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일은 오직 당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만하면 곧 진의(眞疑)가 날 것이니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 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며 슛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여 항상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분명히 편전하게 되리니 이때가 공부에는 득력하는 시절이라. 이러한때에 정념을 확고히 잡고, 부 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중에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 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것도, 더운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 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 부를 잊지아니 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을 내어 구하는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 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어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저 경계를 여겨 주거나(認正) 착심(著心)을 내면, 곧 저의 올 개미에 얽힘이 되어서, 저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 으로 마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사(魔事)를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선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에게 참예하니 "날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화상을 뵈오니, "무"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한 이르시기를 " 사람이 길을 갈때 하루의 갈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 매일 올라와 한마디 일러라"하시더니, 그후 차서 있음을 보시고는 짓는 곳은 묻지 아니 하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때 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 느냐?"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슛아내셨다.
후에 경산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밤 꿈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실 에서 보았던"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이 돈발하여 동서로 남북으로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6일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풍경(諷經)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을 보니, 끝 두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6천, 온갖 조화 부린것이, 원래가 단지 바로 이놈이니라."하였음을 보 고 홀연 일전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을 타파하고, 즉시혼담이 날아가 버린뜻 기절 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백20근 짐을 벗어 버린 것에 비하랴! 그때는 정히 24세요 3년 한이 다 차던 해 였다.
그후 화상께서 물으시기를,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다시 물으시기를 "잠 이 깊이 들어 꿈도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을때 너의 주 인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하시는데, 이에는 가이 대답할 말도 없고 내 어 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 하시기를 "너 이제 부터는 불도 법도 배울것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 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던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일각(一覺)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하라 하시었 다. 그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 세코 이 도리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하고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 서 깨어 정히 이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동숙하던 도우가 잠결에 목침을 밀 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 렸다가 풀려 나온듯 하고 불조의 심난한 공안과 고금의 차별 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평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생각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 하였느니라.
#용어정리
[1]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남악하 22세. 설암흠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서(徐)씨. 소주(蘇州) 오강현(吳江縣)에서 출생. 용공(用功)득법 경위는 본문에 상세 하거니와 그후(1279)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峯)에 들 어가서 저 유명한 사관(死關)을 짓고 들어 앉았다. 사는 이곳에서 16년 동 안을 문턱을 넘지않고 마침내 이곳에서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학도를 가르 치기 빈날이 없었으며, 승속간에 계를 받은 사람이 기만명이 넘었다. 원나 라 원종(元宗) 원년, 대중에게 설법하고 그 자리에서 시적하였다. 향수 57 세. 지금 제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선요(禪要)가 바로 사의 어록이다.
[2]선악경계: 공부중에 나타나는 온갖 선악경계가 공부인을 망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을 경계하신 불조의 말씀은 실로 간곡하다. 본래 한 물 건 없는 이 가운데 무슨 경계나 형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견 망각이다. 대개 경계가 벌어지는 것은 그 원인이 공부가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정밀 하지 못한데 있으니, 터럭끝 만큼이라도 밖으로 구하는 생각이 있거나(馳 求心) 의정이 불분명(혼침,산란,망념)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화두만 간 절히 성성히 들면 있던 경계도 즉시 사라지는데 무슨 경계가 있을리 없다.
혹 생각이 바깥경계로 흩어지고 잡념이 있거든 곧 화두를 잡아 긴절(緊 切)히 들라. 이 화두는 불꽃과도 같아서 일체망념 경계나 혼침산란의 불나 비가 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벌어지거든 환관(幻 觀)으로 대치하고 그래도 경계가 멸하지 않거든 이것은 선근으로 인한 좋 은 경계이니 걱정하지 마라"하는것을 보나 공부인을 어떠한 경계이든-혼침, 산란등 일체병통과 선악경계중에 오직 화두로 당적함이 요긴하다. 공부를 하고저 하거든 반드시 경계를 대치할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이 서 있 어야 한다.
[3]진찬(眞讚): 덕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지은 글인데, 여기 오조진찬 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을 가져 상 취하니 모두가 환몽 되고 진을 가져 진 구하니 더욱 더 멀어지네 공안이 현전하니 무슨 일이 안될손가 백년이라 삼만육천 온갖 조화 부린것이 원래가 다못 바로 이놈 일러라"
(以相取相 都成幻夢 以眞求眞 轉見不親 見成公案 事無不辨 百年三萬六千 日 反履元來是這漢)
[4]주인공(主人公): 주인공이란 자신과 만유의 근원적 한물건을 의미하 는 것인데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본질 이전의 진심(眞心)을 가리킨 말이 다. 종문에서는 이밖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 혹 자기 (自己), 무저발(無底鉢), 몰현금(沒絃琴), 이우(泥牛), 목마(木馬), 심인 (心印), 심월(心月), 심주(心珠)등 가지가지로 부르기도 한다. 종문에서는 필경 이 주인공을 바로 아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주인공 다운 지 혜와 덕성과 역량을 자재 구사하여 주인공의 국토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 을 구경으로 삼는 것이다. 대주(臺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스님은 단구(丹 丘)의 서암에 있을때 반석위에 나와서 종일토록 우두커니 앉아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네!"하고 대답하고 "정신차려라. 너 뒤에 남에게 속지마 라!"하였다.
[5]이도리 한소식: 이말은 일착자(一著子)를 옮긴 말인데, 일착자는 바 둑 들때의 "한수"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산원(浮山遠)선사가 마침 문충공(文忠公)이 손과 바둑 두는 데 에 이르렀다. 사가 곁에 가니 공이 곧 바둑을 거두고 사에게 바둑을 인하 여 설법하여 줄것을 청하니 사 곧 북을 치게하고 법상에 올라 말씀 하시기 를 "만약 이 일을 논할진댄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상사 하라. 어찌 한 까닭이랴. 적수와 지음(知音)이 서로 기틀을 당하여 사양치 않으니... 中略...일러라 일러! 흑백(黑白)이 나뉘기 전에 한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
산승이 13세에 불법 있음을 알고, 18세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석상(石霜)에 갔는데 상암주(詳庵主)가 항상 코끝의 흰 것을 관 하라 하기에, 이 법을 익혔더니 얼마 아니하여 청정한 경계를 얻었었다. 그 후 한 사람이 설암(雪巖)화상 회상에서 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설암 화상의 좌선잠(坐禪箴)을 베끼어두고 보니 나의 공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알고 드디어 설암화상에게 참예하여 가르침을 따라 공 부 하였는데 오직 "무"자를 참구하였다.
4일째 되는 밤에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나니 십분 상쾌하기에 이어 선실 에 돌아와 사람들과 말도 끊고 오로지 좌선만 힘썼다. 후에 묘고봉(妙高 峰)화상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12시중에 끊일 사이를 두지 말지니 사경 (四更)에 일어 나거든 곧 화두를들어 눈앞에 분명하게 잡아 두라. 혹 졸 음이 오거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되,땅으로 내려올 때도 화두를 들고 걸 어갈 때도 화두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도 발우를 들때도 수저를 놓을 때 도 또한 대중일에 참예할 때도 항상 화두를 여의지 말며 밤이고 낮이고 이와 같이 지어가면 자연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 면 아무도 발명하지 못할자가 없느니라."하시기에, 이어 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지어가니 과연 타성일편이 되었다.
3월 20일, 암화상 상당에 이르시기를 "형제들아, 포단 위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는구나! 모름지기 땅으로 내려와 한 바퀴 거닐고 냉수로 관수 하고 두눈을 씻고 다시 포단위에 앉아 착량골을 바로 세우고 만길 되는 절벽 위에 앉은듯이 생각하고 다만 화두만 들어라. 이와 같이 공을 드리 면 결정코 7일이면 깨치리라. 이것은 바로 산승이 40년전에 이미 시험한 방법이다."하셨는데, 내 그때 그 말씀대로 지으니 곧 공부가 심상치 않음 을 알겠더라. 제2일에는 두 눈을 감고저 하여도 감아지지 않았으며, 제3일에는 몸이 마치 허공을 가는듯 하였고, 제4일째는 일찌기 세간이 있는지를 알지 못 하였고, 그날밤 난간에 의지하여 잠시 서 있으니 마치 잠든듯이 아주 아 는것이 없으매 화두를 점검하니 또한 분명 한지라 몸을 돌려 포단에 앉으 니 문득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흡사 두골(頭骨)을 쪼개는것과 같으며, 또 한 만 길 되는 샘 밑에서 치켜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듯도 하여 그때의 환희를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암화상에게 이 일을 사뢰니 "아직 멀었다. 더 지어 가라"하셨는데, 내가 법어를 청하니 법어 끝에 이르시기를 "불조 의 향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하 셨다. 이 법어를 받아가지고 내 스스로 생각 하기를"어찌하여 한 방망이 가 아직도 모자란다 하실까?"하기도 하고 또한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여 도 또한 의심이 있는듯하여 마침내 결단을 짓지 못하고 매일 포단위에 주 저앉아 좌선하기를 반년이 되더니, 하루는 두통이 나서 약을 달이다가 각 적비(覺赤鼻)를 만났더니 "나타태자(那咤太子)가 뼈를 발라서 아버지에 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린" 말을 꺼냈는데, 전날에 오지객 (悟知客)이 이 말을 물을 때에 대답하지 못하였던것을 생각하고, 홀연 저 의단을 타파 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몽산(蒙山)화상을 뵈오니 물으시기를 "참선은 어느 곳에 이르 러서 공(功)을 마치는 곳이냐?"하시는데, 마침내 말문이 막히니 그때에 화상은 나에게 다시 정력(定力)공부를 지어 망상 습기를 씻어 없애라고 하시고 매양 입실 할때마다 다만 "아직 멀었다."고만 하셨다. 하루는 해 거름에서 5경이 다할때 까지 정력으로 밀어대니 곧 지극히 그윽한 경지 에 이르렀는데 정에서 나와 화상에게 이경계를 말하니 화상 물으시기를, "어떠한것이 너의 본래면목이냐?"하시는데, 내가 대답 하려하자 갑짜기 문을 닫아 버리시니 이로부터 공부가 날로 묘처(妙處)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대개 너무 일찌기 설암화상 회하를 떠난 까닭에 일찌기 세밑공부를 짓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다행히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 마 침내 여기에 이른것이다. 원래 공부는 긴절(緊切)하게 지으며 시시로 깨 침이 있고 거름마다 진취가있는 것이라, 하루는 벽에
붙여 놓은 삼조(三 祖) 신심명(信心銘)을 보다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을 것이요. 비 춤에 따라가면 종(宗)을 잊는다."하였음을 보고
다시 한층 껍질(欠)을 벗 어 났었다.
화상 말씀이 "이일은 흡사 구슬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더욱
빛이나고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맑아 지나니 한껍질 벗기고 또 벗기는것이 저 몇생 공부하느니보다 낫느니라."하시고, 다만 번번히"아직
흠이 있다" 고만 하시었다.
하루는 정중에게 홀연 "흠(欠)자를 깨치니 신심이 활연하여 골수에 사무 쳐, 마치 적설이 순시에 녹아 없어짐과 같았으니, 준일(俊逸)을 참을 수 없어 땅에 뛰어 내려와 화상의 멱살을 잡고, "내게 무엇이 모자라오!"하니 화상이 뺨을 세번 치시는데, 내가 삼매(三昧)하니 화상 말씀이 "철산아!이 소식이 몇년만이냐 이제야 마쳤구나!"하셨다.
잠시라도 하두를 잊으면 죽은 사람과 같은 것이니 온갖 경계가 핍박하여 오더라도다만 화두를 가져 이에 저당하며, 시시로 화두를 점검하여 동중 (動中)이나 정중에득력(得力)과 부득력을 살펴라.
정중에 있을 때 화두를 망각하지 말아야 하니, 화두를 망각하면 곧 사정 (邪定)이되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문자상에서 알아 얻어려고 하지말며, 사소한 견처를 가지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을 마라. 다 만 어리석은듯 숙맥인듯이 하여 불법(佛法)도 세법(世法)도 통털어 한 뭉 치를 만들면 평상의 행동거지가 다못 심상할뿐 오직 옛 행리처만을 고칠 뿐이니라.
고인도 이르시기를
"대도는 본래로 말에 속한 것이 아니니 현묘(玄妙)를 말 하련즉 천지로 현격하리 반드시 능소(能所)를 뛰어 나야사 배고프면 밥 먹고 곧 하면 쉬리."
하였던 것이다.
#용어정리
[1]철산경(鐵山璟): 남악하 22세. 법을 몽산이(蒙山異)선사에 이었다.
[2]코끝의 흰것: 관법의 하나인데 생각을 지어 마음을 어느 한곳에 모아 서 마음이흩어지거나 혼침에 떨어지는것을 막고,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의 경계를 지키고 닦아가는 공부법인데 이 관법은 옛부터 여러 가지가 있다. 세존당시의 성문 제자들은 대개 이런 법을 공부하였다. 능엄경에는 <손다 라난타>가 "내가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따라 도에 들어와 비록 계율은 갖 추었으나 삼매를 닦는데 항상 마음이 흩어지고 흔들리므로 무루(無漏)를 얻기를 구하였더니, 세존께서는 나와 <구제라>에게 코 끝의 흰 것을 관하 도록 하셨다."하고 있음을 본다.
[3]여기의 법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허공을 한손 아래 가루를 만들으니
무쇠나무 꽃은 피어 구슬가지에 흩어지네
불조의 항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虛空一수粉졸時 花開鐵樹散璟枝 紹降佛祖向上事 腦後以前欠一槌)
[4]각적비. 오지객: 둘 다 사람이름인데, 절에서는 흔히 이름 윗자를 부 르지 않고아래 자에다 무슨 칭호를 붙여서 부른다. 적비는 코가 남달리 붉 어 얻은 이름인듯,지객은 소임명.
[5]나타태자: 나타태자는 뼈를 발라서 어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 머니에게돌리고 나서, 다시 신변을 이르켜 연화좌위에 본신을 나타내어 부 모를 위하여 설법하였다.
[6]능소(能所): 주(主)와 빈(貧) 또는 주관과 객관과 같은 말로 표시되는 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 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같 은 말로 표시되는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 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같은 대대(待對)가 있게 되면 절대인 참도리에는 들어가지 못한 다. 그러므로 이 능소를 뛰어넘는것이 공부의 중요한 마루턱이다.
만약 범부를 뛰어 넘어 성위(聖位)에 올라 영영 진로(塵勞)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가죽을 베끼고 뼈를 바꾸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찬재(寒 炭)속에서 불꽃이 튀며 마른 나무에서 새싹이 나는듯 하여야 하니, 어찌 용 이한 생각을 내랴. 내가 선사(先師) 회하에 다년간 있으면서 늘 큰 방망이 를 맞았으나 한 생각도 싫은 생각이 없었으니 금일에 이르러 전날에 맞은 곳을 건드리니 불각중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 어찌 너희들이 약간 쓴 맛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는 돌보지도 않음에 비하랴.
#용어정리
[1]단애요의(斷崖了義): 남악하 23세, 고봉묘(高峰妙)선사의 법을 이었다. 고봉에 참예하여 "만법귀일"공안을 참구하여 깨치고 게송을 짓기를
"대지여 산하여 한조각 눈이로다.
햇빛 한번 비치니 자취조차 볼 수 없네
이로조차 제불조에 의심이 끊어지고
동서고 남북이고 모두가 없어졌네
(大地山下一片雪 太陽以照便無踪 自此不疑諸佛祖 更無南北與東西)하니 고 봉스님이 인가 하면서 "세가 후에 공봉절정에서 크게 소리칠 것이다."하였다. 이때에 이름을 요의(了義)라 고쳤다. 시호는 불혜원명정각보도(佛慧圓明正覺 普度)대사다.
선사(先師) 고봉화상은 항상 학인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본참공안을 가 슴속 깊이간직하고 다닐때도 이러히 참구하고 앉을때도 이러히 참구하라. 궁구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생각이 머무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문득 타파하여 벗어나면 바야흐로 성불한지 이미 오래임을 알것이다.
이 한 도리는 이것이 기왕의 모든 불조가 생을 요달하고 죽음에서 벗어 남에 이미 시험하신 묘방이다. 오직 귀한것은 믿고 의심하지 않는것 뿐이 니 오래 오래 퇴전 하지만 않으면 상응(相應)을 얻지 못할자 없느니라."하 셨다.
화두를 들고 공부 지어감에 첫째 입각처가 온당하여야 깨침도 친절하니 라. 설사 이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다만 신심만 퇴전하지 않으면 한생 두생을 넘지 않고 누구나 깨침을 얻을 것이다.
혹 20년 30년을 공부하여 깨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다른 방편을 구하지 마라.다만 마음이 다른 인연에 끄달리지 않으며, 또한 모든 망념을 끊고 힘써 화두를 향하여 가부좌를 결하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기로 작정하고 정진하면 누가 3생이나, 5생, 10생, 내지 백생이라도 괘의하랴. 만약 철저 히 깨치지 못하거든 결코 쉬지 말지니 이러한 정인(正因)만 있으면 대사 (大事)를 마치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 없느니라.
병중 공부에는 용맹정진도 필요없으며 눈을 부릅뜨고 억지 힘을 쓸 것 도 없으니 단지 너의 마음을 목석과 같게하고 뜻을 찬재(寒炭)와 같이하여 이 사대환신(四大幻身)을 타방세계 밖으로 던져 버리고, 병들어도 그만 살 아도 그만 사람이 와서 돌보아 주어도 그만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도 그 만 향기로워도 그만 추한 냄새가 나도 그만 병을 고쳐 건강히 되어 백20 세를 살아도 그만 혹 죽어서 숙업에 끌려 화탕 노탕 속에 들어가도 그만 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경계중에 도무지 동요함이 없이 다뭇 긴절하게 저 아무 맛도 없는 화두를 가지고 병석에 누운채 묵묵히 궁구하고 놓아 지 내지 말아야 한다.
.
#용어정리
[1]중봉명본(中峰明本): (1263-1321) 남악하 23세. 법을 고봉 묘선사에 이었다. 사관(死關)에서 고봉화상을 뫼시고 각고정진하여 마침내 대오하였 는데 사관에서 의정진담 일단이, 뒤의 제조고공절약 제21에 보인다. 고봉 화상 진찬에 "내 모양은 부사의라, 불조도 짐작 못하나, 오직 못난 우리 아이가, 나의 코 반쪽은 본다"
(我相不思議 佛祖莫能視 獨許不肖兒 見得半邊鼻)하고 있으니 가히 사의 기 봉을 짐작하게 한다.
원 인종(仁宗)이 청하여도 가지 않으니, 인종은 금문(金紋)가사를 보내고 불자원조광혜(佛慈圓照廣惠)선사라 사호하였다.
나(生)되 온곳을 아지 못하니 생태(生胎)라 하는 것이요, 죽어가되 가는 곳을 아지못하니 사대(死大)라 하는 것이라 공(功)이 없이 납월 30일이 닥 치면 오직 손발 을 버둥거릴 뿐이며 더우기 앞길이 망망하여 업을 따라 보 를 받게 되니 참으로 요긴한일은 이 생사의 과보를 받는데 있느니라.
생사업의 근본을 말한다면, 지금의 한 생각중에서 소리를 따르고 빛을 쫓아 허둥지둥하는 이것이다. 이 까닭에 불조가 대자비를 운용하시어 혹은 참선을 하라 하시고 혹은 염불하라 하심은,너로 하여금 망념을 소제(消除) 하고 본래 면목을 알게 하여 말끔하고 헌출한 대해탈인을 만들고저 하심인 데, 그럼에도 아직 영험을 얻지 못한 자는 세가지 병통이 있는 까닭이다.
첫째는 진정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통절히 생사대사를생각에 두지 아니하고, 그럭 저럭 지내어서 어느듯 일없는 집에 들어 앉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셋째는 세간의 명예나 이권이란 온전 히 헛된 것임을 밝게 알지 못하여, 아주 털어 버리지 못하고, 망연과 악습 에 주저 앉아 이것을 끊지도 못하여, 경계에 부닥치면 불각중에 휩쓸려 송 두리째 업해(業海)속에 빠져들어, 동으로 서로 떠 돌아 다님을 깨닫지 못 함에 있나니, 진정한 도류(道流)일진대 어찌 이와 같으랴!
마땅히 믿을지라, 조사 이르심을
"분분히 이는 잡념, 어찌하여 소탕할까
하나의 화두는 쇠(鐵)뭉치 빗자루니
쓸으면 쓸을수록 더욱 일으나
더욱 일거던 더욱 쓸어라
쓸어도 안 쓸리면 목숨을 걸고
죽을 힘 다하여서 쓸어 내어라
홀연히 허공마져 쓸어 낼지면
천만가지 갈래길 한길로 통하리"
하신 것이다.
제 선덕아, 노력하라. 모름지기 금생에 분명히 요달하여 영원히 재앙을 받지 않도록하라. 또한 염불과 참선이 같지않다고 의심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참선은 단지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함이요, 염불은 자기 성품이 미 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淨土)임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을 생각하고 염불하면 현세나 당래에 반드시 불을 뵈오리라."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불을 볼진대 어찌 참선하여 도를 깨치는 것과 다름이 있으랴!
어떤 사람의 물음에 답함-단지 "아미타불"넉자를 가지고 화두를 삼아 26 시중에 분명히 들어 한 생각도 나지 않은 곳에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불위(佛位)에 뛰어오르리라.
#용어정리
[1]천여우칙(天如惟則): 남악하 24세, 법을 중봉본(中峰本)선사에 이었다.
[2]차서: 대개 범부가 성불하는 데는 간혜지(乾慧地)에서 성불까지에 55 절차의 차례가 있다. 그러나 종문에서는 "마음을 잡아가는 한법이 모든 행 을 다 갖춘다"고 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대번에 부처를 이룬 다"하여 하등의 차서를 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안을 요달하면, 단번에 부처땅(佛地)에 들어가는 것이다.
염불을 한번 혹은 3,5,7편하고, 묵묵히 반문하라. "저 염불 소리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가?" 또 생각하기를,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여 의심이 있거든 다만 한결같이 의심해가며 만약 묻는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 고 의정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시 거듭 "필경에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 가?"하라. 또한 앞의 일문에 의심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만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하여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지어가라.
산승이 처음 독옹(獨翁) 화상을 뵈었더니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님"을 참구하라고 이르셨는데, 후에 운봉(雲峰) 월산(月山)등 6인의 도반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고 서로 탁마하다가, 회서(淮西)의 교 무능(敎無能) 화상을 뵈우니 "무"자를 들라 하시므로, 장로(長瀘)에 이 르러 도반과 서로 짝을 맺고 연마하였다. 후에회상(淮上)의 경형(敬兄) 을 만났더니 묻기를 "너 지난 6,7년 동안에 견지가 어떠하냐?" 내가 대 답하기를 "매일 단지 이 심중에 한물건도 없읍니다."경이 "너 그 한소견 이 어디서 나왔느냐?"하시는데, 내 생각에 알듯말듯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니, 경이 나의 공부가 성발이 없음을 알고 "너 정중(靜中)공부는 그 만하나 동중(動中)공부가 아직 멀었구나!"하신다.
내 이 말을 듣고 놀래어 "필경 이 대사를 밝히려면 어찌하면 되겠읍니 까?"하니 말씀이"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천로자(川老子)가 이르기를 "적 실한 뜻을 알고져 하거든 북두(北斗)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하셨느니 라." 이 말씀을 마치고 곧 가버리셨는데, 이 말을 듣고는 곧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고서, 5,7일간을 "무"자는 들 지 아니하고 혹 넘어지면서라도 다만 "적실한 뜻을 알고져 할진대 북두 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를 참구하였다.
하루는 마침 정두료(淨頭寮)에서 대중과 같이 한 나무에 걸터 앉아 있 는데, 오직 의정이 풀리지 아니 하더니 한참 동안 있다가 갑자기 심중이 탕연히 비고 가볍고 맑아지며 모든 정상(情想)이 찢어져 없어지는 것이 흡사 가죽을 벗기는 거와 같았다. 그때는 눈 앞의 사람도 일체 보이지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반 시 가량 있다가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더라. 이윽고 "북두를 남면하 고 보라"를 깨치고, 경형을 찾아서 문답하고 송을 짓는데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그러나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있어서는 아직 헌출 하지를 못하 여 후에 향암산(香庵山)에 들어가 여름을 지내는데 모기가 심하여 두손 을 가만히 둘수 없기에, 생각하기를 "고인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었는데 나는 어찌 모기를 겁내는가!"하고,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어금니를 꽉 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만 "무"자를 들고 참고 또 참았더니 불각중 에 심신이 고요하여지며 마치 한채집 사방벽이 툭! 무너진듯 하고 몸이 허공과 같아서 한 물건도 생각에 걸림이 없더라.
진시(辰時)에 앉아 미시(未時)에 정(定)에서 나오니 이에 불법이 사 람을 속임이 아니고 자기의 공부가 미치지 못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견해는 명백하나, 아직 미세하고 은밀한 망상이 다하지 아니하므로,광주산(光州山)에 들어가 6년동안 정을 익히고, 다시 육안산 (陸安山)에 머물기를 6년, 광주산에 또다시 3년을 머물고 바야흐로 빼어 남을 얻은 것이다.
#용어정리
[1]무문총(無聞聰): 남악하 23세, 법을 철산경(鐵山境)선사에 이었다. 사의 선자송을 소개한다.
"잡아 들으니 심히 분명하고 묘하구나,
청풍은 솔솔 불어 가슴 속에 사무치네,
이 사이 소식이 별것이 없으니
스스로 온통 환희가 넘치는다."
[2]마음도 아니고(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한 중이 남전(南泉) 스님 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모든 성인이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 설하지 않은 법이 있읍니 까?" "있지!" "어떠한 법이 아직 설하지 않은 법입니까?"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
[3]천노자: 야부실제도천(治父實際道川) 선사다. 남악하 16세. 법을 정 인성(淨因成)선사에 이었다. 곤산(崑山)에서 출생. 속성은 적(狄)씨. 처 음 현(縣)의 궁급(弓級)을 하고 있었을 때 동제겸(東齊謙)이 도속을 위한 법회에 참예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좌선을 힘쓰다가 하루는 직무상의 과오로 곤장을 맞다가 홀연 대오 하였다. 드디어 직무를 사퇴하고 겸스님에 의지하여 출가 하였는데, 겸은 사의 이름을고치면서 말하기를 "이제부터 네 이름 적삼(狄三)을 도 천(道川)으로 고친다. 천(川)은 즉 삼(三)이라 네가 능히 굳게 척량골을 세워, 이일을 판단하면 도가 내의 물과같이 불어 흐를것이고, 그러지 않 고 마음을 놓고 누어 지내면 도로 옛 삼(三)이 된다."하였다.
사 명심하고 더욱 정신에 힘쓰고 뒤에 천봉(天封)에 이르러 만암(만庵) 선사를 만나서로 기봉이 삼투하여 인가를 받았고, 다시 돌아와 동재(東 齋)에서 교화하고, 곧 이어 회서(淮西)에 가서 개당(開堂)하였다. 지금 제방에 크게 성행하고 있는 천로금강경(川老 金剛經)-금강경야부송)은 사 가 동재에 있을때 학인에게 가리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4]적실한 뜻: 금강경 야보송의 한구절이다. "촉천의 고운 비단, 꽃 수 (繡) 놓아 더욱 곱네, 적실한 뜻 알고져 할진댄,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蜀川十樣錦 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南看)"하는 것이다.
[5]정두료(淨頭寮): 총림의 변소 소제하는 소임이 있는 곳.
[6]송을 짓다: 경(敬)이 부채를 들어 보이면서 "자! 일러라. 빨리 일러 라"하니 송을 짓기를 "아! 뚜렷 함이여. 뉘라 이를 알려는고, 직하에 시 방을 끊고, 찬 빛 사무쳐야지(圓圓一片 要見人人 坐斷十方 寒光수電)"하 였다.
[7]상응(相應): "어떠한 것이 일념상응입니까?" 물음에 대하여 남양충 (南陽忠)국사는 "생각(憶)도 지혜(智)도 모두 잊으면 즉시 상응이라"하고 있다.
[8]돈오(頓悟): 공부를 하여 깨치는 데도 당인의 근기를 따라 심천이 있으니 차츰차츰 차서를 밟아 닦아가서 대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대번 에 크게 깨치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점수(漸修) 후자를 돈오(頓悟)라고 들 한다. 대개 이치로 말하면 깨치면 곧 원만자족한 본래의 자기를 아는 것이니 다시 닦아 증할 법도 털어없앨 습기도없는 것이다. 만약 오후에 다시 증할 법이 있거나 털어 없앨 습기가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깨침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니 모름지기 용진하여 대철 대오를 기 약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대개 말하기를 돈오면 곧 불이라 견해는 명 백하나 이치 그대로 사사여일(事事如一)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니, 현실에 처해서 자재하게 되려면 다시 더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치인즉 몰록 깨 닫는지라 깨달음을 따라 다 안다 하거니와, 사(事)는 몰록 제해지는 것 이 아니니 차제를 인연하여 없어진다."하고, "얼음은 못(池)이 온전히 물 인줄은 아나 햇빛을 빌어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불인것을 깨쳤 더라도 법력을 가자하여 닦아야 한다"한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 이 닦는 것을 오후진수(悟後進修)또는 목우행(牧牛行- 소를 먹인다)이라 하는데 돈오점수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다.
도를 배우는 자 무엇이 손잡이가 되는가, 저 화두를 드는것 이것이 손 잡 이가 되느니라.
형제들, 3년 5년을 공부하다가 입처(入處)가 없으면 종전의 화두를 내버 리니 이것은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폐하는 것과 같은 것을 아지 못함이라,전 래로 지어 온 허다한 공부가 가이 아깝구나!
뜻이 있는자면 이 회중에 나무 좋고 물 좋고 승당이 명정한데, 맹세코 3 년만 문을 나서지 마라. 결정코 수용할 날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무리는 공부하다가 겨우 심지(心地)가 좀 맑아져 약간의 경계가 현 전하면 문득 게송을 읊으며 스스로 큰 일 다 마친 사람이라 자처하고 혀뿌 리나 즐겨 놀리다가 일생을 그르치고 마니, 세치 혀뿌리의 기운이 다하면 장차 무엇을 가져 보임(保任)하려는 거냐!
불자야, 생사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공부는 모름지기 참되어야 하고 깨침 또한 실다워야 하느니라. 혹, 화두가 면밀하여 간단이 없어 몸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면, 이것은 "인(人)은 없어졌으나 법(法)이 아직 없어지지 않음"이라 하는 것이니, 여 기에 이르러 몸을 잊고 있다가 문득 다시 몸을 생각하게 되면, 마치 꿈속 에 만길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에 다만 살려고만 발버둥 치다가는, 마침내 실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 경지에 이르거든 오직 화두만 단단 히 들고 가라. 홀연 화두를 따라서 일체를 잊어 버리면, "인(人) 법(法)이 모두 없어짐"이라 하는 것이니, 이때에 활탁 찬재에서 콩이 튀어야 비로서 장서방이 마시고 이서방이 취하는 도리를 알게 될 것이니, 바로 이러한 때 에 반야문하에 와서 방망이를 맞도록 하라.
어찌한 까닭이랴, 다시 제 조사의 중관(重關)을 타파하여야 하는 까닭이 니, 그리하여 널리 선지식에 참예하여 일체 얕고 깊음을 다 알고, 다시 물 가(邊)나 숲 아래에서 성태(聖胎)를 보양하다가 용천(龍天)이 밀어냄을 기 다려서, 세상에 뛰어나와 종교를 붙들어 드날리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용어정리
[1]반야(般若) : 남악하 24세. 법을 영운지정(靈雲持定)선사에 이었다.
[2]실참실오(實參實悟): 신정인(神鼎인)선사 이르기를 "길가는 사람이 노상에서 재미를 붙여 놀면, 그 사람은 마침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다. 견해가 미세하다고 하여 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공부는 실참(實參)이어야 하고 깨달음 또한 실오(實悟)여야 한다. 염라왕 은 말 많은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라고.
[3]인은 없어지고: 이 구절은 "인망(人忘) 법미망(法未忘)" "인법쌍망 (人法雙忘)"을 가려 말하고 있다. 증도가(永嘉禪師證道歌)에도 다음과 같 은 구절이 보인다. "마음은 이것이 근(根)이요. 법(法-一切施爲와 萬象)은 이것이 진(塵)이라, 둘이 모두가 거울위의 흠이니 흠이 다할때 광(光)은 비로소 나타난다. 심과 법을 모두 잊어야 성품이 곧 참도니라."
[4]성태를 보양(保養聖胎): 옛 도를 얻은자는 산속 깊숙히 살며 다만 단 지에 밥이나 익혀 먹으면 족할뿐, 20년 30년을 이름이나 이해를 아예 생 각밖에 두고 인생을 아주 크게 잊고, 다만 그 도만 지켰으니 이것을 옛 사 람은 "성태를 보양한다"고 하였다.
12시중에 씻은듯이 가난한 마음으로 "부모가 낳기전 어떠한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를 참구하되, 득력하든 득력하지 못하든 혼산(昏散)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말고 다만 한결같이 지어 나가기만 하라.
#용어정리
[1]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 속에 일체의 알음알이 나 소득심(所得心)이나 아만심을 툭! 털어버린 말끔한 마음이라는 뜻이 니, 마음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어 있으면 불조의 말씀이 바로 들어가 지 않고 공부가 올바르게 나가지를 못하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반드시 용맹심을 발하고 결단한 뜻을 세워, 평생에 깨친 것과 배운 것과 일체 불법과 세속학식이나 말재주를 단번에 저 큰 바다 속에 쓸어 버리고 다시는 생각 하지말며, 저 8만4천 미세한 잡념을 한번 앉음에서 단번에 모 두 끊어버리고, 본참화두를 가져 한결 같이 들고 들어서 의정으로 가고 의 정으로 오며, 밀어 오고 밀고 가며 심신을 굳게 정하여 오직 이 도리를 분명히 밝혀 내도록만 하되, 다만 깨침으로 법칙을 삼아야 하느니라. 부 디 공안을 가져 생각으로 헤아려 알아 마치려고 하거나, 경서상에서 찾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니, 반드시 탁! 끊어지고 툭! 터져야사, 비로서 집 에 돌아온 것이니라.
혹 화두를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거든, 연거퍼 세번 들면 즉시 힘을 얻 을 것이요, 혹 심신이 피로하고 지쳐 마음이 불안 하거든, 조용히 땅으로 내려와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포단에 앉아 본참화두를 가지고 전과 같이 밀고 나가도록 하라. 만약 포단 위에서는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망상만 일 으키고, 몸을 돌려 땅으로 내려와서는 두 셋이 짝을 지어 모여앉아 한 뱃 속 가득한 어록이나 경서를 들먹이면서 크고 작은 말로 마구 말 주변이나 부린다면 이러한 공부는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아무 쓸데도 없는 것이다. #용어정리 [1]고매정우(古梅正友): 남악하 25세. 법을 반야세성(般若世誠)선사에 이었다.
가사 문수(文殊)가 금색광명을 놓으면서 너의 이마를 만지며, 사자가 너를 태우러 오며 관음(觀音)이 천수천안을 나투며 앵가(鸚歌)가 네손 에 잡히더라도, 이것은 다 빛을 쫓고 소리를 따름이니 너의 본분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다.
진실 자기대사를 밝혀서 생사의 굳은 관문을 뚫어내고져 하거든 먼저 일체의 성(聖)이니 범(凡)이니 하는 허망한 견해를 모두 끊어 버리고, 12시중에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되, 다만 "마음도 아니고 물건 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것이 이 무엇인가?"하고 지어가라. 부디 밖을 향 하여 구하지 말지니 설사 자그마한 소견이 열리거나 신통성해(神通聖 解)가 있어 저 대지(大地)를 잡아 좁쌀알 만하게 만든다 하드라도 이런 것은 모두가 자기를 속이며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힘써 참 구하여 일체에서 헌출히 벗어나 의지한바가 없어 한 터럭이라도 설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눈을 얻으면 문득 "청주포삼(靑州布衫)"과 "진주라복 (鎭州蘿蔔)"이 다 내집에서 쓰고 있는 물건임을 알것이니 다시 따로 신통성해를 구할 것이 없느니라.
#용어정리
[1]걸봉세우(傑峰世愚):(1301-1370) 남악하 23세. 법을 지암성(止巖 成)선사에 이었다.서안(西安)에서 출생. 속성은 여(余)씨, 사의 모(母) 모(毛)씨가 꿈에 관음보살이 청의동자를 보내온 것을 보고 사를 낳았다 하는데, 사는 어려서부터 불탑에 예배하기를 좋아하더니, 20세에 고악 (孤嶽)스님에게 나아가 축발하고 피를 뽑아 금강경을 사서 공양하였다. 사의 고공정진한 이야기는 뒤의 제조고공절요 19에 보이거니와, 처음 고애순(古崖純)등 제사에게 참예하여 법요를 듣고, 마치 마른 나무둥치 처럼 앉아 배겨 참구하더니 계합하지 못하고, 이어 포납(布衲), 단 애(斷崖), 중봉(中峰)제사를 찾고 이윽고 대자산(大慈山) 지암성 선사 에 이르러 역구(力究)하여,마침내 대오하였다. 지암스님의 인가를 받고 3년을 섬기다가 서안(西安) 복혜사(福慧寺)를 중창하고, 다시 석계(石 溪)의 용흥사(龍興寺)로 옮기면서부터 법석이 크게 성화하였다.그후 여 러 곳의 개산 제1세가 되고 명 태조 3년 군수 황씨의 수륙재에서 돌아 와 대중에게 "힘써 정진하여 입도하라"이르고 붓을 들어 "남(生)이라 본래로 남이 없으며, 죽음(死)이라 본래로 죽음 없는데, 두손 털고 빈 손으로 훨훨 떠나니 중천엔 밝은 달이 꽉 찼구나!(生本無生 滅本無滅 撤手便行 一天明月("하고 붓을 던지고 갔다. 향수 70세. 시호는 불지홍 변(佛智弘辯)선사.
[2]앵가: 앵무새의 작은 것을 앵가라고 한다는데 흔히 말하는 관음조 를 가르키는 듯.
{3]청주포삼: 조사공안이다. 한 중이 조주에서 묻기를 "만법이 하나 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데로 갑니까?"하니 "내가 청주에 있을때 장삼을 한벌 만들었더니 무게가 일곱근 이더라"하였다.
[4]진주라복: 한 중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듣잡건데 화상께서 친 히 남전화상을 뵈었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하니 "진주에 큰 무가 나 느니라"하였다.
송 효종(孝宗)황제 묻되 "어찌하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읍니까?" 답 "대승도(大乘道)를 깨치지 못하면 마침내 생사는 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깨칠 수 있읍니까?" "본래로 가지고 있는 성품을 세월을 가져 연마하여 나아가면 깨치지 못할자가 없읍니다."
#용어정리
[1]영은할당(靈隱할堂): (1103-1167) 임안부(臨安府) 영은할당 혜원 (慧遠)선사다. 남악하 16세. 원오근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휘종때 미산(眉山) 금유진(金留鎭)에서 출생. 속성은 팽(彭)씨. 13세에 약사 원(藥師院) 종변(宗辯)스님에게 출가하고 성도(成都)에 가서 경론을 배우고 운암사(雲巖寺)에 돌아와 휘(微) 선사에게 참예하여 묻기를"문 수보살은 7불의 스승이라 하옵는데 문수보살의 스승은 누구 입니까?" 하니 "금사 시내가(金沙溪)의 마가집 며느리(馬家婦)다."라고 일러 주 었으나, 2년동안 참구 하여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혼 자 정좌하고 있는데 어떤 중이 지나가면서 혼자 말로 "사대(四大)를 빌어서 몸둥이로 삼고, 육진(六塵)을 인연하여 마음이 나니, 육진이 없을때 무엇을 가져 마음을 삼을건가"하는 말을 듣고 문득 깨치고,수 좌에게 가서 소견을 말하니 "옳다"하고 방장에 가서 휘화상에게 말씀 드려도 또한 "됐다"하셨으나, 어딘가 석연치 못한 곳이 있어 다음날 동료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떠났다. 곧 원오극근선사에게 갔는데 하 루는 근화상 보설(普說)에 말씀하기를 "방거사가 마조(馬祖)에 묻기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하니 마조가 "네가 서강(西 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는 것을 보아 일러 주마."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은 놀래면서 풍기(風氣)가 동했다고 다들 당황하 여 부축하여 일으키니, 사 말이 "내가 꿈을 깼다"하였다. 그날밤 소 참에 극근 화상에게 나아가 묻기를 "발가 벗은듯 한 물건도 없고, 적 골이 드러날듯 가난하여 돈 한푼 없아오며, 집은 허물어지고 집안은 망하였아오니 화상께서는 도와주옵소서"하니 말씀이 "칠진팔보(七珍八 寶)를 일시에 잡으렴!"하시는데 사 "어찌 도적이 문에 들어 오지 않겠 읍니까?" 근화상은 "기틀은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독바다(毒海)에 떨 어져 있느니라"하는 것을, 사 그 말씀을 이어 "할"을 하니 화상이 주 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면서 "방망이 맛을 보앗느냐?"하시는 것을, 싸 도한 "할"하니, 화상도 연거퍼 두번 "할"하셨다. 사는 즉시 예배하니 극근이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을 지어주고 인가하였다.
이로부터 아무도 사의 기봉(機鋒)을 당적하는 사람이 없게되니 대 중들은 사를 가리켜 철설원(鐵舌遠)이라 불렀다. 그후 얼마 아니하여 극근이 열반에 드니 회남(淮南)으로 내려와 제방에서 연마하여 대자 재삼매(大自在三昧)를 이루고 크게 도풍을 떨쳤다. 마침 그때는 대혜 종고(大慧宗고)선사가 매주(梅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인데 왕래하는 사람에게서 대혜스님의 게송을 전해 듣고 놀라며 극구 칭찬하고 "노사 께서 말년에 이런 법자가 있었던가?" 하여 글과 원오근이 전한 법의 (法衣)를 보냈다. 그때에 천하에 종풍을 드날리니, 칙명으로 고정산 숭선사(高亭山 崇先寺)에 있다가 얼마 아니하여 다시 칙명으로 영은 (靈隱)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효종(孝宗)의 귀의가 두터워 자주 왕중 에 참례하였는데 여기 본문에 보이는 문답은 건도(乾道) 7년(서기1171 년) 1월30일, 찬덕전(찬덕전)에서 문답한 일절인데, 이날 처음 효종황 제를 만나서 여러 문답이 있었다. 다음에 본문에 계속하는 일단을 더 소개한다.
사가 본유지성(本有之性)을 닦아 대승도를 깨쳐야 생사를 면한다 하 니, 황제 "깨치면 어떠합니까?" 사 "깨치고 나야 비로소 알 일이오나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나 신이 대답하는 것이 다 옳지 않읍니다." 일체 처(一切處)가 옳지 않을때 어떠합니까?" "체(體)를 벗어난 것이 현전 하면 터럭끝 만큼도 가히 찾아 볼 상(相)이라고는 없읍니다. 고덕이 말하기를 "옳은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보리(菩提)라" 하였읍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어떠합니까?" "눈 앞에 한법도 없아온데 폐하 께서 무엇을 가져 마음이라 하시옵니까?" "어떠한 것이 마음입니까?" 사 일어나 차수(叉手)하면서 "단지 이것 뿐입니다."하였다. 사는 입적 하기 전에 이미 오는 1월15일에는 입적한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 었기 때문에 관속(官俗)이며 단도(檀徒) 제자들과 도하(都下) 많은 사 람들이 사의 열반상(涅槃相)을 본다고 다투어 절에 모여 볾르었다. 왕 의 밀사(密使)도 와서 사의 거지를 살폈다. 그날 큰 재식이 있었는데 사의 왕래거저가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날 재를 파하고 시 자와 속관이 다 같이 방장(方丈)에 들어 갔는데 사는 방에 들어 가서 방문을 꼭 닫았다. 사가 방에 들어 가신후 방장에 있던 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니 다만 원행자(猿行者!평소에 사가 기르던 검은 원숭이)가 한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섰을뿐 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뒷문으로 들 어가 보니 사는 이미 탑 위에서 시적하였다. 원행자가 가진 종이는 바 로 사의 사세송(辭世誦)이었다. 향수 74세.
[2]제(制): 천자의 말씀을 제라 한다.
[3]대승도(大乘道): 소승도(小乘道)에 대한 말로서 범어를 음대로 적어 "마하연(摩訶衍) 마하야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 가는가? 공부를 짓되, 화두를 참구하지 아니하고 비고 고요한 것을 지켜 앉아있 지 말며, 염화두(念話頭)를 하여 의정없이 앉아 있지 말지니라. 혹 혼침 이 오거나 산란심이 들면 생각을 이르켜서 이를 쫓으려 하지 말고, 곧 힘 차게 화두를 들고 신심을 가다듬어 용맹히 정채를 더 하라. 그래도 아니 되거든 땅으로 내려와 경행하고 혼산이 사라지거든 다시 포단에 앉을지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스스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심되며 가 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잇는 줄을 알지 못하여 오직 참구하는 생각 뿐이어서 공부가 "외로히 헌출하고 뚜렷하게 밝게되면"이곳을 번뇌 가 끊어진 곳이라 하여 또한 아(我)가 없어진 곳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은 아니니 다 시 채찍을 더하여 "저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궁구하라. 이 경지 에 이르러 화두를 드는데는 별다른 절차가 없느니라. 화두가 간단이 없어 오직 의정이 있을 뿐이나, 혹 화두를 잊거든 곧 들지니 그 중에 돌이켜 비추는 마음이 다하게 되면 이때를 법(法)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라 비 로소 무심처(無心處)에 이른 것이다. 이곳을 구경처라 할 것인가? 고인 이 이르시기를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中關) 격(隔)하였네"하였으니 여기서 다시 문득 소리나 빛을 만나 축착 합착하 여 한바탕 크게 웃음치고 몸을 뒤쳐 돌아와야 비로소 "회주소(懷州牛) 여 물 먹고 익주말(益州馬) 배부르다"하게 되는 것이다.
#용어정리
[1]염화두: 화두에 의정을 내지 않고, 염불하듯이 화두를 생각에서 외 우고 있는 것을 말한다.
[2]무심을: 이 구절은 동안상찰(同安常察)선사의 십현담(十玄談)중 심 인송(心印頌)의 일절인데 심인송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그 얼굴이 어떠한가?
심인을 누가 있어 감히 주고 받으랴,
역겁(歷劫)으로 단연(但然)하여 다른 빛이 없으니,
심인이라 부를 때 벌써 허언(虛言)인 것을!
모름지기 본래인 허공심을 알아서,
활활타는 불꽃 속에 핀(發) 꽃으로 비유할까!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 격 하였다.
[3]회주소: 두순(杜順)화상 법신송(法身頌)이다.
"회주 소 여물 먹고,
익주말 배가 불러,
천하명의 구했더니 돼지 좌박(左膊)에 뜸 뜨더라.
제 대덕이여, 어찌하여 대정진을 일으켜 삼보전에 대하여 깊이 큰원 을 발하지 않느냐! 만약 생사를 밝히지 못하여 조사관을 뚫지 못하면 결코 산을 내려가 지 않겠다고 장련상상(長連床上) 칠척단전(七尺單前)을 향하여, 높이 바랑을 걸어 놓고 천길되는 절벽위에 앉은듯 생각하고, 온 평생을 다하 여서라도 기어이 이 일을 철저히 밝히고야 말기로 작정하고 지어가야 하니, 만약 이와 같은 마음만 결정되면 결코 어긋남은 없는 것이다.
만약 발심이 참되지 아니하고 입지(立志)도 맹령하지 못하여 이곳에 서 겨울을 나고 저곳에서 여름을 지내며, 금일은 전진하고 내일을 후퇴 하며 이와같이 닦고서, 혹 오래 지어도 얻지 못하면 문득 반야에 영험 이 없다하고 도리어 외변으로 달려, 헛된 문서나 한배 그득히 기억하거 나 한부질 베끼어 가지고 제 살림을 삼아, 마치 저 냄새나는 수채통과 같게하여 듣는자로 하여금 구토를 참을 수 없게하니 이와 같이 하고서 는 비록 미륵하생까지 지어간들 공부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딱한 노릇 이다.
#용어정리
[1]고졸(古拙): 호는 조정(祖庭). 남악하 24세. 법을 복림도(福林度) 선사에 이었다. 10세때 벌써 법화경을 매일 한편씩 외웠다 한다. 13세 에 일주사(日鑄寺)에서 출가, 뒤에 고매(古梅)선사에 참예하면서 손가 락 셋을 연지하고 지성을 다하여 공부하여 9일만에 대오하였다.
[2]칠척단: 승당 상전(床前)의 단판(單板) 1척과 상(床)의 길이 6척 을 합한 것인듯.
너희들 아직도 깨치지 못하였거든 모름지기 10년 20년 내지 30년이라도 포단위에 앉아 배겨 "부모가 낳기전 면목"을 참구하라.
#용어정리
[1]태허원(太虛圓): 남악하 30세. 법을 묵당조(默堂照)선사에 이었다.
형제들, 입만 열면 곧 내가 선화(禪和)라 하나 혹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이 선인고?"하면, 어름 어름 하다가 마침내 입이 흡사 목두대(扁擔)같 이 되고마니 이 어찌 딱한 일이 아니며 굴욕이 아니랴!
버젓이 불조의 밥은 처먹고 본분사는 까맣게 알지 못하면서, 다투어 말 귀나 세속 지식을 가지고 조금도 기탄 없이 큰 소리로 떠들며, 그러고도 온전히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또 어떤자는 포단에 앉아 "부모가 낳기 전 면목"은 구명하려 하지않고 부질없이 품팔이 방아나 찧으면서 복이 되기 를 바라며 업장을 참회한다 하니 참으로 도와는 10만 8천리로구나!
혹 마음을 한곳으로 굳히고 생각을 거두어서, 사(事)는 잡아 공(空)으 로 돌리며, 생각이 겨우 일기만하면 곧 늘려 막는다면, 이러한 견해는 공 에 떨어진 외도며 흔히 돌아오지 않은 죽은 사람이다. 혹 어떤 자는, 망 녕되이 능히 성내고 기뻐하며 보고 듣는 물건을 가져 명백히 알아 마친 것으로 삼고, 일생 공부 다 해마쳤다 하니, 내 잠깐 그대에게 묻겠다."문 득 죽음이 닥쳐와 불구덩이 속의 한줌재가 되면 저 능히 성내고 기뻐하고 보고 듣는 물건이 어느 곳에 있느냐!"이와 같이 공부를 짓는 것을 "약홍 은선(藥汞銀禪)"이라 하는 것이니 이 은(銀)은 원래 참 은이 아니므로 한 번 불에 달이면 곧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혹 묻기를 "너 평시에 어떻게 공부를 짓느냐?"하면 대답 하기를 "어떤 스님이 이르시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간하라고 하셨읍니다."하며 또는 "나로 하여금 다만 이러 이러하게 알라 하시오나 금일에야 비로소 이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았아오니 청하옵건데 화상께서는 화두를 일러 주옵소서"한다. 내 말하기를 "고인의 공안에 어 찌 잘못이 있으랴. 너의 눈이 본래 바르건만 스승으로 인하여 그릇되었 구나!"하니 거듭 화두 이르기를 청하여 마지 않기에 내 이르기를 "너 "개 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참구하라. 만약 홀연히 칠통을 타파 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산승 손에 방망이를 맞 으라"하였느니라.
#용어정리
[1]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270) 남악하 20세, 법을 경산(徑山) 원 수단(元수端)선사에 이었다. 명주(明州) 상산(象山)에서 출생. 속성은 주 (朱)씨. 그의 모 장씨가 꿈에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회임 하였고, 낳 아서 아직 감보속에 있을때 어떤 스님이 와서 아기의 이마를 만지면서 "이것이 불일(佛日)이니 후일에 능히 어둠을 파 할 것이라" 하였다 하여, 어려서 이름은 담요(曇耀)라고 하였다. 7세에 독서하니 한번 읽고 대의를 통했고, 9세에 출가하고 능엄경을 보다가 깨친바가 있었다. 그 후 원수단 선사에 참예하여 계합하지 못하고 하루는 성루의 북소리를 듣고 홀연 땀 을 비오듯 흘리더니 마침내 깨치고 말하기를 "이제야 경산의 콧뿌리를 손 에 잡았다"하고 게송을 짓기를 "활활 타는 화로 속에 한점 눈을 버리고 나니, 이것이 황하(黃河)의 유월 얼음이라"하였다. 다시 경산으로 단화상 을 찾으니 단은 한번보고 "서래밀의(西來密意)를 네가 알았구나!"하고 인 가 하였다. 그후 출세하여 대보사(大寶寺)를 창건하였는데, 거기에는 천불성상과 25 장(丈)의 7층부도, 그리고 만불각(萬佛閣)등 그 웅려하기가 천궁을 옮겨논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때에 나라(元)에서 불일보조혜변(佛日普照慧辯)선 사의 호를 드렸으니, 앞서의 예언이 적중하였다. 임종계에 "진성이 뚜렷이 밝아 본래로 생멸 없으니, 목마(木馬)가 밤에 울고, 서쪽에서 해가 뜬다(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方日出)하고 곁 에 있던 몽당(夢堂)화상에 "나는 이제 가렵니다." "가면 어디로 가시오?" "서방(西方)으로 가지." "아! 서방에만 불이 있고 동방에는 불이 없소!" 하니 사 큰 목소리로 한 "할"하고 그만 갔다. 명 태조 3년이다. 향수75세. 저서로 육회어록(育會語錄), 정토시(淨土詩), 상생게(上生偈), 북유집(北 遊集), 봉산집(鳳山集), 서재집(西齋集), 화천태삼성집(和天台三聖集)등 을 남겼다.
[2]목두대: 목두대는 배가 부르고 양쪽 끝이 가느르니 이것은 입을 다 물고 아무 말도 못하는 모양에 비한 것이다.
[3]품팔이 방아: 진실한 뜻은 알지 못하고 "예불"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꾸벅 꾸벅 방아를 찧으나, 그것이 자기의 방아가 아니고 품삯을 받고 찧는 남의 방아라는 것이다. 오대(五臺) 무상(無相)선사 시중에 "너 희들은 흙덩이 부처(泥佛)만 보면, 흡사 방아를 찧는 것과 같이 하고 일 찌기 그 뜻은 없구나!"하고 있다.
[4]약홍은선: 공부는 모름지기 실다워야 하니 반드시 명안종사의 감변 (堪辯)을 거쳐야 한다. 고래로 스승없이 깨치기는 만중희유라고 하고 있 다. 여기 약홍은선이란 실지가 없는 거짓 공부란 말인데 수은을 홍(汞)이 라 한다. 이것은 금이나 은을 제련할 때 불에 달리면 금이나 은은 달리 면 달릴수록 더욱 분명하여지나 수은이면 단번에 흘러 버리는 것이니 이 것을 명안종사의 감변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 실없는 공부에 비한 것이다.
[5]근원을 끊고: 증도가에 "근원을 바로 끊음을 불이 인가 하시는 바 요. 가지를 더듬고 잎을 따는 것은 나로선 못하는일이라 하고 있다.
이미 일찌기 "무"자 화두를 들었을진대 반드시 화두를 고칠것이 없느니 라. 더우기다른 화두를 들어도 어느듯 "무"자가 들린다 하니, 이는 반드 시 "무"자에 이미 적지않이 익음이 있음이니, 부디 뜻을 옮기지 말며 화 두를 바꾸지 마라.
다만 26시중 4위의(行住坐臥)내에 한결같이 화두를 들지니, 어느 때에 깨치고 못깨칠 것을 생각하지 말며 또한 재미가 있고 없고 득력하고 득력 못하고에 개의하지 말고 오직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분별이 끊어진 곳에 밀어대어 이르러야 하니 이곳이 즉 제불제조사가 신명을 버린 곳이니라.
[1]보제(普濟): (1320-67) 우리나라 조도(祖道) 중흥조인 고려의 나옹 (懶翁)스님이다. 위는 혜근(慧勤). 고려 충숙왕 7년에 영해에서 출생. 속 성은 아(牙)씨. 사의 모 정씨 꿈에 금빛 매가 와서 그의 머리를 쪼고 알 을 품에 떨어뜨리고 간 것을 보고 잉태하였다 한다. 어려서 출가 하고저 하는데 부모가 허락하지 않더니, 20세에 이르러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사방에 물어 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이 들어 마침내 사불산 묘적암 요연(了然)스님 에게 출가하였다.
요연이 묻기를 "너 왜 머리를 깎고저 하느냐?" "삼계를 뛰어나 중생을 이익하고져 합니다."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능히 왔읍니다마는 보려고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읍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읍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 으니 다른 스님을 찾아 물어라." 이에 사는 그곳을 떠나서 여러 곳을 다 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이르러 여기서 4년동안 주야 장좌 하고 극진히 좌선하여 마침내 깨친바가 있었다. 그후 원(元) 북경에 가서 지공(指空)스님을 찾아갔다. 지공은 서천(西天) 제 108대 조사다. 지공 묻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고려에서 왔읍니다." "배로 왔느냐, 육지 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읍니다." "신통을 나투어 보 라."사가 차수하고 가까이 가서 서니, 다시 묻기를 "네가 고려에서 왔다 니 동해는 다 보았느냐?" "아니보았던들 어찌 여기를 왔겠읍니까?" "무슨 일로 왔느냐?" "후대를 위하여 왔읍니다."이에 지공스님이 입실을 허락 하였다.
하루는 게송을 짓기를 "산하 대지는 눈앞의 헛꽃이요, 삼라만상이 또한 그러하네. 이제야 자성이 원래로 청정한 것을 아니, 진진찰찰(塵塵刹刹) 이 법왕신이라"하였다. 지공 "서천 20여인이나 동토 72인들이 다 지공에 있어서는 한물건도 아닌데 지공이 출세하여사는데 법왕인들 어디 있으랴! " "법왕신이여, 삼천(三天)의 주인되고 모든 백성 이익하네. 천검(千劍) 잡아 들고 불조를 내려치니, 백양(百陽 - 지공의 方丈이름)이 널리 퍼져 모든 하늘을 비춘다. 내 이제 소식을 알아 얻음에 흡사 내집의 정혼(精 魂)을 희롱함이라. 기특하다 기특하다 크게도 기특하다. 부상(扶桑-海東) 의 일월이 서천을 비추누나!" "애비도 개(狗)고 어미도 개고 너도 또한 개다"하는데, 이에 사가 곧 예배하고 물러섰다. 그후 다시 게송을 짓기를 "미한즉 산과 물이 경계가 되고, 깨친즉 온 세계가 온전히 내몸이라, 미 (迷)거니 오(悟)거니 모두 다 쳐부수니 아침마다 오경(五更)에는 닭이 우 누나"하니 지공이 "나도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다"하고 사의 법기(法器) 됨을 인정하였다.
그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평강(平江)의 휴휴암(休休庵)과 정자선사 (淨慈禪寺)를 거쳐 평산처림(平山處林)선사에게 가니, 평산은 마침 승당 에 있었다. 사가 곧장 승당에 들어가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니, 평산 묻기를 "대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대도(大都)에서 왔읍니다." "이제까지 누구를 만났는 가?" "서천 지공을 뵈었읍니다." "지공의 일용이 어떠한가?" "하루에 천 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너의 한칼을 가져오라."사 가 좌구(座具)를 들어 평산스님을 치니 평산은 쓰러지면서 큰 소리로 "이 도적놈이 사람을 죽인다!"하니 사 "저의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 기도 합니다."하면서 부축하여 일으키니, 평산은 크게 웃으면서 사의 손 을 잡고 방장으로 들어갔다. 평산스님의 법의를 받아가지고 보타낙가산 등 여러 곳을 지나 고목영(枯木榮)선사에게 갔는데 한참만에 "수좌는 좌 선할때 어떻게 용심하는가?" "가히 쓸 마음이 없읍니다." "이미 마음이 없을진대 12시중에 누가 너를 가져 운동하는가?" 사가 눈을 들어 바로 쳐다보니 고목 "그것은 부모가 낳은 눈이 거니와 부모가 낳기전에는 무엇 으로 보는가?"" 사가"엑! 한 할하고 "무슨 낳고 안 낳고를 말하는거요?" 하니 고목이 사의 손을 잡으면서 "누가 고려가 바다 건너에 있다하랴!"하 는 것을 손을 부리치고 나와 복룡산(伏龍山) 천암장(千巖長)선사에게 갔 다.
마침 그때는 강호선객 천여명이 모였었다. 천암이 묻기를"대덕은 어디 서 왔는가? "정자(淨慈)에서 왔읍니다." "부모가 낳기전 어디서 왔는가?" "오늘 아침이 4월 2일 입니다." "눈 밝은 사람은 속일 수 없구나!"하고 입실을 허락하였다. 여기서 한여름을 지내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 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받고, 공민왕 7년에 귀국하여 여러곳에 있으면서 가는 곳마다 크게 종풍을 현양하였다. 공민왕이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였고, 공민왕 20년에는 왕사가 되고 대조계선교도 총섭근수본지 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禪敎都總攝勤修本智 重興 祖風福國佑世 普濟尊者라 호를 받았다. 희암사를 크게 중건하고, 고려 우 (禑)왕 2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임종을 당하여 한 중이 묻기를 "이때 를 당하여 어떠합니까?"사가 주먹을 번쩍 들어 보였다. 다시 묻기를 "사 대가 각각 헤어지니 어느 곳을 향하여 가시렵니까?" "따로 기특한 도리가 없다" "어떠한 것이 기특한 도리 입니까?" 사 눈을 들어 중을 바로 쳐다 보면서 "내가 너와 만났을 때 무슨 기특한 것이 있느냐!"하고 대중을 불 러서 "너희들은 제각기 잘 공부지어가라. 노승은 오늘 너희들을 위하여 열반불사를 지어 마쳤다"하고 조용히 시적하였다. 향수 57세. 시호는 선 각(禪覺)선사. 사리를 나누어 신륵사와 희암사에 부도를 세워 봉안하였다.
[2]동정(東征): 임진왜란때 명군(明軍)이 우리나라에 출동하였던 것을 말한다. 만력 정유는 선조 30년, 왜군이 제차 침공 하였을때.
여러 대덕들아, 90일중에 증오(證悟)가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아직도 입처가 없다면 이 한 삼동을 또 헛되이 마쳤구나!
만약 본색도류(本色道流)일진댄 시방법계로 원각 기일을 삼고 장기 단기와 백일천일과 결제해제를 논하지 않고, 다만 화두를 드는 것으로 시작을 삼아서 1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참구하되, 가사 평생을 다해 서라도 만약 깨치지 못하면 결정코 뜻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기어코 진실한 구경처를 보도록 하여야 하니, 이때가 비로소 해제하는 날이다.
혹 아직도 앞에서 말한 뜻을 계합하지 못하거든, 다만 <아미타불> 일 구를 깊이 생각에 두고 묵묵히 체구하여 항상 스스로 채찍질하여 의정을 이르키되,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라. 생각생각 끊임이 없고 마 음과 마음에 빈틈이 없으면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데, 물이 다하고 산이 다 한곳에 이르면 몸을 뒤집는 도리가 있듯이 기어이 "왁!"한 소리 치고 심체(心體)에 계합하여 들어갈 것이다.
[1]초산소기(楚山紹琦): 남악하 28세. 법을 동림(東林) 무제오(無際 悟)선사에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처음 현극(玄極)스님에게 의지하고 최후에 무제(無際)선사에 이르렀다. 묻기를 "나에게 "무"자의 뜻을 가져 오너라"하는데 사 게송으로 답하기를 "저 중의 묻는 곳이 너무나 많았으 나, 조주는 일찌기 한 생각인들 하였으랴, 있는대로 한마디에 남김없이 털어낸걸, 도리어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는구나."하니, 다시 묻기를, "어떠한 것이 의심이 없는 곳인고?" "산은 푸르고 물은 맑고, 제비는 조잘대고 꾀꼬리는 우짖어, 역역 분명커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까?" 무제는 인가하고 법을 전하였다.
진실로 생사에서 해탈 하고져 할진댄, 반드시 먼저 대신심을 발하고 큰 서원을 세우되, "만약 본참공안을 타파하여 부모가 낳기전 면목을 분명히 보아 미세한 망상을 끊지 못하면 맹세코 본참화두를 놓아서 진선지식을 멀리하며, 명리를 탐축(貪逐)하지 않으리라. 만약 짐짓 이 서원을 어기면 내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리라."하여 큰 서원으로 마음을 방호하면 바야 흐로 공안을 받아 가질만 하다 하리라.
혹 "무"자를 참구한다면, 요긴은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는가?"에 둘것이요, 혹 "만법귀일"을 참구한다면, 요긴은 "하나는 어데로 돌아가는 가?"에 있으니,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 깊이 의정에 들어가야 한다. 혹 화두가 들어도 안들리면 다시 공안을 처음부터 끝귀까지 들어서 수 미일관(首尾一貫)하게 되면 바야흐로 두서가 잡혀 의정이 날것이니, 의정 이 끊이지 않도록 간절히 용심하면 불각중에 발을 들고 몸을 뒤쳐, 허공 에서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게 될 것이니 이때에 다시와서 산승의 방망이 를 맞도록 하라.
[1]독봉계선(毒峰季善): 남악하 27세. 월계징(月溪澄)선사의 법을 이었 다. 17세에 출가하여 원명(源明)선사에 참예하여 "무"자를 참구하여 대오 하였는데, 사의 정진고공의 일단이 위의 제조고공절약 22에 보인다.
[2]곤두박질: 현공근두(懸空筋斗)인데 근두는 斤斗의 뜻으로, 우리말 로 "도끼를 가리킨다. 이것은 머리가 무거우므로 땅에 놓으면 머리가 먼 저 땅에 닿는데, 여기에 허공에서 곤두박질이란 의정이 타파하는 형용이 다.
공부를 짓되, 정신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염화두(念話頭)를 하거나, 또 한 생각으로 공안을 헤아려 계교 추직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항상 분심을 내 어 이 일 밝힐 것만 생각하라. 홀연 천길 절벽에서 손을 놓아 몸을 뒤집으면, 바야흐로 "외로히 밝고 분명 한 도리"를 보게될 것이니, 여기에 이르러 부디 탐착심을 내지마라. 이때에 다시 뒤통수에 한 방망이를 맞아야하니 이곳이 극히 뚫기 어려운 곳이니라.너 희들은 다만 이와 같이 지어가라.
참선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깨친 이는 옛적에 혹 없지 아니하나, 그 밖에는 아직 힘써 참구하지 아니하고 깨침을 얻은 자는 없느니라.
우담(優曇) 화상은 "염불하는 놈이 이 무엇인가?"하라 하시나, 너 반드시 이 법을 쓸 것 없으니 다만 평상대로 염불 해가되 단지 생각만 잊지 아니하면, 홀연 경계에 부딪치거나 인연을 만남에 몸을 뒤집는 소식을 알 것이니, 이때 에 비로소 적광정토(寂光淨土)가 이곳을 여의지 않았고 아미타불이 자심(自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용어정리
[1]공곡경륭(空谷景隆): 자(字)는 조정(祖庭), 남악하 25세. 백련(白蓮) 눈 운지안(嫩雲智安)선사의 법을 이었다.
[2]외로히 밝고: 임제록에 "어느 물건이 설법청법을 해득하는가! 이 너의 목전에 분명하되 오히려 형단없으면서 외로히 밝은 한 물건이다. 이것이 설법 청법을 해득한다. 이와 같이 알면 불조와 다르지 않으리라"하고 있다.
[3]적광정토: 여기서는 극락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상적광토(常寂光土)라고 도 하니 무상지(無上智)를 성취한 각자(覺者)의 경계를 말한다.
너희들, 이제부터 결정심을 내어서 주야로 참구할지니, 본참공안을 단단히 잡고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하라. 오직 명백하게 이 일 밝힐 것만 힘써야 하니 날이 가고 해가 가면 혼침은 저절로 힘쓰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물러가 며, 산란은 제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없어질 것이며, 이리하여 공부가 한결 같이 맑고 섞임이 없으며 심념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홀연 깨쳐 얻을 것이니 이때는 마치 꿈속에서 깨어남과 같을 것이다. 이때에 종전을 돌이켜 보면 모 두가 허망한 환이며 당체가 본래로 온전히 드러남이요, 삼라만상이 그대로 실상의 면목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이 대명나라 천지에 다시 사람으로 굽힐 것 없으며 이 법문을 돌이켜 보아도 또한 중이 됨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이에 인연 따라 남을 지내면 이 어찌 창쾌하지 않으랴.
종일 염불하는 이것이 온전히 부처의 생각임을 알지 못하니, 만일 알지 못 하거든 모름지기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고 참구하라. 반드시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굳건히 하여 기어이 이 도리를 밝혀낼 것만 힘쓰도록 하 라.
#용어정리
[1]천기(天]奇): 남악하 30세, 보봉명선(寶峰明瑄)선사의 법을 이었다. 20 세에 출가하여 "만법귀일"을 참구하는데, 눈으로 분명히 보려는 듯이 살피고 귀로는 뚫어지게 들을듯이 기울이고, 공안의 구구자자를 명명백백히 살피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비벼대어, 마침내 대오하고 보봉의 인가를 받 았다.
좌선중에 보이는 바 모든 선악경계는 다 좌선시에 관찰을 분명히 하지 않거나 바르게 공부를 짓지 않음으로 인함이니, 다만 눈을 감고 정좌하여 마음에 정채 (精采)가 없고 생각이 경계를 따라 흐르며 꿈속인 듯 생시인 듯하며, 혹은 고요 한 경계를 탐착하여 재미를 붙이므로 마침내 가지가지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무릇 올바르게 공부를 지을진댄, 잠이 오면 곧 자고 한숨 자고는 다시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두 눈을 비비고 어금니를 단단히 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곧 화두를 들되 "이것이 무슨 도리 일까?"하라. 부디 혼침에 끌려가지 말며 털 끝만큼이라도 바깥 경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중에 "아미타불" 한 생각을 놓치지 말라. 모름지기 인(因) 도 깊고 과(果)도 큼을 깊이 믿어 마침내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되어 능 히 염념히 헛되지 않게되면 생각이 한덩어리를 이룰 것이니 이에 당념(當念)에 서 염불하는 놈을 발명하면 곧 미타가 너와 더불어 함께 나타나리라.
#용어정리
[1]고음법금(古音法琴): 남악하 30세, 수당송(壽堂松)선사의 법을 이었다. 자 호를 옥천노인(玉泉老人)이라 하였다. 25세에 적석산주(赤石山主)에 출가하고 여러 종사에 참예하여 결택하고 마침내 보명수당(寶明壽堂)의 인가를 받았다.
여러 대덕들아, 90일중에 증오(證悟)가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아직도 입처가 없다면 이 한 삼동을 또 헛되이 마쳤구나!
만약 본색도류(本色道流)일진댄 시방법계로 원각 기일을 삼고 장기 단기와 백일천일과 결제해제를 논하지 않고, 다만 화두를 드는 것으로 시작을 삼아서 1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참구하되, 가사 평생을 다해 서라도 만약 깨치지 못하면 결정코 뜻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기어코 진실한 구경처를 보도록 하여야 하니, 이때가 비로소 해제하는 날이다.
혹 아직도 앞에서 말한 뜻을 계합하지 못하거든, 다만 <아미타불> 일 구를 깊이 생각에 두고 묵묵히 체구하여 항상 스스로 채찍질하여 의정을 이르키되,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라. 생각생각 끊임이 없고 마 음과 마음에 빈틈이 없으면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데, 물이 다하고 산이 다 한곳에 이르면 몸을 뒤집는 도리가 있듯이 기어이 "왁!"한 소리 치고 심체(心體)에 계합하여 들어갈 것이다.
<<평>> 화두를 드는 것으로 결제를 삼고 진실을 구경(究竟)한 것으로 해제를 삼는다 하니 이말을 명심해 두라.
[1]초산소기(楚山紹琦): 남악하 28세. 법을 동림(東林) 무제오(無際 悟)선사에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처음 현극(玄極)스님에게 의지하고 최후에 무제(無際)선사에 이르렀다. 묻기를 "나에게 "무"자의 뜻을 가져 오너라"하는데 사 게송으로 답하기를 "저 중의 묻는 곳이 너무나 많았으 나, 조주는 일찌기 한 생각인들 하였으랴, 있는대로 한마디에 남김없이 털어낸걸, 도리어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는구나."하니, 다시 묻기를, "어떠한 것이 의심이 없는 곳인고?" "산은 푸르고 물은 맑고, 제비는 조잘대고 꾀꼬리는 우짖어, 역역 분명커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까?" 무제는 인가하고 법을 전하였다.
생생한 뜻과 씩씩한 기운을 분연히 일으켜서 화두를 들되, 끝을 맺는 말에서 의정을 일으키어 침통하고 간절하게 지어가야 하니, 혹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참구하며 혹은 소리를 내어 추심하되 마치 귀중한 물건을 잊은거와 같이 하여 친히 얻기를 힘써야 하며 또한 일용중 일체시 일체처에 다시 두 생각이 없어야 하느니라.
첫댓글 ()()()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