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왜 양조장을 덮쳤나?] 2화. 그것을 알려주마 '우리 술에 관한 오해들'
주접 외 2명 2015.04.07
몇 년 전 제법 큰 규모의 막걸리 제조사가 자사 제품이 화학첨가물 '아스파탐을 넣지 않은 막걸리'라는 점을 광고로 내세워 괜찮은 매출 실적을 거두었다.
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슬로푸드 / LOHAS / 웰빙 / 힐링 / 인공첨가물 무첨가" 트렌드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아스파탐, 아세설팜 칼륨 등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내는 소규모 지방 막걸리들은 졸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예전 유해성 논란으로 마치 악마의 물질인 양 배척 당해 왔던 사카린, MSG(감칠맛을 내는 인공첨가물, 대표 상품으로 '미원'이 있다) 등은 최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재조명 받고 있는데 반해,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이번에는 아스파탐이 과거 사카린, MSG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사카린, MSG 논란의 전철 밟는 아스파탐”
사실 앞서 말한 회사의 막걸리는 맛있다. 감미료를 쓰지 않았음에도 자체개발한 종균 혹은 효모를 사용했는지 잘 조화된 농후한 맛이 나며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종종 상위권을 차지한다. 적절한 가격에 일정한 주질의 고품질 막걸리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스파탐이 반드시 몰아내야 할 첨가물계의 역적일까? 막걸리, 전통주 제조업체에서는 설탕이나 물엿처럼 자연감미료를 쓰면 될 걸, 왜 인공감미료를 쓰는 걸까?
위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포도당(설탕 등의 당류 구성 성분)은 효모를 만나 에틸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한다. 이때 발생하는 에틸알코올에 의해 일반음료가 아닌 우리를 취하게 하는 술이 되고 그 양에 따라 술의 도수가 결정된다.
“질문의 답은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설탕이나 물엿 같은 자연 감미료를 첨가하면 포도당이 전부 알코올로 발효되어 술의 도수만 높아진다. 처음 혼합했을 때의 단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해되어 사라지고 효모의 작용에 의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만약 설탕을 알코올 분해가 끝난 후에도 단맛이 남아있을 정도로 많은 양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당의 용해에는 한계가 있어 알코올 발효가 끝난 후 잔당이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을 첨가한다면 설탕 과다 섭취로 인한 건강 문제- 비만, 고혈압, 당뇨 등 - 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즉 설탕과 같은 자연 감미료는 효모와 만나 알코올이 되어 버리는 운명을 지니고 있어 적은 양으로 술의 단맛을 낼 수가 없다.
자, 그럼 설탕과 비교해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를 포함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술에 자주 쓰이는 인공감미료를 잠깐 살펴보자.
설탕과 인공첨가물의 당도를 비교해 보면 설탕 1000g을 써서 낼 수 있는 단맛을 아스파탐 4g으로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의 의구심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필자가 직접 위의 인공감미료들을 먹어 보았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직접 찍은 사진을 무보정 상태로 전달한다.
아세설팜 칼륨, 아스파탐의 경우 물과 커피 등의 음료에 막대 끝에 살짝 묻혀 혼합한 정도가 설탕이나 자일리톨 ½~1 티스푼 정도 넣었을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각각의 감미료가 기본적으로 단맛을 내지만 맛 자체가 전부 동일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가루약을 먹은 후의 찝찝함이 입안에 조금씩 남았고 아무리 소량이라도 강한 단맛으로 인한 혀의 감각 마비로 5종 이상 직접 먹는 실험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테비오사이드의 경우 천연에서 추출해내는 첨가물이지만 후미에 남는 쓴맛 때문에 막걸리보다 원래부터 쓴맛을 가진 희석식 소주에서 대부분 쓰인다.
사실 아스파탐을 쓰고 싶지 않은 건 누구보다도 양조장인들이리라. 소비자가 단맛을 원하지 않으면 판매자는 달게 만들지 않는다. 시장 경제의 지당한 논리다. 현대인들이 단맛에 익숙하고 각종 감미료에 길들여져 예전처럼 시큼털털하고 담백한 맛은 찾지 않는 것이다.
막걸리에 비해 도수가 높은 프리미엄 탁주나 원주들과 같이 농도와 밀도가 높으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으나 후수량이 술덧의 2-5배가 되는 저도주인 경우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맛이 싱겁다.
아버지에 이어 오빠와 함께 2대째 입장주조를 경영하고 있는 김정연 이사는 "첨가물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단맛을 덜 내면 판매량이 실제로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아세설팜 칼륨을 막걸리에 넣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조금씩 첨가물 함유량을 낮추어 예전의 맛을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아스파탐을 넣지 않고 전통주 고유의 맛을 살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걸리처럼 후수량이 많거나 필요한 경우, 알코올 발효 과정 특성상 설탕 대신 쓸 수 밖에 없는 게 인공감미료이기도 하다.
이는 취향의 문제일 뿐, 위해성 논란과는 별개의 문제다. 공식적으로 아스파탐은 몸무게 1kg당 40mg까지 일일섭취량을 허용하고 있다. 몸무게 50kg 성인의 경우, 2000mg까지 섭취가능한데 일반적으로 막걸리 1병에 들어있는 아스파탐의 양이 50mg 남짓임을 감안하면 하루에 막걸리 40병 이상을 먹어야 위험해진다는 말이다.
여전히 전통주에 첨가된 극소량의 아스파탐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술부터 끊어야 할 것이다. 알코올이야 말로 일급 발암물질이니까.
“술은 크게
발효주, 증류주로 나뉜다”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눌 수 있으며 미생물의 작용을 거쳐 발효된 술덧은 그 원료와 조제 과정에 따라 와인, 맥주, 막걸리, 약주 등으로 나뉜다.
이렇게 여러 성분의 액체 혼합물로 이루어진 술덧을 모아 비점 차이에 의해 알코올을 분리해 내는 증류 과정을 거친 술이 바로 소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등의 증류주이다. 와인을 증류하면 브랜디,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 약주를 증류하면 (증류식)소주가 된다. 이름은 달라도 근본은 하나인 술들이다.
얼마 전, <소주의 참혹한 진실-술인가, 공업용 알코올인가?>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된 적 있다(잘못된 지식에의 과도한 접근 방지를 위해 링크는 일부러 첨부하지 않는다).
희석식 소주의 원료가 에틸카바메이트(Ethyl carbamate)라는 석유의 부산물이며 공업용 알코올이라는 해당 글은 MSG 유해성 논란과 마찬가지로 도시괴담을 넘어 혹세무민 수준이다. 이런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통주의 진정한 공공의 적이 아닐까?
“에틸카바메이트는
천연이냐, 합성화학물질이냐로 나뉘지 않는다”
식품 저장 및 숙성과정 중 화학적인 원인으로 자연 발생하며 대부분의 알코올 음료 및 발효식품에 함유되어 있다. 해당 글에서는 마치 천연의 에틸카바메이트와 석유의 부산물로 생성되는 에틸카바메이트가 다른 물질인 것처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에틸카바메이트는 와인, 위스키, 청주, 소주 등 함유량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술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물질이다. 뿐만 아니라 김치, 된장, 일본식 된장인 미소, 요거트 등 미생물 작용에 의해 재탄생하는 발효 식품에서 거의 모두 발견된다.
시중에 판매되는 소주는 크게 희석식과 증류식으로 나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제조법을 상세히 살펴보면 희석식 소주 역시 증류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증류 시 조작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단식이냐, 연속식이냐로 나누어지며, 비유하자면 단식 증류기의 증류선반이 최대 70개 정도 더 늘어나고 이러한 기계가 3대쯤 붙으면 연속식 증류기가 된다는 사실. 즉, 연속식 증류라는 것이 단식 증류를 빠른 속도로 수차례 되풀이하는 과정이란 얘기다.
“대량 생산되는 소주도
술덧을 발효해 만든다”
희석식 소주의 재료인 주정은 쌀, 보리, 고구마, 타피오카 등 일반 곡류 및 서류를 발효시킨 후 연속식으로 증류하여 95%의 순도 높은 알코올로 정제한 것이다. 이후 도수에 따라 적정량의 물과 감미료를 첨가하여 희석식 소주로 제품화 되는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불순물은 제거하므로 맛과 향이 단순하고 깔끔할 수밖에 없다.
즉, 긴 시간의 숙성과 단식 증류를 거듭하여 제조하는 증류식 소주와는 달리 공장에서 단시간 내에 높은 알코올 농도로 대량 생산하는 술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희석식 소주 뿐 아니라 일부 위스키나 보드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다.
증류식ㆍ희석식 소주는 증류 방식에서 차이날 뿐, 모두 발효한 술덧이 기본 원료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에틸카바메이트는 발효 과정에서 자연 발생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석유에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석유란 무엇인가? 유정에서 나온 천연 상태 그대로의 원유다. 그렇다면 원유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동식물이 쌓이고 쌓여 화석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발효의 기전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석유를 등유, 경유, 중유 등 우리가 사용하는 연료로 만들기 위한 처리 공정에 상압 증류와 감압 증류 방식이 적용되는데 이는 우리가 마시는 증류주를 만들 때의 증류 방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증류 기법들이다. 이렇게 같은 단어들만 늘어놓고 교묘하게 악용하여 '석유=알코올=주정=공업원료'라는 이상한 공식을 만들어 쓸데없는 식품 공포를 조장하고 잘못된 지식을 퍼뜨리는 행위는 근절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희석식 소주 회사들이 굳이 석유로 주정을 만들지 않는 것은 비용 때문이기도 하다. 고구마, 타피오카 등을 발효시켜 연속 감압 증류 후 주정을 만들어 내는 비용이 석유를 정제하여 주정을 만드는 것 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석유를 사다가 굳이 소주로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어디에서도 석유에서 추출한 합성 알코올을 식용으로 사용하지도, 허용하지도 않는다.
희석식 소주는 저렴한 가격에 어디서든 쉽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이다. 힘 닿는 데까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깎아내려도, 빚어서 내리는 데 며칠은 커녕 몇 년이 넘어가기도 하는 전통 소주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순 없다.
우리 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희석식 소주에 거짓을 덧붙여 끌어내리기 보다는 갖가지 재료, 다양한 방법으로 내린 술들을 깊게 음미하는 미감과 여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먼저 아닐까?
인공첨가물이 들어간 술을 마시면 숙취가 심하다?
앞서 그림에서 살펴본 것처럼 알코올 발효과정에는 에틸알코올 뿐 아니라 탄산가스를 포함한 부탄올, 초산, 낙산 등의 수많은 부산물이 생성된다. 특히 알코올은 간에서 알코올 분해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로 분해되는데 이 분해력은 개인차가 상당히 심하다.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능력에 따라 주당 레벨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숙취는 결국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가 배설 혹은 해독되지 못한 채 체내에 남아 복통, 두통, 구역질 등을 일으키는 반응인데 이는 아스파탐과 같은 첨가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해물질 때문이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오히려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이 같은 도수의 발효주에 비해 적은 편이다.
“숙취는 알코올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 때문이다”
같은 양의 술이라도 주종과 도수에 따라 알코올 함유량은 차이 나게 마련. 알코올량이 많아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면 아세트알데히드 역시 비례하여 많은 양이 생성된다. 좀 더 편차가 적은 숙취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짜리 희석식 소주 1병을 마실 때 5%짜리 맥주 혹은 막걸리 4병을 같은 시간 안에 마신 후 측정해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주종에 따라 포함된 알코올양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모든 술은 많이 마시면 숙취를 유발한다. 그만큼 더 많은 알코올과 부산물 역시 흡입하기 때문인데 약주, 청주, 와인, 증류주처럼 여과된 술보다 그렇지 않은 막걸리에 이러한 성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 있다.
막걸리의 '아스파탐 때문에' 숙취가 심하다고? 적은 양으로 술의 단맛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는 인공첨가물을 탓하기보다 자제력을 잃고 너무 많은 술을 마셔버린 어제를 반성하며 이번 기사를 마무리 한다.
오늘도 적당히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핑크빛 간을 위하여!
글 | 주접
웹툰 | 미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