년 개발하여 그 이듬해 실전 배치한 유도탄으로 1965년 육군 222방공포병대대를 창설시 주력무기로 배치하였으나 1991년 7. 1 육군의 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공군에서 운용하고 있다.
▽ 산양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혹 산양 처음 보는 사람 없씨유?
산양은 소목 소과에 속하는 동물로 크기가 작은 염소처럼 생긴 포유동물이다.
겁대가리가 없어 절벽을 기어오르내리고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에서 생활하기 알맞게 발굽이 발달하였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안한다.
▽ 절벽을 기어오르는 산양
▽ 아모스, 여인 그리고 산양
▽ 두타연 조형물
조각배에 올라 사진 한장 건져야 했는데 아쉽다.
▽ 두타사지 보덕굴의 전설
두타란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뜻이란다.
두타연은 금강산 송라암에서 수행 정진하던 회정선사(1678~1738)와 관세음 보살에 얽힌 전설이 깃든 곳이다.
▽ 소원이 이루어지는 항아리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1392년에 조선 개국을 앞두고 금강산 월츨봉에 개국의 염원을 담은 방산 백토로 만든 발원 사리구를 묻은후 뜻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