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소파' 현대판 노비문서 외세가 만든 세상은 가짜고 허위"
[인터뷰] 반미소설의 효시 <분지>의 작가 남정현 / 홍성식 기자 hss@ohmynews.com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65년 봄. '반미'라는 단어가 '용공'으로 이해되고 용공이란 낙인이
개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미국의 본질을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 <분지(糞地)>를 발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소설가 남정현(70).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노작가의 눈은 소년의 그것처럼 초롱하다.
"우리 원칙 거부할 땐 '나가라'고 말할 수 있어야 주권국"
▲ <분지>의 작가 남정현.
ⓒ2003 홍성식
"소파는 한마디로 현대판 노예문섭니다. 도저히 주권국간의 협약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어떻게 지식인과 진보적 예술인이 수백만을 헤아린다는 한국에서 이런 전근대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소파는 반드시 개정돼야 합니다. 그것도 일각의
주장처럼 '독일과 일본의 수준'이 아닌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수준으로 바꿔야합니다.
왜냐면, 한국은 독일과 일본처럼 전쟁을 일으킨 패전국이 아니라, 승전국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이 가지게 되는 지휘권을 한국군이 가져야하고,
미군을 한국군의 지휘계통으로 편입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철저한 개정원칙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가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권국의 당당한 태도입니다."
남정현은 항간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된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촛불시위는
소파개정운동으로 향하는 게 바람직하고, 촛불시위에서 보이는 민족주의도 우려할 바 없다는 것.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정책을
반대하는 겁니다. 그 촛불들은 미국의 식민지 혹은, 예속화 정책의 본질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미국 내 패권주의 정책입안자들이 긴장하는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촛불시위는 소파개정운동으로
가야합니다. 촛불시위를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고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아무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란 침략성과 자국민의 우등성만을 강조하는
공격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민족주의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 한번도 타민족을 침략하지 않는 우리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미군에게 강간당한 후 실성해 숨진 어머니와 주한미군 스피드 상사의 현지처로 살아가며 극악한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여동생을 가진 <분지> 주인공 홍만수는 미군의 아내를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첨단무기에 포위 당한 채 "세계는 미국의 펜타곤이 조종하고 있다"고,
"미국은 나와 내 가족 모두를 파괴했다"고 절규한다.
남정현은 지난 2000년 <그때나 이때나>라는 산문을 통해 홍만수의 피맺힌 절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왜? 무엇 때문에 세기가 바뀌었음에도 홍만수의 고통은 해소되지 않은 것일까?
그 궁금증을 안고 남정현을 만났다. 바람이 몹시 찼던 1월7일 혜화동 한 찻집에서였다.
아래는 남정현이 직접 들려준 <분지>와 자신의 이야기다.
<분지>는 어떤 소설인가?
소설가 남정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지>가 어떤 소설이고, 그 작품으로 인해 작가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미군에 의해 죽음을 맞은 어머니와 미군에게 학대당하는 여동생을 가진 홍만수가 미군 아내를
성폭행하고 향미산(向美山)에서 홀로 미국에 대항한다는 내용을 담은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이라
자처하는 홍만수가 죽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풍자와 알레고리
기법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1965년 <현대문학> 3월호를 통해 발표됐다.
위정자들의 별 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 소설이 공안당국에 의해 '빨갱이 소설'로 매도된 이유는
몇 달 후 북한 노동당기관지에 <분지>가 전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검거된 남정현은 남산의
지하밀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겪었고,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돼 2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야했다.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곧 용공이고, 용공은 주적인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 공안당국이
내세운 남정현의 죄목이었다.
"이 소설은 네가 쓴 것이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북한의 선동가가 쓴 것이 틀림없다.
대체 누가 이 발칙한 걸 썼는지 자백하라"는 턱없는 요구와 구타가 연일 계속됐다.
이 암울한 기억은 40여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도 작가를 현기증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하고 있으며,
'바리윰(신경안정제)'을 먹지 않고는 외출도 힘들게 만들었다.
고 안수길 선생과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이 변호인으로 참여했고, 당시 영민한 젊은 문사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이어령(전 이화여대 교수)이 변호인측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도 한 이 재판은
해방 이후 최고의 필화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에 의해 "외세의 발굽 아래 깊숙이 모독되었던 어머니 조국의 눈부신 부활을
선언했다"는 극찬을 받은 <분지>. 남정현은 <분지>의 집필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단 한번도 외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민족의 현실이 <분지>의 집필배경입니다. 일제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던 친일파들이 해방 후 친미파가 되어 정부의 요직을 독식하고, 이들이 친독재 세력이 되어
큰소리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저한테는 일종의 멍에였어요. 외세가 만든 세상은 진짜가 아닌
가짜 세상 같았습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진짜 세상에 대한 열망이 내 가슴속에서 들끓고 있었지요.
그 들끓음이 아마 <분지>를 쓰게 했을 겁니다. 외세에 대한 저항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내 나름의 몸부림이었지요."
결국 '선고유예'로 판결난 <분지>의 재판과정을 통해 남정현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고, 식민지에 다름 아니다'는 반정부 인사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는 믿지 않던 그였지만, 검거와 심문, 재판의 과정은 남정현에게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가르쳤던 것이다.
소설가 남정현은 어떤 사람인가?
193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남정현은 10년 이상 결핵을 앓는 등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다.
그의 친구라고는 독서와 공상이 전부였다. 일어판 문고로 접한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문학은
10대의 남정현에게 작가를 꿈꾸게 했다.
"맑스의 <자본론>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비롯해 칸트와 사르트르 등을 열심히 읽으며,
인간정신의 뿌리를 알아간다는 기쁨에 몸이 아픈 것은 뒷전이었습니다.
일어판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는 내 인생의 신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지요."
1958년과 59년 <경고구역>과 <굴뚝 밑의 유산>을 내놓으며 등단한 남정현은 <모의시체>와
<기상도> <너는 뭐냐> 등의 문제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짧은 시간에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성장한다. 투철한 현실인식과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남정현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시대의
모순에 저항한다. 문학에 있어 그의 무기는 풍자와 반어, 알레고리와 환상이었다.
하지만, 65년 <분지>와 관련된 풍파는 미래가 창창한 청년작가의 붓끝을 꺾었다.
그 고통에서 겨우 벗어나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절절하게 풍자한 <허허 선생> 연작 등을 발표하며
재기하려 했지만,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은 남정현에게 한번 더 크나큰 시련을 안긴다.
'장준하, 정일형(민주당 정대철 최고의원의 부친) 등과 학생들을 선동해 국가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된 것.
구속사유에는 남정현이 반미소설 <분지>의 작가라는 사실과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그가 적극 관여했다는 것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최후의 발악을 하던 박정희 군사독재의
마수가 다시 그에게 뻗친 것이다. 반복되는 체포와 감금 그리고, 고문. 이 악몽은 긴급조치가
해제되던 그 해 겨울까지 계속됐다.
이 끔찍한 시절을 돌아보는 작가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노기(怒氣)가 묻어있다.
"70년을 이 땅에서 살았지만, 한번도 '진짜 세상'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친일세력이 대대손손
주도권을 잡고있는 이 세상은 가짭니다. 누가 이 가짜 세상을 만든 것입니까? 바로 외세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인 채로 진짜 세상을 향한 출발선에 서 있을
따름입니다. 진짜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습니다."
1987년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른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남정현과 <분지>를 해금시켰다.
이후 '창작과비평' '실천문학' '다리' '작가' 등의 문예지를 통해 간간히 작품을 발표하며 남정현은
어느새 고희(古稀)를 맞았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외세와 그 세력에 빌붙은 매국노들을 비판했고, 역사와 인간 앞에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삶을 살아야했던 남정현.
그가 겨울날 고목(古木)처럼 늙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이가 된 것이다.
지난해 여름 묶인 <남정현 문학전집>(국학자료원)을 접한 시인 김정환은 "한국 현대소설가 중
그 성품이 남정현 만큼 개결(介潔)한 사람은 없다"라는 헌사를 선배에게 바쳤다.
또한 김정환은 남정현의 작품들을 "풍자로서 응축을 지향하는 엄정함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김정환의 말은 정확했다. 아래 기록하는 남정현과 기자의 짤막한 일문일답은 이 노작가가 세상과
인간을 아직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의 성품과 성정이 얼마만큼 염결하고, 맑은 것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가 이런 작가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것은 분명코
우리 모두의 불행이자 비극이다. 이런 불행과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가 되는 문학을 하라
-우리에게 진보와 보수란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에서 보수란 미래의 비전을 향하는 진보와 혁신의 대립개념이 아닙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친일에서 친미, 친 독재로 이어지는 제거되어야 할 반민족적 세력이에요.
4.19 혁명의 정신을 부정하고, 5.16 쿠데타를 칭송해온 이들은 정치적 이념으로써 보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신의 부와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써 보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통일을 거부하고, 외세의 힘에 기대 이 땅을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 아니겠습니까."
-좋은 문학작품이란 어떤 걸까요?
"자연과 역사의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이겠지요. 내가 생각하기에 '자연'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즉, 사랑과 아픔 슬픔과 미움 등이고, '역사'란 인간의 꿈과 이상을 위해 사용된 피와
땀의 축적입니다. 이 둘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롭게 만나는 문학을 나 역시 꿈꿉니다.
윤동주의 '서시'가 좋은 예가 되겠지요. 그 조화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가 되는
문학을 하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매명(賣名)보다는 좋은 작품을 쓰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문학은 수단이 아닌 목적입니다. 문학마저 약육강식의 시장원리를 추구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겠지요."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까?
"국가권력을 포함한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외부의 간섭이 사라지는 아름다운 협동쳅니다.
물론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 작가란 꿈꾸는 사람이며
이상주의잡니다. 물론 그 이상이란 현실에 기반 한 것이어야겠지요. 세상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60년대 미국 서부영화에서 본 패권 주의적 논리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어요.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외세로부터의 완벽한 자유와 해방을 꿈꾸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