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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합기도역사 자료실 [합기도 역사] 최용술선생님에 대한 자료정리
카페주인 추천 0 조회 2,334 06.07.22 12:04 댓글 4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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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4.08.26 14:53

    첫댓글 국내 합기도가 자료정리를 해야할 부분이 상당수 되는거 같은데 일본 대동류나 아이기도 같은 경우엔 잘 정립되어 있습니까..??일본에는 하나하나 체계를 잡아 나갔나요..?? 관련 자료 좀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 04.08.27 01:04

    합기도(국내)의 경우 내노라 하는 협회에서도 역사 연구는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년 전에 협회일과 무관하게 개인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중앙협회교육에서도 도주의 귀국이후 역사만 언급할뿐 그 이전은 언급조차 않고 있습니다.

  • 04.08.27 05:52

    그렇죠...그런데 이 카페에서 운영자님이 주장 한데로 한국 합기도는 역사정립이나 기법 면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동류나 아이기도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구요~운영자님~ㅋ 없나요..??

  • 작성자 04.08.28 10:37

    갑비님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근거자료를 번역해 원문과 함께 올립니다. 아마 신무합기도 영문싸이트에서 퍼온 글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분들이 위의 글에 공감을 하든 하지 않든 한국합기도계에서 그런 주장을 해온 분들이 상당히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4.08.28 10:51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다케다 소가쿠집안에 조선인 종이나 일꾼도 없었다고 종가대리인 곤도측에서 확인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이 정확한 사람들도 많이 살아있고 재산관련기록도 확실한가 보더군요.

  • 작성자 04.08.28 10:55

    일본인들이 그리 만만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꾸 부딛쳐보면 알게 되지요..그리고 근거없이 주장하던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거나 확인되면 -증거를 통해서-합기도만이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자체의 이미지도 같이 덩달아 떨어져가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합니다.

  • 04.08.28 11:45

    일본사람들은 예전에..뭐 지금도 그리 크게 변한것 같지는 않지만...한국사람들을 정말 싫어 했었습니다..지금도 그런듯하고....그래서 한국사람들이 자신의 나라가 한국이란 것을 숨겨가면서까지 그곳에서 생활을 하며 살아왔는데...

  • 04.08.28 11:47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될수만 있다면 모든 역사를 다 바꾸어서라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것은 지금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구요... 무조건 일본인들이 그렇게 말을했다 저렇게 말을 했다고해서 다 믿을것은 아니란 말이죠

  • 04.08.28 11:48

    그래서 그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기술을 서로 비교해 보는 수 밖에는 없는듯하네요.. 저번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어디까지나 역사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온것이 사실이니까요...역사란 것은 그런것입니다..

  • 04.08.28 11:49

    흘러간 과거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들인데...조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근본 뿌리만 알면 그 조상을 찾는것은 어찌보면 쉬울수도 있습니다. 근본 뿌리를 한번 찾아보십시요..근본이 어디인지....

  • 04.08.28 11:51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최용술도주님의 술기가 살아 있습니다...아직 그 근본이 살아 있기때문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용기내에 한번 찾아보십시요... 글과 말은 한계가 있습니다.....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이 있구요... 하지만 기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 04.08.28 12:02

    윤세권선생님의 술기를 본 사람들도 그분연세에 그런 스피드...놀랐지 않습니까? 술기도 훌륭하시고...원로분들의 동영상등이 자꾸 소개되면 언젠가 해결될 겁니다.

  • 04.08.28 12:22

    언젠가 일본대동류에서도 한국의 합기도 비디오 보고 따라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거죠. 각종 권술과 족술을 말입니다.

  • 04.08.28 13:29

    대략 정리해 보면 카페주인님이 주장 하시는건 최용술 도주가 대동류를 전수 받은게 아니고 일본에서 쇼린지 캠포나 여타 다른 유술을 전수 받아서 한국내에서 발전 시켰다고 주장 하시는 건가요..??늘상 같은 내용만 보다보니...

  • 04.08.28 13:31

    위의 꼬릿말에도 있고 일전에 저도 주장한바가 있는데 일본인들의 역사왜곡 이란 생각은 왜 안나는 것일까요..??

  • 04.08.28 13:32

    아~~그리고 카페 이름은 합기도 공부보단 합기도 비판이 어떨까요..?? 카페 제목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거 같아서~ㅋ

  • 작성자 04.08.28 15:59

    합기도만세 합기도 짱 이라고 외치는 초등학생이 아닌 다음에야 스스로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역사왜곡 그것도 현실을 도피하는데 아주 좋은 말 중 하나겠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무슨 말을 하든 너희들은 왜곡하는 놈들이다 라고 하면 다 통했으면 좋겠네요...

  • 작성자 04.08.28 16:01

    한국인과 일본일을 뺀 나머지는 누구말을 믿게 될까요 한국쪽 주장과 자료라는 것들과 일본자료를 비교할 때....

  • 작성자 04.08.28 16:02

    그리고 일본인들이 뭘 왜곡했는지 하나하나 짚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도 함께 말입니다...저도 일본인들 왜곡점을 하나하나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 작성자 04.08.28 17:39

    정말 설득력있는 내용으로 최용술선생님 및 합기도자체의 위상과 신용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04.08.28 17:51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고 신용이 없으면 존경받지 못한다...

  • 04.08.28 18:16

    일전에 나왔지 싶은데요~최용술 도주의 일본내 제자 라던가... 아님 최용술 도주에 관한 일본 대동류측의 입장표명 일본쪽도 명확하진 않은거 같은데요...

  • 04.08.30 19:46

    지금의 상황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직까진 대동류 종가쪽이겠죠...그쪽에서 무슨 말을 하든 우린 그쪽에 끌려다니게 되어 있으니까요...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선 말입니다... 숫자가 많든 적든 그건 상관이 없죠..누가 누구를 끌고 다니는지.....끌고가는 쪽은..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든

  • 04.08.30 19:47

    끌려 다니는 쪽에선 그 말을 우선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일테니까...지금의 어떤분처럼요....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용술 도주님이 남겨주신 술기가 무엇인지 알아 보는것이 가장 우선인거 같구요 이 술기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그것 또한 알아보는것이 또 중요하겠죠...

  • 04.08.30 19:48

    그 두가지만 알아 보신다면 합기가 어떻느니...합기가 있느니..그런말은 더 이상 하실 이유도 필요도 없으실겁니다..... 모든것은 그냥 있었으니까요.... 누가 이렇다 저렇다 했느니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진실은 그냥 있으니까요...그 진실을 그 참을 찾아보세요...

  • 04.09.08 12:06

    합기도를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분들은 합기도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뿐입니다. 그분들이 정말루 합기술을 사랑 하셨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겁니다.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죠.

  • 04.09.08 12:07

    본인들이 시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기때문에 그 결말도 본인들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될것입니다. 그나마 최용술도주님의 술기를 변형없이 지켜오신분들이 계시기에 아직까지 저희에겐 희망이 있는 것이지 세계에 알렸다고 합기술이 더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생각합니다.

  • 04.09.08 12:09

    모든것이 자신의 위한 욕심때문에 그렇게 된것이...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 욕심이 참 많잖아요...조금만 배웠다하면 모든것을 다 배운줄 알고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려 하는 성격이 많기때문에..이런일이 벌어진거죠.... 본인들이 배운 무술은 본인들의 것이 아닌 스승님의 것이란걸..잊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 04.09.08 12:14

    그래서 옛부터 스승님이 살아 있을땐 자신이 책을 써내더라도 스승님의 이름으로 책을 펴냈던 것인데 세상 모든것이 내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사실 내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 한 행동들인거죠 스승님을 배신하고서 잘 된 사람은 한명두 못 봤습니다.... 스승님이 살아 계시는데도 죽었다 말을 할정도였으니...

  • 05.12.27 20:44

    운영자님 최용술 아라는 분존재는 하신분이었습니까?

  • 06.07.21 16:02

    1925년 가을 황세자 거처에서 21일간 무술지도. 1926년 봄 부터 가을까지 황궁 에서 고관들 무술지도 (출처 무도.모리헤이 우에시바 저) 7번글에서 제가가지고 사진(60년대술기) 과 무도(모리헤이 우에시바) 대동류합기유술(곤도 가츠유키) 동일사진 있음

  • 작성자 06.07.21 19:49

    대동류가 아닌 다른 유술에서도 같은 술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희 카페에서도 대동류와 야와라 쇼린지 켐포에서 공통된 사진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에서도 같은 기술이 나오는 무술은 또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야와라와 비슷한 무술은 대동류나 아이키도보다 훨씬 더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손질 발질이라는 타격기를 포함한 무술로써 말입니다.

  • 작성자 06.07.21 19:58

    Late in 1925 he gave a demonstration to a group of influential people which included the former Prime Minister Count Gonnohyot Yamamoto. In 1926 this was followed by him giving lessons to members of the Imperial Household Agency, army and navy officers, and other leading figures in the political establishment.

  • 작성자 06.07.21 20:00

    In the capital, Takeshita introduced Ueshiba to influential people in military, financial, and political circles, as well as people connected to the imperial household, even organizing a society to support his martial arts teacher. This enabled Ueshiba to become entirely independent from Takeda and Daito-ryu Aiki Jujutsu. During this process, in 1928, Ueshiba changed the name of his martial arts school to Aioi-ryu Aiki Bujutsu. He again renamed his school Aiki-Budo or Ko-Budo, and finally settled with aikido in 1942.

  • 작성자 06.07.21 20:06

    Imperial Household Agency=궁내청 =일본왕실관리기관.

  • 작성자 06.07.21 20:10

    의도적인 것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합기도라는 무술명칭뿐 아니라 그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활동을 최용술선생님의 활동으로 치환해서 전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합기도란 무술의 창시자가 배운 무술=대동류합기유술. 우에시바의 군대, 경찰, 궁내청직원들 지도=최용술선생님의 황실무상출입과 황실고위관리지도.특수부대 지도 등등 그런 경우가 눈에 많이 뜨입니다.

  • 작성자 06.07.21 20:13

    1925년에 우에시바는 40대중반의 나이였습니다. 최용술선생님은 21세였거나 26세였습니다. 그리고 다케다 소가쿠가 그 당시 도쿄에 있어서 또 황실에서 누군가를 가르쳤는지 확인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다케다는 홋카이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06.07.22 07:06

    만남에서 부터 황실,하와이까지 연결되어지는 심지어 해방후 한국을 방문 했다는 요시다 아사오(합기도측) 요시다 코다로(다이토류측) 판별이 저의 진정한 의도입니다. 아끼도 도주님 활동을 합기도도주님 활동으로 치환하여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명백히 밝혀둡니다. 제가 스승으로 받은것은 훌륭한 무술과 미스터리 역사라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멍에를 함께받고 있읍니다. 그 멍에로 인해 운신의폭이좁았던 합기도가 자기자리를 찾는 것이 저의 바램이죠... 혹시 고타로의 사진을 찾을수 있다면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측에서 일본측에 문의결과 무응답 이었다고 하더군요.

  • 작성자 06.07.22 12:07

    요시다 아사오(최용술)와 요시다 코타로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위에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사진이 보이시지 않으면 저희 카페 사진자료실에서 확인해보시고 그래도 안보이면 google에서 찾아보십시오.

  • 작성자 06.07.22 13:05

    "제가 스승으로 받은것은 훌륭한 무술과 미스터리 역사라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멍에를 함께받고 있읍니다."라는 needle님의 말씀에 미국에 계신 분은 오히려 국내에 계신 대부분의 합기도인들보다 인식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기도(야와라)는 분명 좋은 무술입니다. 그렇지만 그 역사와 관련된 멍에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멍에에서 어떻게 벗어날 지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6.07.22 13:08

    합기도역사자료실의 두번째 공지글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대동류수제자론을 무비판적으로 퍼뜨리는 분들께...) "을 한 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무작정 대동류(daitoryu)와의 관계 황실 출입 및 지도, 우에시바 모리헤이 지도, 청와대무상출입 등등의 이야기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 확인될 때까지 말을 아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06.07.23 04:02

    곤도의 우케(사진)의 도장방문?때 그 눈길을 절때로 잊을수가 없군요. 자랑스럽다?? 무술로서의 우위라면 모를까.대동류와의 관계는 부담입니다. 그 인터뷰건으로 심심히 않게 방문들이 있엇죠. 스승을 대신해 답례방문을 하며 느낀건 발차기의 필요성입니다. 무술은 정신에서 시작하여 정신으로 끝나고 힘은 마음(신념) 에서나온다고 생각합니다.정통성 확립이 최우선 과제라고 봅니다. 발차기가 있다 없다 손끝이 펴졌다 오무라 졌다는 그것에 비하면 사소한것이라고 봅니다. 일본관장과는 다른 따스함이 느껴지는 충고 기억 하겠읍니다. 합기도인이기를 바라며...

  • 작성자 06.07.23 08:27

    기술적인 정통성 확립과 역사적인 정통성 확립을 기대해 봅니다. 그 때문에라도 1945년 이전의 최용술선생님의 행적에 대한 논의는 겉으로는 조용히 내부적으로는 치열히 확인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손끝이 펴졌다 오무라졌져다 하는 것 발차기가 있고 없고는 정통성의 확인차원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 국내 합기도인들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합기도와 아이키도는 달라도, 합기도와 대동류는 완전히 같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몇년전까지는 그 중 하나였습니다.

  • 작성자 06.07.23 09:11

    그러나 이제는 원로분들이신 최용술선생님의 제자분들조차 대동류와 합기도(야와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계십니다.

  • 15.07.16 15:22

    약간 사실관계만 바로잡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인 특히 명망있는 일본이 가문에서 한국어린이를 입양한다는 것은 일본의 관례가 아니다." 소카쿠의 호적상 기록은 '농민'으로, 동거인을 포함하여 당시 고향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도 소카쿠 및 그의 아버지는 '농민'이었으며, 명망있는 집안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소카쿠가 주장한 가문의 역사는 소카쿠 본인의 창작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최용술을 양자로 받아들였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입양기록이 있는지 호적을 한 번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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